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가리산 중턱에는 ‘천자묘’라 불려오는 무덤이 있다. 소양호변에 자리한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는 현재 몇몇 가구만 사는데 쓸쓸한 산골마을로 쇠락한 이 마을에서 천자묘 이야기는 시작된다.
옛날에 한(漢)씨 성을 가진 머슴이 이 마을에 살았다. 하루는 두 명의 스님이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자 주인은 “방이 없으니 머슴방이라도 괜찮으면 자고가라”고 했다. 방에 들어간 스님들은 머슴에게 계란을 구해달라고 하자 머슴은 스님들이 고기를 안 먹으니 달걀이라도 먹으려는 줄 알고 계란을 삶아다 줬다. 그날밤 머슴은 잠결에 스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데 그들은 가리산 명당터를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이튿날 머슴은 그들을 몰래 뒤따라 갔다. 소양강을 건너 산으로 들어가더니 산세가 좋은 곳에 이르러 계란을 파묻고는 축시에 부화해 닭이 울면 천자가,인시에 울면 역적이 날 자리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자 “천자도 역적도 아니 나겠다. 닭이 축시에 울어도 금으로 관을 쓰고 황소 100마리를 잡아 제를 지내야 하니 웬만한 사람은 묘를 쓸수도 없을 것” 이라며 산을 내려가 버렸다.
그후 머슴은 역적이 되더라도 종놈의 신세보다 낫겠나 싶어 돌아가신 아버지 시신을 그곳에 묻기로 했다. 그는 꾀를 내어 금관 대신 노란 귀리 짚으로 시신을 싸서 묻었다. 하지만 황소 100마리는 어쩌랴. 그런데 무덤 쓰고 쉬고 있자니 몸이 가려워 옷을 걷고 이를 잡기 시작했다. 토실토실한 이를 100마리도 넘게 잡으니 황소대신 ‘황소만한’ 이로 제를 지낸 셈이었다.
얼마 후 폭우로 마을이 물에 잠기자 머슴은 처자를 데리고 북으로 발길을 재촉해 결국 중국땅까지 닿았다. 그때 중국에서는 천자가 죽고 없어 새 천자를 구하고 있었다. 관리들이 짚으로 된 북을 매달아 놓고 오가는 이들에게 쳐보라고 했다. 천자만이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머슴이 북을 쳤으나 소리가 나지 않자 그냥 지나치려는데 관리가 머슴의 어린 아들에게 “너도 사내니 한번 쳐보라” 고 했다. 아들이 북을 치자 ‘쿵’하는 소리가 울려 펴졌다. 결국 머슴 아들이 중국땅의 천자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