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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2-02 10:20
[잡담] 북벌론
 글쓴이 : 야구아제
조회 : 849  

고려말 정국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잦은 외세의 침입으로 삶이 피폐했고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회의 불만은 더이상 체제를 지탱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몽골의 침입을 12번이나 막아 내면서 불교에 의지해 사상을 모으고 결집을 시도했던 고려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더 큰 불교의 힘을 얻기 위해 더 큰 불사가 필요했고 국가의 위기 속에 더 큰 불사는 더 큰 희생과 통합이 아닌 차별을 만들었습니다.

변화의 요구가 한계에 다다를 때 지식인들은 시대를 바꿀 새로운 사상이 필요했고, 현실을 직시하고 내세나 극락이 아닌 오늘과 내일을 직시하는 철학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래서 성리학은 이 땅에 도입됩니다.

성리학의 내용이 위대하고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라 시대 변화의 요구에 부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오늘을 바꾸기 위해, 그래서 희망과 미래를 만들기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성리학은 고려말 정국을 휩씁니다. 

바꿔야 한다, 변해야 한다.

조선은 그렇게 변화의 강제성으로 탄생합니다.

현실 문제의 중요성이 정국 변화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음에도 항상 이상에 대한 염원, 어떤 분쟁도 하나의 맥락으로 수렴해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 이상에 대한 동경은 조선을 다시 이상론에 치우치게 합니다.

조선 건국의 주체였던 실용주의, 현실주의 노선이 사림을 중심으로 성리학 본질주의라는 이상론으로 대체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조선 중기에 접어들면서 성리학은 중화의 질서가 곧 세상의 질서이며, 우리가 중화주의의 신봉자가 되어 세계를 이상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도되게 됩니다.

성리학적 이상세계가 조선의 목표가 되었고, 그 이상을 향해 조선의 지식인들은 몸과 마음을 다 합니다.

이상은 현실을 떠나서는 망상에 불과합니다.

임진왜란을 사상과 언변으로 대비하려 했던 위정자들은 직격탄을 맞고 다시 현실 문제에 봉착합니다.

7년간의 전쟁과 황폐화된 조선. 

삶은 절망 속에도 계속된다고 했던가요?

대명의 질서가 굳건하니 그것으로 된 것이라는 조선의 위정자들.

이미 백성들은 성리학자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민중 스스로 새로운 사상을 준비합니다.

근대적 가치, 평등과 자유, 현세주의를 바탕으로 조선의 민중은 인내천 사상을 이끌어 냅니다.

그러나 주류 사상계는 아직도 성리학에 머물러 있었고, 병자호란도 막지 못합니다.

세상을 읽지 못하는 위정자들.

이제 중화의 질서를 버려야 했는데 그들은 중화의 질서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벌론, 청나라에게 입은 치욕을 씻자? 아닙니다. 중화의 질서를 회복해 사대의 질서를 확립하자는 것입니다.

현실주의에 입각한 사실 복수가 아니라 이상주의에 입각한 추상적, 정신적 발호였습니다.

중화 질서 회복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북벌이었던 것이죠.

현실성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북벌론이라는 이상은 결국 현실에 벽에 무너집니다. 효종이 죽고 이를 이을 간 큰 이상주의자는 없었던 것이죠.

북벌론의 허상이 깨지고 현실 자각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더욱 이상한 방향으로 이상을 추구하게 됩니다.

우리가 곧 중화라는 소중화 사상으로 경도된 것이죠.

우주 만물의 중심이 우리 조선이라는 시각, 이제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고려말과는 또다른 말세적 징후, 많은 중인 계층과 몰락 양반, 지식을 쌓은 계층들은 유학의 실사구시 회복을 추구하며 격물치지의 실학을 개척합니다.

실학은 학문의 본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학이 현실을 읽어야 하고 현실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사고였습니다.

그리하여 경세제민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중농이나 중상으로 나타 났고, 서구의 문물이 들어 오던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는 북학론으로 이어집니다.

북학론, 북학론을 청나라를 배우자는 것이 아니라 청나라를 통해 전해지던 최신 학문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당시 북경에는 서방의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 와 있었는데 그들은 서구 르네상스의 결과물인 과학과 예술을 천주의 질서로 정리해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했습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서구의 발달한 문명을 천주의 질서 아래 펼쳐진 철학으로 이해하고 서학을 추구하며 일부는 성리학을 버리고 천주를 모시는 이상의 전환을 시도합니다.

조선 후기의 사상계, 인내천 사상, 소중화의 성리학, 실사구시의 유학, 천주를 모시는 서학 등 통일되지 못한 사상이 서로 대립하며 조선은 분열과 부조화로 미래를 설계하기 힘든 상황이 됩니다.

근대 서구 철학이 '주체'의 개념을 통해 '객체'와 구별되는 우월성을 강조하고 근대를 이룬 주체를 이상이라고 선전합니다.

외세의 침입에 속수무책이나 다름 없던 조선의 위정자들은 종국에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사상을 이용하며 이기주의를 사상으로 포장하기에 이릅니다.

개화를 위해 외세를 등에 업어야 한다며 누가 집권을 할 것이냐를 두고 주사위를 던진 것이죠.

집권만 하면 나라가 망하든 말든 상관 없다던 그들.

그들은 실제로 나라를 팔고 개인의 이상을 실현합니다.

2024년 오늘에서 조선 시대의 북벌론을 봅니다.

신기하게도 지금도 북벌론이 하나 있습니다.

현실을 보지 못한 이 나라의 지식인들로 한 세기를 치욕과 오욕의 역사를 보내며 국토의 절반을 상실하고 민족이 분단되고 외세의 대리전까지 치르게 됩니다.

북한과의 통일은 현실이며 근 미래에 꼭 이루어야 할 국가적 사명입니다.

통일의 방법론은 몇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론은 과거 조선 시대의 북벌론처럼 따를 수 없는 이상에 닿아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북한에 적대적이고 미국을 숭상하는 어떤 이들은 북한과는 손을 맞잡을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이므로 힘으로 북한을 찍어 눌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허상의 북벌론입니다.

효종 때와 마찬가지로 실현 가능성이 낮습니다.

이유는 우리의 군사적 능력이나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습니다.

친미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길이라며 친미를 넘어 숭미를 하는 집단은 미국의 총알받이를 마다하지 않고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구원한 미국에 대해 절대적 숭상을 추구합니다.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우리 국민의 행복과 이익을 우선하지 않는다면 쓸모 없는 허상에 불과하며 숱하게 겪은 아픔과 상처에 대한 교훈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대의 질서를 위한 북벌이 아닌 국민을 위한, 더 나은 대한민국을 외한 실쳔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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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위하늘 24-02-02 11:25
   
중간에 나오는 인내천 사상은 서학에 자극받은 동학의 중심 종파였던 천도교에서 나온 것이고,
시기적으로도 조선 말에 나온  사상 입니다. 
언급된 병자호란이나 북벌론과는 상당히 뒤에 나온 것이라서 두 가지를 연결해서 설명하면 이상합니다.

효종의 북벌론이 가능성은 낮았고, 북벌의 가능성보다는 다른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가능성이 무시할 수준이냐는 질문에는 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시 청은 막 건국한 나라이고 기병 중심이기는 하지만 총병력은 팔기군 6만 정도였습니다. (7,500 x 8)

조선이 고려에 비해서는 기병 수준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조선도 기병 비율이 높은 군대이고
화약 병기를 기준으로는 수준이 청나라보다 높았습니다.
문제는 훈련이 안된 군대라는 것이었죠.
10만의 군대를 유지할 능력이 있었냐는 것에는 의견들이 많겠지만 고려시대에서 10만 군대에 5만 정도가 공격부대로 동원되었던 기록이 있습니다.

효종 시대 북벌이 허상이라는 주장에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청나라가 건국되는 과정도 거의 기적(?)같은 가능성을 뚫고 이루어낸 것이니까요.
     
야구아제 24-02-02 11:52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의견을 존중하며, 요약적인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조선 후기의 역사에서 양란으로 얻은 교훈을 현실적으로 풀어 내지 못했고, 사상계와 정치계가 경도된 부분이 커 현실을 외면한 결과 시대 변화의 조류에 순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의 추구는 현실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저의 소견입니다.

북벌론에 대해 북벌을 추구하는 세력이 어떤 가치와 목적을 가졌는가에 집중했을 때 지나친 이상론이었다는 입장이며, 그런 의미에서 가능성이 낮았다고 봅니다.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을 보면(실제 박지원은 북벌을 준비하던 시기보다 100년 정도 뒤의 사람) 북벌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제시하지만 결국 사상적으로 경도돼 허례허식을 버리지 못하는 위정자들에 대한 비판이 등장합니다.

결국 북벌론을 이끄는 세력들이 현실론이 아니었다는 지적이죠.

더불어 뜬금 없이 왜 북벌론이냐면,

작금의 남북 대치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현실 문제에

북벌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마치 조선시대 때 북벌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처럼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며,

우리 대한민국의 안보와 발전이 아닌 미국이라는 대의 명분에 다시 사대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

그로인해 이상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 개인적 이익을 취득하고 국민과 국가는 외면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발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