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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11-26 09:28
[잡담] 어제 고려거란전쟁 드라마를 보며 기존 전쟁사극과 다른점
 글쓴이 : 핵존심
조회 : 2,656  

보통 지금까지 전쟁사극을 보면 왕들이 명령하면 그냥 단순희 땅따먹기만 보여줬는데 이번 드라마는 좀 다르더군요 예를 들어 양국이 전쟁을 할때 고려와거란은 병력수급하는게 어떻게 다른지 차이점을 보여주고 전쟁하기전 치열한 외교전이나 전쟁시 백성들은 어떻게 하는지 등이 자세희 나와서 조금더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전시 동원시 고려는 충정도 이남?쪽은 황제의 동원명령을 호족들이 잘 듣지 않는 모습등에서 조선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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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돌이표 23-11-26 10:04
   
고려시대에는 호족의 힘이 강해서 호족이 병력도 갖고 있습니다.
봉건시대라고 하는게 이해하기 빠르죠.

그렇게 호족이 강했기에 왕건은 부인을 22명이나 둔거구요.(죄다 호족의 딸들이죠)
광종이 누이동생의 성을 황보로 바꾸면서 결혼한 이유이기도 해요.
황보씨가 유력했기 때문에 황보씨의 딸(왕건과 황보씨)을 외가쪽 성을 가져와서 결혼시킵니다.

고려시대 근친혼은 이런 식이었어요.
왕의 딸중에 외척의 성씨를 받아서 결혼하는거..

즉 고려도 근친혼을 싫어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성씨를 바꾸잖아요.
하지만 왕권이 약하면 어쩔 수 없이 호족의 힘이 필요하니 근친혼을 할 수 밖에요.
또돌이표 23-11-26 10:07
   
호족이 가진 병력을 사병 이라고 하죠.
이 사병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서 당연히 고려시대 말인 이방원 도 갖고 있었고
2차 왕자의 난때는 형의 사병과 동생의 사병이 총 동원되서 동생이 이기고요.

나중에 수양대군이 반정할때 요긴하게 써먹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성종이 사병을 완전히 철폐합니다.
이제 중앙 집권 국가가 되는거죠.
과부 23-11-26 10:13
   
현종의 할아버지가 태조 왕건일 정도로 고려 건국 이후 지방 호족 세력이 아직 막강한 시절입니다.
현종이 지방 나주로 피난갈때 지방 호족에게 재물을 뺏기는 등 엄청난 수모를 당하는데 그게 더러웠던지(?) 3차 침공때는 개경을 사수합니다.
그리고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마자 "향리정원제, 향리공복제, 주현공거법" 같은 지방 호족을 약화시키는 국법을 시행하여 왕권을 크게 강화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세금과 부역을 줄여 주어 향후 100년간 태평성대를 만드는데 그당시 고려는 주변 어느 나라도 무시하지 못하는 막강한 국력을 자랑했는데 그래서 세종과 함께 한국 역사에 2대 성군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이쉬타 23-11-26 11:19
   
고려는 건국초부터 호족의 힘이 강력햇고,,왕권은 상대적으로 약하고한 정치구조 였엇죠
이는 포악한 군주가 나타나더래도 견제가 가능하고한 장점을 가지고 햇으나
이의 단점으로 외침에 허약한 국방력 구조를 잉태하여 과거 우리조상들이 제대로 외세 침략을
 막아내지 못한 약점으로 작용한것 입니다
고려측이  요나라의 초기 침략에 속수무책으도 당한 이유가 그것엿져
이쉬타 23-11-26 11:39
   
고려사회의 주요특징// 고려는 신분제 구조가 좀 나이브 한 그러한 사회인데..
정부 관료는 오직 양반만이 허용되고 햇으나 출신이 아무리 비천해도
직업군인이 되어서 전장에서 공훈만 쌓는다면  하층의 천민도 신분 상승이 보장이된
 상당히 개방적이고한 사회였다,,
고려는 그래서 국력에서는 약햇지만 직업군인제가 발달 했고
군인은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고한 나라엿다,,
이것이 고려를 외침으로부터 지키는 근원이 됬다
과부 23-11-26 11:52
   
고조선시대부터 부족국가로 이루어진 국가체제를 구성하고 있었기에 삼국시대에는 호족세력이 엄청 강대해집니다.
고구려는 고씨(주몽)이 주변 말갈족까지 포함해 국가를 구성해 전시에 각 호족들이 자신의 사병들을 보내어 나라를 지키는 등 나름 역할을 하게 됩니다.연개소문같은 드라마를 보셨다면 부족장들이 왕에게 모여 자기가 군사를 얼마 낼테니 싸우자하면서 주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체제가 고려시대에 무신정권을 낳는 계기가 되었고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오다가 조선 태종때 호패법을 통해 사병을 두지 못하게 하면서 왕을 제외한 어떤 조직도 군대를 거느리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게 오히려 군권을 장악한 관료들로 인하여 반정이 일어나 중종이나 인조 등 무능한 군주를 낳고 반정을 무서워하는 임금이 사화를 일으키는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군대는 무능의 극치를 보이며 약화되면서 조선 중기이후 전란때 아시는대로 의병이 군대보다 강한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가정이지만 임진왜란대 만약 지방 호족에게 막강한 사병이 있었다면 왜군에게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했을까 호란때 그렇게 무기력하게 뚫렸을까하는 생각도 드는데 역사에 가정은 없으니 뭐....
     
구름위하늘 23-11-27 11:29
   
임진왜란 전에 지방 호족의 사병이 있었다면
그전에 조선이 분열되어 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조선은 그 강력한 유교 통치 속에서도 반란 역모가 많이 발생했었습니다.
Mr제로 23-11-26 12:41
   
다른 사극들은 뭐 태조 왕건, 대조영 등등처럼 인물에 초점을 맞춘 사극이 많았기에 전쟁을 단순하게 보여준게 많았던 거고, 이건 드라마 제목부터가 고려거란전쟁이니 당연히 전쟁발발상황, 전쟁과정 등을 상세히 보여주는거죠 ㅋ
암튼 저도 요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야구아제 23-11-26 12:57
   
고려시대는 조선시대와 많은 차이가 있죠. 조선 초에 와서야 사병이 혁파 되면서 중앙 집권이 공권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지역별로 호족, 몽골 배후 세력 등이 분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사실상 고려도 여러 번 전란을 겪으면서 리셋된 결과로 조선 사회가 가능했던 것이죠.

여하튼 이 당시 고려 황제가 나주까지 가는 과정은 정말 반지 원정대 수준의 고난과 역경 배신과 구원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유비가 백성을 데리고 조조의 손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빗댈 수 있을까요?
점퍼 23-11-26 13:05
   
고려, 조선의 한계는 당시 문명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현대와 같은 통신 수단이 없는데... 저 멀리 사는 지방 호족, 지방관리, 군대장수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때문에 왕은 언제나 신하를 의심하고 신하를 견제해야 자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왕도 결국 하나의 인간일 뿐이고 인간의 인지능력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지요.
     
구름위하늘 23-11-27 12:27
   
통신수단의 문제 때문에 지방호족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수단으로 하는 전령 체계는 생각보다 빠른 소통이 가능합니다.
기병은 보통 하루 30Km~40Km의 진군을 하지만,
말을 갈아타는 전령의 속도는 하루 160Km 라고 합니다.

(서울 부산 간의 파발마는 3일~4일 소요)
참고 https://blog.naver.com/tlsdntjr/130023344767

몽고에는 밀릴지 모르지만, 고려도 기병과 보병이 1:1 비율로 구성될 정도로 말이 많았습니다.
통신 수단의 제약이 아니라, 호족 자체를 밀어버릴 중앙정부의 정치 군사력이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N1ghtEast 23-11-27 04:54
   
울나라는 지방 호족 한번 싹 정리한 것
신앙종교 싹 정리한 것
이 두개가 해방 후, 내전을 치렀음에도 울나라가 급속발전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밑거름들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