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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14 14:21
[밀리터리 역사] 일본의 항복이 원폭 때문이다?
 글쓴이 : 산악MOT
조회 : 3,365  

표면적으로 원폭 두방 맞고 일본이 미국에 항복을 한게 맞죠. 

근데 얼마전에  그냥 들은 소린데.. 

일본의 진짜 항복 원인은  소련의 침공이라는데..   신빙성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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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나개비 13-05-14 14:38
   
그런 종류의 이야기라면 ...

원폭투하 이전에 이미 일본이 항복을 할 결심을 했다는 것이 있습니다.

다만 문서의 해석과정에서 미국 측이 의도를 잘못 읽었다는 의견이에요.

항복하더라도 명예롭게 하고 싶었던 일본이 보낸 의미를 결사항쟁의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단순하게 이것 때문이다라고 할만큼 간단한 세상이 아니니까요.
     
부르르룽 13-05-14 14:40
   
오키나와 점령하는데 미군이 얼마나 죽었는지 알고나 하시는 말씀인지?
이미 일본이 항복 결심요? 
섬하나 점령하는데 저렇게 xx할 정도로 막무가내로 나오니 미국이 결심을 한것이죠.
          
갈나개비 13-05-14 16:09
   
아..제 주장이 아니니 흥분하시지는 마시지요.

발제자의 의문과 비슷한 주장이 학계에 있었던 것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나름 신빙성 있는 주장이라고 다큐멘터리에서 언급된 적도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라고 다 진실은 아니겠지만.
          
mist21 13-05-14 16:09
   
소련군이라면 가능했을걸요?

미군은 순전히 배 타고 기껏해야 몇 만명 단위로 상륙을 해야만 했지만,

소련군은 한번에 몇십만 이상 씩 일본 본토로 끝 없이 투입하는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로 홋 카이도 위로 소련군이 점령한 북방 4개 섬이 있기 때문이고 아주 먼 미국과는 달리 소련 영토인 시베리아는 일본과 무척 가깝죠.

북방 4개섬에서 이륙한 소련 공군기는 아마 하늘을 뒤 덮고, 공군의 공습 지원 하에 상륙하는 전차와 보병들은 홋카이도 해안을 새까맣게 뒤덮겠죠.

홋카이도가 소련군의 인해 전술에 점령되면 다음은 일본 본토도 같은 운명에 빠졌을 겁니다.
          
파스포트 13-05-14 17:12
   
그게 많이 죽은겁니까, 왜구들은 폭삭 다 스스로 자폭했지용,  개임이 거의 않되서리 ,,,,,
일상 13-05-14 14:53
   
일본은 그 전에 조건부 항복 이라는걸 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조건을 대충 이야기 하자면 진주만 공습 이전 상황으로 되돌린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즉 구 식민지(조선,대만,남사할린)는 물론 만주국 및 중일전쟁으로 점령한 곳까지 일본것으로 인정하고 남방(동남아)에서만 철수.

이런 조건부 항복 이었죠.

하지만 연합군측에서 봤을때 그 조건이 택도 없는 말같지도 않은 조건이라 사실상 항복 의사가 없는거라고 받아들였구요.

원래 미국은 올림픽 작전이란 일본 본토 상륙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쉽게 생각하던 미국은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에서 처절하게 저항하던 일본군을 맞닥뜨린 후 계획을 변경하게 됩니다.

우선 소련군의 남하도 남하지만 상륙시 너무 많은 피해가 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당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일본을 점령하려면 미국인 100만 명과 영국인 50만 명이 전사할 것이라고 예상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당시 미국의 여론은 한마디로 눈이 뒤집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이 항복하고 세계적으로 종전 분위기가 강해진 상태에서

이오지마, 오키나와 전투로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국 국내에선

일본 본토 상륙으로 큰 희생을 치르느니 기뢰 매설과 해상봉쇄로 그냥 다 굶겨 죽여 버리자는 여론도

해군을 중심으로 매우 강하게 대두될 지경이었구요.

심지어 마침 추수철이 다가오고 있던 시점에 일본의 모든 곡창지대에 제초제를 뿌려버리는 걸 당연시 할 정도였으니까요.

더구나 선전포고도 없이 이뤄졌던 진주만 공습 때문에 미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증오는 매우 심한 것이어서,

히로시마에 대한 핵폭격 당시에도 더 치명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투하 전에 사이렌을 울려서

시민들이 하늘을 보게 하고서 터뜨려서 폭발 섬광으로 인한 실명을 최대한 유도,

인명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늘려 보겠다고 하거나, 핵폭격으로 도시 기능이 마비된 곳에

한 번 더 소이탄 폭격을 감행해서 소방시설이 마비된 상태에서 화재를 일으키면 도시가 완전 전소되리라는 것을 노려서

도시의 흔적도 완전히 사라지게 하자는 과격한 의견도 올라왔습니다.

그 외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곳을 미리 예고해서 민간인이 대피하게 함으로써

실제 피해는 줄이면서 심리적 효과는 더 높이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그 경우 혹시 원자폭탄이 불발되는 경우 차후 미국이 하는 모든 제안이

일본 대본영에게 허세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일본인들이 연합군 포로를 히로시마에 끌어다놓고 인간 방패로 삼으면 어쩔 거냐는 의견도 나와서 기각되었죠.

원래 미 육군항공대와 영국 공군은 독일을 폭격하던 당시 목표가 된 도시에 아군 포로가 있음이 확인됐더라도 거리낌없이 폭격했는데,

아군 포로의 희생을 막으려고 폭격을 중단하면 앞서 말했듯이 중요 지점마다

연합국 포로를 묶어놓아서 인간 방패로 쓸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뭐 이러저러 하다고 해도 결국 미국은 원폭을 투하하기 전에 일본에 항복을 권유했지만,

그들은 항복하지 않았구요.

이걸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운명은 결정된 거죠.

일본은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이 일로 無조건 항복을 합니다.
찰나l무량 13-05-14 15:44
   
소련이 육군에 주력하고 독일하고 소모전을 많이했는데

전사자가 2000만

당시 해군력 2위인

일본본토에 상륙할수 있었을까요?? 한번 개발린 기억도 있고

미국이 핵떨어뜨리자마자

일본열도가 아닌 한반도로 급남하 한것도 소련의 사정을

엿볼수 있죠 해군에 충분한여력이 있었고

상륙작전을 많이 염두해뒀다면 일본으로 갔을테니깐요

그러니깐 소련전력 또는 단독으로는 일본을 제압하지 못했을겁니다.

그러니깐 미국의 힘으로 핵 2방에 항복한게 맞다고 봅니다.

그이후 미국 몰락 작전도 ㅎㄷㄷ 하고 
 
그리고 밑에서 보니

군대 꿀빨다 오셨네 호텔식 여단 운전수

그리고 포병 힘든거 물어보니

검열밖에 대답못하겠죠 고생을 안해서 

운전수라면 겨우 전장비 깨짝

어디가서 포병이라 하지마삼

쪽팔리네여. 3사단 백골 11FA 출신으로 말씀드림

아직 예비군이지만 정말 제 자대는 보급이 열악해서

저 나올때까지 나무관물대 였음

1층 1열 막사에 80명 생활

그리고

어쩐지 욕잘하시는게 군생활 꿀빨다 온거 같더라고여

언어순화좀 하시고

진짜 고생해서 사람된 사람은 그렇게 막말 안합니다.
     
산악MOT 13-05-14 16:10
   
92년 군번인데  어디 나보다 빡세게 했다고  자랑질이?  몇변군번?

수송부가 얼마나 구타가 심하고 사고 때문에 얼마나 군기가 빡센지..  모르면 얘기마라 좀.

95년 이전 군번 아니면  그냥 아닥해  꼴통 보수 .
          
찰나l무량 13-05-14 16:34
   
개널널한거 아니깐 좀 아닥해라

포병이 포도 못잡은게

개구타

운전병 아니랄까봐

성질 더럽네

니가 구타했겠지
               
산악MOT 13-05-14 16:37
   
95년 이전 군번 아니면  아닥하라니까 아가야
                    
찰나l무량 13-05-14 16:40
   
70년대 관물대 썻거든

니네 부대 보니 호텔 5성급이더라

전방포병 아니면 어디 같은 강원도 갔다고 입도 뻥긋하지마

포병이라하지마

어디가서 MOT라고 하지마

차타고 다니면 다냐 젠장
                         
산악MOT 13-05-14 16:51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우리부대를 언제봐?  방송에 나온게 92년에 있었겠냐?    에이그
     
산악MOT 13-05-14 16:11
   
그리고 소련은 이미  일본에 선전포고 하고  사할린까지 상륙해서 먹었단다.  아가야 .
          
찰나l무량 13-05-14 16:33
   
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중화민국, 정부 수뇌들이 모여 일본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정치가들은 포츠담 선언을 묵살했다. 그 결과 일본 제국의 단말마는 1945년 8월 방문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각각 투하된 2발의 원자폭탄이다. 이 원자폭탄 이외에, 8월 9일에는 소련군이 일본 제국이 세운 괴뢰 국가인 만주국을 침공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는 1945년 9월에 정식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일본을 공격할 거라고 예정되어 있으나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항복하는 바람에 실패하였으며 연합국(미국, 영국, 소련, 중화민국) 측에서는 9월에 일본을 독일처럼 분할 점령하려고 했으나 이 역시 일본이 항복하는 바람에 무산되어 결국 미국이 단독 점령을 하였다.

그 2발의 원자폭탄은 일본 제국군이 점령한 동북 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에서 독립 운동을 야기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켰다.
          
찰나l무량 13-05-14 16:34
   
아니지 만주와 동시에 사할린으로 갔지

핵폭탄이후에 사건이야 폭풍작전이라 하지
산악MOT 13-05-14 16:13
   
호텔식 여단 운전수??  ㅋㅋ 

아궁이에서  조개탄으로  빼치카 때는 호텔도 있냐?
     
찰나l무량 13-05-14 16:37
   
아궁이에서  조개탄으로  빼치카 때는 호텔도 있냐?

호텔이네 기름없어서

나무쪼개서 나무때워서 밥 먹었는데

조개탄 웃어야하나 빼치카 염병 호텔이네

일과 끝나고 나무하러 갔던 생각난다.
          
산악MOT 13-05-14 16:51
   
ㄴ 95년 이전 군번이면 인증해바  그럼 인정한다 ㅎㅎㅎ
               
찰나l무량 13-05-14 16:57
   
이후군번 사진은 있다

나무 땐 사진

멜주소 불러봐
                    
산악MOT 13-05-14 16:58
   
그냥 올리셈  님한테 메일 주소 알려줄 생각 없슴
                    
산악MOT 13-05-14 16:59
   
그리고 95년 이후면  그냥 가세요.  님 짱 드셈
허각기동대 13-05-14 17:06
   
나이가 벼슬인줄 아는 사람이 있네요. 92년 군번이면 코만도라도 됩니까. 입대년도를 내세우는거 상당히 보기 안좋네여. 그런거면 80년대 군번 분도 계시던데 그 분이 입 뗄때는 나머지는 군대얘기 아닥하고 있어야 됩니까. 말 같지 않은 소리 다 들어봅니다. 어차피 도살장 끌려가듯 군대 끌려간 터수인건 내남없는데
     
산악MOT 13-05-14 17:23
   
가재는 게편이라더니..  먼저 비아냥거린 사람한테는  아무말 안하죠.  네네
          
허각기동대 13-05-14 17:44
   
지적한것만 반성하세요. 먼저 비아냥거린게 누군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요. 정치가지고는 산악님하고 일언반구 섞어본적 없는데 이딴식으로 다른 게시판에서 까지 정치갖고 찌질댈거면 저도 끝장을 보는 성격이니 끝없이 말꼬리 이어가기 하던지 알아서 하시고.
               
산악MOT 13-05-14 17:50
   
어떤일에는 일이 발생한 연유가 있죠.  그걸 아무것도 생각 안할수 있나요?

호텔식 여단 운전수??  ㅋㅋ  = 이러면서 비웃는데

제가 군생활한 92년엔  그런거 없었습니다.  오래된 빼치카 쓰는 막사였구요. 
년도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겁니다. 

이런 정황도 없이  막무가내로 나한테  군부심이네 나이가 벼슬이네 이러면

그냥 내가 사과해야하는지요? 

뭐 더이상 댓글 안달테니  알아서 하시구요.
                    
허각기동대 13-05-14 17:54
   
군부심 나이부심 꼴보기 싫어서 한마디 한건데 가재는 게편 운운이 왜 튀어 나옵니까.
곰굴이 13-05-14 17:06
   
핵폭탄과 소련... 관동군 쪽의 역사를 보면 알수 있다고 보네요.

관동군은 아시다 싶이, 러일전쟁이후, 철도권을 얻은 일본이 철도수비를 위해 개설됐는데.
초창기에는 식민지의 국민들을 징병했던 일반 부대와 달리, 순수 일본인 혈통으로 만들어진 최우선 부대였죠.
만주사변 일으켜 만주국까지 세운후. 그 이후 점점 더 규모가 커져 독일 히틀러의 소련침공을 돕기위해
계속 증설증설증설을 거듭해,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기 전까지 관동군의 규모는 31개사단, 85만명 병력이 되었지요.

하지만 독일의 소련침공 실패로, 관동군은 소련공격계획이 무산되고, 1941년 진주만을 공격한 후로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관동군이 계속 태평양쪽으로 지원나갔지만 전세를 못바꾸고, 1943년 결국 미국이 오키나와를
먹게되었지요. 그이후 더욱더 관동군은 태평양 전쟁으로 차출되고.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이후 소련은 8월에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게되죠. 그때당시 만주에 있는 관동군은
개쓔레기. 퇴역한 군인들을 모집하여 70만명 이상의 병력을 모았지만, 전투물자는 형편없이 부족했고.
결국 패퇴패퇴.
그와중 6일, 9일 일본 본토에는 핵폭탄 투하. 일본 멘붕.
1945년 8월 10일. 일본은 명령체계는 여차하면 조선으로 퇴각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황군부대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관동군은 항복을 안하고 싸우고, 그 와중 8월 15일 쪽왕은 항복선언.
17일까지 싸우다가 협상요청.. 8월 19일에 협상하였고, 8만명의 사망자,  60만명의 포로로 협상이 끝나죠.

결론은, 소련군 참전보다는, 미국의 오키나와 정복 이후 일본 본토 공격 후 45년 8월 6일 원자탄투하가
결정적이었다고 보네요.
파스포트 13-05-14 17:10
   
미국님땜임,  원폭 땜에 진게 아니고  원폭땜에  개임 오버가 몇일 앞당겨진것뿐,  원폭투하당시엔  이미  열도빼곤다 먹혔음, 오키나와까지 다 ,,,,,,,,,,,,
믹네코이 13-05-14 17:14
   
사실 이미 일본은 항복하려구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계속된 폐전으로 병력도 없고, 물자도 없는 상황이였다고 하네요...

일본이 미국을 친이유중에 하나가

러시아쳤다가 폐전하면서, 물자가 없어서, 물자를 얻기위해 동남아를 식민지로 하고싶었는데....

미국이 가지고 있는 식민지가 가는길이라 쳤따고 하더라구요.....

독일도 러시아를 쳐서 폐전하고, 일본도 러시아를 쳐서 폐전하고....

러시아에 추운 날씨는 정말 강력한듯 해요...
     
곰굴이 13-05-14 17:19
   
일본-미국 태평양전쟁이.. 일본-소련 전쟁보다 더 먼저 시작됐어요.

그리고 일본-소련(러시아) 전쟁은 다 만주에서 전투가 벌어졌구요.
          
통일하고파 13-05-14 17:33
   
할힌골 전투(노몬한 사건)1
할힐골전투 주로 한국에서는 노몬한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1939년5월부터 8월까지 몽골과 만주국의 국경지대인 할힌골 강유역에서 소련군과 몽골군이 일본제국의 관동군, 만주국군과 교전한 사건
 
이 전투에서 근대화된 소련군의 기갑전력에 "총검백병주의"를 앞세우던 일본군은 참패하여 소련이 주장하는데로 할힌골 강을 경계로 만주국과 몽골의 국경선이 확정되었으며
 
또한 양국은 소련-일본 불가침 조약을 맺게 되었고, 바르바로사 작전이후 독일이 소련의 극동을 공격해 달라는 요청을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끝까지 소련과 맺은 조약을 지킨 것도 바로 이 전투의 패배의 영향이 컸기때문입니다
 
이전투는 2차세계대전을  연합군측의승리로 가저다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약 이전투가 일본승리로 이어젔으면 독일과 일본은 세계의 패자가되었을것입니다
이전투는  일본식 돌격전투방식을 전면 개편해야하는주요계기가 되어 일본군이 전차생산을 박차를가한 계기가된 전투입니다  이전투는 양국간 국경선 조종이란 결과보다 전략전술 방식 변경 전투방시의새로운 교범구상이란 큰 계기마련의 전쟁였습니다
 
 
전투개요
1939년 당시 만주는 일본 관동군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노몬한 부근은 국경선이 확실치 않아 잦은 분쟁이 일어났다. 1939년 5월 11일 몽골군 기병 70-90명이 할힌골 강(江)을 건너오자 일본군은 이를 불법월경(不法越境)으로 간주하여 충돌
 
 
전투기간:1939년 5월11-9월16일
결과:
소련·몽골 연합군의 결정적 대승, 소-일 국경 분쟁의 최종적 종결
 
병력
일본군 65,000명
소련군 30,000명
 
피해규모
일본 45,000명
소련 6800 명
--------------------------------------------------
믹네코이님이 이거 말씀하신듯
               
곰굴이 13-05-14 17:40
   
음 그런가요?

그래도 믹네코이님이 쓰신글 보면 러시아에 패전하여 물자 얘기를 하셔서 -_ -;;

1939년에 벌어진 전투고, 관동군의 군세는 1941년에 가장 강했을 때라...

내용이 좀 틀려서 제가 저리 적었네요.
          
산악MOT 13-05-14 17:40
   
그 다음 일본이 패망할때쯤  소련이 다시 일본에 선전포고 합니다.

1945년 8월 9일 소비에트 연방이 일본 제국의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침공해 벌어진 전투이다. 일본 제국은 이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무조건 항복을 하였다. 일본 제국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은 종전되었다. 이 전투는 일본 제국의 항전 의지를 완전히 꺾어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을 앞당기는데 기여했으며, 소비에트 연방은 만주국을 멸망시켰고 사할린 섬 남부와 쿠릴 열도 등의 일본 제국의 북방 영토를 빼앗아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로 만들었다. 소련군은 만주와 38선 이북의 한반도 북부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 전투는 일본 제국의 또 다른 괴뢰 정권인 몽강국, 일본의 점령지였던 한반도, 사할린, 쿠릴 열도에 대한 공격도 포함된다.
허각기동대 13-05-14 17:18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으나 그게 결정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독일한테 엄청나게 쳐맞은 뒤라 사실상 시베리아동부까지 제대로된 상륙군을 조성해 내보내려면 세월없었을것이고

일본으로서는 펠렐리우 이후 갑자기 미국과의 전상교환비율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었으므로 이오지마와

 오끼나와에서의 결과로 미루어 대본영에서는 나름 본토 옥쇄방어전에 대한 전망이 절망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리틀보이와 팻맨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이미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본토에서만 백만명이

소이탄에 타죽었지만 최후항쟁을 내세우며 버티던 놈들이 이 핵공격 두 번에는 제정신이 번쩍 돌아온거죠.

이후에 옥쇄가 무의미 해지자 공산당 보다는 미국이 낫다고 보고 항복을 서둘렀을 개연성은 있습니다.
똥꼬에마데… 13-05-14 17:25
   
내 젊음 바쳐 나라 지키고 왔으면 그거 자체로 자랑스러운 거지,
내가 몇 년 군번이고, 누가 더 빡쎘고... 그런 걸로 부심 부리는 자체가 굉장히 유치하게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