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중화민국, 정부 수뇌들이 모여 일본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정치가들은 포츠담 선언을 묵살했다. 그 결과 일본 제국의 단말마는 1945년 8월 방문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각각 투하된 2발의 원자폭탄이다. 이 원자폭탄 이외에, 8월 9일에는 소련군이 일본 제국이 세운 괴뢰 국가인 만주국을 침공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는 1945년 9월에 정식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일본을 공격할 거라고 예정되어 있으나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항복하는 바람에 실패하였으며 연합국(미국, 영국, 소련, 중화민국) 측에서는 9월에 일본을 독일처럼 분할 점령하려고 했으나 이 역시 일본이 항복하는 바람에 무산되어 결국 미국이 단독 점령을 하였다.
그 2발의 원자폭탄은 일본 제국군이 점령한 동북 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에서 독립 운동을 야기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켰다.
나이가 벼슬인줄 아는 사람이 있네요. 92년 군번이면 코만도라도 됩니까. 입대년도를 내세우는거 상당히 보기 안좋네여. 그런거면 80년대 군번 분도 계시던데 그 분이 입 뗄때는 나머지는 군대얘기 아닥하고 있어야 됩니까. 말 같지 않은 소리 다 들어봅니다. 어차피 도살장 끌려가듯 군대 끌려간 터수인건 내남없는데
관동군은 아시다 싶이, 러일전쟁이후, 철도권을 얻은 일본이 철도수비를 위해 개설됐는데.
초창기에는 식민지의 국민들을 징병했던 일반 부대와 달리, 순수 일본인 혈통으로 만들어진 최우선 부대였죠.
만주사변 일으켜 만주국까지 세운후. 그 이후 점점 더 규모가 커져 독일 히틀러의 소련침공을 돕기위해
계속 증설증설증설을 거듭해,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기 전까지 관동군의 규모는 31개사단, 85만명 병력이 되었지요.
하지만 독일의 소련침공 실패로, 관동군은 소련공격계획이 무산되고, 1941년 진주만을 공격한 후로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관동군이 계속 태평양쪽으로 지원나갔지만 전세를 못바꾸고, 1943년 결국 미국이 오키나와를
먹게되었지요. 그이후 더욱더 관동군은 태평양 전쟁으로 차출되고.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이후 소련은 8월에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게되죠. 그때당시 만주에 있는 관동군은
개쓔레기. 퇴역한 군인들을 모집하여 70만명 이상의 병력을 모았지만, 전투물자는 형편없이 부족했고.
결국 패퇴패퇴.
그와중 6일, 9일 일본 본토에는 핵폭탄 투하. 일본 멘붕.
1945년 8월 10일. 일본은 명령체계는 여차하면 조선으로 퇴각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황군부대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관동군은 항복을 안하고 싸우고, 그 와중 8월 15일 쪽왕은 항복선언.
17일까지 싸우다가 협상요청.. 8월 19일에 협상하였고, 8만명의 사망자, 60만명의 포로로 협상이 끝나죠.
결론은, 소련군 참전보다는, 미국의 오키나와 정복 이후 일본 본토 공격 후 45년 8월 6일 원자탄투하가
결정적이었다고 보네요.
할힌골 전투(노몬한 사건)1
할힐골전투 주로 한국에서는 노몬한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1939년5월부터 8월까지 몽골과 만주국의 국경지대인 할힌골 강유역에서 소련군과 몽골군이 일본제국의 관동군, 만주국군과 교전한 사건
이 전투에서 근대화된 소련군의 기갑전력에 "총검백병주의"를 앞세우던 일본군은 참패하여 소련이 주장하는데로 할힌골 강을 경계로 만주국과 몽골의 국경선이 확정되었으며
또한 양국은 소련-일본 불가침 조약을 맺게 되었고, 바르바로사 작전이후 독일이 소련의 극동을 공격해 달라는 요청을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끝까지 소련과 맺은 조약을 지킨 것도 바로 이 전투의 패배의 영향이 컸기때문입니다
이전투는 2차세계대전을 연합군측의승리로 가저다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약 이전투가 일본승리로 이어젔으면 독일과 일본은 세계의 패자가되었을것입니다
이전투는 일본식 돌격전투방식을 전면 개편해야하는주요계기가 되어 일본군이 전차생산을 박차를가한 계기가된 전투입니다 이전투는 양국간 국경선 조종이란 결과보다 전략전술 방식 변경 전투방시의새로운 교범구상이란 큰 계기마련의 전쟁였습니다
전투개요
1939년 당시 만주는 일본 관동군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노몬한 부근은 국경선이 확실치 않아 잦은 분쟁이 일어났다. 1939년 5월 11일 몽골군 기병 70-90명이 할힌골 강(江)을 건너오자 일본군은 이를 불법월경(不法越境)으로 간주하여 충돌
전투기간:1939년 5월11-9월16일
결과:
소련·몽골 연합군의 결정적 대승, 소-일 국경 분쟁의 최종적 종결
병력
일본군 65,000명
소련군 30,000명
피해규모
일본 45,000명
소련 6800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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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네코이님이 이거 말씀하신듯
1945년 8월 9일 소비에트 연방이 일본 제국의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침공해 벌어진 전투이다. 일본 제국은 이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무조건 항복을 하였다. 일본 제국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은 종전되었다. 이 전투는 일본 제국의 항전 의지를 완전히 꺾어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을 앞당기는데 기여했으며, 소비에트 연방은 만주국을 멸망시켰고 사할린 섬 남부와 쿠릴 열도 등의 일본 제국의 북방 영토를 빼앗아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로 만들었다. 소련군은 만주와 38선 이북의 한반도 북부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 전투는 일본 제국의 또 다른 괴뢰 정권인 몽강국, 일본의 점령지였던 한반도, 사할린, 쿠릴 열도에 대한 공격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