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좀 찾아보기만 해도 우리나라 실력 함부로 무시 못할 겁니다.
T-50의 배때지를 보면요 이 비행기를
KAI의 에어로다이나믹 깎는 노인이 정말 고집스레 깎아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신 항공기 특징들 예를 들어 전연 플랩이라든가도 빼먹지 않고 들어가 있구요 ㅋ
아음속에서 특성이 좋게 하기 위해 배때지를 아주 예술적으로 깎아 놨구요
전투기는 모름지기 각종 기동에서도 공기 흡입 효율이 좋게 하기 위해
공기 흡입구를 동체 밑으로 최대한 끌어 내리는데
아래에 붙어있는 랜딩기어 위치를 최대한 고려하여 효율적으로 깎아내는게 관건인데요
이 부분도 노인네가 아주 예술적으로 깎아 놔서 랜딩기어 위치를 최대한 고려하여
최대한 흡입구를 끌어 내렸구요. 랜딩기어 자체도 F16보다 튼튼한 물건으로 자체 설계한 놈이구요
이렇게 말한 것들은
보잉에서 날림으로 만든 차세대 훈련기랑 비교해 보면
T50이 얼마나 장인의 손길로 탄생하게 되었는지 정말 잘 알 수 있습니다. ㅋ
흡입구가 동체 둥앙에 붙어 있다든지 전연플랩이 없다든지 랜딩기어 F16거 가져다 썼다든지
쌍 꼬리날개 F18 설계 그대로 가져다 썼다든지 등등...
재네들은 그냥 막연하게 과거에 한국이못살았던 전쟁기억이 뿌리깊이 박혀있어서 현재까지도 근거없는 주제파악못하면서 한국을 아래로보는시각이죠 동남아 대부분요 ㅎㅎ 그냥 웃음밖에안나옴 그전쟁없었으면 우린 더수월하게 발전된 국가였지 그냥 지들위치를 자각을못해요 되도않는 자존심국뽕만 남은거죠
그전쟁으로 약탈해서 겉만번지르하게 발전된 일본은 뿌리깊히 빨아대구요
Jack London
YAK130은 시리아에서 성능이 증명됐지만 T50은 아직 충분한 검증이 없습니다.
돈낭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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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라뽕따이 태국은 밀리 애들이 무식한가??
T50 (초음속) 이랑 YAK130 (아음속) 이랑 어캐 비교를 하지?
비행 속도나 폭탄 달고 이륙하는 양에서부터 차이가 나는데...
검증도 지들 옆나라 필리핀에서 Is 추종 반군들 소탕하면서 이미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는데 얘들은 국제 뉴스 같은건 아예 안보고 살고 있나??
현존하는 훈련기 가운데 T-50은 F22나 F15와 같은 대형 전투기 이전에 훈련하기 좋은 최신 기종으로 알고있습니다. 이스라엘제 기계식이긴 하지만 레이더나 이런게 좋아서 대형 전투기 이전에 모든 상황을 학습할 수 있어서 외국에서는 높게 평가하는거 같더라고요. 레이더로 3개의 목표를 추적할 수도 있고요. 여기 댓글들대로 태국사람들이 훈련기와 전투기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네요. 그리고 이번 미국 고등 훈련기 사업에 KAI와 록히드마틴 사가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역사학자와 경제학자들이 모여서 19세기 이전의 각국의 추정 GDP를 산출해 본 적이 있답니다. 그 결과 한국은 유럽국가들에 비해서도 GDP가 밀리지 않을 정도였고, 동남아 국가들은 근처에도 못 올 수준이었답니다. 일본보다도 높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못 썼던 것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중국이 항상 세계 1위의 GDP를 자랑하는 깡패국이었던 관계로...
한국이 국제적으로 별 볼일 없던 기간은 국운이 기울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후반 정도까지 뿐이라고 하네요.
"(우리나라 할때)나라의 ‘백제천(구다라강:百濟川) 옆에 백제궁(구다라궁; 百濟宮)과 백제사(百濟寺)라는 큰 가람을 지었다. 조메이왕이 구다라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구다라노오모가리(百濟大殯)’로 장례를 치렀다’"
-일본 서기
토쿄대 이노우에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 일본은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오진(應神)왕이 백제계 부여(夫餘)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 최초로 일본을 지배한 천황은 백제인의 후손인 15대 오우진(應神·4세기)천황과 16대 닌토쿠(仁德·5세기)천황 부자다. 오우진 천황이 백제 복식을 입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이들 천황 부자에 의해 고대 일본의 가와우치(河內)왕조가 세워졌다.
USA캘리포니아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 [조몬인],[야요이인(한국을 제외한 대륙민족)], [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 시켰다.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일의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철로 된 칠지도를 ○○○○가 만들었다.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侯王)에게 주기에 알맞다. 지금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을 위하여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성덕왕(聖德王) 30년,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는데,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日本國兵船三百?, 越海襲我東邊, 王命將出兵, 大破之.)
- 제대로 상륙도 하지 못하고 박살난 일본, 결국 용서를 빌기 위해 서기 742년에 사신을 파견하지만‥
애장왕(哀莊王)
5년 여름 5월에 일본국이 사신을 보내와 황금 300량을 바쳤다. (五年夏五月, 日本國遣使, 進黃金三百兩.)
- 이를 기특하게 여긴 신라는 드디어 일본을 용서하고 속국으로서 인정한다. 서기 806년 속국에게 하교하는 신라.
애장왕(哀莊王) 7년,
봄 3월에 일본국 사신이 왔으므로 조원전(朝元殿)에 불러 접견하였다. 교서를 내려 말하였다. 『절을 새로 짓는 것을 금하되, 다만 수리하는 것은 허락한다. 또 수놓은 비단을 불교 행사에 사용하는 것과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의 사용을 금한다. 마땅히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이를 널리 알려 시행하도록 하라.』(七年春三月, 日本國使至, 引見朝元殿. 下敎禁新創佛寺, 唯許修葺. 又禁以錦繡爲佛事, 金銀爲器用, 宜令所司, 普告施行.)
- 사찰을 수리하는 것조차 '종주국' 신라의 허락이 없으면 감히 하지 못했던 일본. 이후 '속국' 일본에 대한 종주국 신라의 사랑은 계속되고… 신라의 어버이와 같은 사랑에 감동한 일본은 서기 882년, 보답한다.
헌강왕(憲康王) 8년,
여름 4월에 일본국 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00량과 야광주[明珠] 10개를 바쳤다. (八年夏四月, 日本國王遣使, 進黃金三百兩·明珠一十箇.)
성종 28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3월 13일(계묘) 3번째기사
일본국 경극전 경조윤 좌좌목씨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중국의 동쪽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공기가 맑고 부가 많으며 땅이 기름지고 물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성격 또한 양순하기 때문에 떠나려 하지 않는다
-창세와 역사서<마크디시(al-Maqdi shi>
그곳(신라)을 방문한 사람은 누구나 정착하여 나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곳이 매우 풍족하고 이로운 것이 많은 데 있다.
그 가운데서도 금은 너무나 흔해 그곳 주민들은 개의 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
-이드리시(이슬람 지리학자)-1154년에 신라가 포함된 지도를 만듬
신라는 중국의 맨 끝에 있는 대단히 좋은 나라다.
그들의 집에 물을 뿌리면 용연향(龍涎香 - 아주 좋은 향기)이 풍긴다고 한다.
전염병이나 질병은 드물며 파리나 갈증도 적다.
다른 곳에서 병에 걸린 사람이 그곳에 오면 곧 치유된다.
-무슬림이 남긴 것이라고만 전합니다-
중국 저쪽에 산이 많은 ‘신라(Shila)’라는 나라가 있는데
금이 풍부하고 물 맑고 공기가 좋아
한번 간 무슬림은 돌아오지 않는다
후르다드베(Ibn Khurdadbeh)의 '제 도로와 왕국 총람' (이슬람)
신라 서라벌에는 약 17만호의 가구가 있었다. 이는 대략 90만-100만의 인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훗날 조선의 한양보다 4-5배나 더 많은 인구가 살았던 것으로, 혹자는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장안과 함께 서라벌을 당시 세계 4대 도시로 꼽는다.
인구가 많다고 세계적 도시로 꼽는 것이 아니다. 신라, 특히 서라벌에는 초가집이 없이 모두가 기왓집이었다. 온통 금으로 뒤덮은 집도 수십채나 되었다. 그들의 부유함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신라는 차도와 인도가 나란히 잘 정비된 도로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도 옆에 마차가 수월하게 다닐 수 있도록 바퀴 자국에 맞춘 도로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뚜렷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도로 옆으로는 배수구의 흔적도 함께 남아 있다.
우선 서민층 거주 지의 경우, 집집마다 우물 하나씩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다. 이처럼 서민층에서도 각 집마다 우물을 하나씩 갖고 있을 정도면, 당시의 서라벌이 얼마나 위생이 청결한 곳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온돌을 사용하지 않고 숯으로 난방을 했는데 이를 뒷받침 해주기라도 하듯, 대규모의 숯 가마가 발견되기도 했다. 숯으로 난방을 할 경우, 매캐한 냄새가 나지 않고 그을음도 생기지 않으니 당시 사람들의 주거환경은 상당히 쾌적했을 것이다. 상류층 거주 지역의 경우에는 본채 건물 외에도 별채와 화장실까지 구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계획적으로 잘 정비된 도시였던 서라벌은 마치 바둑판과도 같은 형태로 도시 주거지를 이루고 있었는데, '방'으로 나뉘어지는 이러한 거주 구역은 한 방당 약 8천평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골목마다 출입문이 있어 치안상태도 좋았다. 그래서 '몇번째 골목, 몇번째 집' 하는 식으로 주소만 알면 집을 찾는 일도 매우 쉬웠다. 따라서 인구조사 또한 치밀하고 완벽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가구당 가축의 수까지 세세히 기록해 놓았다.
천년 전의 도시가 오히려 지금의 대도시보다 더욱 계획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KBS 역사 스페셜>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근자에 사신이 그곳에 가서 물어보고 알았지마는, 임천각(臨川閣)에는 장서가 수만 권에 이르고, 또 청연각(淸燕閣)이 있는데 역시 경(經)ㆍ사(史)ㆍ자(子)ㆍ집(集) 4부의 책으로 채워져 있다 한다.국자감(國子監)을 세우고 유관(儒官)을 선택한 인원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으며, 횡사(黌舍 학교를 말함)를 새로 열어 태학(太學)의 월서계고(月書季考)하는 제도를 퍽 잘 지켜서 제생(諸生)의 등급을 매긴다. 위로는 조정의 관리들이 위의가 우아하고 문채가 넉넉하며, 아래로는 민간 마을에 경관(經館)과 서사(書社)가 두셋씩 늘어서 있다. 그리하여 그 백성들의 자제로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 무리지어 살면서 스승으로부터 경서를 배우고, 좀 장성하여서는 벗을 택해 각각 그 부류에 따라 절간에서 강습하고, 아래로 군졸과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도 향선생(鄕先生 자기 고장의 글 가르치는 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아아, 훌륭하기도 하구나!
-송나라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3년의 내용)-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 했는데, 극동에 있어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
-도화견문지(1080년경에 송나라의 곽약허가 지은 책)
“옛 사서(역사책)에 따르면 고려의 풍속은 사람들이 모두 깨끗 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들은 항상 중국인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고려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한 뒤 집을 나서며,
여름에는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한다.” -고려도경
그 경계선의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강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의 경계를 넘었다.
-《고려사》
(윤 5월) 갑자일에 거란에서 오윤판관 야율골타를 파견하여 동북 여진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 하였으나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고려사 5권, 현종 17년
(원풍 5년) '선조 시기에는 여진이 등주에 와서 항상 말을 팔았는데, 뒤에 마행도가 고려에 속하게 되어 막혀서 끊겨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 조정이 고려와 왕래를 하는 데, (고려)왕에게 조서를 내려 여진이 만일 중국에 말을 팔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길을 허락하도록 하겠다.'라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끝내 여진의 사신은 오지 않았다.
-속자치통감장편
동북면병마사가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삼산·대란·지즐 등 9개 촌락 및 소을포촌의 번장 염한과 소지즐의 전리 번장 아반이와 대지즐의 여나기나오, 안무이주의 골아이 번장 소은두 등 1238호가 와서 호적에 편입시켜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대지즐로부터 소지즐 요응포 해변까지는 700 리에 걸쳐 장성이 수축되어 있으며 지금 오랑캐들이 줄을 이어 귀부해오고 있는 마당에 관방을 설치하여 그들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해당 관리로 하여금 주(州)의 명칭을 정해 보고하게 한 후 밀봉한 공문을 내려 주십시오.”
왕이 이를 허락했다.
-《고려사》, 문종 27년 6월
한림원에서,
“동여진의 대란 등 11개 촌락에서 귀부해온 자들이 자기들의 거주 지역을 빈주·이주·복주·항주·서주·습주·민주·대주·경주·부주·완주 등 11개 주로 정해줄 것을 요청해 왔으니 그들에게 각각 밀봉된 공문을 내려 귀주와 순주에 소속시켜 주십시오.”
라고 건의하자 왕이 이를 허락했다.
-《고려사》, 문종 27년 9월
서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서여진의 추장 만두불 등이 동번(동여진)의 예에 의하여 주•군을 나누어 설치해 달라고 청하며
평로진 근처의 유원 장군 골어부 및 멱해촌의 요결 등 역시 부적하여 영원히 번병이 되겠다고 원하므로 호수가 35호이고 인구가 252명입니다. 청컨대 판도에 등재하소서."
-《동국통감》, 문종 27년 5월
동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삼산, 대란, 지즐 등의 마을 번장이 1238호를 가지고 와서 부적해주기를 청하니, 청컨대 유사로 하여금 주호를 아뢰어 정하게 하고 또 주기를 내리소서."
-《동국통감》, 문종 27년 6월
서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장성 밖에 개간한 전답 11494 경은 청컨대 가을 수확을 기다려 군량에 보태게 하소서."
하니, 제가하였다.
-《동국통감》, 문종 27년 2월
송을 멸망시키고 서토를 지배하기 위해
북경에 세운 중도(중도대흥부 (中都大興府)) 건설의 총지휘자.
금나라 국무총리격인 장호(張浩)
금나라 요양(遼陽) 발해(渤海) 사람. 자는 호연(浩然)이고, 본성은 고(高)씨다. 경사(經史)에 정통했고, 특히 시에 뛰어났다. 태조에게 책략을 올려 어전문자(御前文字)를 담당하도록 명받았다. 태종 천회(天會) 8년(1130) 진사급제를 인정받고 비서랑(秘書郞)에 올랐다. 해릉왕(海陵王) 때 호부상서(戶部尙書)와 참지정사(參知政事), 상서우승(尙書右丞), 평장정사(平章政事), 상서령(尙書令)을 역임했고, 연경(燕京)의 성곽과 변경(汴京)의 궁실을 증축하는 일을 전담했다. 세종(世宗) 때 태사(太師)와 상서령을 지냈다. 저서에 『화표산인집(華表山人集)』이 있다
러시아과학원 극동지소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 아르쩨미예바 연구원은 17일 인천광역시 인하대 60주년 기념관에서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주최로 열린 학술회의 발표를 통해 "요(遼)나라나 금나라의 유적으로 알려졌던 수류봉(峰) 산성(山城)에서 전형적인 한국식 타날(打捺·두드림) 문양의 기와들을 발견했다"며 "이 산성은 출토 유물과 성벽 축조 기법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6진 설치로 북쪽 국경이 확정될 때 방어 전초기지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수류봉 산성은 연해주 하산 지구의 중국과 러시아 국경에 위치해 두 나라에 걸쳐 있다. 전체 둘레 길이는 727.5m이고 높이는 1.5~2m이다. 러시아 조사단은 작년부터 남문 터 안쪽에 4개의 초석이 있는 구역을 발굴했다. 두드려 낸 반호(半弧) 모양의 문양을 가진 기와와 옹기 조각이 대량 나왔고, '대왕(大王)'이란 한자 명문(銘文)도 발견됐다. 아르쩨미예바 연구원은 "수류봉 산성은 연해주 일대의 요·금나라 성벽과는 구조와 유물이 다르다는 데 중국 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나라 황릉의 모델은 고려 황릉(왕릉)이었다.’ 12세기 북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 황릉이 고려 황릉과 형제처럼 꼭 닮았다는 비교 연구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1068∼1123)가 10세기에 건국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당대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시켰던 국책사업인 황릉 조성을 한반도에서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1073년과 74년 <고려사>는 서양에서는 관측하지 못한 ‘신성’ 기록을 남겼다. 그뿐이 아니었다. 1592~94년 사이에도 역시 서양인들의 눈에 띄지 못한 객성을 4개나 관측했다. 특히 한 개의 객성은 15개월간 두 번의 연속된 기간에 걸쳐 관측됐다. 이 객성을 끈질기게 관측한 조선 천문학자들은 이 별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성이나 초신성이 아니라 고정별(항성)이라 판단했다. 그 판단은 옳았다. 그 별은 신성이나 초신성이 아나라 자체적으로 별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는 변광성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조선의 천문학자들은 1572년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가 관측한 이른바 ‘티코 초신성’도 동시에 보았다. 또한 1604년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발견했다고 해서 ‘케플러 초신성’이라 명명된 초신성도 관측했다. 오히려 케플러보다 4일이나 먼저 관측하는 개가를 올렸다.
야인과 왜인들은 모두 우리의 번리이고 우리의 신민이니 왕된 자는 똑같이 대우하고 차별을 없이하여 혹은 무력을 사용기도하고, 내가 즉위한 이후에 남만, 북적, 이것은 하늘의 끌어들이는 바이지, 나의 슬기와 힘이아니다. 흑룡강, 속평강, 건주위, 올량합, 이만주 동창등 심처 야인과 삼위 달자가 관문을 두드리고 입조하기를 청하거든, 그 종인을 줄여서 후대하여 올려보내라
잉글랜드 100, 조선 134, 중국(강소성, 절강성) 191.
중국전체의 평균 총요소생산성은 191 이하일 것이나 이 역시 잉글랜드보다 高.
◇ 1인당 GDP 비교(조선 vs. 중국)
1820년 1인당 GDP - 중국: 600달러, 조선: 600달러
┃중국의 1인당 GDP 추이
- 인구의 비약적 증가로 인해 1500년부터 320년간 600달러 수준.
- 1870년 530달러로 추락.
- 1920~30년대 55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
┃조선의 1인당 GDP 추이
- 1870년 604달러로 반등
- 1911년 777달러(아시아 2위)
- 1917년 1,021달러
- 1939년 1,459달러
조선의 생활수준은 16세기말부터 상승하여 18세기 영·정조시대(1724~1800)에 정점을 기록한 후 하락.
- 16~17세기에는 중국보다 낮을 수 있으나 18세기 중국을 추월.
- 19세기(1820년)에는 다시 중국과 비슷한 수준.
◇ 조선의 교육복지
┃세종치세(재위 1418~50) 이후 18세기까지 지방향교, 사학(四學), 성균관 등 모든 유생들에게 무상교육, 무상숙식, 학비지급, 학전(學田)지급, 면세 및 요역면제.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논어」의 유교무류(有敎無類)의 원칙에 따른 것.
조선과 같은 먼 극동의 나라에서 우리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의 자존심마저 겸연쩍게 만든다. 조선 사회에서 문맹자들은 심한 천대를 받기 때문에 글을 배우려는 애착이 강하다. 프랑스에서도 조선에서와 같이 문맹자들을 가혹하게 멸시한다면, 경멸을 받게 될 사람이 허다할 것이다.
매우 답답하지만 정말 모르는거 같아서 길~~게 말은 안하겠습니다.
T50은 현스펙상 최상급훈련기가 맞고
미공군에서도 도입이 추진될 정도로 훈련기로썬 정점을 찍은 기체입니다.
군사력랭킹10위권 국가들이 아닌이상 훈련기 용도보다
직접적인 전투기의 용도로써 써먹어도 하등 차질이없는 고급기체고
미들급 전투기보다 유지비가 훨씬 적게 들어서
국방비가 부담스러운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성비가 매우 뛰어납니다.
필리핀반군 진압에서는 혁혁한 공을 세운 이력이 있습니다.
Ton Ton
T50은 L39나 F5E로 대체되야합니다.
개인적으로 오랜동안 두기종을 비행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훌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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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네 두 기종보단 훨씬 좋은건데...;;
동남아 국가들이 우리를 깔보는 데는 우리 잘못 더 큽니다. 지금도 그러자나요. 세계에서 젤 가난한 나라에서 이만큼 기적을 일궜다고... 그러니 깔보죠. 심지어는 미국에 줄 잘서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폄하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스스로가 좀 자존감을 가질 필요가 있고 또 세계 제일가난한 나라 드맆은 이제 그만했으면해요.
그냥 오늘날 시각으로 뻘소리 해대는거임.
우리나라의 경우는 97외환위기 전엔 GDP계정을 국가통계로 사용하지도 않았음.
김대중이 집권한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국내기업을 외국자본에 매각하면서 GDP계정을 OECD기준이라고 쓰기 시작한거임.
그전의 국가통계는 GNP로 전부 통일해서 썻음.
당시 김대중이 한 유명한 발언이 바로 '한국에 있는 기업은 그 주인이 누구건 상관없이 한국기업이다'라는 논리였음.
이걸 무슨 60대 GDP타령을 함 ㅎㅎ
ECOS통계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던 시절것을 2000대 들어와 입맛에 맞게 조정한거지.
우리나라의 금융이 개방된것은 80년대 전두환시절부터지만 IMF최혜국 금리로 대우받던 시절이라 의미가 없고..
WTO체제가 출범하고 OECD가입이 이뤄진 94년이후가 비로서 제대로 금융이 개방된거고..
김대중과 노무현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개방이 이뤄졌기 때문에..
90년이전의 GDP계정은 의미가 없다고 봐야됨.
막말로 60년대 GS칼텍처럼 미국자본이 들어와 정유시설짓고 정제유 수출했던 계정들이 정확히 반영되었을거 같음? 말도 안되는 뻘짓일뿐. ㅎㅎ
8년전이 생각나네요 1훈비(광주)에 한미 공동훈련 파견 갈때 t-50을 봤습니다. 그 당시 주력기인 f-5(타이거)의 인테이크에 f-16(파이팅파콘)의 외관에 엔진을 믹스해둔 외형이더군요 정비사들 정비할때 편하고 소음이 적고 조종사의 편의성이 좋다고하더군요 그 무엇보다도 가성비가 좋지요 고등훈련기로 만든건데 무장도 가능하고 가격도 싸구요
전투기가 많이없는 나라에서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할 훈련 & 전투기 인데 ㅋㅋ
t-50은 경공격기로의 전용도 고려해서 디자인 되었기 때문에 훈련기로써는 오버스펙임. 허언이 아니고 실제로 지금것 훈련기로 개발된 기체중에서는 가장 성능이 좋게 나온 이유임.
비행기라는게 그냥 무장달면 전투를 할 수 있는게 아니고 이륙이 가능한 적재 중량제한이 되어 있음. 이거보다 더 많이 적재하면 무거워서 정상적인 활주거리로는 이륙자체가 안됨.(이륙이 된다고 해도 기동이 불가능 할 수도 있음.) 훈련기들은 체급이 작아서 이런 무장능력이 거의 없거나 아주 제한적인 무장만 가능함. 그런 면에서 중간에 끼인 t-50정도의 기체 성능과 가격은 돈이 없어서 현물로 물물교환식 무기거래 하는 나라들한테는 그나마 나은 선택임. 무슨 f-15 몇 대 가지고 결전병기 마냥 이용할 것도 아니고 수량과 단가를 맞출 돈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임.
미국이야 이런 기체를 그냥 훈련기만으로 수십 수백대 굴려먹어도 될 정도의 능력이 되니까 그렇게 하는거지만 이걸사서 훈련기로만 써먹는 돈지랄할 수 있는 나라는 몇 없음.
이것들은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 기간동안 좀 어렵게 살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수천년 역사의 유서깊은 나라였던 우리를 지들과 동급취급하고 앉았네. 우리 나라가 무슨 천운으로 선진국가 대열에 올라선지 알지만 그 나라의 국민성과 잠재된 역량이 뒷받침 되어 있지 않은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성공이건만 이것들은 지들 수준 생각 안하고 깝죽대네
잘 모르시는 분들 많네요. 태국은요 1/5 인구가 중화교인들이고요 일본뿡에 오랬동안 물드려왔죠. 그러니 태국인들 한국지식이 많이부족합니다. 한국 GDP per capita 가 3만불 하면 깜놀합니다. 한국 식민사관떼문에 고대중국식민지부터 한국역사가 시작한지 알고있구요 한상 미국.일본.중국에 먹이감인줄 착각하고 있음니다. 그러니 태국인들이 한국하면 지들보다 못한 나라줄 알고있음니다.
?? 대체 태국에서 F16급을 왜 사려는거지 동남아에서 도대체 뭘 하려고? 그리고 F16 살 돈이나 유지할 돈은 있나.. 그동네에서 그나마 덩치 크다고 진짜 지들이 부유국이라도 된줄 아는건가.. 정말 웃기네.. 그와중에 태국도 비행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ㅋㅋ.. 진짜 이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한국인들처럼 얕은 지식이라도 전분야에 걸쳐 다방면 교육을 시키는 나라는 정말 드문거 같네요.
Black gold
나라면 미국에서 F16이나 F18을 구매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 7-8대만 구매하는지도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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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의 모든 가속은 엔진 분사로 합니다. 바퀴에 따로 동력장치는 없고 브레이크만 있어요. 지상에서 움직일 때도 엔진으로 밀어내는 거에요. 따로 격납고까지 옮기거나 할 때는 견인. 흔히들 비행기는 스스로 후진할 수 없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 비행기는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비행 성능이 우수해 지기때문에 필요없는 장치는 웬만하면 잘 안만들어요.
태국 놈들 돈 좀 많은가 본데 뭐하러 f16 사냐?
기왕에 살거 f22, f35 사고 폭격기도 구비해놔야지? 돈 많으니까 b-2면 되겠네.
아, 이번에 미국이 제럴드 포드 급 신형 항공모함도 뽑아다고 하더라. 그것도 사야지?
잠수함은 오하이오급 사놨다가 나중에 컬럼비아 급 나오면 그걸로 교체하면 될 것 같고.
육상전하려면 탱크도 필요하니까 m1a2 에이브람스로 100대 정도 구매하면 되겠다.
태국에 자주가는데 간혹 태국애들이 개념이 없을때가 있어요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눈치도 없고 답답할때가 많은데 자존심은 정말 쌥니다.(월급 받으면 저축보다는 전부 먹는거 아니면 유흥으로 다 써버리는 허세도 생각보다 강해요) 그런 태국애들이 알아듣기 쉽게 삼성전자 1년 매출이 니네 태국 총생산(GDP)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 라고 하면 정말 놀랍니다. 그리고 최고수준의 호텔이나 부자들은 삼성, LG전자 제품을 사용하고 게스트하우스나 저렴한 호텔은 도시바, 샤프, 미쓰비시 같은 일본제품을 사용한다라고 유치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말해도 인정하고 알아들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