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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D] 한국의 조선시대 배경 좀비영화 "창궐" 예고편, 해외반응
등록일 : 18-09-08 18:21  (조회 : 36,441)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2018년 10월 한국에서 개봉하는 현빈, 장동건 주연의 좀비 영화 "창궐"의 예고편에 대한 해외 네티즌들의 반응입니다.
동양풍의 중세 좀비 영화라는 점에 흥미와 신선함을 느끼는 팬들이 많은 듯 합니다.
또한 부산행의 흥행으로 한국 좀비 영화에 대해 기대감을 표현하는 의견들도 많았습니다.
유튜브와 레딧 해외 네티즌들의 반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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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Imapony
역사 속 다른 시대의 좀비라. 
명백히 매우 흥미로운 컨셉인데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거 같아.


ㄴwhereverigo
월드워 Z 책이 그랬어. 영화가 완전히 무시하긴 했지만
(역자 주: 월드워 Z: 소설 기반으로 만들어진 브래드 피트 주연의 좀비영화)


ㄴRubix89
FUBAR 만화책 시리즈도 다양한 시간대의 좀비물을 그리고 있어. 꽤 재밌어.



AsianMovieEnthusiast
2015년에 개봉한 "The Black Death"라는 태국영화가 있어. 
1565년을 배경으로 한 영환데 졸잼임.


drawsnoodz999
정신나간 중세 아시아 부자 vs 좀비


LiangHu
이런 시대의 좀비 영화는 꽤 흥미로워. 완전 기대된다.


StudBoi69
와우 와우, 부산행의 프리퀄시리즈군.


ㄴCephalopodRed
실제로 부산행 프리퀄은 "서울역"이라고 있지.


ㄴWallieD
님 잠깐, 뭐라고?


ㄴmitchb6
구글에 방금 쳐봤는데. 부산행의 프리퀄 시리즈로 나온 애니매이션이 있었어. 
그리고 너가 아직 안들어봤겠지만, 실제로 부산행의 속편을 만들고 있어.


ㄴmaxdembo
서울에서 뉴올리언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좀비와 싸우는 "서울 비행기"라는 영화도 있지


ㄴa11city
부산행은 진짜 날 깜짝 놀라게 했지. 꿀잼이었어.


ㄴVio_
부산행 속편 서울행: 케이팝 밴드가 경쾌한 음악과 함께 좀비를 때려부숨.


ㄴginyuforce
이 영화는 군도의 속편 같군.
(역자 주: 군도: 하정우, 강동원 주연의 영화. 2014년 개봉)


ㄴmoderate-painting
군도 재밌음.


ㄴshaoting
님들 제발 창궐 얘기만 좀...


AkiraIsGreat
다들 좋은데, 일단 창궐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ㄴhardinmathclass
글 보자마자 이런 생각하는게 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행이다. 제발 영화 얘기만 하자.


ㄴLets_focus_onRampart
ㅇㅇ 그래야함


GetReady4Action
바지를 먹어라
(역자 주: 원문: eat (ram)pant. 창궐의 영어 제목인 rampant를 이용한 언어유희)


MStarzky
오, 재밌어보이네


LocalMadman
이거 내 구미를 당기네. 사실 좀 역사적인 좀비물을 원했거든. 
좀비랑 바이킹이랑 싸우고, 좀비랑 기사단이랑 싸우는 영화는 없냐?


AimeeM46
이거 진짜 재밌어 보인다! 현대시대가 아니면서도, 
다른 신선한 배경의 좀비/감염물 진짜 좋아! 글쓴이 이거 포스팅해줘서 고마워~


ForetellFaux
한국 영화씬은 그렇게 조그마한 나라에서 어떻게 
이렇게 재밌는 것들을 만들어내지? 거긴 대체 무슨일이 있는거임?


ㄴCharlyHotel
헐리우드 영화와의 경쟁에서 한국영화를 위해 일정 영화관 수를 
보장해주는 스크린 쿼터제 때문이야. 그리고 재벌이 국내 영화에 자금을 대지.


ㄴCalgaryXTC
오랜 시간동안 한국 영화는 재벌에 의해 억압받았어. 
재벌들은 영화에 그닥 자금을 대지 않았어. 그저 걔네 사업을 만족시키기 위해 
적당한 B급 컨텐츠를 찍을 뿐이었지. IMF가 터지고 나서, 
창의력있는 감독들이 정말로 그들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지.


ㄴCephalopodRed
뭐라는거임? 한국은 결코 그렇게 작지 않아. 5100만의 인구가 살고 
무엇보다도 국내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높다고. 
그리고 그 높은 점유율은 국내 산업에 도움을 주지.


ㄴForetellFaux
내 말은,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다른나라에 비해서, 작다는 거야. 
근데 그런 나라에 비했을 때, 한국 영화들은 서양 시장에 훨씬 많은 매력적인 영화들을 어필해. 
걔네는 다른 나라들이 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영화들을 히트시켜오고 있다는 것 뿐이야. 
내가 본 일본 영화나 중국 영화는 내 한손으로도 꼽을 정도로 거의 보지 않았지. 
근데 한국 영화는 내가 세다가 그만 둘 정도로 많이 봤어. 
이건 물론 내 얘기일 뿐이지만, 한국은 어떻게 더 넓은 시장에 
어필을 하도록 영화를 만드는 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여.


Princeps_
미스터 선샤인 ㅋㅋ
(역자 주: 최근 크게 흥행하고 있는 이병헌 주연의 한국 드라마)


dec92010
꽤나 불행한 제목같다


BlackFox Janelle C.
이게 바로 부산행의 기원이군 ㅋㅋ


Jon Doe
놀라워


KitanoV PrO
이거 좋은데


melina11soske
와우우우우우우웅 쥑인다아아아아앙


Nguyên Trương
로마의 전사들보다 나은데 ㅋㅋㅋㅋ


Lit' AHSr.
와 이거 재밌겠다. 영어 더빙이 꼭 되어야 해.


MeSmeshFruit
그니깐 누군가 좀비물을 좀 신선하게 바꾸길 원했다는 거지?
근데 진지하게 뭐랄까 액션이 좀... 다 필요없고 총은 어딨냐!!!


Alfred Christanto
영화에 꽤 좋은 아이디어 인듯


Sean KCY
나한테 꽤나 재밌어보여!!


Kochigachi
Joseon Zombie ㅋㅋㅋㅋㅋ


Jesper Waldram
와우우우우


Skyzfire
이거 넷플릭스의 킹덤을 떠오르게 하는군. 
이제 이 영화의 감독때문에 영화가 엄청 흥미있어졌어 
(역자 주: 김성훈 감독)·


Ducking Around
예스!


sayy shit
슈퍼ㅓㅓㅓㅓ 하군


Daniel J. Phillips
웅크린 호랑이, 숨은 좀비들.


Antonio Aguilar
이거 한국식 신파 엔딩이다에 건다.


KitanoV PrO
멋진 좀비군


BajaBalls
오마이갓


dragon8me2
와 이거 진짜 죽인다. 내가 좀비,유령,귀신에 질리긴 했지만, 
이런 참신함은 언제나 땡큐라고!


bobdude42
이선빈이 이 영화에서 궁수로서 빛났으면 해!


Gillig Santiago
한국영화네...


SnowQueen KB
와 현빈이 이번엔 왕자로 돌아왔네!



번역기자:안암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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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oy 18-09-08 18:25
   
보러 가야지 ㅎㅎ
알개구리 18-09-08 18:27
   
좀비는  이제 너무 식상한 주제 아닌가....;;
     
덕후니 18-09-09 03:01
   
아직 해외에서는 하나의 장르로 여전히 인기가 많아요. ㅎㅎ
우리나라에선 좀비물 자체가 전무하다시피하니 사극좀비물은 신선한데요.ㅎㅎ
          
ㄴㅇㅀ 18-09-09 09:16
   
좀비물중에서 가장 신기하고 보고싶지 않은게 오만과편견 좀비물.. ㅎㅎ
     
호쿤e 18-09-10 10:15
   
좀비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재밌어요
솔직히 18-09-08 18:47
   
ForetellFaux
한국 영화씬은 그렇게 조그마한 나라에서 어떻게
이렇게 재밌는 것들을 만들어내지? 거긴 대체 무슨일이 있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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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이 역사를 왜곡하던가, 아니면 모른체해서 그렇지
한류라는 게 역사상 지금이 처음일 거 같냐?

한중일의 길고긴 역사속에 20세기가 그냥 특이한 세기였을 뿐이지.
우리에게 중국은 호구, 일본은 쫄따구였던게 원래 한중일관계였고,
우리가 선진국이 아니었던 특이한 세기가 20세기지.
     
트리니티4 18-09-08 18:59
   
네? 조선시기에 한국이 '선진국'(당시에는 이런 개념도 없었지만)으로 볼만한 시대가 있었나요? 잘쳐줘야 임진왜란 이전까지 어느정도 중견국으로 볼수 있지 70년대 이전까지는 최빈국에 가까웠죠. 21세기 들어서고 나서야 그나마 선진국에 비벼볼 정도고요. 물론 지금은 명백한 선진국이라 봅니다
          
ㄱㄹㅊ극혐 18-09-08 19:10
   
조선 시기가 병크였고 그 이전 삼국, 남북국, 고려 시대에는 좀 이야기가 다르지. 물론 조선시대만 놓고 보면 할말이 없는 병.쉰.국가기는 하지.
          
스코티쉬 18-09-08 19:37
   
조선시대도 극후반을 제외하면 선진국이었어요.
일본에서 80년대 간행한 과학사 기술사 사전에서 세종대 반세기간
세계의 주요 업적 수에서 중국 5건 일본 1건 그외 세계가 30건일때
조선 단독으로 29건 입니다.. 전세계의 과학적 성취의 절반이 조선에서 나왔어요.

도자기 기술이 그시대 대표적인 하이테크 기술이었던건 뭐 아실테고,
조선이 도자기로 유명했던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듯.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도 한번 보세요. 양으로도 50여개 민족이 뒤섞인
중국을 제치고 아시아 원탑이지만, 최초로 공중보건의 개념을 만든 동의보감이나
훈민정음 같이 내용면에서도 다른 나라의 기록유산들과 비교 됩니다..

조선시대 내내 조선구는 못들어봤어도 먹고살기 힘들어서 도적질하는
일본의 왜구나 북방 여진은 모르는 사람이 없죠.
토지면적당 쌀생산량도 조선이 동남아같은 농사 쉬운곳보다도 높을정도였었고.
조세제도나 중앙 관리 시스템도 중국과 더불어 그시대 가장 선진적이었습니다.
조선이 중국에 조공한것만 알지..시기는 좀 달라도
류쿠, 일본, 멀리는 동남아 국가에서까지 조공받은건  잘 모르죠

무슨 조선만 현대를 기준으로 중근세 암흑기 보낸것처럼 생각하시면 안되죠.
다른곳은 더 개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하시는 듯
               
분석 18-09-08 20:06
   
도자기 기술이 세라믹 기술이라고 보고 반도체 기술로 넘어온다고 보면 되지요. 그래서 일본이 도자기 기술공을 데려가 도자기 붐을 일으킨게 20세기 하이테크 기술력 상승에 이바지 했다고 개인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전 일본놈이 싫어요!!! ㅎ
               
발해로가자 18-09-09 03:17
   
죄송하지만, 조선이 역사상 도자기로 유명한건 아니었음.
옛부터 조선도자기가 해외에서 미친듯이 팔린적도 없고, 현재도 경매에서 10억이 넘어가는게 손에 꼽음.

지금도 서양에선 중국 경덕진 도자기보다 일본도자기를 더 알아주는데,
일본 도자기도 알려진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영향을 받았다기 보단
중국 영향을 받아서 일본풍으로 발전 시켰음.

혹자는 조선백자, 고려청자 얘기하는데 명,청시대 도자기와 일본 17세기 도자기 보면 입이 떡 벌어짐. 우리는 그 비싼 코발트도 잘 못써 문양이 단조롭고, 코발트 안 바른 백자 만드는 사이 중국과 일본은 전문 화가를 고용해서 아주 떡칠을 하고 염료, 재료, 제작 , 디자인 방면에서 혁신적인 도자기를 정말 많이 만듬. 일본 정말 싫어하지만 도자기 역사 공부하다 보면 감탄만 나옴. 우리나라 도자기 시장이 작아서 일본 중국 도자기의 제대로 된 작품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게 사실.
                    
굿잡스 18-09-09 05:52
   
???

 ‘고려비색(高麗翡色)  천하제일(天下第一)’ 

-송나라 태평노인의 ‘수중금(袖中錦)’ 중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oullaw&logNo=220476237900(중세 고려청자 사진) 
  
천하제일 비색청자, 바다ㆍ사막 넘어 전세계에 고려 알려

한성욱의 도자 이야기-일본ㆍ중국ㆍ동남아 넘어 이란까지 전파
고려, KOREA 알린 왕조
청자, 무역품으로 거래돼
베트남ㆍ필리핀서도 출토

http://m.jnilbo.com/article.php?aid=1522929600546156382

동양 도자기 전문가인 영국의 윌리엄 하니(William B Honey)의 말을 뽑아본다. "최고의 고려도자기는 독창적일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지금까지 만든 것 가운데서 가장 우아하며 꾸밈새 없는(the most gracious and unaffected) 도자기이다. 그것은 도자기가 갖는 모든 미덕(virtue)을 갖추고 있다.(중략) 사실 이 고려 도자기는 중국인조차 거의 도달하지 못했던 높은 경지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미술사를 쓴 맥큔(Eveley Mccune)은 동양의 도자기란 '유약)' 과 '형태'와 '장식'의 세가지에 따라 서로 차별화된다고 적고 있다. 유약이 도자기의 색상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보면 결국 빛깔, 모양, 꾸밈 새에 따라 도자기가 특성화된다는 뜻이다. 최순우 고 국립중앙박물관장 도 고려청자의 삼대특장으로 '비색의 그윽함'과 '곡선의 미끄러움'과 '상감의 장식기법'을 들고 있다.



JAP,아리타 도자기의 시조(始祖)격으로 조선인 사기장 이삼평. 

『일본 도자기의 신, 사기장 이삼평』 

http://cafe.daum.net/gwansan/KAN1/516?q=%C0%CF%BA%BB%20%B5%B5%C0%DA%B1%E2%C0%C7%20%BD%C5%20%C1%B6%BC%B1%C0%CE%20%C0%CC%BB%EF%C6%F2

즉 우리 조선 도공에 의해 17세기 중엽 쨉에서 도자기가 본격 생산이 되기 전까지 왜국은 

무겁고 거친 토기그릇이 주류.(임진왜란 시기 오줌 누는 옥같은 반짝 반짝한 조선의 요강에도 왜군 

장수들의 눈깔이 돌아간게 단순히 유머가 아님), 이것도 귀족층에서고 대다수 왜인 백성들은 

여전히 목기식기류와 나무수저가 이후도 주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인 센 리큐(千利休)는 16세기 조선 이도다완을 '천하제일'이라고 극찬.


조선백자 철화용문 항아리

 

http://cafe425.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Ahha&fldid=BcSL&contentval=00002zzzzzzzzzzzzzzzzzzzzzzzzz&nenc=&fenc=&q=&nil_profile=cafetop&nil_menu=sch_updw

 
경기도 광주시 분원리 관요(官窯)에서 제작한 17세기 작품인`백자 철화용문항아리'가 크리스티 경매 사상 최고가액인  842만달러(약 101억원)으로 팔리는등  이후에도 60억대 이상의 고가들이 계속해서 팔렸던게 조선 백자임.



“일본 도자는 조선 도공 이삼평으로부터 시작됐다.”

ㅡ독일 드레스든 박물관 안내 문구
                    
굿잡스 18-09-09 06:33
   
도자기 역사와 공부를 좀 더 제대로 해야할듯.

당대 서토 왕조에서 도자기기술력이 절정기에 올랐던 송나라에서 왜 고려청자를 극찬했을까?

그리고 왜국 다도의 창시자는 왜 조선의 이도다완을 천하제일로 그리고 영국 도자기 전문가인 윌리엄 하니같은 분들은 님보다 도자기의 지식이나 안목이 낮아서?? 그리 극찬했을까?

우리 고려청자의 독특함과 우수성 및 아름다움을 이야기함에 서토의 과장되고 화려함에 치우친 면에 비해 독특한 조형미와 상감청자 기법에 시대를 뛰어넘는 간결하고 우아한 현대적 곡선미를 바탕으로

당시 송나라 태평노인의 <수중금>에서 고려 청자의 비색을 천하 제일로 말했던 이유도 당시 전 세계에 하이테크 첨단 제품인 도자기를 제대로 만든 나라는 송과 고려뿐이였지만

송나라는 유약에 묻혀 표면의 무늬나 섬세한 선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색상이 탁했던 반면에 우리 고려 장인들은 이것을 극복하여 투명한 하늘 비색을 구현해내게 됨.(서토는 이후 명시기에 가서야 이런 고려 기술력을 바탕으로 재현해서 청화 백자를 완성)

그리고 님이 말한 서양에 날게 돋치게 팔린 어쩌고로 유명세와 부를 가져온  쨉의 아리타지역 도자기의 원조이자 쨉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가 조선인 이삼평임.

왜 임진왜란을 달리 도자기전쟁으로 까지 불렸는지 공부해보길 바람.

왜국은 비로소 조선인 도공들에 의해 열도 내에서도 그리도 열망하던 하이테크인 도자기를 생산해낼 수 있었고 이후 만주족이 서토를 정복하면서 대규모 학살등 명청교체기의 혼란기에 유럽 왕실로 팔려나가던 차이나도자기의 생산량이 급격히 줄자 눈을 돌린게 마침 왜국에서도 본격 생산되기 시작한 아리타 도자기였음.

그리고 당시 왜국의 아리타 도자기는 유럽왕실과 귀족들이 선호하던  고객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이런 차이나풍을 모방 가미하기 시작했던 것임.

조선인 도공에 의해 비로소 서구에서도 황금보다 귀하게 팔리던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고 그런 유럽 소비자의 취향을 계속해서 맞추다보니 팔기는 좋았지만 정작 시간이 흐르면서 왜국만의 도자기의 유니크가 희미해지는 결과를 낳게됨.

그리고 내용을 보니 무슨 코발트 안써면 도자기의 우수성이나 아름다움 예술성이 떨어지는 말투식의 이상한 논리에 서구 어쩌고를 이야기하는데

조선의 지리적 위치상 극동에 치우쳐 있다보니 코발트 재료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기존 기술력에 조선만의 철화백자같은 더욱 유니크한 예술품이 탄생.

그리고 네덜란드도 왜국과 점차 교류하면서 조선의 존재를 알고 본격적 교류를 하고자 했지만 왜국의 방해와 지리적 여건으로 직접적 교류를 못했지만 엄연히 우리의 도자기는 이른 시기 주변국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교역과 우수함이 알려져 있었음.

그리고 조선만의 또 하나의 독특한 도자기인 달항아리등의 외국 전시에서 관람하던 서양인들의 직접적 소감을 들어보니 디자인이 전혀 몇 백년 전 유물로 보이지 않을 만큼 현대적 감각의 간결하고 우아한 곡선미를 이야기함에 새삼 와닿았음.

 
그리고 고려시대가 불교의 이상향같은 푸른 청자의 색을 선호했다면 조선은 청렴과 절제의 순백의 색인 백자를 그래서 더욱 선호했고 그것이 조선의 선비가 지키고자 했던 정신이며 덕목으로 보았음.
                         
발해로가자 18-09-09 11:51
   
제가 그래서 17세기 후반부터 일본 도자기가 조선도자기를 뛰어 넘었다고 한거죠.

당장 백자만 비교해 보더라도,
18세기 시대의명작인 조선의 백자청화 죽문각병, 난초문청화백자, 백자철화포도문호와
18세기 일본의 사쓰마야끼 백자들만 단순 비교해 봐도 확실히 일본 도자기가 한 수 위입니다.

조선시대 도자기 장인들의 대우가 형편없이 낮아서 일본에서 오히려 실력을 꽃피운 조선인들 얘기는 아실테죠. 조선은 도자기를 일본, 중국처럼 주력 산업으로 삼지도 않았고 대우도 형편 없었기 때문에 도자기 수준이 높을 환경 자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당장 지금만 봐도 일본, 중국의 도자기 시장의 크기, 작품수준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도자기가 가야할 길은 멉니다. 현실을 부정한다고 없는게 생기는건 아니거든요.
                    
굿잡스 18-09-09 17:15
   
?? 딱 푸는 썰이나 관점이 어디 수준 낮은 쨉극우들 논조하군 ㅋ

열도에 아스카 도시문명과 일본이라는 나라를 건설한 우리의 직접적 영향력을 애써 부정하기 위해 해괴한 임라일본부설부터 무슨 한반도는 그냥 쨉 문화 수용의 자동 중간지나 지들의 일반적 국제 교류에 의해 자체 힘으로 발전했거나 애써 서토풍 어쩌고로 전후 역사의 핵심적 중축적 흐름은 빼버리고

전범 쨉 극우들의 본인 자위용 역사논리와 관점하군 쯧.

현대에 식기류에서 인구 13억과 1억 3천만의 도자기 내수 시장에서 애초에 기본 규모가 같을 거라는 허접한 현대적 얘기까지 몬 애써 가져와 어쩌고 하는지? ㅋ 이쪽 산업이 오늘날 고부가산업도 아닌걸ㅋ

그리고 넷상에서 어그로 쨉바들 임진왜란시기 조선도공들 강제로 데려가서는 대우 어쩌고 이런 똑같은 래파토리는 어쩌면 늘 식상하게 같은지 ㅋ

왕실의 그릇을 만드는 분원
왕실의 연회와 음식을 담당한는 관청이 사옹원이고 그 분소인 분원에서 필요한 그릇을 만들었다. 분원은 세조 연간인 1467년경 운영되기 시작하여 1884년까지 지속되었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광주에 설치되고 전국에서 엄선된 380명의 장인을 중앙에 등록하여 왕실용의 우수한 백자를 생산하였다. 지금의 광주 지역 일대에는 분원이 운영한 도자기 공장인 백자 가마의 흔적이 340여개소 위치해 있다. 이렇게 가마가 많은 이유는 땔감의 소비로 인해 10년을 주기로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광주 분원은 1752년 이후 남종면 분원리에 정착하여 130여년간 운영되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그냥 왜구같이 여전히 두껍고 무거우며 거친 토기를 사용하던 낙후된 사회 문화 생활 수준에선 조선의 일반적 도공도 당시에는 고도의 하이테크 장인이였지만 조선 입장에선 그냥 발에 치이는 일반적 장인들.

그러나 또한 고려고 조선시대에고 식기류는 일상 생활에서 특히나 왕실이나 귀족들에게는 중요한 생활 용품  중 하나이기에 국가에서 관청을 두어 장인을 양성하고 생산.

그리고 글의 수준을 보니 예술품을 보는 관점이나 안목이 드러나는게 무슨 겉치장만 요란하면 그게 정말 뛰어난 줄 마냥 착각하는 한심함하군.

첨부해서 이런 조선은 전기까지 도자기등 다양한 제품을 국내외 소비, 교역도 했지만 후기에 가서는 고부가 가치인 인삼의 대량 생산에 성공하면서 오늘날로 치면 동북아의 바이오 의약품을 독점하며 청,왜등에 막대한 재화를 쓸어담음.
                         
발해로가자 18-09-09 18:48
   
존댓말로 정중하게 답글 썼으면 좋게좋게 답글 달 것이지. 정신병자처럼 아까부터 반말 지껄이로 왠 시비질이냐?

내 예술안목을 논하기 전에 니 정신상태나 고쳐 써라. 그래서 니 구질구질한 논점을 요약하자면 18세기 조선의 도자기 수준이 일본 도자기 수준보다 높았다는거냐? 일본 싫어하는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겠지만, 차이가 있다면 넌 있는 그대로 보는게 아니라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하는게 차이점이지.

조선도자기가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 도자기처럼 미친듯이 해외에 팔린적이 있었냐?
우리끼리 조선백자가 세계최고라고 자위하면 뭐하냐. 중국, 일본의 도자기처럼 해외 왕실 귀족들의 관심을 끌지도 못했는데! 우리가 언제부터 도자기를 해외에 미친듯이 팔아서 은화수입으로 나라곳간을 채웠길래 세계최고라고 자위하는거냐? 그런 기록이라도 있냐?

니 안목은 유럽의 귀족들보다 높나보지?  지금 너의 모습은 마치 갈라파고스 쪽국의 니뽕이 최고라고 하는거와 다를게 없다는 생각은 안드냐? 유럽귀족들보다 안목 높은 너는?ㅉㅉ

현재 도자기를 식기류에 비교하는 저 멍청한 DOG소리는 또 뭔지. ㅋㅋㅋㅋ
도자기가 식기류만 있냐? 난 예술품을 얘기하고 있는데 넌 접시 생각하고 있었냐고.
이거 수준차이나서 대화가 되야 말이지. ㅉㅉㅉ


18세기 조선의 도자기 수준이 저 두 나라와 비교하면 확실히 수준차이가 나는게 사실이고
좀 차이나면 어떠냐. 이게 그렇게 죽고 못살 정도로 인정을 못 할 일이냐?

내가 살다살다 명,청시대, 18세기 일본 도자기보다 조선도자기 수준이 높았다는 미친 소리를 다 듣네.ㅋㅋㅋㅋ 어디 도자기 하는 사람 앞에가서 그딴 소리 하지마라 진짜. 쪽팔리니까
                         
굿잡스 18-09-09 19:16
   
???ㅋ 

정작 한글로 올리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도자기 역사나 안목 공부도 제대로 안한 수준을 넘어 

전형적 어그로 쨉 극우들 관점과 스테로오타입의 썰로 중구난방으로 이야기하면서 퍽 정신상태 운운하군.  이정도면 본인이 모가 문제인지 조차 자각 부족이니.쯧. 

혼자 열심히 썰하길 바람. 

이만.
                         
발해로가자 18-09-09 19:23
   
아래의 댓글 봐라. 너보고 뽕쟁이란다. 국뽕이 너무 심해서.
오죽하면 니 댓글로 페이지 다 잡아먹어서 국뽕글로 헛소리 좀 그만하라고 항의하겠냐.

너의 역사 왜곡된 오염수준의 저질 댓글로 이 좋은 번역글 다 망쳤다. 댓글 달려면 공부 좀 하고 달던가. 니 정신 수준이 너무 낮아서 어디서부터 가르쳐 줘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페닐 18-09-08 19:38
   
이래서 역사공부가 필요함
따지고 보면 어느나라든 망하기 직전엔 망가진 시절이 있었음,
 그런데 로마 문화 얘기하면서 게르만거지떼한테 탈탈털리던 시절만 놓고 얘기하진 않잖어...

조선시대 대부분 기간동안 세계적으로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과학, 기술, 문화, 사회등등 대부분분야에서 세계 탑급이였음...
 세도정치기간을 거치면서 좀 망가지고 그덕에 식민지 거치고 그 여파로 80년대까지 독재시절까지 기간이 안습이였던거지...

무식한건 죄가 아니지만 그걸 드러내놓고 억지쓰는건 죄임...
               
Mr리 18-09-08 19:49
   
ㄴㄴㄴ 저 정도로 무식한건 ...죄임..ㅋㅋ
               
섬나라호빗 18-09-08 20:03
   
원래 식민사관에 세뇌된 사람들이 조선욕하고 다님
               
분석 18-09-08 20:11
   
더하기 해서 세계역사상 600년 이상의 왕조가 유지된게 거의 없지요. 또한, 당파싸움 키워드를 통해 부정적인 역사라 말하지만, 돌이켜보면 좌우의 균형점을 가져갔던 민주주의 시스템을 장착한 나라였다는것도 놀랍지요. 하나하나 검색해보고 찾아보면 놀아웠던게 많은 대한민국 역사입니다. 국제정세상 일본의 침략만 없었어도 또다른 대한민국을 봤을지도..
               
트리니티4 18-09-09 14:38
   
ㅋㅋㅋ 제가 장담하는데 제가 글쓴분보다는 역사 잘알아요. 다만 저는 원댓글 작성자가 '20세기'가 특이한 시기였다기에 그에 대한 반박을 했을 뿐인데요? 난독은 죄가 아니지만 그걸 드러내놓고 쓰는건 죄 맞아요. 이래서 어릴적부터 독서가 중요한겁니다. 뭔 역사 공부가 필요하네 마네 개소리를 이렇게 ㅋㅋㅋ
                    
AvrilLavigne 18-09-10 16:47
   
ㅋㅋㅋ 제가 장담하는데 제가 글쓴분보다는 역사 잘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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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님 수준을 알만하네요....
          
ultrakiki 18-09-08 19:59
   
???
          
라라라데이 18-09-08 21:18
   
한국사람들은 사실상 조선이 망한 다음 국가에 살고 있으니 조선에 대해 안좋은면만 보려고 하는데역사 500년중에 안좋은면만 보면 어떤 나라든 멋진 국가가 있나? 조선 왕중 폭군도 있었고 성군도 있었다 정조는 그 어떤 서양국에서도 표현하지 않은 "민국" "국민"이라는 말을 가장 처음 한 왕임 그만큼 지금과 비교해봐도 민생 복지 중세라고는 믿기지 않을정도의 시스템이었는데 500년중 나쁜것만 보면 어쩌자는거임??
          
ㄴㅇㅀ 18-09-09 09:12
   
요즘은 조선이라고 하면 무조건 후려치는게 유행인가? 미스터 선쌰인 댓글도 자기들이 뭔말하는지 알고 떠드는건가 싶을 정도로 눈뜨고 못봐줄 정도던데 조선시대가 그렇게 허접스럽기만했으면 지금은 한국이 있기나 한가요 도자기가 암만 훌륭해도 그렇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작은 나라 도자기가 무슨 미친듯이 팔리기를 기대합니까? 왕조만 500년을 이끌어 오는게 쉬운일인줄 아나? 어이없네
     
안양천 18-09-08 19:27
   
중국이 호구고 일본이 쫄다구라고요? 대체 어느 시대에요?
이런 국수주의 사관 정말 문제 많다고 봅니다.
          
세뇨르 18-09-08 19:30
   
글쎄요? 국수주의가 아니라 사실주의같은데요?
               
안양천 18-09-08 19:47
   
아니 그러니까 언제 그랬냐고요?
          
굿잡스 18-09-08 21:01
   
夷는 從大從弓東方之人也라” “(종대종궁동방지인야) 
“동방사람은 대인으로서 활을 잘 다룬다.” 
-설문해자(說文解字) 

“동방을 ‘이(夷)’라 한다. ‘이’라고 하는 것은 뿌리이다. 말하기를,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한다고들 한다. 모든 것은 땅에 뿌리박고 있으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도로써 다스리기 쉬워서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가 있게 된 것이다.” 
-후한서 동이전(東夷傳) 

서토 최초의 정치체 왕조로 보는 상나라 자체가 황하유역의 하한족들이 주체가 아니라 만리장성 밖 우리 고조선문명권에 있던 동북방의 선진 동이족이 남하 내륙 하한족을 정복하고 성곽, 예악, 점복, 제천의식,청동,옥기등 다양한 도시문명부터 한자의 원형 문자인 갑골문등을  발명한 외래 정복왕조사에서부터 시작.  

 “은(상)나라는 동북쪽에서 와서 흥했으며, 망한 뒤에 동북으로 돌아갔다” 
 -고고학자 푸쓰녠(부사년) 

짱국 하남박물원(河南博物院)   


장발영(張發潁)의 저서 <봉황토템 동이인 및 그 문화의 공헌>- <시회과학집간>2001년 2기- 에서   

동이문화의 유적분포는   
- 연산(燕山)의 남북과   
- 료녕(遼寧)의 부신사해문화(阜新查海文化)를 포함해서   
- 심양(沈陽)의 신락문화(新樂文化),   
- 산동의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하무도문화(河姆渡文化)와   

그 후의   
- 조보구(趙寶溝), 흥륭와(興隆洼), 우하량(牛河梁) 및   
- 은상문화(殷商文化)까지   

동이문화는 봉황(鳳凰)을 토템으로 하였다.   
통일된 문화체계는 아니지만 문헌에 기록된 이후의 생활은 이 지구(地區)의 조상들의 범칭(광범위한 동이문화)이다.   
    
봉황을 모(母)토템으로 삼고 각종 새들을 자(子)토템으로 하는 북방 봉황토템 동이의 조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연산산맥(燕山山脈)의 동이문화권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복희(伏羲)에서 하상(夏商) 2대까지 동이문화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동이족 사람들은   
- 깃털달린 활과 화살을 발명했으며,   
- 문자를 창조했으며,   
- 청동기를 제작하고,   
- 철을 단련했으며,   
- 배(舟)와 수레(車)를 만들었고,   
- 농업을 발전시키고 치수(治水)를 하였다.
               
안양천 18-09-08 21:20
   
1. 동이라는 건 동쪽의 이민족의 총칭입니다. 후한서 동이전에 왜도 있어요. 동이가 꼭 고구려, 백제 같은 나라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설문해자에서 지칭하는 동이도 꼭 고구려, 백제 등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2. 동북, 즉 만주일대의 문명이 중국 문화의 기원이 되었다는 건 근거가 부족하다고 여겨 학계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사관입니다. 보통 그런 걸 주장하는 사람들이 쓴 서적이나 기사를 보면 역사를 제대로 전공한 사람도 없고, 역사를 전공한 경우라도 근현대사를 전공한 사람인 경우가 많지요. 대표적으로 이X일 이라던가.
                    
굿잡스 18-09-08 21:37
   
1.짱국 하남 박물관의 지적이나 서토 여러 사서를 통해 볼때 동이 중심 군자국은 우리 고조선일 가능성이 높음.

2.서토 최초의 왕조인 상나라 은허 유적을 직접 발굴 지휘한 짱국 고고학자인 부사년에 의해 서토 내륙 황하인들이 주체가 아니라 만리장성밖 동북방에서 온 이민 정복사임을 분명히  말함.
그리고 이들은 우리쪽 고조선 문명권과도 동떨어진 문화세력들이 아니였음.
                    
굿잡스 18-09-08 22:14
   
19세기 말, 만주족 팔기군 병사가 한족 성주(시장)을 구타한 사건이 있었지만, 팔기군 병사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을 정도로 청나라 내내 만주족들은 정복자이자 지배자라는 신분적 특권을 누리고 살았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공세에 몰려 위험한 상황에서도 청나라의 지배층들은 "나라를 외국에게 넘겨줄 지언정, 집안의 종(한족)에게는 절대로 줄 수 없다."라고 단언했을만치, 청나라는 엄연한 정복 왕조였다. 
  
  1850년대, 한족들로 구성된 태평천국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남경을 지키던 만주 팔기군 병사들이 태평천국군에게 모조리 살육당하자, 분노한 청나라 조정은 태평천국에 가담한 반란군 병사들이 항복해와도 절대로 항복을 받아주지 말고 전부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바람에 태평천국의 난은 16년이나 오랫동안 계속되고 말았을 정도로 만주족과 한족 사이의 민족적 갈등은 심각했다. 
  
- 청사 저자 임계순 - 

당시 일개 만주족 병사가 미국으로 치면 주지사(웬만한 나라의 대통령)급에 해당하는 성주 

를 구타할 정도로 만주족은 소수였음에도 피지배 서토인을 강점 지배하는 정복자의 지위 

를 누리고 있었고 이들은 서토인과 구분되는 그들만의 독자적 만성이라는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며 서토인에게 세금을 착취해서 생활. 

(후기로 가면 만주 팔기군중에서 초기 청에 복속, 서토 정복에 동원되어 수백만 자국 짱개들 

학살하던 앞잡이 한족계열은 세금만 쳐먹는다 팔기군에서 빼버림) 


명말청초의 만주족에 의한 짱국 서토인 대규모 학살 
  
 [양주십일기],[가정을유기사],[강변기략]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527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B2%AD%EC%A0%9C%EA%B5%AD&sop=and
  

애초에 서토의 수많은 왕조 역사 자체가 정작 서토 내륙 황하 하한족은 역사의 무대에 주체로서 

힘을 제대로 써본건 얼마되지 않고 북방과 동방 즉 우리 고조선 고구려 문명권의 세력에 

쳐발리거나 정복을 밥먹듯 당한 역사.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 어쩌고하는 황하 내륙의 앙소문화에서 나오는 채색토기 자체가 

서토 학자인 쑤빙치(蘇秉琦)학자의 견해를 따르면 이런 채색토기는 우리 고조선 선대문명권인 

만주 요하일대의 신석기 시대에 서토 내륙보다  500여년 앞서 출토되면서 

북방의 ‘Y벨트’ 지형을 타고 서토 내륙으로 남하한 세력에 발리면서 

영향을 받아 나온게 앙소문화의 채색토기.
          
굿잡스 18-09-08 21:02
   
海之內 北海之偶 有國名曰 朝鮮  

"동해(서토 동해안) 안쪽, 북해(발해) 모퉁이에 조선이란 나라가 있다”  


君君子國在其北 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虎在旁 其人好讓不爭 有薰華草 朝生夕死 一曰在肝楡之尸北 [海外東經]  

군자국이 그 북쪽에 있는데 옷을 입고 관을 쓰고 칼을 찬다. 짐승을 잡아 먹고 두 마리 큰 호랑이를 부려 옆에 둔다. 그 사람들은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다. 훈화초(현 대한민국의  
   
국화(國花)인 무궁화의 옛이름)라고 있는데 아침에 생겼다가 저녁에 진다. 혹은 간유시의 북쪽에 있다고 한다.  

靑丘國在其北 其狐四足九尾 一曰朝陽北 [海外東經]  

청구국이 그 북쪽에 있는데 그 곳의 여우는 네 개의 발과 아홉 개의 꼬리가 있다. 혹은 조양의 북쪽에 있다고 한다.  

有靑丘之國 有狐 九尾 [大荒東經]  

청구국이 있는데 여우가 있어 꼬리가 아홉 개이다.  

-산해경  



又東五百里 日丹穴之山 其上多金玉 有鳥焉 其狀如鷄 五采而文 名日鳳凰  

다시 동쪽으로 500리를 가면 단혈산이 있어 그 위에 금과 옥이 많다.  

새가 한 마리 있는데 닭같이 생겼으며 오색무늬가 있어 봉황이라 부른다.  

그의 머리 무늬(首紋)는 덕, 익문(翼紋)은 의(義), 배문(背紋)은 예(禮), 응문(膺紋)은  

인(仁), 복문(腹紋)은 신(信)을 나타낸다. 이 새는 자연물을 먹으며, 스스로 노래하고 춤춘다.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  

-산해경(춘추전국시대에서 늦어도 한초기 사이에 편찬)  

봉(鳳)  

봉은 신조(神鳥)이다.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에서 나는데, 사해(四海)의 밖에서 날아올라, 곤륜산(崑崙山)  

을 지나서 지주(砥柱)에서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서 깃을 씻고, 저녁에는 풍혈(風穴)에서 잔다.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태평해진다. <설문(說文)>  

   

맹조(孟鳥)  

맹조는 맥국(貊國)의 동북쪽에서 나는 새의 이름으로, 그 새의 무늬는 적색, 황색, 청색이다.  

<산해경(山海經>  


고조선,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고 새숭배(하늘숭배)의 토템을 간직한 우리의 전통적 조우관(새의  

깃털장식을 한 관모)이나 솟대 문화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 우리 대통령의 상징 역시  

새숭배(하늘숭배)의 봉황에 모든 생명의 시작과 광명을 상징하는 동방의 뜻을 내포.
               
안양천 18-09-08 21:24
   
1. 산해경은 온갖 해괴한 내용이 다 적혀있는 책입니다. (당시에는 나름 인문지리서라고 썼겠지만) 그리고 인용하신 산해경 내용이 조선이 중국을 속국으로 삼았다는 근거가 될 수도 없다고 봅니다. 그냥 조선을 좋게 써줬다는 정도의 느낌입니다만.

2. 봉황, 맹조 등에 대한 산해경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조선을 띄워주는 내용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단지 이런 새가 있다고 적은 걸로 보입니다. 산해경에는 상상 속의 상서로운 동물이나 해로운 동물들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특정 국가와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저 당시 떠돌던 여러 내용들을 모아적은 것에 불과하니다.
                    
굿잡스 18-09-08 21:43
   
1.산해경이 신화적 영물들이 나오나 춘추전국시대 편찬된 엄연한 지리서임.

2. 유럽 지중해 고대인들의 당시 세계관에서 제우스등 그리스 로마의 신화적 세계관이 가미되었다고 그리스 로마라는 엄연한 실체하는 역사가 없지 않았듯 또한 당시 동북방에 하늘 숭배 새토템  특히나 봉황이나 삼족오 조우관등을 고조선부터 고(구)려 근세 조선으로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우리 대통령의 상징으로 도도하고 줄기차게 중심 세계관과 문화,역사로 이어온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뿐.
          
굿잡스 18-09-08 21:03
   
동북아 최강대국, 독자적 동방문명권을 구축한 고조선 고구려문명권. 


신석기 혁명, 빗살무늬 토기의 발명지.  

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가 가장 앞선 지역이었던 이유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71669��
   
   

고조선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등 분포도  

https://blog.naver.com/itcoms0/220344390104?proxyReferer=http%3A%2F%2Fsearch.daum.net%2Fsearch%3Fw%3Dimg%26q%3D%25EA%25B3%25A0%25EC%25A1%25B0%25EC%2584%25A0%2520%25EC%2584%25B8%25EB%25A0%25A5%25EB%25B2%2594%25EC%259C%2584%26docid%3D33MvZ9OeFqASojmtT-%26da%3DIIM%26rurl%3Dhttp%253A%252F%252Fblog.naver.com%252Fitcoms0%252F220344390104��
   

서토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초의 고조선 금속갑옷  

http://cafe.daum.net/luck5194/MFUT/283?q=%B5%BF%BA%CF%BE%C6%20%B0%A9%BF%CA%C0%C7%20%BF%F8%C1%B6%20%B0%ED%C1%B6%BC%B1-%20%B0%ED%B1%B8%B7%C1��
   

고대 한류로서 갑옷문화의 국제적 위상(1)  
고조선 갑옷이 중국에 준 영향  

http://www.breaknews.com/sub.html?section=sc5§ion2=������/문�������� 


고조선, 고구려의 뛰어난 제강기술력.  

http://hyala.tistory.com/247��
   
http://cafe.daum.net/gjgumdo/36Hr/27?q=%B0%ED%B1%B8%B7%C1%20%BF%EC%BC%F6%C7%D1%20%C1%A6%B0%AD%B1%E2%BC%FA��


魏略曰:其國殷富,自先世以來,未嘗破壞。  

위략 왈 그 나라는 매우 부유하며, 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한번도 파괴당한 적이 없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隋皇失馭 由於征遼  

-삼국사기 <최치원전>  


(북위)세종이 이르기를,“고구려가 대대로 상장(上將)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해외(海外)를 모두 제압하여 사나운 오랑캐인 구이(九夷)를 모두 정벌하였다  
   
《후위서》  


其地後漢時方二千里。至魏南北漸狹,纔千餘里。至隋漸大,東西六千里。  
   

그 땅은 후한때에 사방 2천리였다. 위나라 때 남북이 점점 좁아져서 겨우 1천여 리였으며,  
   
수나라 때 점점 커져서 동서가 6천리가 되었다.ㅡ통전  
   


도표로 한눈에 보는 천년 사직 고구려의 위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1002&logNo=30152299778
   

동북아 최강대국 고구려의 역대 전적.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8906&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A%B5%AC%EB%A0%A4+%EC%A0%84%EC%A0%81&sop=and&spt=-5409&page=1��
   

근현대 독소전쟁 이전  

고대사 세계 최대 대전인 2차 고수전쟁 수나라의 300만 대군은 얼척의 과장인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801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88%98%EB%82%98%EB%9D%BC+400%EB%A7%8C&sop=and��
   


고구려 초기 2대 유리왕시절 축조되기 시작한 환도성  

앞 궁궐 건물지 무려 90미터.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343393��
   


고구려  5세기  
   
<안학궁 남삼문(南三門) 중 남중문(南中門) 38m 앞면 7칸  

안학궁 남궁 1궁전(정전) 62m 앞면 11칸  

안학궁 중궁 1궁전(편전) 87m.  앞면 19칸 >  
   
   
7세기에 세워지고 확장된 당나라의 최대궁전인 대명궁의 정전인 함원전 정면 길이가 67.33m  
   
북경  자금성에서 가장 큰 건물 태화전 정면 64m  


동대사 크기는 높이 48m, 가로 57m, 세로 50m라오. 안의 대불은 15미터  =>우리 백제인에 의해 건립.  



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남북국 시대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623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3%80%EC%A7%80%EB%A7%88%ED%95%A0&sop=and��
   

   
고구려는 안학궁으로부터 750m 떨어져 있는 유사시를 대비한 배후 산성이  
   
대성산성으로 전체 9km가 넘고 둘레는 7km가 넘으며 남문이 있는 골 안에서는 2  
   
중으로,주작봉과 국사봉 골 안에서는 3중의 겹성에 내부에는 연못이 자그만  
   
치 170여개가 존재.  
   
http://blog.naver.com/bestchoi21/20018007630��-> 대성산성 사진  


우리나라의 고대 도시 축조 역량과 위엄.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1138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3%80%EC%A7%80%EB%A7%88%ED%95%A0+%EB%B0%9C%ED%95%B4&sop=and��
   

북위의 권력을 쥔 고구려인  

http://blog.naver.com/csred7/80130397982��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굿잡스 18-09-08 21:45
   
남북국시대(발해-신라)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한 신국(神國)의 신라. 

성덕왕(聖德王) 30년,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는데,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日本國兵船三百?, 越海襲我東邊, 王命將出兵, 大破之.) 
  
- 제대로 상륙도 하지 못하고 박살난 일본, 결국 용서를 빌기 위해 서기 742년에 사신을 파견하지만‥ 

애장왕(哀莊王) 
5년 여름 5월에 일본국이 사신을 보내와 황금 300량을 바쳤다. (五年夏五月, 日本國遣使, 進黃金三百兩.) 

- 이를 기특하게 여긴 신라는 드디어 일본을 용서하고 속국으로서 인정한다. 서기 806년 속국에게 하교하는 신라. 

애장왕(哀莊王) 7년, 
봄 3월에 일본국 사신이 왔으므로 조원전(朝元殿)에 불러 접견하였다. 교서를 내려 말하였다. 『절을 새로 짓는 것을 금하되, 다만 수리하는 것은 허락한다. 또 수놓은 비단을 불교 행사에 사용하는 것과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의 사용을 금한다. 마땅히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이를 널리 알려 시행하도록 하라.』(七年春三月, 日本國使至, 引見朝元殿. 下敎禁新創佛寺, 唯許修葺. 又禁以錦繡爲佛事, 金銀爲器用, 宜令所司, 普告施行.) 
  
- 사찰을 수리하는 것조차 '종주국' 신라의 허락이 없으면 감히 하지 못했던 일본. 이후 '속국' 일본에 대한 종주국 신라의 사랑은 계속되고… 신라의 어버이와 같은 사랑에 감동한 일본은 서기 882년, 보답한다. 
  
헌강왕(憲康王) 8년, 
여름 4월에 일본국 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00량과 야광주[明珠] 10개를 바쳤다. (八年夏四月, 日本國王遣使, 進黃金三百兩·明珠一十箇.) 


성종 28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3월 13일(계묘) 3번째기사 
일본국 경극전 경조윤 좌좌목씨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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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최대 도시라는 로마를 상회하는 세계 4대 대도시인 신라 서라벌의 위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urassicgump&logNo=220915736774
  

중국의 동쪽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공기가 맑고 부가 많으며 땅이 기름지고 물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성격 또한 양순하기 때문에 떠나려 하지 않는다 

-창세와 역사서<마크디시(al-Maqdi shi> 


그곳(신라)을 방문한 사람은 누구나 정착하여 나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곳이 매우 풍족하고 이로운 것이 많은 데 있다. 

그 가운데서도 금은 너무나 흔해 그곳 주민들은 개의 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 

-이드리시(이슬람 지리학자)-1154년에 신라가 포함된 지도를 만듬 


신라는 중국의 맨 끝에 있는 대단히 좋은 나라다. 

그들의 집에 물을 뿌리면 용연향(龍涎香 - 아주 좋은 향기)이 풍긴다고 한다. 

전염병이나 질병은 드물며 파리나 갈증도 적다. 

다른 곳에서 병에 걸린 사람이 그곳에 오면 곧 치유된다. 
  
  
-무슬림이 남긴 것이라고만 전합니다- 


중국 저쪽에 산이 많은 ‘신라(Shila)’라는 나라가 있는데 

금이 풍부하고 물 맑고 공기가 좋아 

한번 간 무슬림은 돌아오지 않는다 

후르다드베(Ibn Khurdadbeh)의 '제 도로와 왕국 총람' (이슬람) 


신라 서라벌에는 약 17만호의 가구가 있었다. 이는 대략 90만-100만의 인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훗날 조선의 한양보다 4-5배나 더 많은 인구가 살았던 것으로, 혹자는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장안과 함께 서라벌을 당시 세계 4대 도시로 꼽는다. 
  
 인구가 많다고 세계적 도시로 꼽는 것이 아니다. 신라, 특히 서라벌에는 초가집이 없이 모두가 기왓집이었다. 온통 금으로 뒤덮은 집도 수십채나 되었다. 그들의 부유함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신라는 차도와 인도가 나란히 잘 정비된 도로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도 옆에 마차가 수월하게 다닐 수 있도록 바퀴 자국에 맞춘 도로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뚜렷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도로 옆으로는 배수구의 흔적도 함께 남아 있다. 
  
 우선 서민층 거주 지의 경우, 집집마다 우물 하나씩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다. 이처럼 서민층에서도 각 집마다 우물을 하나씩 갖고 있을 정도면, 당시의 서라벌이 얼마나 위생이 청결한 곳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온돌을 사용하지 않고 숯으로 난방을 했는데 이를 뒷받침 해주기라도 하듯, 대규모의 숯 가마가 발견되기도 했다. 숯으로 난방을 할 경우, 매캐한 냄새가 나지 않고 그을음도 생기지 않으니 당시 사람들의 주거환경은 상당히 쾌적했을 것이다. 상류층 거주 지역의 경우에는 본채 건물 외에도 별채와 화장실까지 구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계획적으로 잘 정비된 도시였던 서라벌은 마치 바둑판과도 같은 형태로 도시 주거지를 이루고 있었는데, '방'으로 나뉘어지는 이러한 거주 구역은 한 방당 약 8천평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골목마다 출입문이 있어 치안상태도 좋았다. 그래서 '몇번째 골목, 몇번째 집' 하는 식으로 주소만 알면 집을 찾는 일도 매우 쉬웠다. 따라서 인구조사 또한 치밀하고 완벽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가구당 가축의 수까지 세세히 기록해 놓았다. 
  
  
천년 전의 도시가 오히려 지금의 대도시보다 더욱 계획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KBS 역사 스페셜> 


해동성국 발해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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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남북국 시대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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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송을 멸망시키고 동북아 패자가 된 금나라 황실 조정내의 고구려계(발해인)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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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5부를 이은 발해 5경중 상경용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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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 18-09-08 22:23
   
1. 일본이 신라를 공격한 내용인데, 일본을 쫄다구로 삼았으면 쫄다구가 공격한 게 되는데요?

2.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는데, 속국(쫄다구)으로 삼았다면 쫄다구가 공격하는 일도 없고, 중국에 가서 내가 본국보다 위라고 주장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측 기록에서는 한국 관련 내용을 전부 자기쪽에 유리하게 적는 경향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중국도 다 조공이라도 적고는 했지요.) 한국 기록도 그런 맥락에서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교차검증 아주 중요합니다.

3. 도시 규모 등에 관한 내용은 속국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서 반론 안하겠습니다.
                         
굿잡스 18-09-08 22:36
   
속국에만 몰두하는 댓글 나열 쯧.
               
굿잡스 18-09-08 21:48
   
중세 

새로운 남북국 시대 돌입. 

발해부흥국(금나라)- 고려 


남북국시대 이후 

발해 부흥국들이 북방에서 난립하면서 이어지다 

신라에서 고려로 왕조가 교체되면서 일단의 무리가 북으로 올라가 발해 유민을 

규합 즉 신라계황제+발해 유민의 반요사상의 금나라로 마침내 통합되면서 요를 멸망시켜버리고 압박해오던 

서토 송나라까지 멸망시켜 버리면서 동북아 패자로 군림. 이후 서토를 지배하기 위해 고구려계 장호가 북경에 중도 

를 건설하며 팽창가속) 


발해 부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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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계선의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강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의 경계를 넘었다. 
  
-《고려사》 


중세 고려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근자에 사신이 그곳에 가서 물어보고 알았지마는, 임천각(臨川閣)에는 장서가 수만 권에 이르고, 또 청연각(淸燕閣)이 있는데 역시 경(經)ㆍ사(史)ㆍ자(子)ㆍ집(集) 4부의 책으로 채워져 있다 한다.국자감(國子監)을 세우고 유관(儒官)을 선택한 인원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으며, 횡사(黌舍 학교를 말함)를 새로 열어 태학(太學)의 월서계고(月書季考)하는 제도를 퍽 잘 지켜서 제생(諸生)의 등급을 매긴다. 위로는 조정의 관리들이 위의가 우아하고 문채가 넉넉하며, 아래로는 민간 마을에 경관(經館)과 서사(書社)가 두셋씩 늘어서 있다. 그리하여 그 백성들의 자제로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 무리지어 살면서 스승으로부터 경서를 배우고, 좀 장성하여서는 벗을 택해 각각 그 부류에 따라 절간에서 강습하고, 아래로 군졸과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도 향선생(鄕先生 자기 고장의 글 가르치는 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아아, 훌륭하기도 하구나! 
  

-송나라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3년의 내용)-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 했는데, 극동에 있어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 

-도화견문지(1080년경에 송나라의 곽약허가 지은 책) 


“옛 사서(역사책)에 따르면 고려의 풍속은 사람들이 모두 깨끗 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들은 항상 중국인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고려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한 뒤 집을 나서며,  

여름에는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한다.”  -고려도경 


(윤 5월) 갑자일에 거란에서 오윤판관 야율골타를 파견하여 동북 여진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 하였으나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고려사 5권, 현종 17년 
  
​​(원풍 5년) '선조 시기에는 여진이 등주에 와서 항상 말을 팔았는데, 뒤에 마행도가 고려에 속하게 되어 막혀서 끊겨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 조정이 고려와 왕래를 하는 데, (고려)왕에게 조서를 내려 여진이 만일 중국에 말을 팔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길을 허락하도록 하겠다.'라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끝내 여진의 사신은 오지 않았다. 
  

-속자치통감장편 
  

동북면병마사가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삼산·대란·지즐 등 9개 촌락 및 소을포촌의 번장 염한과 소지즐의 전리 번장 아반이와 대지즐의 여나기나오, 안무이주의 골아이 번장 소은두 등 1238호가 와서 호적에 편입시켜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대지즐로부터 소지즐 요응포 해변까지는 700 리에 걸쳐 장성이 수축되어 있으며 지금 오랑캐들이 줄을 이어 귀부해오고 있는 마당에 관방을 설치하여 그들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해당 관리로 하여금 주(州)의 명칭을 정해 보고하게 한 후 밀봉한 공문을 내려 주십시오.” 
  왕이 이를 허락했다. 
  
-《고려사》, 문종 27년 6월 
  
  
​한림원에서, 
“동여진의 대란 등 11개 촌락에서 귀부해온 자들이 자기들의 거주 지역을 빈주·이주·복주·항주·서주·습주·민주·대주·경주·부주·완주 등 11개 주로 정해줄 것을 요청해 왔으니 그들에게 각각 밀봉된 공문을 내려 귀주와 순주에 소속시켜 주십시오.” 
  라고 건의하자 왕이 이를 허락했다. 
  
-《고려사》, 문종 27년 9월 
  
  
​​서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서여진의 추장 만두불 등이 동번(동여진)의 예에 의하여 주•군을 나누어 설치해 달라고 청하며 
평로진 근처의 유원 장군 골어부 및 멱해촌의 요결 등 역시 부적하여 영원히 번병이 되겠다고 원하므로 호수가 35호이고 인구가 252명입니다. 청컨대 판도에 등재하소서." 
  

-《동국통감》, 문종 27년 5월 
  

동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삼산, 대란, 지즐 등의 마을 번장이 1238호를 가지고 와서 부적해주기를 청하니, 청컨대 유사로 하여금 주호를 아뢰어 정하게 하고 또 주기를 내리소서." 
  
-《동국통감》, 문종 27년 6월 
  
  
​서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장성 밖에 개간한 전답 11494 경은 청컨대 가을 수확을 기다려 군량에 보태게 하소서." 
하니, 제가하였다. 
  
-《동국통감》, 문종 27년 2월 

송을 멸망시키고 서토를 지배하기 위해 

북경에 세운 중도(중도대흥부 (中都大興府)) 건설의 총지휘자. 

금나라 국무총리격인 장호(張浩) 

금나라 요양(遼陽) 발해(渤海) 사람. 자는 호연(浩然)이고, 본성은 고(高)씨다. 경사(經史)에 정통했고, 특히 시에 뛰어났다. 태조에게 책략을 올려 어전문자(御前文字)를 담당하도록 명받았다. 태종 천회(天會) 8년(1130) 진사급제를 인정받고 비서랑(秘書郞)에 올랐다. 해릉왕(海陵王) 때 호부상서(戶部尙書)와 참지정사(參知政事), 상서우승(尙書右丞), 평장정사(平章政事), 상서령(尙書令)을 역임했고, 연경(燕京)의 성곽과 변경(汴京)의 궁실을 증축하는 일을 전담했다. 세종(世宗) 때 태사(太師)와 상서령을 지냈다. 저서에 『화표산인집(華表山人集)』이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07698&cid=42981&categoryId=42981
  
몽골제국의 5대칸이자 서토를 정복하고 원을 세운 쿠빌라이는 

북방의 요와 이런 금나라 즉 신라계황제+발해인 연합의 도시문명과 인력의 강북 발판하에서 

몽골의 칸에 오르면서 남송을 정벌,노예로 삼고 세계제국을 경영하는 중추 기반이 됨. 




연해주 조선식 산성. 

러시아과학원 극동지소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 아르쩨미예바 연구원은 17일 인천광역시 인하대 60주년 기념관에서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주최로 열린 학술회의 발표를 통해 "요(遼)나라나 금나라의 유적으로 알려졌던 수류봉(峰) 산성(山城)에서 전형적인 한국식 타날(打捺·두드림) 문양의 기와들을 발견했다"며 "이 산성은 출토 유물과 성벽 축조 기법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6진 설치로 북쪽 국경이 확정될 때 방어 전초기지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수류봉 산성은 연해주 하산 지구의 중국과 러시아 국경에 위치해 두 나라에 걸쳐 있다. 전체 둘레 길이는 727.5m이고 높이는 1.5~2m이다. 러시아 조사단은 작년부터 남문 터 안쪽에 4개의 초석이 있는 구역을 발굴했다. 두드려 낸 반호(半弧) 모양의 문양을 가진 기와와 옹기 조각이 대량 나왔고, '대왕(大王)'이란 한자 명문(銘文)도 발견됐다. 아르쩨미예바 연구원은 "수류봉 산성은 연해주 일대의 요·금나라 성벽과는 구조와 유물이 다르다는 데 중국 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3&aid=0003330568
  



금나라 황릉의 모델은 고려 황릉(왕릉)이었다.’ 12세기 북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 황릉이 고려 황릉과 형제처럼 꼭 닮았다는 비교 연구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1068∼1123)가 10세기에 건국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당대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시켰던 국책사업인 황릉 조성을 한반도에서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40313/61666261/1
  

女真酋長乃新羅人 (송막기문- 남송기록)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다") 
"其初酋長本新羅人" (몽골  금지(金志)) 
(여진의  초기지도자는 신라인이다.)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금사 (金史))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에서왔을 때  60세였다.) 


  "만주족은 신라로부터 나와..." 
  因滿族自新羅、 
  "신라성씨 김이 금나라의 원류이다."
                    
안양천 18-09-08 22:31
   
1. 완안부의 시조 함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기록을 인정한다고 칩시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겁니까? 베트남의 본격적인 역사는 중국계 조타에 의해서 시작되는데 그럼 베트남사는 중국사입니까?
그리고 만주와 한국을 연관짓는 사관은 일본이 남긴 만선사관의 영향입니다만. 오히려 전통적으로 한국사의 국가들은 만주(여진)와 자신들의 연관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일제시대에 만주를 지배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만주와 한반도간 연관성에 대한 역사적 연원을 찾기 시작했고, 그걸 또 다시 일본과 조선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내선일체론과 결합되어 일본 - 조선 - 만주는 하나라는 사관으로 발전했지요. 다분히 제국주의적이고 영토 확장을 긍정하는 사관이었습니다.

2. 기타 기록들은 문화, 성곽 등에 관한 내용인데 이게 중국, 일본의 속국화에 관한 내용입니까?
                         
굿잡스 18-09-08 23:47
   
중세 고려시절의 신라계 완안부 금나라와

1635년 즉 17세기 등장한 만주족은 시기나 개념이 다름.

만주족이란 홍타이지에 의해 몽골 칸에까지 추대되면서 당시 명나라밖 동북방의 여진 몽골등을 아우르면서 등장한 족명에 만주라는 지역명도 이에 유래.

중세 고려시대의 금나라는 북방의 발해가  무너지고 이후 끊임없는 발해부흥국들이 들어서다 우리 북방 발해 지역의 변방지역에 있던 신라계가 흑수말갈을 중심으로  발해 지배 세력까지 흡수하면서 탄생한 나라이면서 이후 몽골 칭기즈칸에 의해 멸망.

이미 한반도 뿐 아니라 압록강 이북 즉 요하 연해주  흑룡강 일대등은 신선기 시대부터 거의 단일 생활 문화권으로 고조선 시대에도 고조선의 대표적 비파형동검이나 토기 묘제등이 출토, 고구려시대에도 이런 말갈은 부용세력이나 혹은 백성들로 중세 고려의 천하관에서도 다르지 않았고 조선 전기도 다르지 않았음. 그러다 점차 유교적 화이관과 임진왜란 이후 이런 여진족 세력이 동북아 대전의 혼란기를 틈타 강성해지면서 몽골 세력까지 흡수하면서 후금 이후 다시 청으로 개칭. 무시못할 독자적 힘을 가지게 된 상황.

그리고 여전히 똑같은 속국 어쩌고 글은 그만 도배.
                         
안양천 18-09-09 15:04
   
물론 만주족이 여진족과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죠.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완안부의 시조가 함보라는 기록이 맞다고쳐도, 그게 뭐 어쨌냐는겁니다.
그런 식으로 지배층에 일부 이민족이 섞여들어가는 일은 세계사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후에 정체성이 변하였느냐 변하지 않았느냐의 문제죠.
에트루리아인이 몇 대에 걸쳐 로마 왕을 해먹었지만 그들이 로마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았으므로 로마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함보가 완안부의 시조가 맞다고 쳐도, 완안부 여진의 정체성이 그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이상 그는 신라(혹은 고려)계 여진인일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자꾸 신라계 신라계하면서 엮으려고 하는데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숙신 -> 읍루 -> 물길 -> 말갈 -> 여진 -> 만주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가장 근원에 있는 숙신이 고조선과 동류라고요? 그럼 고대 기록에서 이 두 집단을 구분해서 쓴 이유가 뭘까요?

"발음과 명칭상의 유사성만을 근거로 숙신을 고조선과 동일 실체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숙신 항목 中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1813

애초에 주류 학계는 여러 연구와 논의를 통해 다른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이들과 한민족의 접점은 고구려, 발해처럼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영토로 편입시켰던 경우에 한정되고요.
                         
굿잡스 18-09-09 17:30
   
숙신 -> 읍루 -> 물길 -> 말갈 -> 여진 -> 만주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가장 근원에 있는 숙신이 고조선과 동류라고요? >??ㅋ

우리 학계에서도 숙신에서 말갈 여진으로 이어지는 단일 계통이 아닌 오늘날 이원적 계통으로  보는 추세가 대세임.

기본적으로 말갈이라는 용어도 범칭된 용어로 여기에는 우리 한민족 계통으로 분명히 보는 부여를 속말말갈이나 백산 말갈등이 있었고 일반적으로  구분하는 흑수말갈은 이런 우리 고구려 발해시대에 역시나 일부 소수 인구임.

이후 여진족이라는 명칭도 발해  말기 발해가 점차 쇠퇴하면서 발해 변경 소수 인구의 신라계가 통합한 흑수말갈에서 나오던 용어가 발해 멸망 이후 우리 발해 지역의 발해 일반 백성에까지 범칭화.

왜 여직(진)발해본동일가(女直渤海本同一家)라고 했을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8992&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95%9C%EA%B7%9C%EC%B2%A0&sop=and
               
안양천 18-09-08 21:52
   
1. 시사프레스 링크가 잘못된 거 같습니다. 내용을 볼 수 없습니다.

2.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 분포에 관한 링크는 내용을 보니 남한지역이 왜 분포 지역에 포함이 안되냐는 게 주요 논지 같습니다만. 이게 중국, 일본을 속국으로 두었다는 내용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겁니까?

3. 서토보다 앞선 최초의 금속 갑옷의 경우에는, 논문을 찾아서 대충 읽어봤습니다. 박선희 교수가 주장하는 내용이고 학계에서 통설로 인정받지는 않는 내용이고, 상(은)이 한민족 국가라는 내용을 기본 전제로 깔고 들어간 내용이던게 상(은)과 한민족간 연관성 역시 학계에서 통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주의해서 보아야 할 내용 같습니다.

4. 브레이크 뉴스 링크 내용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기사 제목으로 추정해보면, 박선희 교수가 주장한 내용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5. 고구려 갑옷의 우수성에 관한 내용은 제가 관련 분야를 전공한 것이 아니라서 뭐라고 반론을 못하겠습니다. 다만 갑옷이 우수하다고 해서 중국이 속국이었다는 내용이 뒷받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로마제국이 보병 편제에서 글라디우스 대신 바르바로이들이 사용하던 무기에서 착상해서 스파타를 보급하였다고 해서 바르바로이들이 로마를 지배하거나 속국으로 둔 것이 아니듯이.

6. 위략의 내용은 그 진정성이 의심되는군요. 번역 링크 제시 바랍니다.
위략이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가까운 일 즉 관구검이 고구려를 정벌한 이후에 쓰여진 것인데 그런 내용이 빠져있다는 건 의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7. 삼국사기 최치원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내용 오류입니다. 오, 월, 연, 제 등을 휘어잡았다고요? 동시기 사서와 교차검증도 되지 않는 내용입니다. 이런 걸 다 맞다고 인정해주면 일본서기 내용도 다 맞다고 인정해야겠죠.

8. 후위서의 내용은 중국을 속국으로 삼았다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구이가 도대체 어느 세력을 지칭하는건지?  통전의 내용도 마찬가지로 중국이 속국이라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애초에 당시 기록들 중 국토의 크기에 관한 내용은 부정확한 것이 많습니다. 동이전만 하더라도 가야로 가려면 낙랑에서 배로 몇 천리를 가네 마네, 일본이 크기가 얼마네 그런 내용들이 있는데 모두 정확하지 않습니다.
               
안양천 18-09-08 22:00
   
9. 천년 사직 고구려? 그게 뭐 어쨌다는겁니까? 참파 같은 나라도 천년 이상 존속했습니다. 존속연도하고 강함이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지?

10. 그리고 역대 전적 이것도 뭐 어쨌다고요? 중국, 일본을 속국으로 삼았다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전적 따지려면 단순한 전투 횟수보다 서로 교환한 피해를 비교하는 게 더 좋다고 봅니다만.

11. 수제국 300만 동원은 말이 많습니다. 해외에서는 당시의 행정, 통신 등을 감안하면 불가능했다고 보는게 대세이기는 합니다. 300만명을 실제로 동원했다면 당시의 행정, 통신, 교통 등의 조건에서 그 정도를 동원하고 보급을 유지한 수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게 중국이 고구려의 속국이었다는 근거가 되나요?

12. 환도성에 관한 내용인데 마찬가지로 속국과 관련된 내용 아님.

13. 마찬가지로 성들에 관한 내용도 속국에 관한 내용 아님.

14. ??? 북위의 중앙정계에서 활약해서 뭐 어쨌다고요? 일본계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페루 대통령했다고 페루가 일본의 속국 내지 한 지역인지?

15. 고려 문종 때 송과의 단교를 고려했다는 내용인데, 이게 송이 고려의 속국이었다는 근거인지?
                    
굿잡스 18-09-08 22:10
   
1.시간이 되면 링크들은  때론 깨지니 제목 복사 간단히 찾아보는 성의를 가질길 바람. 

2.고조선 유적관련 내용은 기존 오류 지적과 더불어 동북방 일대 고조선 문명 세력권 분포도에는 별 이의가 없으니 별 논란 없음. 

3.최치원의 저 내용이 누구에게 한 말인지 좀더 공부해보기 바람. 

4. 본인은 오직 서토 속국에만 알레르기 몰두하는 듯 한데 이건 앞서 현대 이전에도 동시대 우리 왕조들의 문명수준과 영향력 역시 언급하기 위한 것임. 


그리고 질의 내용을 보니 애초에 고대 중국이라는 개념부터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듯 한데 
본인이 보기에 지금 중국이라는 국가 개념과 고대 동아시아에서 북방 유목과 우리 고조선고구려 문명권 세력에 밥먹듯 정복당하면서 세워진 국가를 동일시 하는 것인지??
                         
안양천 18-09-08 22:39
   
고대 중국은 학계에서 실체가 인정되는 상(은)부터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상(은)이 한민족과 연관되었다는 주장은 통설이 아닙니다.
                    
굿잡스 18-09-08 23:15
   
‘조선건국 고죽위군朝鮮建國 孤竹爲君’(조선이 건국을 하고 고죽이 임금이 되었다) 

-두로영은비문

 “은(상)나라는 동북쪽에서 와서 흥했으며, 망한 뒤에 동북으로 돌아갔다”  
 -고고학자 푸쓰녠(부사년)  

고죽국

은(殷)나라 탕왕(湯王) 때 제후국의 하나로 책봉되었다. 군성(君姓)은 묵태씨(墨胎氏)이다. 주나라 초기에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은나라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首陽山)에 숨어 살면서 고사리를 꺾어 먹다가 굶어죽었다는 전설로 유명한 나라이다.

그들이 우리 고조선문명권과 전혀 다른 문화세력이 아님은 분명함.
                         
안양천 18-09-09 14:53
   
"한나라 이후의 동이는 이전의 동이와 문화적·혈연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이성규, 〈선진문헌에 보이는 '동이'의 성격〉, 《한국고대사논총》1, 1991
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C%9D%B4

동이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서 변해왔습니다. 동이라고 해서 다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게 아니에요. 한제국 전의 동이와 한제국 이후의 동이는 다릅니다. 게다가 동이라고 해서 꼭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대충 자기들 기준으로 동쪽에 있으면 동이라고 불렀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당나라 군대라는 말은 1. 당의 군대 -> 2. 중국의 군대 -> 3. 기강이 없고 허약한 군대 이런 식으로 의미가 변해왔습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1번과 3번이 같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굿잡스 18-09-09 17:48
   
"한나라 이후의 동이는 이전의 동이와 문화적·혈연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ㅋ

이런 이분화된 주장자체가 당시 사서나 고고학적 흐름과 분포 양상을 보면  더 극단적 주장.

애초에 발해만 일대 즉 요하 일대는 북방 기마의 이동과 맞물려 문화 전파 속도와 활동 범위가 상당했고 발해만 일대의 문화는 한반도와 산둥일대로 서로의 교류나 공유가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북방의 여러 이민족 왕조로 점철된 엄연한 역사. 좀 더 공부해 보길 바람.

글고 요동반도와 산둥일대는 지도만 봐도 상당히 가까우면 수많은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연결되어 있어 산둥 일대에도 우리 고조선 묘제나 토기들도 출토되었는데 이런 아사달 문양  토기에 대해 서토 학자들은 초기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지만 국내학자는 단번에 이해. 그리고 이런 산둥 일대는 삼국 남북국시대와 이후에도 우리의 해양 교역지로 여전히 빈번히 인적 문화적으로 교류된 지역.
          
굿잡스 18-09-08 21:04
   
고구려 

국강상광개토호태왕비(國罡上廣開土好太王碑) 

태왕(太王) -왕중의 왕,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 

고구려 벽화에서도 단군이나 주몽을 천제지자(天帝之子)로 동일시 했고(우리   
고조선 건국신화 자체가 하늘의 직계 천손인 환웅이(선진문화세력) 내려와 당시 토착재지 세력인   
곰 토템 숭상의 웅족과 호랑이 토템 숭상의 호족 중 웅족을 파트너로 해서 이런 천족과 인족이 만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재세이화, 천손강림, 광명사상, 하늘숭배,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이야기   
되는게 고조선 건국 신화)   



칠지도(백제 어라하(황제격의 호칭)가 왜왕에 하사)   

<앞> 泰○四年 ○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作   
태○사년 ○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동] 칠지도 생벽백병 의공공후왕○○○○작   

<뒤>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 기생성음 고위왜왕지련 전시후세   

칠지도 명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립부여박물관 전시 내용)   

<앞> 泰和四年 五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作   
태화사년 오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동] 칠지도 생벽백병 의공공후왕○○○○작   

<뒤>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자 기생성음 고위왜왕지련 전시후세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일의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철로 된 칠지도를 ○○○○가 만들었다.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侯王)에게 주기에 알맞다. 지금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을 위하여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예군 묘지명에 적힌 ‘日本’은 ‘百濟’지칭”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42301032430074011��
   

“일본은 원래 백제땅 일컫는 말이었다”  

일 교수, 678년 ‘예군 묘지명’ 근거  
“실제 일본은 해좌·영동으로 표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36435.html��
   

‘大原眞人. 出自諡敏達孫百濟王也. 續日本紀合.’  

대원진인, 그의 조상은 시호가 민달(비타쓰(敏達))이라는 백제 왕족이니라. ‘속일본기’ 기록에도 부합한다.  

-신찬성씨록(서기 815년 일본 왕실이 편찬한 왕과 귀족 족보)  


"제30대 비타쓰 천황(敏達·572~585 재위)은 나라(奈良)에 ‘백제대정궁(구다라오이궁 :百濟大井宮)’을 지었다”  

비타쓰왕의 친손자인 제34대 조메이왕(舒明·629∼641 재위)도  

"(우리나라 할때)나라의 ‘백제천(구다라강:百濟川) 옆에 백제궁(구다라궁; 百濟宮)과 백제사(百濟寺)라는 큰 가람을 지었다. 조메이왕이 구다라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구다라노오모가리(百濟大殯)’로 장례를 치렀다’"  
   
-일본 서기  


토쿄대  이노우에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 일본은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오진(應神)왕이 백제계 부여(夫餘)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 최초로 일본을 지배한 천황은 백제인의 후손인 15대 오우진(應神·4세기)천황과 16대 닌토쿠(仁德·5세기)천황 부자다.  오우진 천황이 백제 복식을 입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이들 천황 부자에 의해 고대 일본의 가와우치(河內)왕조가 세워졌다.  
   
USA캘리포니아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 [조몬인],[야요이인(한국을 제외한 대륙민족)], [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 시켰다.  

카큐슈우인대 오오노 스즈무 교수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금속 사용법을 가르치고, 야금·금공 기술을 전했으며,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의학·역법·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등 모든 것을 가르쳤다”(‘日本語の 世界’, 1980)
               
안양천 18-09-08 22:10
   
1. 태왕이나 천제의 아들 이런 건 그냥 자기를 높이려고 쓰는거고요. 아니 일본도 천황이라는 표현 쓰고 살았는데 이게 도대체 중국이나 일본을 속국으로 삼았다는 근거가 되는지?

2. 칠지도는 일본측 기록에는 조공으로 바쳤다고 적혀있습니다. 백제측 일본측 모두 신경전을 벌인거죠. 아니 일본이 백제의 속국 내지 한 지역이려면 관리를 파견해서 지배하거나, 국제 외교무대에서 속국으로 인정받거나 그런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이 중국 남조에 찾아가서 백제보다 우리가 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사학계 주류 견해는 양자는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였고 아쉬운 쪽이 숙이고 들어간다고 봤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백제가 고위층 인질을 보내기 시작한 것도 고구려에 밀려서 빌빌대기 시작한 이후이고.

3. 묘지명 관련 기사 링크 내용 확인 불가

4. 고대 일본에 도래인들이 영향을 줬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건지? 그 도래인들과 현대 한국인들은 아무런 연관 관계도 없습니다. 이건 비유하자면 고구려계 당제국인 이정기를 한국과 연관짓는 행위인데요. 그리고 속국이라는 근거가 될 수도 없습니다.
                    
굿잡스 18-09-08 22:26
   
고대 일본에 도래인들이 영향을 줬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건지? 그 도래인들과 현대 한국인들은 아무런 연관 관계도 없습니다. 이건 비유하자면 고구려계 당제국인 이정기를 한국과 연관짓는 행위인데요>???

말할때마다 참ㅋ

이정기 제나라는 당시 고구려가 이후 시대의 유민이 세운 나라이고 칠지도나 여러 열도의 나라지역이나 오사카등의 유물 유적 사서는 당시 해양대국이였든 백제가 제국적 세력을 뻗어 나가면서 고대 열도를 개척하고 아스카문명건설부터 이후 백제 멸망 이후에도 나라 헤이안 시대를 연 주체가 이런 우리쪽 세력들임을 쨉 학자부터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이미 밝혀진 논란꺼리가 없는 사항.

그리고 계속해서 동북아 세력에 밥먹듯 돌림빵 정복 당하던 엄연한 서토 역사에 대해 애써 외면하려는 건지 왜 우리 고구려가 천년 사직으로 군림할 동안 서토에 수십개의 왕조가 명멸 즉 이민 정복사로 점철되었는지 이해를 안하려는건지?못하는 수준인지? 그리고 윗 내용들은 단순히 서토 정복사만의 내용이 아니라고 했음.
                         
안양천 18-09-08 22:33
   
도래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한반도에 뒀습니까?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일본열도에 두었고, 단지 한반도는 자신들의 조상이 먼 과거에 넘어온 땅이었을 뿐입니다.
이건 마치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미국 대통령을 한다고 해서 아일랜드가 미국을 정복했다는 주장처럼 들립니다만.
                         
굿잡스 18-09-08 22:52
   
“이나리야마”에 새겨진 백제의 열도 지배 


이두로 이 글을 다시 풀어보니 놀랍게도 이것은 고구려가 남침한 369년 당시 백제 땅이던 하동에서 후왕으로 있던 장수 집안이 동경까지 망명온 뒤 이곳에서 다시 백제 후왕으로 책봉된 내용을 담은 집안 이야기 였던 것이다. 
  
이두로 풀이한 칼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기 471년에 “고” 확고는 조상이름을 적어 둔다. “오호 비꼬”어르신, 그 아들 “다가리 쪽니”어르신, 그 아들 “고리 확고”, 그 아들 “다사기 확고”. 그 아들 “바라 고비”, 그 아들 “가사 비리”, 그리고 그 아들은 “고 확고”이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장수로서 대대로 섬긴바 그 임금님은 사기궁에 마실을 차리고 천하를 다스리시는 크신 확가 개로 대왕이시니라. 온 번 불리고 달구어 만든 이 칼에 우리 집안 내력과 뿌리를 적어두는 바이다 
  
................... 


이렇듯이 이나리야마 쇠칼의 글은 5세기 가운데 즈음에 옛 일본의 관동, 관서, 규슈 등 세 곳에 백제가 다무로를 다스리고 있었으며, 왜 왕실은 백제 왕실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자료인 것이다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168467§ion=sc1§ion2



백제인들이 열도를 지배하고 생활하기 위해 건설한 협산지(狹山池:사야마이케)저수지(사진)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6291&page=0&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8%A4%EC%82%AC%EC%B9%B4+%EC%A0%80%EC%88%98%EC%A7%80&sst=&sod=&spt=0&page=0
  

열도내 우리 유적 -신롱석산성(神籠石山城:고고이시산성)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6931&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A%B3%A0%EC%9D%B4%EC%8B%9C%EC%82%B0%EC%84%B1&sop=and
  

고송총 고분(高松塚 古墳: 다카마쓰즈카 고분) 

1972년 발굴된 고분으로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엽의 우리나라할때의 나라 

현에서 발굴된 벽화 고분으로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고구려 양식의 고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특유의 주름 치마 여인복장이 그려져 있음. (그외 

평양의 고구려 강서대묘에서 보이는 사신도(현무등)의 그림도 그려져 있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4179&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95%9C%EB%B3%B5+%EB%8B%B9%ED%92%8D&sop=and
  

백제가 열도에 건설한 아스카(飛鳥:비조) 문명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o1026&logNo=150180089525
  
http://blog
                         
안양천 18-09-08 23:29
   
링크의 이나리야마 고분 철검에 관한 내용은 마치 일본이 광개토대왕 비문의 한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과 유사한 느낌입니다.
즉 입맛에 맞게 대충 끼워맞춘 것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https://thub.kumsung.co.kr/open/outer/historyDetail.do?headwordId=7737&pg=2&findMaster=F002&findExhibit=F002001002&findSecondCategory=F002001&findMethod=&findStr= (금성출판사 교사용 자료 페이지)

이 링크에서는 백제 담로니 속국이니 그런 내용은 아예 없고 검의 주인이 웅략 천황을 모셨다는 내용입니다만

위키백과에서도 똑같이 해석하고요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82%98%EB%A6%AC%EC%95%BC%EB%A7%88_%EA%B3%A0%EB%B6%84_%EC%B2%A0%EA%B2%80

그리고 협산지, 고송총 고분 등이 어째서 속국화했다는 근거가 됩니까? 일본 일각에서 전라도에서 발견되는 고대 일본양식 무덤을 근거로 한반도 지배 내지 속국설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리고 한반도 국가들의 고대 무덤양식도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벽화의 내용에 도교적인 내용이 수록된다거나 무덤의 양식 자체가 중국식이라거나) 그럼 중국이 한반도 국가들을 속국 내지 지배한 겁니까? 그냥 문화적인 영향력이 퍼진 것이라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굿잡스 18-09-08 23:55
   
열도의 여러 고고학적 발굴과 견해 그리고 쨉 일본서기나 신창성씨록등 여러사서들  기록까지  무시? ㅋ  본인은 그냥 부들 부들 주장만 아니다하면 근거임? ㅋㅋ
                         
안양천 18-09-09 14:49
   
제 견해는 한일역사공동연구회의 견해를 따릅니다.
고대 일본열도와 한반도는 서로 교류가 있었고 영향을 주고 받았지만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속국으로 두거나 지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공동연구회의 중론입니다.
신찬성씨록은 씨족의 기원에 관한 내용인데, 그게 어째서 일본을 지배했다는 근거가 됩니까? 미국에는 여러 유럽계 씨족들이 있는데 그럼 미국은 유럽에게 정복 당한 역사입니까?

속국, 지배를 인정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입니다
1. 본국에서 관리를 파견하거나 하다못해 해당 지역에서 지배자로 군림한 인물이 본국의 승인이 없을 경우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을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

2.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을 것

이 2가지 모두 충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꾸 도래인들이 한반도에서 넘어왔으므로 일본도 한반도의 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하려는 거 같습니다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중국이나 만주 등지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사람들은 뭡니까? (심지어 고려사에 의하면 왕건의 선조는 중국계입니다. 물론 이 기록은 신빙성 문제가 많지만, 기록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부류의 논리에 따르면 이것도 맞는 기록이겠죠.) 중요한 건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냐는겁니다.
한국계가 미국으로 이민 갔는데 한국에서 하던대로 김치찌개에 밥 말아먹고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한국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도래인들도 한반도에서 넘어온 그 문화를 가지고 있었을지언정 한반도에 대해 자신들의 선조가 넘어온 나라라는 정도, 약간의 친숙함 정도를 느끼고 있는데 그걸 확대해석해서 지배했느니 뭐니하는 건 위험한 발상입니다.
                         
굿잡스 18-09-09 18:11
   
신찬성씨록은 씨족의 기원에 관한 내용인데, 그게 어째서 일본을 지배했다는 근거가 됩니까? >??

왜인지 사서 내용과  백제가 담로로 다스리는 관련 지역의 관모등 출토 유물등 좀더 공부 바람.

왜의 천지천황에 오른 부여교기등이 누구인지  백제 멸망 이후에 본격적 열도에 도성등 출현 나라 헤이안 시대를 우리선조들이 열면서 독자성이 심화되지만 이전 본국 백제가 존속했을 때의 해양대국 백제에게 열도는 부속된 영역.
                    
자기자신 18-09-09 03:03
   
수나라 수양제한테 일본사신이 자기나라왕을 천황이라고 했다간 수양제가 노발대발하면서 쫓아냄 일본사신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다시 일본사신을 만나지 말라고 했을정도 수서에 나옴
          
굿잡스 18-09-08 21:05
   
고구려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여 문지기·말먹이의 집에 이르기까지 거리마다 큰집을 지어 경당이라 부르며 자제가 결혼하기 전에는 밤낮으로 이곳에서 책을 읽고 활쏘기를 익힌다" 

-구,신당서 열전(列傳)-고려(高麗) 

고등교육 기관인 태학 뿐 아니라 1600여년 전  문무겸비 
세계 최초의 평민교육기관-고(구)려의 경당  
http://cafe.daum.net/hankookhistory/47AT/27?q=%BC%BC%B0%E8%20%C3%D6%C3%CA%C0%C7%20%BC%AD%B9%CE%20%B1%B3%C0%B0%B1%E2%B0%FC%20%B0%E6%B4%E7��

세계 도시와 비교한 고려의 도시규모 포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014��

고려 문화의 포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015��


조선 도시의 포스와 에도시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6980��

조선 후기 상업의 발달과 성시(城市)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001��

18세기 평양 모습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4356&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7%90%EB%8F%84%EC%8B%9C%EB%8C%80+%EB%8B%AD%EC%9E%A5&sop=and��

587년 전 세종이 국민투표를 실시한 까닭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ec1963&logNo=220959591555

세계최초의 민중? 서명운동, 조선시대 만인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17828&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1
  
동아시아 선진 조선의 불꽃축제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6957


에도막부, 조선통신사 일행에 극빈 대접 

“한해 쌀 수확량 12% 접대비로 사용” 

옥스퍼드大 루이스 교수 논문 

“일본이 조선통신사의 한 차례 방문에 쓴 접대비용은 (일본의) 한 해 쌀 수확량의 12%를 넘었다.” 


http://news.donga.com/3/all/20090202/8690797/1


조선과 같은 먼 극동의 나라에서 우리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의 자존심마저 겸연쩍게 만든다. 조선 사회에서 문맹자들은 심한 천대를 받기 때문에 글을 배우려는 애착이 강하다. 프랑스에서도 조선에서와 같이 문맹자들을 가혹하게 멸시한다면, 경멸을 받게 될 사람이 허다할 것이다. 
  
- 프랑스 해군 장교 주베, 『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 


조선시대 한글 활자 인쇄본들 

http://decentliar.tistory.com/601
  

오늘날 책대여점같은 조선시대 세책점(아녀자도 소설을 읽고 오늘날 넷에서 댓글 달듯 

책에 댓글 놀이도 한)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mcschool&logNo=220808791129
  
당시 이정도의 문명률(글을 아는 수준)이면 세계사에서도 탑클래스군요. 

(비록 근세 조선이 말기에 우리가 일본이라는 국호와 도시문명까지 건설해주며 

수천년 신속하고  살던 왜에 35년 잽강점기의 치욕의 오점을 남긴 왕조이지만 

괜히 문에서 선진강대국이자 방대한 인쇄문화에 코리아가 세계활자 종주국이 아니군요) 


조선의 과학수사 수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5129&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3




1577년 조선의 <민간인쇄 조보>, 세계 최초 '활판 상업일간신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28988&CMPT_CD=P0001
  
이외 근세 조선이 비록 서구의 기계동력 기술과 무기의 교류가 늦어진 부분은 크지만 

사회 전반적 문화상은 이미 다방면에서 선진적이였군요. 




이미 현금인출카드를 쓰던 조선왕조!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0154&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2
  
세계 최초 공중보건의서 '동의보감' 국보 승격 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東醫寶鑑)」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하였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9808&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B%8F%99%EC%9D%98%EB%B3%B4%EA%B0%90&sop=and
  

이런 공중 의서의 편찬과 상업의 발달에 따라 조선은 이미 18세기에 

의약 분업 즉 진찰은 의원에게 약을 약방에서 찾는 형태가 나오는데 유럽은 이런건 

19세기 이후로 가서야 나타나기 시작하는 사회상 


조선! 세계 최초의 음식 배달 문화를 시작하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2181&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2


조선시대의 맛집소개서 / 미슐랭 가이드 ‘효전산고’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0027&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2



유럽따위 씹어먹는 조선의 빈민구제소 수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3930&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2


고려 '사개송도치부법' 서양보다 무려 2세기 앞선 근현대적 회계 복식부기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418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1%B0%EC%84%A0+%EB%B3%B5%EC%8B%9D%EB%B6%80%EA%B8%B0&sop=and
  

조선시대 회계문화.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ord2345&logNo=220490650000


세계 도시와 비교한 고려의 도시규모 포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014

고려 문화의 포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015


조선 도시의 포스와 에도시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6980

   


황태연 교수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800년까지 중국 또는 동아시아의 1인당 국민 소득은 영국과 유럽을 앞질렀다. 그렇다면 조선은?  

◇ 숙련노동자의 실질임금 비교  


- 조선(1780~1809): 쌀 8.2kg  
- 밀라노(1750~1759): 빵 6.3kg  
- 런던(1750~1959): 빵 8.13kg  

◇ 경작면적기준 총요소생산성 비교(1800년)  


잉글랜드 100, 조선 134, 중국(강소성, 절강성) 191.  
중국전체의 평균 총요소생산성은 191 이하일 것이나 이 역시 잉글랜드보다 高.  

◇ 1인당 GDP 비교(조선 vs. 중국)  


1820년 1인당 GDP - 중국: 600달러, 조선: 600달러  
┃중국의 1인당 GDP 추이  
- 인구의 비약적 증가로 인해 1500년부터 320년간 600달러 수준.  
- 1870년 530달러로 추락.  
- 1920~30년대 55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  
┃조선의 1인당 GDP 추이  
- 1870년 604달러로 반등  
- 1911년 777달러(아시아 2위)  
- 1917년 1,021달러  
- 1939년 1,459달러  
조선의 생활수준은 16세기말부터 상승하여 18세기 영·정조시대(1724~1800)에 정점을 기록한 후 하락.  
- 16~17세기에는 중국보다 낮을 수 있으나 18세기 중국을 추월.  
- 19세기(1820년)에는 다시 중국과 비슷한 수준.  

◇ 조선의 교육복지  


┃세종치세(재위 1418~50) 이후 18세기까지 지방향교, 사학(四學), 성균관 등 모든 유생들에게 무상교육, 무상숙식, 학비지급, 학전(學田)지급, 면세 및 요역면제.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논어」의 유교무류(有敎無類)의 원칙에 따른 것.
               
안양천 18-09-08 22:14
   
위 댓글 내용들은 훑어보니 문화에 관한 내용들인데 이게 그래서 중국, 일본을 속국 내지 한 지역으로 삼았다는 근거가 되는지?
제가 궁금한 건 도대체 중국을 호구로, 일본을 쫄다구로 삼았다는 내용인데요
                    
굿잡스 18-09-08 22:29
   
똑같은 내용 반복 윗글 다시 정독.
          
라라라데이 18-09-08 21:20
   
국수주의라 까려면 좀 주장하고자하는 의견이라도 내놓던가 혹은 반박을 하던가 쓰윽 던져놓으면 끝?그러면 뭔가 쿨해보이는건가 . 자국을 옹호안하면 객관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함? 자국이던 타국이던 잘한건 현명하게 봐야지
               
안양천 18-09-08 22:02
   
최대한 좋게 써주는 경향이 있는 국사교과서에서마저 (예를 들어 비록 ~했으나 ~한 의의가 있다는 식의 서술이 종종 보이지요) 중국이나 일본을 속국으로 삼았다는 내용은 없습니다만.
                    
굿잡스 18-09-08 22:32
   
엄연한 쨉 및 국내외 학자의 주장은 무엇인지? ㅋ  ㅋ 위에도 언급한 내용.

그리고 현대의 중국이라는 국가명과 고대 이민 정복왕조사로 점철된 중국이라는 개념이 동일한 의미가 아님부터 제대로 정립하고 논하길 바람.
                         
안양천 18-09-08 22:47
   
학자가 주장했다고 해서 뭐 대단합니까? 학계에서 통설로 인정받지 못한 주장들입니다.
사학계 뿐만 아니라 과학, 경제학 등 학계에서는 그런 마이너들이 존재하고요.

중국이 여러 이민족에게 정복된 것은 맞습니다만, 그 이민족들은 현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존재합니다. (중국이 현재처럼 한족 중심의 국가가 아니라, 소수 민족을 존중하는 다민족 국가를 표방한다면 그들 또한 현재 중국의 한 역사가 될 수 있고요.)
한민족이 현재 중국을 일부 차지한 것은 맞지만 전부 차지하거나 속국으로 삼았다는 건 동의하기 어렵고요.

그리고 저는 민족사 별로 안 좋아합니다. 소위 민족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꼴을 봐온지라.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도 포함해서 언급한 겁니다.)
어느 역사를 바라볼 때 지역사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굿잡스 18-09-08 23:19
   
학자가 주장했다고 해서 뭐 대단합니까? 학계에서 통설로 인정받지 못한 주장들입니다. >>?? 통설로 인정받지 못했다? ㅋ

하긴 쨉 전범극우 교과서는 쨉전통학자들에게도 논파 부정당한 해괴한 임나일본부설을 통설마냥 가르치긴 하더만 ㅋㅋ
                         
안양천 18-09-08 23:32
   
한일역사공동연구회에서 폐기된 학설인데 통설이라고요? 학계와 교과서는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국사교과서도 학계에서는 취급조차 안하는 요서경략설을 수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Specter 18-09-08 23:39
   
어그로 관종 뭐하러 상대하세요. 상대하니 신나하잖아요.
                         
안양천 18-09-08 23:42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 - 볼테르 -
                         
깁스 18-09-09 12:11
   
할말이 없어도 욕하지만 욕먹을 소리만 떠들어도 욕을 합니다 끛
                    
굿잡스 18-09-09 00:01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 당해 있다.”
ㅡ괴벨스
                         
먹살자 18-09-09 04:17
   
이거 괴벨스가 한 말이 아니라고 알고있는데.
                    
라라라데이 18-09-09 10:23
   
한국교과서가 한국역사를 종종 좋게 적는다는 이야기는 또 처음듣네. 전세계를 통틀어 정말 자국 위주같은건 심하게 없을 정도로 적고 있는게 한국 역사 같은데 굴욕의 역사든 뭐든간에 .왜 굴욕적일 수 밖에 없었나를 토론하는게 한국 역사인데 그래서 한이 맺힌 역사라며 항상 떠들던거 생각도 안나나?..한국 역사를 적는게 자국위주라고 생각한다면 일단 일본 WIKI라도 한번 훑어보는게 .. 객관성??그딴건 이미 개나줬습니다 . 서양역사도 그냥 자국 역사를 풀이하고 우리가 그걸 그대로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그거에 대한 반박 조차 안함 . 미국 역사에 대해서 아무도 입을 안엽니다 . 베트남 전쟁에 대한 피해조차 한국이 주도 한 전쟁도 아니고 여러국가가 참여했는데도 유독 한국만 그 전쟁에서 한국 군인들이 한 피해에 대해서 신경쓰고 대통령이 직접 사과 하고 국회의원은 가서 무릎꿇고 금전적 지원과 희생자를 기리는 동상까지.. 그럼에도 더 사과하라며 몇몇 한국인들이 한국내에서 시위하기도 하고 .. 아니  얼마나 더 객관적이길 바람??이런 나라가 도대체 세상에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는거임? 그냥 자국이니까 옹호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한다고??자국민들 조차 뭐 이리 세세한것까지 앞뒤를 따져지며 욕먹을꺼면 차라리 일본처럼 자국위주로 풀이하고 날조하는게 훨씬 나을듯 .
                         
라라라데이 18-09-09 10:27
   
한국에 1~2년 살아봤나.. 한국인들이 자국을 조금이라도 좋게 말하면 바로 반박 들어옴. 똑같은 성과를 이뤄도 외국인이 하면 칭찬하고 자국인이 하면 별 것 아닌 것 처럼 치부하지 . 맨날 패배의 역사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우리 역사에서 사람들이 패배 밖에 기억하지 않는 이유도 그런거임. 아이돌이 노래를 아무리 잘 부르고 작사 , 작곡까지 완벽하게 해도.. 결국엔 인정하지 않음.. 한국에선 인정하는 문화가 없음 적어도 같은 민족이라는 오지랖 때문인지 혹은 열등감 때문인지 몰라도 유독 한국인은 한국인의 성과를 인정하기 싫어함..그래서 외국에 별거 아닌 것에는 칭찬하지만 그에 합당한 성과가 한국 역사에 있으면 별 관심이 없어지지..
                         
안양천 18-09-09 14:06
   
제가 고등학생 시절에 배우던 것 중에 기억나는 것만 열거해보겠습니다.

1. 고조선 기원전 2333년 건국. 이건 동국통감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한 것이고, 요 임금의 즉위년을 기준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요 임금이 전설시대 인물이라는거죠. 게다가 요 임금의 즉위년은 여러 이견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걸 당당히 가르치는 건 일본서기의 신화시대를 실제 역사라고 가르치는 것과 비슷한 겁니다.

2. 위만 조선인설. 근거는 위만이 망명해올 때의 복식이 오랑캐의 것이라는 내용인데,  망명할 때 그런 옷을 입을 수도 있지요. 최근 학계에서는 대략 중국계라고 봅니다. 애초에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적인 개념이고, 당대 사람들은 그런 의식이 희박했으므로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 없습니다. 태국이나 베트남도 중국계가 나라를 세운 적이 있지만 그걸 중국사로 보지는 않습니다. 중국과는 별개의 국가로서 존재했기 때문이죠. 에트루리아계가 로마 초기 역사에서 왕을 한 시절이 제법 있었다고 해서 - 로마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았으므로 - 로마사가 아닌 것은 아니듯이, 마찬가지로 위만도 중국계지만 기존의 국가 정체성을 계승했으므로 애초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게 현재의 중론입니다.

3. 요서경략설. 동시대 중국 사료와 교차검증도 안되고 유물, 유적도 발견 안되서 학계에서는 취급조차 안합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버젓이 실려있죠. 이걸 인정하려면 마찬가지로 일본의 고문서에만 등장하며 한국 고문서와 교차검증도 안되는 임나일본부도 인정해야 할 겁니다.

4. 왜구는 자세하게 언급하는 반면 신라구는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건 한국 사서에 등장하지 않으니 교차검증 문제 운운하면 할 말이 없지만요. 참고로 왜구에 관한 기록도 일본은 빠지거나 대충 기록된 것이 많은 반면 한국, 중국의 기록은 자세합니다. 아무래도 피해를 입은 쪽 기록이 자세할 수밖에 없겠죠.

5. 한군현에 대한 서술은 향후에 축출되었다는 내용뿐입니다. 사학계에서 한군현과의 교류와 고대 국가성립 등에 대한 논문들이 인정받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민족주의 교육에 맞지 않는 내용이니까 그런 서술이 되는 겁니다.
이 글을 참고바랍니다 - http://xakyntos.egloos.com/v/2560235

6. 삼국의 문화전파를 지나치게 편파적으로 서술함. 고대의 문화라는 건 중심지에서 외부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한 때 세계를 호령했고, 현 세계 패권국의 부모격인 영국이 고대에는 변방이었고 본격적인 역사는 속주라는 이름으로 중심에 편입되면서 시작됩니다.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사에서 중심은 좋든 싫든 사실로서 중국이었습니다. 중심에서 외부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중간 기착지가 한반도였을 뿐이죠. 유교, 한문, 불교(엄밀히 따지면 인도지만 전파된 것은 산스크리트어가 아닌 한문으로 번역된 경전들), 종이 등... 전파된 것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당시 한반도의 국가들이 유니세프였던 것도 아니고, 자기들의 필요에 의해 왜를 끌어들일 목적으로 교류한 것인데 이것을 마치 위대한 스승이 제자에게 선심쓰듯이 뭔가를 전파해줬다는 느낌의 서술은 문제가 많습니다. 마치 필요에 의해서 일제시대에 조선에 개설된 도로, 철도가 큰 은혜였다는 듯한 서술과 비슷한 느낌이죠.
                         
안양천 18-09-09 14:29
   
7. 대몽항쟁에 대한 긍정적인 기술. 실상은 중앙이 지방에게 각자도생하라고 방치한건데 이걸 항쟁이니 뭐니 포장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삼별초가 대몽항쟁의 마지막 불꽃이었다는 서술로 이어지는데 이렇게 사실관계를 비틀어 왜곡하면서까지 긍정적으로 써주려고 합니다.

8. 몽골의 일본원정을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이 나쁜 몽골놈들에게 이용당했다는 듯한 느낌의 서술. 사실 2차 전쟁 때는 고려가 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그건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를 참고 - https://pub.chosun.com/client/news/print.asp?cate=C01&mcate=M1004&nNewsNumb=20170926131

9. 자본주의 맹아론. 이건 요즘 자기들이 생각해도 좀 민망했는지 교과서에서 축출되었다고 들었는데, 저는 배웠습니다. 어디 외딴 섬도 아니고 주변국이 다 화폐를 일찌감치 쓰고 있던 판국에 18세기즈음에나 화폐 경제가 자리잡는 나라가 자본주의 맹아라니 이렇게 박박 우겨가며 긍정적으로 써주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실학자들도 띄워주는 경향이 심합니다.

10. 동학농민군을 반봉건적이라고 서술함. 동학농민군의 주요 사상 중 하나가 근왕이었는데 반봉건이라고요? 이렇게 어떻게든 좋게 써주려고 합니다.

11. 간도 협약을 영토 탈취 협약인양 묘사함. 일본이 외교권을 빼앗아서 맺은 협약이므로 부당한 것은 맞지만, 영토 탈취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토 문제에서 중요한 건 실효지배 여부인데 간도 대부분 지역은 청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연길지역 정도가 약간 논란이 되는데, 이 지역은 조선과 청의 지배력이 뒤섞여있었기 때문입니다. 실효 지배가 아닌 문서상의 문제로 들어가면 이 지역은 청이 봉금지역으로서 방치해둔 사이에 조선인들이 들어와서 살기 시작했으므로 조선측이 잘못했다고 볼 수 있는 사안이고요. 일본이 조선으로부터 독도를 빼앗아가는 과정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12. 한국이 주체가 된 학살행위(예 - 한국전쟁 중 학살, 제주 4.3 사건 등)는 대충 기술하는 경향이 심합니다. 반대로 일본에 의한 피해는 자세하게 기술합니다.
                         
안양천 18-09-09 14:33
   
어느 나라나 국사교육이 자국중심적인 면모를 띄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사 교육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당연한거죠.
마치 한국은 자학사관에 젖어있고 참역사를 가르치지 못하다는 뉘앙스로 적으셨는데 그거 일본 우익들이 일본 역사교육에 대해 하는 말과 똑같다는 것만 알아두십쇼.
                         
라라라데이 18-09-09 16:04
   
제주, 한국전쟁에 의한 학살??.내부에서 일어난 것과 대외적으로 일어난 것이 같이 서술 되는 나라가 어디에 있음? 애초에 그걸 축소한것은 역사적 개념이 아니라 특정 세력의 정치적 개념 아님? 박 전 대통령의 국정교과서와 같은 취지라고 보는데?특정 정치적 세력으로 부터 은폐되고 있던 것을 그마나 최근에 구축되고 알려졌으니 님도 아는것 아님? 은폐된 것이 알려졌다라는 것 자체가 꽤 큰 발전이라고 보는데 . 마치 은폐된걸 님이 밝힌것 처럼 고발하듯 말씀하시네요
                         
라라라데이 18-09-09 16:09
   
타국 역사가 어찌 쓰여지는지 구경이나 해본적 있음?일본에 의한 피해를 자세하게 기술해서 빡친건가 ? 애초에 다루는 주체가 전혀 다른 주제인데  단 한 사람이 서술해서 균형을 맞추라는듯 말하네 .한국에 의한 학살 피해자 역시 한국인임 어디 딴나라 사람이 피해받은게 아니라 . 그걸 더 깊게 서술하고자 노력하는 것 맞는건데 일본에 의해 받은 피해랑 비교대상 자체가 아니지 한국인에 의한 일본인 학살 피해가 있었고 그것을 축소했다면  모를까 무슨 구슬 하나 빠지면 하나 채워넣는게 아니라 예를 들필요도 없음 역사가 무슨 퍼즐인줄 아나 무슨 내로남불 같은 논리로 따지려 드는거 같은데 동족상잔은  우리만의 문제지  타국과의 관계 역사랑 비교하는것 자체가 핀트가 급격히 틀어졌는데?
한국에 의한 한국인의 학살을 축소해서 기록했고 일본인의 의한 한국에 피해는 확대했다 라는게 비교대상이 아니라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의 학살 역시도 더 깊고 모두가 알아야 할 주제이고 일본인의 의한 한국인에 피해도 더 많이 더 깊게 알려져야 하는거지 둘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억지로 껴맞춘 느낌 이걸 이해하기가 어려운건가? 폭력이 그냥 폭력이지 뭐가 달라? 뭐 이런 취지임? 답답하네
축소하네 뭐네 따질꺼면 일본 역사나 한번 따져봐라 전범국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전범국이었다는 정보는 아예 가르치지 않으니. 그런건 당신 알 바 아니겠지?
호뱃살 18-09-08 19:09
   
오 잼겄다
조선시대에 좀비라.. 신선하네요
원츄 18-09-08 19:15
   
Antonio Aguilar
이거 한국식 신파 엔딩이다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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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될까 두렵네요
BTJIMIN 18-09-08 19:30
   
번역 감사합니다
크림빵 18-09-08 19:30
   
땡기네^^
냐옹냐옹 18-09-08 19:58
   
현빈,장동건 좀 멋지게 나오는거같은데 이런 과거물도 자주 나오는거 좋은거같음
전우치도 정말 재밌게봤는데 후속작 안나오려나, 전에 일본영화 바람의검심 잘나왔다고해서 봤는데
이건뭐 잘나왔다는게, (실사화한거중에 그나마)라는 말이 생략된거였음 ㅋㅋ 보고 엄청 실망
전우치가 특수효과좀 보강해서 나오면 진짜 꿀잼일거같은데 시리즈로.
볼케이노 18-09-08 20:32
   
솔직히 참신해 보이긴 합니다. 내심 기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가출한술래 18-09-08 20:40
   
잘 보고 갑니다,.
병아리쓸빠 18-09-08 21:06
   
인랑처럼 기대 엄청 하다가 실망하지 않기를,,
     
고장난화약 18-09-09 09:22
   
그렇죠. 이야기 전개가 상당히 삐걱거려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봄. 그러면서 새삼 올드보이가 위대하게 느껴짐
sunnylee 18-09-08 21:31
   
시간대 선정은  참신하네..
북창 18-09-08 21:47
   
사람들이...우리나라가 역사상 전세계적으로...경제력으로 10위권 밖인적이 거의 없었단걸 잘 모르나봄.
바두기 18-09-08 21:52
   
좀비인줄 알았는데... 좀비가 아니군요.
잘봤습니다.
모나미펜 18-09-08 22:04
   
극중 시대적 배경이 신선해서
잘 만들면 요놈 요거 물건일거 같은데...

대박나라.
없쇼 18-09-08 22:12
   
근디 장문의 댓글 파이트는 따로 글파서 싸우시지ㅜㅜ 스압 작렬이네요.  영화기대
merong 18-09-08 22:30
   
MeSmeshFruit
그니깐 누군가 좀비물을 좀 신선하게 바꾸길 원했다는 거지?
근데 진지하게 뭐랄까 액션이 좀... 다 필요없고 총은 어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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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저한테는 DOOM ][ 게임 이후로, 좀비는 총으로 머리 쏘는 재민데...
조선시대라면... 임진왜란 이후라서 삼지창 대신 산탄총 쏘는 설정은 아닐테고...
     
qufaud 18-09-09 02:07
   
그래서 좀비가 아니고 아귀라는 것으로 설정 되었지 않습니까
아귀와 좀비를 같다고 할 수 없는거죠 아귀는 한국의 고유(?)한 귀(鬼)물이니까요
좀비가 아닌 아귀를 내세움으로 총없는 옛시대 설정에 맞출 수 있는 거죠
돌무더기 18-09-08 23:52
   
갑옷이나 무기같은 고증이 잘 되었음 좋겠단 생각은 있지만
뭐 좀비물에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죠
자기자신 18-09-09 02:56
   
오 재미겠다 좀비들을 도검으로 썰어버리는것
덕후니 18-09-09 03:01
   
제대로 나왔으면 좋겠다. ㅎ
ckseoul777 18-09-09 06:02
   
댓글이 더 재미지네요^♡^
미스테리 18-09-09 07:32
   
댓글 파이터 글을 읽다보니 꼴등 ㅎㅎㅎㅎ
아리온 18-09-09 08:03
   
댓글 개웃기네 ㅋㅋㅋㅋㅋ
갓잡이 18-09-09 08:07
   
일뽕들 논리를 무참히 격파중이시네 ㅋㅋ
식민사관에 물든 우리나라 역사 뭐하나 진실인게없는데 도대체 그시대에 살지도 않았으면서
고작 책하나에 주장하나에 진실인듯 떠들어대는것
     
안양천 18-09-09 13:38
   
저는 사학 전공했고, 학계 통설에 기반해서 말했을 뿐입니다만.
"그 시대에 살지 않았으니 진실을 모른다?" 아니 그럼 당신은 그 시대부터 살아왔다는 겁니까?
저는 그 아득한 수백년, 수천년 전 일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사학 전공했습니다. 당신은 대학에서 사학 전공했습니까?
          
원형 18-09-10 01:52
   
한국의 사학계가 식민사학을 뿌리로 두고 있어서 엉망인 인간들 많은것이 팩트지
그래서 어느 대학 교수쯤되나?

동북아재단이 되기전 고구려재단인가? 설립자와의 대담도 ㅋ
그냥 뉴라이트

개혁적이라고 자칭하는 일부 인사들도 자기들 얼굴 마담을 학술회장에서 대놓고 디스 (이쪽출신이 아니다 등등)

홍산문화를 주제로 발표하는 (kbs 촬영) 장소에서 서울대 교수라는게 그게(유물) 거기서 왜나와?
이딴 소리나하고
유물이 있어도 연구가 않되어 있으니 인정못한다 라면서 아예 무시나 하고 그걸 방송에선 잘라먹고 (동북공정)

수백 수천년전의 일을 알고 싶다고 하지만 내가 몇십년전부터 경험한 한국 사학계는 대놓고 친일파의 후예

아닌 사람들도 분명있지만 지도교수를 디스할수있는 인물이 얼마나되는지 궁금하네

자기 생업걸고 말이지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예전에는 아예 학계에서 퇴출시켜서 밥줄을 끊어버리던데

아! 경복궁 복원하는데 조선주제에 감히 왕세자가 그런 건물에서 살리 없다고 대목장을 디스해서 예산 낭비시킨 이른바 역사 전문위원들이 나중에 유물이 발견되자 생까던게 생각나는데
대목장말이 맞았던거지 사학계 박사 나부랭이가 아니고
그 대목장은 뒤에찍혀나간걸로 기억 ㅋ
이게 한국 사학계 썩은물들이고

한국 기득권이 한국 을 어떻게 보는지 잘보여주지

그리고 알래스카에서 온돌이 발견된건 알기나하나? 이런것을 연구해야지

단군신화가 최초록 문자로 적혀진 북방아시안의 신화인것도 (천왕강림의 신화들)
그리고 이 북방신화가 한민족 신화에서 나왔을수도 있다는 외국인의 학설도 ㅋ
          
곰시기 18-09-10 18:40
   
우리나라 최초로 강단에 서서 사학자라고 들먹이던 것들이 죄다
일본인들에 의해 교육 받고 스승이라 모시던 것들이란건 아시죠??
이병도라는 대표적인 인물도 있었으니 모르시진 않을테고..
이 작자들의 왜곡 혹은 잘못 기록한 우리 역사에 대한 논문이나 글들을
공식적으로 반박하고 박살낸적 있으신가요??
사학 전공하셨다면서요?? 잘못된건 지적하고 고쳐야하는것 아닌가요??
아직 그런 일이 강단 사학내에서 일어났다는 소문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네요~~
회색달 18-09-09 10:35
   
좀비는 최초로 누가 만들었는지 이정도로 세계에서 다 써먹게 되다니...
늑대인간 드라큐라도 많이 써먹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한국에서도 좀비 관련 웹툰만 엄청나게 나온듯
현재 연재중인 좀비만 네웹에서 5개는 넘어보이고 야귀는 귀신이라고 나오니 다르다고 봐야하나
식보이 18-09-09 11:17
   
영화 이야기만 해라
잘봤어요
깁스 18-09-09 12:12
   
뽕쟁이 때문에 중간에 붕떴네
su수 18-09-09 15:25
   
번역 잘 보았습니다.
블랙핑크 18-09-10 06:21
   
잘 봤어용 ㅎ
기성용닷컴 18-09-10 09:26
   
잘 보고 갑니다
번역 감사해요~
직장인 18-09-10 14:44
   
번역 수고하셨습니다
헝그리댄서 18-09-11 16:01
   
댓글들이 어마어마하네요
명불허전 18-09-15 19:10
   
좀 더 먼 과거로 타임슬립해서 쥬라기 좀비 같은 건 안 나오나.
다미앙 18-09-16 11:33
   
재밌어보이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