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적이 있어
우리 집은 당시 12층이었어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엘리베이터를 탔지
12층 버튼을 누르고 나는 멍때리고 있었어
보통 엘리베이터에서 하는 짓은 거기서 거기잖아
거울을 본다든가, 버튼들을 본다든가, 창이 뚫려있다면 그곳을 본다든가, 생각을 한다든가
어쨌든 난 잠시 멍때리고 있었던 것 같아
근데 이게 굉장히 묘했던게 그 멍때리는 순간이 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거야
그게 마치 내가 꿈을 꾼것처럼 이상했어
의식이 혼미해졌다고 해야되나? 잠이든건 아닌데
꼭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갑자기 든거야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달했어
문은 안 열렸어
12, 13, 14, 15 끊임없이 올라갔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어
내가 잠시 정신 놓고 있었던 사이에 문이 열렸던 건 아닌가 했지
내리려고 했는데 발이 안 떨어지고 손도 버튼으로 안 가더라
그 때 숫자가 16으로 바뀌었어
최상층이 15층인 아파트에서 말이야
16, 17, 18, 19...
정말 맹세하는데 이거 거짓말 아니야
20, 21, 이런 식으로 정말 가속도가 붙어서는 계속 올라가는거야
그러다 정확한 숫자가 기억은 안나는데
37층인가 38층인가에 멈춰섰어
문이 열렸지 나는 정말 오줌을 지릴뻔했어
뻥 뚫린 공간이었고 바닥에는 사람이 엎어져 있었어
그 사람이 기어 들어왔어 엘리베이터 안으로
머리가 짧지 않은 남자같았는데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고 일어서지 못했어
그남자 얼굴은 보지 못했어
그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는 않았으니까
정말 죽을 것 같더라 그 때
막 숨이 다 막힐것 같고 차라리 죽었으면 싶었어
너무 무서워서 진짜 살아있는게 싫은거야
엘리베이터 숫자가 정말 쉬지않고 움직이는거야
56, 57, 58, 59...
86층인가 87층인가에서 한번 더 섰어
그리고 또 문이 열렸어
엎드려 있던 남자가 기어나가더니 허공으로 떨어졌어
난 주저앉았어 그리고 통곡했어 나가고 싶어서 소리를 꽥꽥 질렀는데
목소리가 밖으로 안나가는 것 같더라
한참동안 그러다가 거의 160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움직인 것 같은데 161, 162, 163 이런식으로 가다가 갑자기 숫자가 1로 바뀌었어.
문이 열리고 1층복도였어
올라가려던 사람들이 몇 있었어
평범해보이는 아저씨랑 아줌마였는데
표정들이 좀 당황한 듯 하더라
내 얼굴을 보고 그런 표정을 지은 것 같았어
나는 진짜 달렸어 앞도 뒤도 안보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냔 말이야
차라리 집에서 자다가 꿈을 꾼거면 이해를 하겠어
난 분명히 타고 올라갔단 말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한 7년 전쯤의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