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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1-12 16:40
[사진] 신미양요 당시 조선군이 입은 방탄복 (당시 사진)
 글쓴이 : 노닉
조회 : 4,590  


면갑(綿甲) - 조선말기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게 충격을 받은 흥선대원군의 명령에 따라 김기두와 안윤에 의해 1867년에 발명됨


이후 면갑을 제작병사들에게 보급했음


그로부터 몇년 뒤 1871년 6월 1일에 신미양요가 발발하는데...


<신미양요 당시 강화도 초지돈대를 점령한 미군과 전사한 조선군>


면갑은 신미양요때 실제로 효용성이 드러나게 됨실제로 총탄을 막아낸적도 있다고함


그러나 한여름에 착용하기는 너무 더워서 탈진하는 병사들이 많고 또한 불에 약하여 쉽게 불타버리는 약점이 있었음


미군 기록을 보면 총알 세례에도 용맹하게 달려드는 조선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적고 있으며


대포 공격 파편에 맞아 불이 붙은 조선군을 보기도 했다고함


<사진 속 조선군 시체를 보면 면갑임이 확인가능>


당시 미군은 조선에 총알을 막아내는 갑옷이 있다는 것에 당황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중 한 점을 포획해 미국으로 가져감최근까지 스미소니언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면갑>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실물이 1점 남아 있으며그곳의 면갑은 30겹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특징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304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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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elMint 22-11-12 17:50
   
편히 잠드소서..
잇힝 22-11-12 18:35
   
쓰러진 조상님을 뵈니 마음이 안좋네요. ㅠㅠ
     
통통통 22-11-12 21:51
   
저도 ㅠ
편안히 영면하소서
테킨트 22-11-12 19:02
   
저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로 강화도 일대 한강하구의 방어망이 와해되면서 운요호 왜요를 막지 못하고
결국 병탄으로 가는 문이 열렸죠.
     
hell로 22-11-12 21:57
   
각 수백명의 상륙군을 물리친 병인과 신미의 양 양요는
오히려 염하 양안의 방어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4년뒤 운요에서 내린 22명의 왜병에게 굴복한것은
방어의 와해가 아닌 내정의 혼란이 원인이었습니다.
          
테킨트 22-11-12 22:18
   
당시 조선은 신미양요때 망실한 500여문의 해안포대를 제대로 복구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미국의 2연타로 잠시 '기절'한 사이에 운요오호에 털린거죠.
               
hell로 22-11-13 23:23
   
미 상륙군의 화포폐기가 이루어진 돈대는
염하 초입의 초지돈 덕진돈 광성돈 3개소였고,
염하의 김포해안과 강화도의 나머지 2/3지역은 제외하고라도 
강화도의 염하구간에만 있는 나머지 돈대들인
적북돈, 휴암돈, 월곶돈, 옥창돈, 망해돈, 제승돈, 염주돈, 갑곶돈, 가리산돈, 용강돈, 좌강돈, 화도돈, 오두돈, 용두돈, 손돌목돈, 장자평돈, 섬암돈, 택지돈, 동검북돈 들은
염하 초입인 광성보에서 조선군의 결사항전에 기가질린 미군이
엄두도 못내고 후퇴하는 바람에 특별한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염하 건너편 김포해안의 돈대와 나머지 강화도의 돈대들은
말할것도 없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