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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4-12 22:13
찰갑(札甲/Lammellar Armour) [미스터 술탄님의 포스팅 펌]
 글쓴이 : 무세띠
조회 : 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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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세계의 찰갑
3 찰갑의 특성
4 찰갑의 제조
5 현대의 찰갑
6 관련 항목

1 개요


작 은 철판(小札)을 연결해서 만드는 갑옷.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드라마나 영화를 비롯한 서브컬쳐가 압도적으로 유럽을 묘사하다 보니 중국 등의 아시아에서만 쓴 갑옷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굉장히 폭넓게 쓰인 갑옷이다. 사용국가는 그리스, 로마, 러시아, 노르만, 바이킹, 아랍,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한국, 일본, 시베리아, 몽골, 인도체인메일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였다.

문명 초기부터 사용되었으며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앗시리아, 바빌론 등의 고대문명에서부터 부조나 벽화 등으로 확인된다. , , 를 비롯한 중국 고대문명에서도 사용이 확인되며, 이후 계속해서 중국의 대표 갑옷으로 자리잡았다. 투르크/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가 찰갑을 대량으로 사용하여 이들이 중동을 대대적으로 침공한 이후에는 이란이나 아랍국가에서 몽골식의 찰갑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잠시 있었으며, 중앙아시아와 가까운 동부 러시아에서도 상당량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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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의 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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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삽화에서 묘사된 몽골군. 모두 찰갑을 착용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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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란의 문학작품 제왕사기(Shah-nama) 14세기판에 수록된 삽화. 모두 찰갑으로 무장하고 있다. 제왕사기는 창세기에서부터 사산조 페르시아까지의 각 왕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 서사시로써 시대배경은 7세기까지이지만 고증의 개념이 없단 당시에는 과거의 군대를 묘사하면서 저자가 살던 시대의 군대를 자세히 관찰하여 그려넣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유럽에서도 같아서 다윗과 골리앗이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싸우는 삽화도 많다. 따라서 이러한 서사시나 역사책, 영웅담의 삽화는 오히려 당시 갑옷과 무기를 알아보는데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며, 같은 책이라도 판본에 따라 달라지는 무기와 갑옷의 묘사를 통해 시대적 변화를 알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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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세기 러시아군)

고대 그리스에서는 리넨으로 만든 흉갑의 배 부분을 강화하는 용도로 청동 소찰을 두른 종류가 있었으며, 로마에서는 중동국가들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로리카 스쿠마타(Lolica squamata)라는 갑옷이 존재했다. 로리카 스쿠마타는 프랑크 왕국의 갑옷에 영향을 주었으며, 훗날 바이킹중에서도 러시아 등으로 진출하는 스웨덴의 바이킹들은 찰갑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었다. 이들의 찰갑은 바이킹 이후 가난했던 현지 사정 탓에 대대로 전수되어 1361년 비스비 전투(Battle of wisby)의 전사자 집단매장지 발굴에서는 당시 년도에서 기본 수백년 전의 구식 찰갑이 대량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슬람 전파 이후에도 체인메일의 부족한 방어력을 보완하는 용도로 흉갑 정도에서부터 코트 범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었으며, 이슬람세계에 용병으로써 들어온 투르크인들이 이러한 경향을 더욱 촉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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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호라즘 왕조군대)

한국 남부에서는 찰갑은 잘 사용되지 않았으며 고구려는 일찍부터 찰갑을 사용하였다. 가야일본신라를 공격하자 고구려가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여 가야와 일본군을 괴멸시킨 이후에는 찰갑을 점진적으로 도입하는 경향을 보이며, 특히 일본에서는 이러한 찰갑을 게이코(掛甲)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이 괘갑은 훗날 일본갑옷의 대표격인 오오요로이에도 계승되어 전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갑옷은 모두 작은 철판을 끈으로 꿰어 만드는 찰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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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괘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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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갑에서 진보된 오오요로이(大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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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년 지방태수 이와이의 난 당시의 일본갑옷. 괘갑과 단갑이 보인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찰갑은 15세기부터 점진적으로 소멸하기 시작한다. 이슬람세계에서는 경번갑이 특유의 장점으로 유지/정비에서 불리하던 찰갑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중국에서는 대까지 찰갑이 사용되었으나 나 라가 중원을 장악하면서 자국의 두정갑을 주력 갑옷으로 채택하면서 찰갑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도 마찬가지로써 후기에는 두정갑을 주력 갑옷으로 채택한다. 일본은 전국 시대에 들어 찰갑 대신 넓은 철판을 이용해 갑옷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 편이 정비/보수나 방어력에서 월등했다.

다만 중앙아시아의 경우 18세기까지 찰갑을 사용하였고,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러시아가 진출하는 19세기때까지 찰갑과 활을 사용하는 원시적인 군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티베트도 마지막까지 찰갑과 다른 갑옷이 공존하였다.

2 세계의 찰갑


그리스에서는 리넨 흉갑의 배 부분을 보강하기 위한 용도로 철이나 청동 소찰을 연결하는 풍토가 있었으며, 로마에서는 스케일 아머인 로리카 스쿠마타(lorica squamata)가 존재했다. 이런 갑옷은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았다.

중동에서는 이미 고대 페르시아아시리아와 같은 왕국들의 부조를 통해 찰갑을 착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집트도 마찬가지였다. 동로마 제국과 같은 그리스계 로마제국에서는 이러한 중동 풍토의 영향을 크게 받아 보병부터 기병에 이르기까지 전 병력이 클리바니온(klibanion)이라는 찰갑으로 무장했다. 사마르티아스키타이와 같은 기마 민족은 대중적으로 찰갑을 사용하였다. 사산조 페르시아나 파르티아가 운용한 중장기병들도 몸통이나 스커트는 찰갑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슬람전파 이후로도 군사적 경향은 그대로 유지되어서 체인메일찰갑이 주력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지속되었으며, 투르크인들이 뛰어난 기마술과 전투력을 인정받아 아랍인들의 군사 전담으로 이슬람세계에 진출한 이후에는 동로마 제국의 클리바니온 스타일의 찰갑에 더해 중앙아시아 양식의 찰갑이 도입되었으며, 몽골의 침략 이후로는 선진 군사제국인 몽골의 장비를 도입하여 투르크-몽골 방식의 찰갑이 13~14세기 내내 이슬람세계 갑옷의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집트는 투르크인이 많은 전투노예 맘루크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란일 한국으로써 몽골인의 직접통치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매우 커지게 된다.

그러나 15세기에 들어 몽골계의 영향력이 소멸하고 경번갑과 같은 신형 갑옷의 장점이 받아들여지면서 찰갑일변도의 갑옷 문화는 14세기를 거치며 전환점을 맞고, 15~16세기 내내 이슬람세계는 경번갑이나 두정갑을 중심으로 하는 갑옷 문화를 가지게 된다.

중국은 나라 때부터 찰갑을 사용하였으나, 이때의 찰갑은 단순히 큰 청동판을 리벳 혹은 끈으로 연결하여 배열한 것으로 찰갑이라기보다는 통짜 흉갑과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라때에 이르러서는 비슷한 경향은 그대로였으며 이러한 초기형 찰갑으로써 국의 제후 을(曾侯 乙)의 가죽 갑옷이 남아 있는데, 끈의 사용량도 매우 적은 전형적인 초기형 찰갑이지만 자주 움직이는 하체 부분은 레미네이티드 구조를 통해 쉽게 움직이게 만드는 등 갑옷으로써의 조치는 잘 취해져 있는 편이다.

나라 때까지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었으나 나 라 때부터는 스케일 아머(Scale Armour)형식의 갑옷이 활성화되며, 곧 스케일 아머의 단점을 보완한 형태의 내중식 러멜러 아머로 전환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투구까지 소찰을 엮어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때에는 큰 철판을 사용하기보다는 작은 소찰을 대량으로 엮어 유연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보인다. 5호 16국시기에 이르러서는 중앙아시아 이민족들의 중원 진출을 통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미지의 찰갑들이 고착화되며, 이때에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마갑까지 갖춘 중장기병이 활약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때의 영향은 고구려에까지 미쳐서 고구려 중장기병 편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고구려도 역시 찰갑으로 중무장한 중장기병을 운용했다.

나 라의 명광개와 같은 갑옷도 전형적인 찰갑이며 이때는 방어력 향상을 위해 거울처럼 연마한 대형 철판인 호심경을 가슴 양쪽과 등, 배에 부착하기도 했다. 다만 이때부터는 찰갑의 유연성을 특별히 추구한다기보다는 가슴, 배, 어깨, 허벅지와 같은 파트를 나누고, 소찰 자체는 유연성이 적은 대신 방어력이 좋게 만드는 경향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의 양상이 우리가 흔히 중국 갑옷이라고 하면 이미지하는 스타일이다. 중국의 독특한 소찰인 산웬키아(山文甲)[1]도 당나라 때부터 등장했다.

중 국의 찰갑은 이러한 양상으로 흘러갔으나 몽골, 티벳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한국은 파트별로 나누지 않고 한벌의 코트로 만들어 바로 입는 방식으로 만드는 경향을 유지해나갔다. 특히 한국의 찰갑은 몽골/티벳식과 상당히 유사한 편이다.

바이킹들은 체인메일로 유명하지만 찰갑도 상당히 많이 사용했으며, 특히 러시아 지역으로 진출했던 스웨덴 바이킹들이 애용했다. 이들이 이때 사용했던 갑옷들을 대대로 소장하여 훗날 1361년 스웨덴 고틀랜드에서 발발한 비스비 전투(Battle of wisby)의 집단매장지에서는 대규모의 찰갑과 코트 오브 플레이트가 발견되었으며 대부분 당시 연대보다 수백년정도 이전의 물건들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바이킹이 노르망디 지방에 진출해 세운 노르망디 공국에서도 일부 찰갑이 사용되었으나, 곧 사장되고 체인메일이 주류 갑옷으로 나오게 된다. 이후 서유럽에서는 찰갑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3 찰갑의 특성


찰갑의 장점은 무엇보다 철판들을 끈으로 엮어서 만들기 때문에 유연성이 있다. 체인메일만 큼은 아니지만 몸의 세세한 움직임에 조금씩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편의성이 있었고 이 이유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스키타이, 사마르티아, 몽골을 비롯한 기마 민족들에게 특히 애용되는 경향을 보였다. 또 체인메일이 찌르기나 화살, 타격에 어느 정도 취약한 면을 보이는 반면에 철판들로 구성되어 이러한 점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최대 장점은 생산의 규격화와 용이성이 압도적이라는 데에 있다. 플레이트 아머는 반드시 생산자의 몸에 맞추어 맞춤생산을 하거나 지정된 규격별로 만들어야 하므로 대량생산에 부적합하다. 그러나 찰갑은 작은 철판, 즉 소찰(小札)의 규격만 지정해놓으면 수백만개를 생산해놓더라도 사용자 체형이 틀려서 못쓸 일이 전혀 없다. 덩치가 크다면 소찰을 많이 엮으면 되고, 작으면 조금 엮으면 된다. 또 제작 공정 대부분이 단지 소찰을 엮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아 쉽게 생산인력을 양성, 투입할 수 있다. 더군다나 갑옷공장은 시대를 불문하고 상당히 분업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찰이 생산되면 곧바로 조립부서로 넘겨져 규정된 일반 체형 시트에 맞추어 생산을 완료하고 출고되는 방식이라 생산도 빨랐다. 규격화되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소찰 몇곳이 못쓸 만큼 크게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해당 부분만 교체해주면 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국가적으로 대규모 군대를 운용하는 전통이 있던 중국이나 페르시아, 동로마 제국등에서 많이 사용되기도 했으며, 특히나 중국은 찰갑으로 대표될 만큼 찰갑 생산/운용에서 압도적인 비율을 보이기도 했다.

단 점은 생각보다 많다. 소찰을 연결하는데 주로 가죽끈이 사용되는데 반드시 약화되고 부식되는 단점이 있어 전투에 투입되지 않더라도 몇년 단위로 가죽끈을 전체적으로 교체해줘야 하는 오버홀(Overhall)을 해 줘야만 했다. 전투에서는 도검에 베이기라도 할 경우 끈들이 베여 전투 후 끈을 교체하는 수리를 해야만 했다. 스케일 아머는 이러한 문제점이 좀 덜하지만 비늘처럼 들리는지라 아래에서부터 찌르기에 취약했다. 또 소찰들이 대량으로 겹쳐져 있는 구조여서 사이사이로 수분이나 이물질이 침투하여 부식을 시키기 쉬웠고 이것을 체크해줘야만 했으며 부식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끈을 풀어야만 하는 등 주로 정비/지원 면에서 약점들이 많았다.

4 찰갑의 제조


찰갑을 구성하는 2대 요소는 소찰과 끈이다. 소찰은 한자어로써 일본에서는 코자네(小札:こざね), 영어로는 스케일(Scale) 또는 러멜러(Lamella)라고 불리는 것으로 작은 판에 끈을 꿰기 위한 구멍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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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분포한 만큼 소찰의 형태와 구멍의 위치와 숫자, 연결재료와 연결방식도 세계구급이다. 또 같은 찰갑이라도 부위에 따라 연결방식과 철판의 양식이 틀려진다. 크게 나누어 철판 여기저기에 구멍을 내어 철판끼리 끈이나 리벳으로 연결하는 러멜러 아머(Lammellar Armour)와 물고기 비늘 모양의 철판에 윗부분만 구멍을 내어 천이나 가죽 바탕에 연결하는 스케일 아머(Scale armour)의 방식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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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 아머의 전형적인 형상, 사진은 로리카 스쿠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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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멜러 아머의 전형적인 형상.)

러멜러 아머의 경우 철판의 방향이 위쪽이냐 아래쪽이냐에 따라 외중식과 내중식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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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대다수의 찰갑은 외중식의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칼이나 창에 찔릴 경우 끝이 철판을 타고 위로 올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내중식은 끈이 끊어지거나 할 경우 스케일 아머처럼 창칼이 타고 들어가 관통할 수 있는 취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찔릴 가능성이 높은 부분인 허벅지 부분을 가리는 방어구의 경우 내중식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초창기에는 내중식이 많았으나, 시대가 변할 수록 외중식의 경향이 커진다.

소찰의 재질은 청동, 철, 가죽, 뼈 등으로 나뉘어진다.

뼈 는 초창기에 많이 사용된 물건으로 방어력이 부족하여 금방 사장되었으나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뼈로 만든 찰갑을 끝까지 유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초기 백제 것으로 추정되는 뼈찰이 출토된 적이 있으나, 찰이 뭉쳐진 상태로 출토되어 정확하게 갑주의 어느 부분인지는 알 수 없다. 그외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인 함경북도 무산군 호곡유적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뼈찰갑편 #이 존재하며, 시베리아 지역 청동기 시대 유적인 세이마-뚜르비노 문화의 유적(추정연대 기원전 18~ 기원전 15세기)도 유물이 남아있다. #

철 판의 두께는 약 0.6mm~1.2mm정도. 철판 2개가 서로 절반씩 걸터서 겹쳐지므로 실제 두께는 1.2~2.4mm정도로 두꺼워진다. 철판은 작고 얇아 열처리 실패율이 높았으므로 열처리보다는 단조로 강화하는 웍 하든(Work Harden)방식이 더 자주 쓰였으며 중국의 후자갑은 이러한 경화법을 사용한 소찰 중 하나이다. 대부분은 그냥 철판을 잘라서 펀치로 구멍을 내고 생긴 이바리(Burr 재단시 생기는 날카로운 부분)을 숫돌로 제거한 다음 쓴다. 생산처의 각인을 찍는 경우도 있다. 녹을 방지하기 위해 녹인 주석에 담그어 코팅하거나, 옻칠을 한다.

가죽은 천연가죽을 경화처리해서 사용하며, 밀랍과 함께 끓이는 방식, 찬물에 담가두었다가 말리는 방식, 끓는 물에 단시간 투입하는 방식 등 여러 종류의 강화방법이 존재하였으나 전통적으로는 밀랍과 함께 끓이는 이른바 "보일드 레더"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가죽의 두께는 재질과 가공 특성상 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4mm이상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 경화된 가죽의 특성은 플라스틱과 비슷하며, 도검의 베기와 화살에 대해 상상 이상의 저항력을 지닌다. 습기 침투에 의한 변형이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옻칠을 하기도 한다.

가죽과 철판은 한 갑옷을 한가지 재질로 도배하기도 했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철판과 가죽이 1층씩 번갈아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몸통과 같은 중요한 부분은 철판, 어깨나 스커트 같은 부분은 가죽으로 만들어 경량화를 추구하기도 했다.

찰 갑을 엮는 끈은 매우 다양한데 면, 비단, 실매듭, 리벳, 철사, 가죽끈이 사용된다. 현대에는 나이롱 끈이 추가되었다. 리벳은 가장 튼튼했으나 찰갑의 장점인 유연성이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었으므로 잘 쓰지 않았다. 비단은 인장강도가 좋아 튼튼했으나 가격이 비싸 사용량이 많을 수가 없었다. 가죽끈은 튼튼하고 수급도 어렵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 수록 약화되는 문제점이 있어 몇년 단위로 교체를 해야 했으며, 습기가 심할 경우 썩어 끊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철사는 튼튼하고 시간이 지나도 약해지지 않으나 유연성이 나빠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나이롱 끈은 주로 현대 SCA계열에서 활동하는 갑옷 자작자들이 사용하는데, 튼튼하고 싸며 잘 ㅤㄲㅡㅎ어지지 않고 습기에도 강하며 몇십년을 써도 오버홀이 필요없는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소찰과 끈이 선정되었다면 소찰의 옆으로 이어나가는 가로엮기를 한다. 가로엮기의 방식은 소찰의 구멍의 숫자와 위치에 따라 달라지며 천차만별이다. 동로마 제국의 클리바니온의 경우 가로엮기를 하지 않고 가죽 바탕에 리벳고정을 하여 가로엮기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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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의 클리바니온의 한 예)

가로엮기를 통해 원하는 길이대로 1층을 만들었다면 세로엮기를 통해 각 층을 연결한다. 세로엮기의 방식 또한 세세한 부분은 다 다르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2가지로 나누어진다.

  • 기본엮기 - 찰갑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방식. 그림은 각각 비잔틴 클리바니온과 스웨덴의 비스비 전투 유물을 통한 재현이다. http://pds20.egloos.com/pmf/201103/11/02/c0063102_4d7a07fba6f16.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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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연성은 좀 떨어지지만 방어력은 리벳 고정을 제외하고 가장 나은 방식. 주로 흉갑과 같이 중요한 부분에 많이 쓰인다. 레미네이티드 방식은 끈이 많이 노출되어 있어 도검의 베기를 당할 경우 손상이 심하면 소찰 층층별로 분리될 수 있으므로 끈의 노출이 가장 적은 이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 레미네이티드(laminated) - 유연성을 특별히 추구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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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로 어깨나 팔, 허벅지 같은 유연성이 필요한 부분에 주로 사용되지만 흉갑에도 제법 사용되는 편이다. 최상단의 이미지는 전신을 레미네이티드 방식으로 만든 경우. 그림처럼 소찰 중간에 뚫린 구멍을 통해 상하연결을 하는 끈이 내려오며, 겉보기에는 끈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상하로도 소찰이 겹치므로 방어력 로스는 없다. 끈의 길이만큼 접히기 때문에 레미네이티드 방식으로 만들어진 찰갑 부위는 체인메일과 비교될 만큼의 유연성을 가진다는 점이 최대의 장점. 단점은 끈이 많이 노출되어 도검의 베기를 비롯한 손상을 많이 입을 경우 층별로 분리되어버릴 수 있다는 점과, 전투 후 수리요소가 많이 생긴다는 점에 있다. 일본 갑옷 중에서도 오오요로이~하라마키에 이르는 전국시대 이전의 갑옷들은 찰갑 중에서도 극단적인 레미네이티드에 속하며, 소찰 중간이 아니라 최상단에서 끈이 내려오므로 소찰이 끈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세 로엮기까지 완료하면 찰갑의 형태는 거의 갖추어지며, 이대로 실전에 투입할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보다 나은 완성도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형태의 소찰들을 이용하여 겨드랑이나 어깨, 목 부분을 둥근 곡선을 가지도록 마무리하기도 하며, 테두리를 가죽으로 감싸기도 한다. 간혹 층별로 테두리를 가죽으로 감싸는 경우도 있다. 작업이 완료되면 구멍을 뚫어 착용을 위한 벨트버클 등의 악세사리를 장착하며, 이 작업까지 완료될 경우 완성에 해당한다.

특이한 방식으로는 중국의 산웬키아(山文甲)가 있는데, 이 방식은 가죽 바탕에 山자의 형상을 한 소찰을 연속해서 끼워넣고 리벳팅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유연성은 거의 없으나 그만큼 튼튼하고 가죽끈의 소모와 같은 정비요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장점. 유연성이 별로 없어서 중앙아시아 특유의 코트 형식으로는 만들어지지 않고 피박, 갑상 등의 다양한 부위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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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대의 찰갑


현대 리인액트의 주도층이 서양의 매니아들이고, 주로 나오는 것이 플레이트 아머이 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푸대접 받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SCA 헤비컴뱃 계통에서는 의외로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SCA유저 상당수가 자기가 갑옷을 직접 제작하는 풍토를 가지고 있는데, 찰갑은 철판만 수급 가능하면 제작 기술은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또 NCT철판절단 등을 하는 공장을 알면 도면을 그려 보내주는 것만으로 균일하고 품질좋은 철판을 대량 수급할 수 있기 때문에 DIY문화가 발달한 미국에 서 특히 찰갑 판매를 보기 어려운 것이다. 간혹 몇몇 아머리에서 판매하기는 하나 완성품을 파는 경우는 많지 않고 소찰만 파는 경우가 많다. 다만 역사적으로 찰갑을 많이 사용한 동유럽쪽에서는 찰갑 완성품을 판매하기도 하며 상당히 많이들 입고 나오지만 영어권에서 활동하는 사이트가 많지 않다. 우크라이나암스트리트에서 SCA그레이드로 제조한 스테인리스 찰갑을 판매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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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의 사천왕상이나 무속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지가 세 방향으로 뻗어 있는 모습을 한 찰을 엮어 만든 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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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MS 12-08-16 18:54
   
좋음. 이런거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