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빠르게 세상이 변해서 과거와 차이가 심하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확실히 미국 및 서방의 군사 전략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냉전 이후 이제 전면전은 없다는 식으로 압도적인 항공력과 해군력을 바탕으로 기습적인 공격 전과 후에 따르는 국지전 수행에 목표를 뒀습니다.
그리하여 90년대 계획되었던 대규모 지상 무기 개발 및 도입 사업이 취소되었던 미국이죠.
미 육군의 지상 무기는 거의 30년 동안 일부 개량만 진행했을 뿐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2000년대와 201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이 말하는 기습전 및 국지전 양상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석유 등의 에너지 자원 문제로 러시아가 통제권 밖으로 나가면서 미국의 군사 전략의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러시아가 서방과의 경제 및 에너지 문제로 직접적인 군사력을 동원하고 전통적인 전선전 및 총력전을 펼치면서 대규모 지상전력 및 화력 부대의 필요성이 강조 됩니다.
지금 NATO 주요국들의 지상군 보유 현황을 보면 전차 및 자주포 전력과 같은 주요 화력 전력이 매우 위축돼 있습니다.
게다가 당장 전력 보강을 위해 생산량을 늘려야 할 판인데 해당 분야의 군수 산업이 거의 사장됐다고 할 만큼 변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도 최신 전차로 M1a2 SEP3을 내 놓고 있지만 이는 기존의 M1전차를 창정비 하면서 일부 성능을 개량한 것입니다.
물론 성능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놀랍게도 미국은 신규 M1전차 생산 라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긴급 소요로 서방에 팔려고 해도 생산라인을 복원하거나 면허 생산을 주기도 힘든 형편인 것입니다.
그나마 전차는 30년을 쓰고 있어도 성능면에서 일선 최신예 전차들과 경쟁할 수 있으나 자주포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미국은 90년대에 크루세이더라는 차기 자주포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155mm 54구경장에 가스터빈 엔진, 강제 냉각 포열 시스템에 둔감 장약까지 갖추며 분당 12발의 무시무시한 성능을 가진 자주포로 계획됐습니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으로 이 사업은 폐기되었고, 복원되지 못합니다.
그 후 지금까지 미군은 '건업'을 중심으로 신규 자주포 개발 계획을 두 번 정도 추진했으나 대규모 기갑전은 없을 것이라는 전제로 심각한 예산난을 겪으면서 모두 폐기됩니다.
현재 미군의 주력 자주포는 M109A7 인데 여러 개량을 통해 비약적인 성능 향상이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M109모델 자체가 1950년대 모델입니다.
같은 차대를 쓰던 105mm 자주포 M108과 203mm 자주포였던 M110 자주포는 모두 이미 30년도 전에 퇴역하였습니다.
지금 러시아와 중국 등은 사거리 70km 급의 포탄과 포신을 개발하여 자주포로 장비하고 있고, 모두 '슈트엔 스콧'이라는 대포병레이더 대응 전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차와 달리 자주포에서는 미군 전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이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폴란드를 비롯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거나 가까이 있는 나라들은 정규전을 대비한 전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실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보다 러시아의 확장이 전면전 국면으로 전개될 수 있으므로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새로운 협력과 화합, 그리고 공동 선언을 통해 세계 전면전을 없앤다고 발표한다면 달라지겠지만 어느 나라건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위협에 대비는 해야 하는 것이기에 긴급한 소요와 중장기적인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지상 전력으로 주력전차, 대구경 자주포, 유도 및 무유도 다련장로켓포 등이 있습니다.
미국이 당장 서방과 동맹들에게 제공하기 힘든 전력이 현시점에서는 대구경자주포입니다.
물론 다른 장비들도 신속 제공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대구경 자주포는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러시아나 중국의 자주포에 사거리와 기동성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죠.
혹여나 교전이 발생해 교전비가 산출되거나 적에게 파괴돼 장비가 노출된다면 미국은 상당히 껄끄러워 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빠른 대안을 찾아야 하고 그 대안이 바로 우리의 K-9 자주포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K-9에 대한 성능 테스트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미군이 직접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한화 관계자를 통해 미군 포탄을 K-10에 적재하고 K-9으로 이송하며 동시에 발사하고 최대발사 속도와 지속 발사 속도 등을 측정하고 미군의 최신탄에 대한 사거리 특정도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미국이 우리 자주포를 도입한다? 저는 이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 단계에서 그것을 고려하고 있다기보다는 당장 폴란드를 비롯 소요가 증가하고 있는 K-9을 일종의 서방제 표준 자주포로 삼고 미군의 군수와의 호환성을 따져 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이미 서방제 자주포 시장에서 절대적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K-9이며 개량형이 영국의 차기 자주포 사업으로 입찰 중이며 러시아 사태로 서방에서 더 많은 소요가 예측되기 때문에 미국의 전략에서 유럽에서 러시아 등을 막을 지상군 화력으로 자주포는 K-9을 기본으로 하고 이에 대한 미군의 군수와의 호환성을 확보하여 근시점의 문제에 대비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러시아의 확장에 대해 K-9이 동유럽 등에 신속히 생산 및 배치되고(일부는 미국의 자본으로 구매하여) 탄 등은 미국이 직접 제공하여 막아 낸다는 것이죠.
미국이 당장 크루세이더 사업을 복원시켜서 동성능의 신규 자주포를 개발하면 다행이겠지만 현시점에서 이는 매우 불가능해 보입니다.
크루세이더 계획이 폐기되고 이후에 있었던 차기 자주포 계획을 보면 예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포신 강화를 통한 사거리 연장을 제외하면 차체의 기동성 등은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가 K-9 자주포를 개발하고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미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때문에 미군이 차기 자주포를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와의 협력을 통해 K-9을 기반으로 할 수도 있는 상황이며 K-9을 면허생산하여 자국화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상황이 이러니 격세지감이나 상전벽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멀지 않은 시점에 K-9 자주포의 생산량이 M-109를 넘어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