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도 넘은 일입니다.
저희 가족은 어머니와 저. 단 둘 뿐이었는데 어머니께서 출장을 가시거나
하면 며칠씩 혼자 지내곤 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라 밤이 무섭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어머니께서 안 계시
는 날이면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며 놀다가 자곤 했습니다. 이상한 일을
겪은 것은 여름이 막 시작되던 무렵.
저희 집은 연립주택이었는데 거실 창문이 동남쪽이고 그쪽 방향에 텔레비전
이 놓여있었습니다.
제방은 텔레비전과 마주 보이는 곳이 바로 제 방이었고, 방문은 미닫이였는
데 문의 위에서부터 약 3분의 2 정도가 뿌연 유리로 되어있고 아래쪽은 나무
로 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정용 미닫이였습니다.
그날도 어머니께서 안계신지라 텔레비전을 늦게 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잤습니다.
잠깐 누웠을까 싶은데, 뭔가 소리가 들렸습니다.
침대에서 문 너머를 보니 희뿌연 유리 너머로 텔레비전이 커져 있을게 보였습니다.
분명 끄고 잤을 텐데.
별 생각 없이 리모컨으로 다시 끄고 누웠습니다.
잠이 들락 말락 하는데……. 또 텔레비전이 켜졌습니다.
리모컨이나 텔레비전 둘 중 하나가 문제가 있나 싶어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거실로 가서 아예 전원을 뽑았습니다.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오는데 뒤통수가 좀 근질근질 하는 게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방문을 닫고 자리에 누웠는데 기분이 영 찜찜한 것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누워서 몇 분이나 지났으려니…….
거실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시계 초침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한 밤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못 들었을
작은 소리.
'딸깍……. 딸깍……. 딸깍…….'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문의 유리로 내다보아도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만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방문을 열
었더니…….
텔레비전 앞에 뭔가 시커먼 것이 쭈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방문을 여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것이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냥 시커먼, 모양도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기괴한 그것이 분명 저를 '
돌아본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것은 귀신이라는
느낌마저 없이 마치 연기나 구름의 덩어리처럼 조금은 이상한 형태로
저를 '지켜보다가' 정신을 차린 제가 방의 불을 확 켜는 순간, 안개가
흩어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방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조금 밝아진 거실.
자세히 보니 텔레비전 아래쪽의 전원버튼을 누르는 곳의 뚜껑이
열려있었습니다.
(전원버튼은 손가락으로 눌러서 열리는 뚜껑이 덮여있었습니다.)
아까 딸깍 소리는 그 뚜껑을 열 때. 그리고 전원버튼을 누를 때 소리였던
것입니다.
그날 밤. 온 집안의 불이란 불은 다 켜놓고 덜덜 떨면서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