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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D] 고구려의 위대한 전투, 영화 "안시성" 해외반응
등록일 : 18-09-21 20:12  (조회 : 39,994)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군사학적으로 수성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평가받는 안시성 전투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안시성'이 최근에 개봉했는데요, 영화의 전투씬이 매우 인상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전세계 32개국 이상 선판매 및 동시기 개봉을 확정지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스펙타클한 전투씬이 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해외 영화 팬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000.jpg









<댓글>


pururung1993jude
AOA의 설현이 나오네~ 대박!




Novita L
조인성~~!!!!!!




Zou Xinyuan
50만의 당나라 군대라... 이거 SF물임?




ㄴWandrative
질 대 양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좀 놀랍니? 수나라와 당나라는 
둘다 고구려에 비해 처량했지. 125만 대 1만. 1만의 군사가 이겼지. 불쌍해라




ㄴAsian Dogs Saving Plan
아이고 또 한국인들 헛소리하네 ㅋㅋ 실제 당나라 군대는 3만명이고,
고구려는 20만명이었어(대부분 성안에 숨어있었음) 




ㄴmix coffee
한국은 언제나 중국을 박살냈지. 중국에서 만들어진 가짜 역사는 잊어버려




Cristina Dumitriu
기다릴 수 없겠는데! 대박났으면 좋겠어!!!




Zerg Cerebrates
아.. 당나라가 한국을 침략하는 영화구나




ㄴwic wong
아니,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는 영화야. 
하나의 구성체로서의 한국은 이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어




ㄴTae-whan Kim
고구려가 한국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위,촉,오나라가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는 거랑 같아. 한국은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의 통일 국가야
(역자 주: 위,촉,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의 모티브가 된 후한 말의 분리된 삼국)




ㄴwic wong
위,촉,오는 중국이라는 하나의 구성체를 이루었던 
한 왕조의 연장선에 있어. 고구려는 무엇의 연속이지?




ㄴTae-whan Kim
고조선




ㄴwic wong
신화를 말하는거니? 아니면 실제를 말하는거니?




Sa Rang Kang
오우 나의 넘버 원 한국배우가 당분간 되겠군... 
조인성을 큰 스크린에서 보게 돼서 너무 좋아




JellyBean xo
와우 정말 보고싶은데! 난 미국에 있어서 유감이야 ㅠ




Chaloner
10개 미만의 제한된 상영관에서 상영이 되는거야? 좀 더 많이 개봉했으면 하는데




Saifullah Khan
나는 중국영화 엄청 좋아해~~~ 인도에서




ㄴTam Le
이건 한국 영환디...




ㄴJerry Solisan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야




MOOFAMDEEZ The Holy Cow Moo
오우 이거 완전 1등급인데




bimapringgo
좀 덜 포괄적인 제목을 달 수 없냐? 너무 뻔하잖아




ㄴY Nurhamiyah
한국 개봉 제목은 "안시성"이야




JDub1
아시아 영화는 이러한 류의 영화들이 많아. 
모든 나라(한국,중국,일본,태국)가 그들 스스로를 침략자로부터 
방어해야만 하지. 좋은 소재야!




aznative 
Well Go USA에서 이 영화를 미국과 캐나다의 도시들에 가져온 것에 기뻐! 
9월 21일에 이 영화를 보기를 기대하고 있어!
(역자 주: Well go USA: 미국 영화 배급사)




ㄴirilight
오 고마워 다음 주에 볼게 :)




ㄴaznative 
천만에~ 이거 꽤나 너네 동네에서 좋은 영화인 것 같아




ㄴirilight
이거 벌써 봤어?




ㄴaznative 
아니아니. 9월 21일에 개봉해서 아직 못봤어




ㄴirilight
아 고마워!! 정말 재밌어 보인다



ㄴaznative 
아냐~ 금요일에 애들이랑 영화 보러가봐~




ㄴirilight
그래~~ 영화 재밌게 보고 너도 감상평 좀 꼭 얘기해줘~




ㄴaznative
그럴게 :)




Alt-Moderate  
"게다가, 양만춘이 정말로 여자들로만 구성된 
석궁부대를 갖추지 않았었다면, 그는 그랬어야해" 멋진걸




Linerider  
좋든 아니든 간에, 청중들을 잃을 것만 같은 자막이군...




Reuben Kompa
오 재밌어 보여... 빨리 보고 싶은데



번역기자:안암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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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쎄원 18-09-21 20:17
   
일등 ㅅㅅㅅㅅㅅㅅㅅ
     
몽골메리 18-09-21 23:18
   
아싸 간만에 일점일등 ㅅㅅㅅㅅㅅㅅㅅ
          
화난늑대 18-09-22 00:45
   
아싸 1.3등 ㅅㅅㅅㅅㅅㅅ
               
아리온 18-09-22 12:50
   
다 나가!
황룡 18-09-21 20:19
   
잘봤습니다~!
bluewolf 18-09-21 20:19
   
wic wong <--- 십중팔구 중국새기...
     
화난늑대 18-09-22 00:45
   
짱개 쉬팔노마들은 안끼는데가 없어
종나 패구싶넹
늘봄 18-09-21 20:21
   
오늘 롯데시네마에서 봤는데....스케일도 크고 재미나더라고요~  다들  보세요~
바두기 18-09-21 20:23
   
잘봤습니다.
히포 18-09-21 20:25
   
ㄴAsian Dogs Saving Plan
아이고 또 한국인들 헛소리하네 ㅋㅋ 실제 당나라 군대는 3만명이고,
고구려는 20만명이었어(대부분 성안에 숨어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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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쓴다 짱개야..
당나라 3만에 고구려 20만이었으면 영화이름이 장안성이였겠지 .. ㅉㅉ
     
굿잡스 18-09-21 20:33
   
ㅋㅋ 앞서 수양제도 400만 대군을 끌고 와서도 고구려에 대패를 거듭 결국 망하고 들어선게 당나라인데 당군주 이세민이 직접  참여, 동아시아 문명대전으로 주필산 야전 전투만해도 고구려는 15만 대군이 참여.이세민이 죽으려고 정신 나간 인간이거나 서토 통일 왕조가 고구려보다 개허접이라 탈탈 끌어 모은게 고작 3만이라면 이해될듯.ㅋ
          
니에루 18-09-21 22:36
   
400만 아니고 100만...
               
pepso 18-09-22 00:14
   
100만도아님 토크멘트리전생사 유투브에서보세요  짱께들 역사왜곡들많이해서 역사서에서 100만이라고하면 실질적으로 30만50만정도일꺼임 거기다100만군사라는게 실질적전쟁병사만포함한게아니요 보급하는사람까지치는게중국짱께들의수젓계산이라고하더라구요 그래서 배을만들어서 평양까지갈려고했던이유인듯 하지만 아무리짱께들이 숫자왜곡해도 고구려보다압도적인숫자로오기왔죠  거기다 당나라이세민이 얼마나대단한지는 토크멘트리전쟁사에서 당나라편보시면나와요 전쟁하기전 고구려지리적파악에 고구려 강하나의 수풀이얼마나자라는지 자세하게 자료수집등보면 작정하고 쳐들어왔지만 쳐발렸던거죠 ㅋㅋㅋ
                    
곰시기 18-09-22 02:09
   
113만이고.. 지원하는 인력이 그 배가 넘으니 굿잡스님이 400만이라고 하셨을 겁니다.
수나라는 중공에서 기록된 사서에 백만입니다.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속 100만이 아니라요.
님이 말하는 실질적인 전쟁병사가 근현대 이후로 정립된 상비군이라면 고대사를 잘못 이해하고 계신겁니다.
                    
자기자신 18-09-22 02:59
   
정확히 113만3,800명 수서에도 나옴
                    
ㄱㄹㅊ극혐 18-09-22 11:30
   
수송대까지 합쳐 330만. 실전투인원 113만. 이중에서 별동대만 뽑았던게 30만.
                         
칼라빈카 18-09-24 10:54
   
그건 수양제때고 이건 당태종때 얘깁니다
                    
칼라빈카 18-09-24 10:50
   
패한 전투에서 자국 병력을 뻥튀기 하진 않죠. 줄이면 줄였지.
          
화난늑대 18-09-22 00:48
   
저 짱개 ㅂㅅ도 알겁니다
이세민이 3만 끌고온다는건 개소리란걸 ㅋ
그래도 쪽팔리니 헛소리 하는거죵ㅋㅋ
     
su수 18-09-21 20:51
   
중국아이들이 이 글을 볼지는 모르지만
뼈 때리는 댓글이네요. ^^b
     
양변기통수 18-09-22 02:08
   
설사 짱깨 3만 대 고구려 3만이 싸웠다고 칩시다.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건 재갈량같은 그많은 명장과 지략가들은 저시대땐 없었나봐요..그런사람들 있었음 고구려는 멸망인데..그러니깐 그명장들이나 지략가는 소설이 뻥튀겨낸 구란거죠.단지 쪽수만 많은 더러운 민족
          
동혁이형 18-09-22 10:38
   
조조나 재갈량이 있더라도 고구려는 바보들만 있던 나라가 아닙니다...
          
인드라망 18-09-29 04:39
   
수성의 명장 양만춘 장군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조조나 제갈량이 무슨 신급도 아니고
     
valentino 18-09-22 02:53
   
'장안성'ㅋㅋㅋㅋㅋㅋㅋㅋ
님좀 짱인듯
추천있었으면 무조건 눌럿을 댓글 ㅋㅋㅋ
          
바람좋은날 18-09-22 16:50
   
나도 추천 있었으면 눌렀을 텐데... 장안성... ㅋㅋㅋ
정묘 18-09-21 20:26
   
중국이 언제부터 한족의 나라였나?
     
Mrleo 18-09-21 20:36
   
오우 날커로운 지적~~~~
     
su수 18-09-21 20:53
   
그렇죠! 노애가 주인의 역사를 자기꺼라고.
     
붉은깃발 18-09-21 20:58
   
엌ㅋㅋㅋ
     
Voraussicht 18-09-22 18:51
   
명치에 치명타
Silli 18-09-21 20:26
   
병사들 찰갑 입혀놓은거 보면 고증 안할 이유도 없었지만 배우들 화면빨안받는다고 다시 판타지 갑옷 처입은  비고증영화
전쟁망치 18-09-21 20:26
   
고구려때 자료가 많지 않은 것이 안타깝네
왜구는 백제를 짱깨는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려 하네
송곳니 18-09-21 20:28
   
중국인들의 부들부들이 생동감있게 번역물에 살아있네요 ㅋ
그럴리가 18-09-21 20:35
   
안씻엉
굿잡스 18-09-21 20:38
   
영화 내용에서 당군 20 만으로 쳐들어 온 것으로 얘기했습니다만 앞서 수양제가 무려 400만 대군을 친히 끌고 왔다 무참히 대패 이후에도 거듭 대패를 당하면서 결국 망하자

이전 수나라의 실패를 연구한 전쟁의 신으로까지 평가되던 이세민은 보급의 중요성을 깨닫고 수군 행군 총관 7명을 통해 요동반도로 충실한 보급에 힘써는 한편 요동성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육군행군 총관 60명 내외 즉 한 행군당 일만에서 일만 이천 전체 70만에서 80만에 달하는 백만 대군을 친히 이끌고 요동 일대 밀집 방어인 고구려성들을 동시 다발로 공격하게 되군요.(고구려는 상비 30여만, 전시 최대 4,50만을 뽑아냄) 

그리고 영화에서는 주필산전투에서 고구려가 보낸 15만 대군이 전멸식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여러 사료를 종합해보면 선발대 성격의 북부욕살 고연수와 남부욕살 고혜진이 이끈 고구려군이  당나라군의 유인책에 걸려 고구려3만 명에 말갈족 3,300명은 산채로 구덩이에 파묻혀 죽으면서 초기 패배였지만 고구려의 대로 즉 총사령관격인 고정의  본진 10여만 대군은 여전히 건재 결국 안시성과 야전 주필산에서 고구려 대군이 끊임없이 당군의 내지 진격을 효율적으로 3개월을 막아내면서 당군은 요동방어선에 막혀 결국 이세민은 퇴각을 하게되고 이과정에서 고구려의 거센 추격에 이세민이 고초를 당하다 겨우 살아돌아가서는 이후 병사하게 되군요. 

그리고 영화는 연개소문과 안시성 성주간의 갈등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하는등 이런 전반적 역사나 고증의 미비도 있지만 안시성의 사료 부족에도  영화 전반적으로 전쟁씬은 박진감 넘치고 스펙타클해서 고구려시대 영화를  보고 싶었던 영화팬으로서는 나름 반갑더군요. 

그리고 예고편에서 조인성 특유의 혀짧은 발성이 거슬렸는데 의외로 영화 전반에서 묘사하려는 안시성 성주의 캐릭터를 나름 잘 소화  그리고 눈빛 연기등  이전보다 연기력이 한층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음. 

몇가지 아쉬움과 역사적 치밀성은 부족했지만 영화의 포커스가 안시성이고 성주 였기에 더욱 드라마틱한 전개를 위해 이해되는 부분에 전쟁씬도 박진감 넘치게 묘사되어 이번 이후로도 좀 더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고구려시대등의 스펙타클한 영화들이 이어지길 기대하군요.

근현대 독소전쟁 이전   

고대사 세계 최대 대전인 2차 고수전쟁 수나라의 300만 대군은 얼척의 과장인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801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88%98%EB%82%98%EB%9D%BC+400%EB%A7%8C&sop=and����

동북아 최강대국 고구려의 역대 전적.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8906&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A%B5%AC%EB%A0%A4+%EC%A0%84%EC%A0%81&sop=and&spt=-5409&page=1����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隋皇失馭 由於征遼   

-삼국사기 <최치원전>   


(북위)세종이 이르기를,“고구려가 대대로 상장(上將)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해외(海外)를 모두 제압하여 사나운 오랑캐인 구이(九夷)를 모두 정벌하였다   
    
《후위서》   


其地後漢時方二千里。至魏南北漸狹,纔千餘里。至隋漸大,東西六千里。   
    

그 땅은 후한때에 사방 2천리였다. 위나라 때 남북이 점점 좁아져서 겨우 1천여 리였으며,   
    
수나라 때 점점 커져서 동서가 6천리가 되었다.ㅡ통전


도표로 보는 고구려의 위엄

http://gezip.net/bbs/board.php?bo_table=horror&wr_id=49907

우리 고구려 천년동안 서토 왕조들 수십개가 명멸.

그리고 고구려 휘하의 부용세력(평소에는 부족들을 보호해주면서 경제, 문화적 지원을 해주고 전시에는  병력으로 동원)이였던 실위 후대 몽골, 거란 후대 요, 말갈 후대 금, 후금(청)등이 서토를 다말아 먹음.
리트머스 18-09-21 20:42
   
ㄴwic wong
아니,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는 영화야.
하나의 구성체로서의 한국은 이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어

와 진짜 소름 끼치네요 짱께놈들
     
하늘나비야 18-09-22 00:45
   
그러게요 왜곡 날조도 저정도면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네요 저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인 지들 나라는 존재 했었나 보네요 어딜 계승한거냐 중화인민공화국은? 청나라냐? 아닐텐데..
굿잡스 18-09-21 20:43
   
동북아 최강대국, 독자적 동방문명권을 구축한 고조선 고구려문명권.   


신석기 혁명, 빗살무늬 토기의 발명지.   

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가 가장 앞선 지역이었던 이유   

https://news.v.daum.net/v/20171015140004655?rcmd=rn&f=m
    

    
    
고조선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등 분포도   

https://blog.naver.com/itcoms0/220344390104?proxyReferer=http%3A%2F%2Fsearch.daum.net%2Fsearch%3Fw%3Dimg%26q%3D%25EA%25B3%25A0%25EC%25A1%25B0%25EC%2584%25A0%2520%25EC%2584%25B8%25EB%25A0%25A5%25EB%25B2%2594%25EC%259C%2584%26docid%3D33MvZ9OeFqASojmtT-%26da%3DIIM%26rurl%3Dhttp%253A%252F%252Fblog.naver.com%252Fitcoms0%252F220344390104����
    

서토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초의 고조선 금속갑옷   

http://cafe.daum.net/luck5194/MFUT/283?q=%B5%BF%BA%CF%BE%C6%20%B0%A9%BF%CA%C0%C7%20%BF%F8%C1%B6%20%B0%ED%C1%B6%BC%B1-%20%B0%ED%B1%B8%B7%C1����
    

고대 한류로서 갑옷문화의 국제적 위상(1)   
고조선 갑옷이 중국에 준 영향   

http://www.breaknews.com/sub.html?section=sc5§ion2=������/문���������� 


고조선, 고구려의 뛰어난 제강기술력.   

http://hyala.tistory.com/247����
    
http://cafe.daum.net/gjgumdo/36Hr/27?q=%B0%ED%B1%B8%B7%C1%20%BF%EC%BC%F6%C7%D1%20%C1%A6%B0%AD%B1%E2%BC%FA����

고구려 초기 2대 유리왕시절 축조되기 시작한 환도성   

앞 궁궐 건물지 무려 90미터.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343393����
    


고구려  5세기   
    
<안학궁 남삼문(南三門) 중 남중문(南中門) 38m 앞면 7칸   

안학궁 남궁 1궁전(정전) 62m 앞면 11칸   

안학궁 중궁 1궁전(편전) 87m.  앞면 19칸 >   
    
    
7세기에 세워지고 확장된 당나라의 최대궁전인 대명궁의 정전인 함원전 정면 길이가 67.33m   
    
북경  자금성에서 가장 큰 건물 태화전 정면 64m   


동대사 크기는 높이 48m, 가로 57m, 세로 50m라오. 안의 대불은 15미터  =>우리 백제인에 의해 건립.   



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남북국 시대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623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3%80%EC%A7%80%EB%A7%88%ED%95%A0&sop=and����
    

    
고구려는 안학궁으로부터 750m 떨어져 있는 유사시를 대비한 배후 산성이   
    
대성산성으로 전체 9km가 넘고 둘레는 7km가 넘으며 남문이 있는 골 안에서는 2   
    
중으로,주작봉과 국사봉 골 안에서는 3중의 겹성에 내부에는 연못이 자그만   
    
치 170여개가 존재.   
    
http://blog.naver.com/bestchoi21/20018007630��-> 대성산성 사진   


우리나라의 고대 도시 축조 역량과 위엄.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1138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3%80%EC%A7%80%EB%A7%88%ED%95%A0+%EB%B0%9C%ED%95%B4&sop=and����
    

북위의 권력을 쥔 고구려인   

http://blog.naver.com/csred7/80130397982����
    
고구려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여 문지기·말먹이의 집에 이르기까지 거리마다 큰집을 지어 경당이라 부르며 자제가 결혼하기 전에는 밤낮으로 이곳에서 책을 읽고 활쏘기를 익힌다"   

-구,신당서 열전(列傳)-고려(高麗)   

고등교육 기관인 태학 뿐 아니라 1600여년 전  문무겸비   
세계 최초의 평민교육기관-고(구)려의 경당   
http://cafe.daum.net/hankookhistory/47AT/27?q=%BC%BC%B0%E8%20%C3%D6%C3%CA%C0%C7%20%BC%AD%B9%CE%20%B1%B3%C0%B0%B1%E2%B0%FC%20%B0%E6%B4%E7����
     
냥냥뇽뇽 18-09-21 20:51
   
오메 정리 고생하셧습니다 잘볼게요
     
화난늑대 18-09-22 01:26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링크가 깨진게 아쉽네요
     
깁스 18-09-22 07:18
   
엄지 척척척척척~!
     
기성용닷컴 18-09-22 20:07
   
항상 좋은 자료들 감사합니다~
su수 18-09-21 20:54
   
번역 잘 보았습니다.
냥냥뇽뇽 18-09-21 20:58
   
조인성 좀 아쉬운게 . . .목소리가 ㅠ 군대 다녀오지않앗나? 장군목소리에 이상하게 잘 안어울려 ㄷ
     
bluewolf 18-09-21 20:59
   
ㅋㅋㅋㅋㅋㅋ
     
ckseoul777 18-09-22 23:14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미 18-09-21 21:01
   
저 중국놈 너무 무식하다.

고구려의 이름이 고려인데 고려가 코리아고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bluewolf 18-09-21 21:02
   
칭기즈칸을 중국인이라고 가르치는 나라가 중국인데
죽기 전까지도 제대로 알기 힘들듯요
     
굿잡스 18-09-21 21:09
   
고(구)려(KOREA)가 오늘날 대한민국(KOREA) 역사인 이유(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자체가 

고종황제의 대한제국 즉 고(구)려, 백제, 신라의 대삼한을 아우르는 국호를 이어받아 오늘날 대한국민 

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대한민국 국호로 당당하고 도도히 계승 발전.) 


1.한국인의 혈통 

 한국인은 백제와 신라 외에도 많은 고구려인의 피를 이어받았다. 남북국시대 신라의  9주 중 3주(오늘날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일대)가 고구려의 옛 지역에 설치됐고,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고구려 왕조의 지배를 받던 고구려인이었다. 고구려인의 인구가 적어도 통일 신라 인구의 1/3 즈음에 육박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로 경주를 지키던 9서당 중 3서당인 황금서당, 벽금서당, 적금서당이 고구려인으로 구성된 부대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듯하다. 이 수치는 오히려 백제인의 서당 부대였던 흑금 서당 개수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남국 신라 인구 중 고구려인의 비율이 백제인보다도 오히려 많았다고 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서당의 숫자로 인구 비율을 추측하는 것은 분명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것을 분명한 논거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고려 전성기나 조선 시대를
 보면 남북국시대의 신라보다 훨씬 세력권이나 지배영역이 확장된건 말할 필요 없을 것이고) 

  남북국 시대 신라 시기 고구려인들은 9주와 패강진을 제외한 신라 남부 지역에도 많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라북도 익산(금마저), 경상남도 진주(강주의 중심지)에는 당시 고구려 유민들이 상당 수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덕국왕이자 보장왕의 아들이었던 서자 고안승은 신라왕에게 김씨 성을 하사 받고 경주에 거주하였다. 이 사실은 오늘날 한국 성씨의 다수를 차지하는 김씨 성 중에도 상당수 고구려 유민 특히 고구려 왕족 안승의 후손도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발해 멸망 후에도 많은 고구려 혈통이 고려로 귀순하여 오늘날 한국인의 조상이 됐으며, 이후 고려, 조선조가 평안도, 함경도 지역을 수복하면서 그 지역에 살던 다수의 고구려인의 후예들도 우리 역사 무대에 다시 들어와 오늘날 한국인의 조상이 됐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한국에는 고구려인을 조상으로 삼는 성씨가 여럿 있다. ㅡ 물론 조선조를 거치며 성씨가 많이 뒤바꼈기 때문에 성씨로 조상을 따진다는 것은 아주 믿을만한 것은 아니다 ㅡ 오늘날 진주 강씨, 횡성 고씨, 봉성 온씨, 협계 태씨 등은 고구려인들을 시조로 모시는 성씨들이다. 이러한 혈연적은 계승은 한국인이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직접적인 증거인 것이다. 
  
 2.한국어 

한국어에는 많은 고구려어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고구려어 수사가 현재 한국어 수사와 일치하지 않는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한국어가 고구려어의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00년 임병준이 제작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있는 고구려어 어휘 70여개 중 50개 내외의 단어가 현대 한국어와 관련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의 관련성은 한국어가 고구려어의 직접적이고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고구려어가 일본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한국어와 관련이 적다는 말은 기존의 일부의 주장은 옳다고 볼 수 없다. 한국어는 분명 고구려어를 계승한 언어이다. 
  
  
3.국호 Korea 

  세계에 고구려의 국호를 나라의 국호로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Korea는 고려에서 나왔고, '고려'는 고구려 중엽 이후 고구려인들이 직접 사용했던 고구려의 국호였다. 오늘날 '고려'라 하면 왕건의 고려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고구려라는 단어 대신 '고려'라는 말은 고구려라는 의미로 썼고, 오늘날 한국과 중국에 남아있는 많은 지명들에서는 '고려'라는 명칭이 고구려의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한국은 오늘까지도 고려(고구려)라는 나라 이름을 쓰는 나라이다. 
  

4.계승 의식 

 고구려 멸망 후 통일 신라, 발해 시대에도 고구려 계승 의식을 유지했고, 이는 고려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강화되어 오늘날 한국에 까지 이어졌다. 고구려 계승 의식이 계속 전승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가진 고구려 유민들이 통일 신라 사회, 발해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귀족의 지위를 어느 정도 유지했다는 점이다. 발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남북국시대 신라에서도 고구려 귀족은 백제 귀족들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았다. 백제 귀족이 4, 5두품으로 몰락한 반면 고구려 귀족은 6두품 신분을 계속 유지했고, 고구려인의들의 탄탄한 세력은 이는 결과적으로 태조 왕건의 고려라는 나라가 세워질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고려 건국의 주축 세력이 과거 고구려의 영역이었던 패서 출신이었다는 점을 본다면 적어도 초기 고려의 귀족들은 상당수가 고구려 혈통을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보아야 옳다. 패서 지역은 고구려 시기 고구려 3경(평양, 국내, 한성) 중 한 곳이었던 한성(재령, 장수산성)이 있었던 곳이고, 고구려 계승 의식이 매우 강했을 수도 평양과 강 하나를 두고 있는 지역인 만큼 순수 고구려 혈통을 지닌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이들은 고구려 변방의 고구려 계승 의식이 적었던 거란, 말갈(여진)인들과는 달랐다. ㅡ 이런 까닭에 오늘날에도 만주족들은 발해에 대한 계승 의식은 밝힐 지언정 고구려에 대한 계승 의식은 거의 갖고 있지 않다. ㅡ태조 시기 황해도 평산, 봉산 지역을 뿌리로 삼으며 등장하여 이후 고려의 귀족들이 된 성씨들의 경우 고구려인의 혈통과 상관이 있다고 보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발해 멸망 후 발해의 유민들이 고려 귀족들에 합쳐지면서 이런 고구려의 계승 의식은 한층 강화되었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고구려의 후손을 자처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4.평양이라는 도시 

 평양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유구한 전통을 지닌 도시이다. *오늘날 학계 연구를 보면 
평양은 고유 명사보다 일반명사로 보이면서 여러 군데가 존재하는 듯 하며* 평양은 동천왕 시기 일시적으로 고구려의 수도인 적도 있었고, 고국원왕 시기에도 잠시 수도로 삼은 적이 있었다. ㅡ 물론 고국왕왕 시기 평양 동황성을 오늘날 평양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ㅡ 427년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를 한 후 평양은 한국 역사상 최강국이던 고구려의 전성기 시절을 보낸 곳이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고구려의 유명인들인 연개소문, 을지문덕, 온달, 영양왕, 보장왕, 연남생 등의 고구려인들은 평양을 무대로 활동했고, 고려 시대에는 평양을 수도 중 한 곳인 서경으로까지 삼아 매우 중시하게 됐다. 조선조에도 평안도 지역에서 오늘날로 치면 광역시, 거점 중심 도시일 '부'(평양부)의 자위를 받은 평안도 지역의 유일한 도시이기도 했다. 이러한 정서는 오늘날 한국인에게까지 고구려의 수도이자 북방 지역의 중심지 '평양'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분단된 북한 지역의 수도가 평양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평양이 한반도 북방의 중심지였던 것은 적어도 수천년 전인 고조선, 고구려, 고려의 서경 시기와 그 연원이 닿아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평양은 분명 고구려가 한국에게 물려준 큰 고구려의 유산임이 분명하다. 
  
5.거문고 

 한국 국악의 양대 현악기는 거문고와 가야금이다. 가야금이 남방의 가냘프고 여성적이며 섬세한 음률은 내는 악기라면, 거문고는 북방인의 단단하고 거칠고 투박한 음을 내는 악기이다. 왕산악이 만든 이 악기는 고구려의 소리를 전해주는 악기이다. 오늘날까지 한국인들은 거문고를 한국의 중심 전통 악기로 계승 발전시켜왔다. 고구려 멸망 후 거문고는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 거주하던 고구려 유민에게서 전수돼 온 한반도로 퍼져나가 계승됐다고 한다. ㅡ 출처 : 위키ㅡ  옥보고는 고구려의 거문고에 많은 곡들을 붙여 명실상부한 한반도 전체의 악기로 확립하는 역할을 했다. 고구려의 악기를 사용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오직 한국뿐이다. 한국은 분명 고구려의 음악을 계승한 나라이다. 
  
  
6.해서탈춤(복식) 

  

한국의 황해도 일대에서 전승돼 오는 봉산 탈춤과 같은 춤들은 본래 해서 탈춤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봉산탈품은 약 200년 전 생겼지만 그 연원은 훨씬 오래 전인 고구려까지 추측해볼 수 있다. 봉산 탈춤의 춤사위는 무용총에 그려진 한삼을 손목에 잡고 춤을 추는 고구려인의 춤사위와 매우 닮아있다. 한국 춤에만 남아있는 한삼은 부드러운 선을 표현하는 춤 도구로서 한국 이외에는 없는 매우 독특한 춤 도구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인의 느린 3박자의 전통 춤사위는 고구려인의 춤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7.온돌 

  오늘날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온돌은 본래 부여와 고구려 등 만주와 북부 한반도에서 쓰이던 난방 장치였다. 이후 한반도 전역으로 전파됐다. 이 특이하면서도 매우 효율적인 장치 온돌은 일본이 빼앗아간 조선 건물에 하룻밤을 묵던 미국인이 너무나 효과적으로 난방을 하는 조선 건물의 온돌이라는 장치를 보고 오늘날 현대식 보일러의 영감을 얻었다고도 알려져있다. 전 세계인이 지금은 향유하는 이 온돌은 중국, 일본에는 본래 없는 고구려인의 요소를 계승한 한국의 전통적인 난방 장치이다. 
  
*오늘날 고고학적 상황에선 고조선시대 우리 열국중 하나인 북옥저에서 온돌의 기원으로 
보는 비중의 무게가 높으며 이 북옥저는 이후 고구려에 흡수되어 고구려의 전통 난방양식으로 나아가 오늘날 우리 고유의 난방으로 현대에까지 이름. 

 8.별주부전 

별주부전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서사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김춘추가 연개소문을 만나러 평양을 방문하여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건질 수 있게 귀띔을 해준 고구려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별주부전이 고구려에서(아마 신라에서도) 널리 퍼져있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별주부전은 한국 서사 문학 작품으로 고려, 조선 시대를 거쳐 오늘날 한국에까지 이어져왔다. 
  
  

이밖에도 문학면에서 고구려는 한국 한문학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시 황조가, 여수장우중문 시 등 뛰어난 고구려의 한시 작품은 오늘날 한국 한시의 거의 시조격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다. 한국인들의 고려, 조선 시대 시기 뛰어난 한문학 실력은 고구려인에게도 물려받은 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고구려인은 매우 문학적인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이 입으로 아님 글로 남긴 여러 서사 문학 작품들과, 벽화에 나타나는 별과 천체에 대한 고구려인의 상상력은 한국인의 우수한 언어 감각, 과학적 상상력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9.한국성의 '치' 

조선조 까지 한국 성에는 ‘치’라는 독특한 구조물이 있었다. 치는 본래 고구려의 성에 있는 시설로 적을 사방에서 포위하여 공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이러한 시설은 조선조 시기 지어진 수원 화성에도 잘 나타나는데, ‘치성’이라는 구조물로 남아있다. 한국 축성술에는 과거 우수했던 고구려의 축성 기술이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치’와 같은 축성법은 중국, 일본성과는 차별되는 한국의 전통 축성 기술이다. 이러한 축성술의 계승은 당연히 통일 신라, 고려 시대 고구려 축성술을 아는 고구려인들을 통해 전수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치는 앞선 요하 고조선 선대 신석기 홍산문화에서 이미 그 원형이 나옴. 

  
10.씨름, 태권도(수박도) 

고구려 각저총 벽화에는 현재 한국의 전통 투기 종목인 씨름으로 보이는 힘겨루기 경기 장면이 나온다. 각저총에 나오는 자세로 겨루기를 하는 경기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한국의 씨름이 거의 유일하다. 세계에서 고구려의 각저총에 나오는 씨름을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요새 침체기를 맞고 있는 전통 씨름은 본래 한반도 전역에서 널리 행해졌던 전통 투기 종목이었다. 한국의 전통 씨름은 분명 고구려에서 유래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국기 태권도의 기원 역시 고구려에서 찾을 수 있다. 안악3호분 벽화에는 마치 오늘날 택껸을 하는듯한 자세로 손으로 무예를 겨루는 장면이 나온다. 수박도는 고려, 조선 시기에도 행해졌고, 오늘날 태권도의 성립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삼국, 삼한 -역사기록 

중국, 일본의 어느 전통적인 사서도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기술한 역사서는 없다. 한국의 삼국사기, 제왕운기, 삼국유사 등 고려 시대 쓰여진 사서에서는 고구려를 분명한 한국사의 일부로 기술하고 있다. 이렇듯 사서에 고구려를 자국사로 서술한 것이야말로 고구려가 한국사의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일부이며 20C 후반에 들어와 중국에 내새운 고구려가 중국사라는 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분명히 꼬집는 증거이다. 이런 사서의 증거 때문에 중국에서도 고구려가 한국사가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 가령 중국인들이 쓴 중국어판 위키백과를 보니 조선의 역사의 일부로 고구려를 분명히 기술해 놓았더라. 
  
http://islmoa.blog.me/120132382482
          
ckseoul777 18-09-22 23:15
   
유용하게 작성한글 잘봤습니다^♡^
칼까마귀 18-09-21 21:15
   
중국인 헛소리는 역사 교육이나 받는지 의심스러운 국가임
가새이닫컴 18-09-21 21:26
   
ㄴwic wong
위,촉,오는 중국이라는 하나의 구성체를 이루었던
한 왕조의 연장선에 있어. 고구려는 무엇의 연속이지?




ㄴTae-whan Kim
고조선




ㄴwic wong
신화를 말하는거니? 아니면 실제를 말하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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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들이 물고빠는 한나라가 고조선이랑 전쟁을 벌인 역사는 국끓여먹었나ㅋㅋㅋㅋ
     
칸헤원 18-09-21 23:04
   
고조선과 함께 부여도 확실한 연장선 중 하나
골드에그 18-09-21 21:26
   
잘봤습니다.
무한의불타 18-09-21 21:29
   
우리 민족이 활을 잘 쏘는 이유는?
움직이는 과녁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ㅋ
BTJIMIN 18-09-21 21:57
   
번역 감사합니다
니꼬치다 18-09-21 22:03
   
찰갑과 맥궁이 없는게 아쉽네요..
유일구화 18-09-21 22:27
   
도레미솔
유란 18-09-21 22:32
   
쟤네는 Korea가 어디에서 유래된건지 모르는듯
로메 18-09-21 22:51
   
조인성 같은게 "배우" 라는게 참 쪽팔린 일...
북창 18-09-21 22:59
   
하...저 짱깨 새끼들을 어떡해야 하나...
레떼느님 18-09-21 23:01
   
ㄴwic wong

아니,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는 영화야. 

하나의 구성체로서의 한국은 이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어



ㄴ 와 이뎃글 소름돋네
구르미그린 18-09-21 23:05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아시아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민족해체 외국인대량이주를 통한 다민족국가화를 국가정책 기조로 계속 추진하는 탓에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항할 힘이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민족 개념을 해체하면, 지금 중국영토에서 일어난 고구려 발해사에 중국이 할 말이 많지, 한국은 할 말이 없어집니다.
18세기 말 유득공은 고려가 발해사를 편찬하지 않은 점을 한탄했는데 21세기 한국은 아예 민족 개념을 날려먹고 있으니
한국에 가장 큰 해를 끼치는 이는 일본인도, 중국인도 아니라 외국인 대량이주 정책을 추진하는 재벌 세력입니다.
     
깁스 18-09-22 07:20
   
??? 지정도면 아주 심각한 병인데
최초의 외국인 출신 국회의원을 만든게 누구더라
그리고 민족의 개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더라 ㅉㅉㅉㅉ
코허니처럼 슬슬 닉 탈피중이신가
구르미그린 18-09-21 23:05
   
경제사회정치문화 모든 것은 국내 인구가 만들기에, 인구 구성을 바꾸는 외국인 대량이주는 노동/부동산 시장 등 온갖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정치인, 관료들이 외국인 대량이주의 영향을 무시하고 노동/부동산 정책을 펴니 정책이 현실과 엇나갑니다.

유시민은 "일본이 인구가 줄어 집값 떨어지고 청년취업 쉬워졌는데 한국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현정부 정책도 그런 인식을 기반으로 나오는데
독일은 1972년부터, 이탈리아는 1993년부터 연간 신생아 수 < 연간 사망자 수를 계속 기록해 인구감소세지만, 집값이 떨어지지도, 청년취업이 쉬워지지도 않았습니다. 자국민 인구 감소를 외국인 대량이주로 메웠기 때문입니다.
EU 주택보급률은 평균 130퍼센트입니다. 일본은 1960년대 말 주택보급률이 100퍼센트 넘었는데 그후 집값 계속 올랐고, 아베 정부가 무제한 돈 풀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니 도쿄 집값이 버블경제 시기 집값을 넘었습니다.

어제 썰전에서 두 국회의원이 "집값급등 때문에 청년세대가 결혼 못해 출산율 떨어진다"고 말하면서도 "주택보급률이 100퍼센트 넘었으니 규제 강화해 투기꾼만 잡으면 집값 안정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던데,
한국 신생아 수가 세계역사상 가장 빨리 줄어들고 있는 지금도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한국이 고구려 발해사를 지키기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중국은 최근 연간 신생아 수가 90년대에 비해 15퍼센트 정도 감소한 1750만 내외로 한국의 60배에 가깝습니다.
한중의 인구차이는 수/당 VS 고구려 인구차이보다 큽니다.
그렇게 18-09-21 23:11
   
ㄴAsian Dogs Saving Plan
아이고 또 한국인들 헛소리하네 ㅋㅋ 실제 당나라 군대는 3만명이고,
고구려는 20만명이었어(대부분 성안에 숨어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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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친 나라가 공성하는데 성안에 병력이 20만인 군대에 3만을 들이 민다디?
중국은 진짜 이런거 믿어?
무식이 너무 심하잔아.
공성하는 병력이 수성 병력보다 10배이상이 되야 할만한싸움이지.
역사를 판다지로 배우는것들...
     
촐라롱콘 18-09-22 11:11
   
고구려군 20만이 당나라군 3만과 상대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주필산 전투를 말하는듯.....!!!

사서에는 고구려군 15만이 당나라군 이세적과 장손무기가 이끄는 각각 1만5천명 총 3만명의

유인-협공 작전에 말려들어 패했다고 하니....

물론 주필산 전투에서의 고구려군 15만명은 다소 과장인 듯 합니다.

주필산 전투에서의 당나라군 병력 또한 고구려군에게 직접 공세를 가한 병력은 3만 정도가

어느정도 정확하지만... 전투를 수습하고 포로들을 획득하는 과정에서는 후방에 대기하던 더욱

많은 당군이 참여했습니다.
.
.
.
그리고 결론적으로 당시 동북아 주변 정세를 보면 당태종이 안시성에서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오르도스지역(오늘날 중국 섬서-감숙성일대)의 투르크족 계통의 설연타가 당나라군이 대거

고구려원정을 떠난 틈을 이용하여....  당나라 북방을 휘젓습니다.

당태종의 당나라군이 안시성에서 철수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물론 예전 국사시간에는 오직 우리민족만이 잘나서 당나라군을 물리쳤다고 배우지만....

비슷한 경우로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신라가 최종적으로 당나라군을 몰아낼때에도

신라만이 잘나서 당나라군을 몰아낸 것이 아닙니다.

때마침 당나라 북방의 돌궐과 당나라 서쪽의 토번(오늘날의 티베트)이 당나라에 공세를 가하는

바람에.... 당나라군 또한 한반도 방면에 병력을 집중할 환경이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돌궐, 토번 또한 고구려 또는 신라가 당나라군의 상당병력을 어느정도 묶어놓았기 때문에

수월하게 당나라를 공략할 수 있었음은 당연합니다....!!!

예전 국사교과서들을 보면 이런 주변정세와의 유기적인 부분들은 생략하고

오직 우리만이 잘나서 전쟁을 이겼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또한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의 용인전투, 쌍령전투처럼 적군들보다 수 십배 많은

압도적인 병력을 가지고도 어이없고 치욕적으로 패한 전투는 거의 언급조차 없으니......
     
굿잡스 18-09-22 14:48
   
고수, 고당대전을 단순히 수백만이 맞붙은 큰 규모라서 문명대전이 아니라 전통적 우리 동방문명과 서토 문명간의  대규모 충돌 양상으로 이에 따른 동아시아 수많은 종족들이 참여한 고대 세계 대전급이였기 때문.

그리고 서토 내륙인들은 기본 보병 위주였기에 기마민족들의 육중한 기병과 빠른 기동성에 상당히 취약했지만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선비족이 남하 북조 정복사를 열고 북조 왕조가 남조까지 병합하면서 등장한게 서토 수나라 통일 왕조.

이에 따라 서토도 선비족의 영향으로 기존 물량빨에 대규모 기병 운용까지 가능해지면서 북방 유목세력을 압도하는 상황이 도래. 그렇게 깨갱하던 북방 유목민들이 연이은 고수전쟁으로 결국 수나라가 멸망하고 혼란기로 접어들자 다시 기지개. 이후 신생 당나라가 들어서고 다시 체력을 회복한 당나라는 이세민시대에 가서 북방유목세력을 압도하며 연전연승하자 전쟁의 신으로까지 추앙받았던 것이고.

그런 이세민이 직접 수륙양공으로 100만 대군을 친히 끌고 왔던게 다시 불붙기 시작한 고당대전으로 당시 당나라의 상비 운용 군사수가 60만 정도였으니 이번 친정온 당의 고구려 침공에 당도 전국력을 기우린 총공세적 성격에 당  역시도 여러 주변종족을 활용, 연합해서 싸웠고 당의 이런 전략은 2차 고당전쟁에서 양상이 더욱 두드러졌던 대전.

그리고 임진시기 용인전투 어쩌고는 이런 고수,고당 전쟁과 비교하는건 맞지 않는 정황.

기본적으로 어느 왕조도 초창기가 왕권이 강한게 일반적이고  특히나 이런 수,당은 실전에 대규모 기병운용까지 가미된 절정기에다 착실한 군사훈련 준비도 끝낸 병사들로 막대한 물량과 병력수에도 대패를 했던데 비해

조선 역시도 초기 이성계는 만주 상당수의 여진족 부족을 영향력 아래 두면서 무시못할 군사강국이였지만 임진왜란 이전까지 200여년동안 이렇다할 큰 전쟁이 없을 만큼 평화시기가 이어지면서 북방 일부를 제외하고 제대로된 군사 훈련이나 병력도 갖추지 못한 해이해졌던 시기에 왜국은 전국시대를 통해 실전을 거듭해온 병력에  기존 조선 해안가를 노략질해오던 치고 빠지는 왜구 양아치급 병력만 보아왔던터라 대규모 기습전까지 강행하면서 이 역시 제대로 예상,방비하지 못하면서 조선은 급조된 일반 농민들이 대다수였던 상황. 그러함에도 조선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과 조선의 이순신 제독이 이끄는 선진 수군함대의 활약으로 점차 숨통이 터이고 시간을 벌면서 이런 급조된 조선의 일반 농민들 조차 실전을 거듭하며서 점차 정예로 탈바꿈. 육진에서도 왜군을 몰아내기 시작했던것.

용인전투로 수시로 쨉빠들이고 쾌감이나 부심질 혹은 고수, 고당전쟁사과 비교하는건 마치 현대에 우리나라 고작 대,소대급 병력이라도 정예군이나 특수부대가 제대로 총 한번 잡아 본적 없는 그것도 제대로된 무기도 갖추지  못한 상당수 급조된 쨉의 일반인들로 구성된 상대로 많은 쪽수라도 거친 총격전 몇방에 패닉되어 도망간걸로 대승 어쩌고 부심질하는 것과 다를바 없는 격.
최순실 18-09-21 23:17
   
양옆이 미침
권선비 18-09-21 23:17
   
중국은 자기 역사서에도 기원전 조선(현재는 옛날 조선으로 고조선으로 부름)에 대해 이곳저곳 기술해 놓고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세뇌되어 고조선을 시노하로 해석하지요. 그러면 자기들 역사서가 역사가 아니라 다 신화라는 자승자박에 빠지는데 말입니다.
역사에서는 중국이 일본과 유사한 게 한국의 역사를 못잡아 먹어 안달입니다. 그게 일종의 열등감 때문입니다. 중국은 지금 중국이 한족의 역사를 영광스럽게 포장하지만 한족이라는 개념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전통을 조작한 것처럼 몇백면 되지 않는 허구입니다. 실상 중국은 그들이 오랑캐라고 하는 몰골, 흉노, 여진, 거란, 만주족(친 고조선, 또는 고구려 계통)에게 수천년 지배받은 역사가 대부분입니다. 그것을 현재의 자기 영토(속지주의)에서 발생한 나라들이니 자기들 역사처럼 기술하고 있죠.
일본은 더 심합니다. 한반도 삼국 시대에 경쟁에서 밀린 가야, 백제, 고구려, 신라계 도래인들이 세운 아스카, 야마토가 존재 없는 일본 혈통 민족의 국가라고 하죠. 심지어 일본 천황도 백제계 후예라고 인정했는데, 이제는 왕도 문제라고 비판합니다.
외국인들은 제3자적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보면서 중국과 일본의 한국을 의식한 자국의 역사왜곡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쵸코성태 18-09-21 23:28
   
짱개와 쪽바리는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려 왜곡하는 판타지 역사
반면 한국은 모든게 기록에 의한 사실적인역사
짱개와 쪽바리가 수탈해간 역사서만해도 엄청 날건데 ㅋㅋㅋ
아크로 18-09-21 23:34
   
Asian Dogs Saving Plan
아이고 또 한국인들 헛소리하네 ㅋㅋ 실제 당나라 군대는 3만명이고,
고구려는 20만명이었어(대부분 성안에 숨어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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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좀 해라, 아무리 문맹 대국이라 해도.
당나라가 대규모로 고구려를 공격했다가 패한 수양때와 이세민 때의
역사는 너희 중국 역사에도 기록되어져 있다.
공부도 하지 않은 놈이 거짓 조작질 하려는 걸 보니 혹시 네 놈 일본인 중
전쟁광 혈족 혼혈인게냐?

wic wong
아니,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는 영화야. 
하나의 구성체로서의 한국은 이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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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 뇌를 분실한 듯.
결국은 중국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는
사실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모자란 녀석.
가출한술래 18-09-21 23:50
   
잘 보고 갑니다
푹찍 18-09-21 23:51
   
대한민국 = korea = 고구려 라는 국명으로 끝난거 아니냐 ㅋㅋㅋ
위스퍼 18-09-22 00:29
   
고구려가 어느 나라의 역사인지 중국과 다툴 필요없죠.
제 3자인 터키인들한테 물어보면 객관적으로 대답해줄겁니다.

터키의 뿌리인 돌궐과 고구려는 사실 같은 민족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가까웠으니까요.
오늘날에도 터키인들은 정식 교육과정에서 고구려 관련 역사를 제대로 배우기 때문에
한국인들을 가족이라고 여겨 굉장히 좋아합니다.
괜히 형제의 나라가 아닌 것이죠.
     
하늘나비야 18-09-22 00:48
   
러샤 학자들도 고구려는 한국 역사라고 하더군요  중국만 지들 조상이라고 우기고 있죠  고대에 자기 조상들 보다 좋아 보이면 조상도 갈아 타는 게 중국인인것 같네요
     
위스퍼 18-09-22 00:59
   
터키와 고구려 관련해서 하나 더 재미있는 것이
터키인들은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끼기 때문에
한국에 올때 자신들을 가족을 맞이하는 것처럼 반겨줄 것이라 생각하는데
우리는 국사시간에 돌궐(투르크)이 터키라는 것과 돌궐과 고구려의 친밀성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터키인들이 형제의 나라라고 하면 
물음표를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컬쳐쇼크를 느낀다고 하네요.
불청객 18-09-22 02:08
   
중공에서 한국인들을 비하할 때 쓰는 단어인 까오리빵즈(고려봉자, 高麗棒子)가 언제부터인가 까오리(高麗)가 사라지고 빵즈만 쓰여지는데 고구려를 자국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을 염두에 둔 수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자신 18-09-22 02:57
   
짱깨로 보이는놈들이 있네 열폭하는것로밖에 안보인다 왜냐고 안시성전투는 당나라에게 굴욕이였거든 수치이고 중국에게 있어도 흑역사거든 최근에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를 짱깨역사로 만들렸는 수작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에서 고구려에 대한 관련 영화가 나오니까 열받겠지 짱개들은
탈곡마귀 18-09-22 03:50
   
아이고 또 한국인들 헛소리하네 ㅋㅋ 실제 당나라 군대는 3만명이고,
고구려는 20만명이었어(대부분 성안에 숨어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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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고구려가 20만이고 짱깨가 3만이였다 치자...그럼
20만 대군이 있는 견고한 성에 3만 명을 꼴아 박으면 그게 돌대가리들이지...
"우리 중국인은 약한게 아니라 멍청한 거야~!!!!" 라면서 구라치는 꼴이네.;;;
욜라 당황스럽다.
잠원동건달 18-09-22 06:35
   
떼놈들 말은 저렇게 해도 우리나라사람보고 팡쯔라고 하잖아요.
그게 고구려때 카오리 팡쯔에서 나온 말이란 것만 봐도 고구려 = 한국이란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는 거죠.
삼국이 서로 말이 통했다하고 그 언어를 우리가 이어 받아서 쓰고 있는데 우리가 삼국의 후계자가 아니면 누가 후계자겠어요.ㅋㅋ
     
줄리엣 18-09-22 10:19
   
한국어도 중국어의 소수민족어라고 동북아공정에 슬 집어넣는건 언젠가 오랜시간이 흘러 기회만 오면 티벳처럼 한국을 먹을 생각이라는걸 알수 있네요..
아마도 그때가 되면 저절로 한글도 중국역사에 편입되고 중국은 자신들보다 월등한 한글을 사용하고 한국어도 중국어라면서 사용할듯 .....
버벅이010 18-09-22 09:51
   
번역,댓글 모두  잘 보았습니다.
왕호영 18-09-22 10:08
   
일단 중국내 삼국사기 삼국유사 급의 역사서도 없으면서 저러는것보면 중화뽕이 보통이 아니긴하네요
우디 18-09-22 10:17
   
트럼프가 다시 위,촉,오 로 나눠줘야 할텐데.....
기성용닷컴 18-09-22 10:17
   
번역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가요~
Korisent 18-09-22 10:31
   
무식한 차이나 한마리가 갲ㅇ했네요.
kuijin 18-09-22 10:42
   
진짜 당시의 고구려가 중국 뚝빼기 브레이커였는데....망할리가 없었던 수나라가 몰락하고 당나라가 몰락 직전까지 몰릴정도로 전쟁에서 학살을 했었음....
흙탕물 18-09-22 10:43
   
고구려 수도가 평양인데 한국 문화가 아니라는 짱깨는 공산당 쓰레기들의 세뇌교육 받아서 미쳐버린건가
     
위스퍼 18-09-22 10:52
   
그런 의미에서도 평양 보유자인 김정은 위원장의 판단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번에 온 기회는 천재일우예요.
반드시 탈중국하고 한미와 함께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야 합니다.
ㄱㄹㅊ극혐 18-09-22 11:33
   
애초에 코리아가 고려에서 온거고 고려가 고구려의 장수왕때부터의 명칭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한건데.
대체 무슨 고구려가 중국사라고 우기고 한국을 계승 안했다고 개소리야 오늘날까지 영어명으로 쓰고 있는 국호구만.

암튼 스벌럼의 짱깨 ! 짱깨 !

뻑큐 ! 뻑큐 !
짱깨 짱깨 짱깨 카레야~
완전 짱깨~ 레알 짱깨~
짱깨 짱깨 돌은 짱깨야~
미친 짱깨~ 좀 씻어라~
인도 인도 인도핵맞어~ 우후~
아리온 18-09-22 12:52
   
역시 중한전쟁영화니까 물타기 시도하려는 중국놈들이 몰려드는구나. ㅋㅋㅋ
식보이 18-09-22 13:45
   
세계 어딜가도 짱개는 존재하네 무섭다
성당턴스님 18-09-22 17:20
   
한나라, 그것도 동북아 강국인 고구려를 치러오는데, 3만을 데리고 오면, 어느 누가 긴장하겠으며, 3만이 처들어오는데, 막대기, 짱돌이 몇개씩 들고 나와도 이길거 같은, 20만이 뭐하러 성안에서 옹성을 할까..도대체 머리 속에 뇌가 들어 있긴 한지 의아할 지경..설마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이유가 숫적 징그러움이 아닌, 지능의 문제였던가?
볼케이노 18-09-22 22:59
   
역시 색안경 끼지 않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중국 내에서도 한류가 대단한 거 같아요
중공 댓글부대만 아니면 중국 진짜 여론을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ckseoul777 18-09-22 23:16
   
하여간 짱개 새 끼들이란 열도 방숭이 새 끼 들이랑 진짜 도움안돼는 족속들!!!
로얄블루 18-09-23 07:30
   
고당전쟁 당시 안시성을 못치면 오골성이나 신성으로 가면 되는데 실제 이세민은 그렇게 못했죠.
그렇게 움직이지 못한 이유중 하나가 주필산에 건재한 9만 이상 고구려 본대 때문입니다.
주필산 전투에서 고연수, 고혜진 잡긴 했지만 이들은 주력일 지언정 본대는 아니었죠.
(그리고 고연수, 고혜진은 위두대형, 대형의 관직이라 최고 지휘할 수 있는 병사는 3만이 한계였습니다.)
만약 이세민이 오골성으로 움직이는 순간 본대 역시 오골성 쪽으로 군대를 보내서 수비력을 증강하고
순식간에 이세민의 당군이 오골성, 안시성  주필산 쪽 본대에게 포위되는 샌드위치 형국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세민은 무리하게 안시성을 공략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안시성을 두고 가기엔 후방이 너무 위험했고,
주필산에서 불안정한 승리를 거둔 이세민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안시성 공략뿐이었죠.
관측 18-09-23 11:47
   
번역 감사합니다
직장인 18-09-23 12:09
   
번역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주제는 댓글이 재밌죠.. ㅎㅎㅎ
batuu 18-09-24 17:54
   
고구려 역사를 통채로 중국에 빼앗길 위기이기는 하지만
코리아가  고구려에서 나왔는다는 걸 인지하고 다른 나라에 알려야
중국이 한국을 하대할때 부르는 말도 고려 방쯔라고 부르는데
고구려와 상관없다고 우기다가도
욕할때는 가오리빵즈라고 욕함
ckseoul777 18-09-27 01:17
   
안시성 다른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진짜 재미있어요^^
명불허전 18-09-28 19:26
   
짱깨들 입장에선 대가릿 수로 밀어붙여 다구리 놓으려고 했는데 탈탈 털렸으니 완전 쪽팔리겠지.
인드라망 18-09-29 05:00
   
저도 안시성 봤는데요, 개인적으로 연개소문 역의 유오성과 양만춘역의 조인성 역이 좀 아쉽더군요. 좀 더 카리스마 있고 중량감 있는 배우로 캐스팅 했음 좋았을뻔 했어요. 개인적으론 연개소문 역에 최재성이 떠오르더군요. 양만춘은 생각이 잘안나지만.. 조인성이 영화내에서 무게감이나 카리스마가 좀 떨어졌던건 사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