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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4-08 02:41
[초현실]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 - 사라진 문명을 찾아서]42~52
 글쓴이 : 백수
조회 : 6,728  

42. 시대착오와 수수께끼

우나스 왕의 방에 있는 회색벽, 여기에 적힌 글씨를 피라미드 텍스트라고 부른다. 이미 언어가 사라진 이 글들에서는 영원의 생명을 몇 번씩 되풀이해 강조한다.

“왕이시여, 위대한 별이 되고 위대한 오리온과 동료가 되어 오리온과 함께 여행하소서...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예정된 계절에 신생하시고 예정된 시간에 젊음을 되찾으소서...”

그런데 여기에 기묘한 장치들이 나온다. 예를 들면 파라오가 영원한 장소를 찾아서 별 속으로 여행을 떠날 때 사용하는 이상한 도구와 부속품 같은 것들이다.
하늘에 있는 철판으로부터 아래로 늘어진 줄 사닥다리, 왕을 싣고 불꽃을 뿜으며 날아가도록 해주는 무엇, 날고 착륙할 수 있는 나룻배...

몇 번이고 철이라는 금속이 나오는데 이집트에서 철은 휘귀한 금속이었다. 피라미드 시대에는 운석 이외의 형태를 알지 못했다. 하늘의 철판이나 철 왕좌, 철 지팡이, 철 뼈에 쓴 철이라는 말은 고대 이집트어로 브자, 즉 하늘의 금속, 신성한 금속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또 여기에는 세차운동과 대격변을 암시하는 신화가 있다. 태양신 라가 그의 지배에 반항하는 인류를 사자의 머리를 한 여신 세크메트를 이용해 멸절시킨다. 무서운 파괴 중에 라는 몇 몇 인류를 구했다. 라는 인류에게서 손을 떼기로 하고 암소로 변한 하늘의 여신 누트의 등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암소가 현기증을 일으키며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들인 슈를 누트의 밑으로 보내 하늘의 기둥을 지키도록 한다.

암소의 네 다리는 세차운동에 따른 연대의 단락을 표시하며 극축분지경선, 춘분/추분/하지/동지를 나타낸다. 여신 세크메트가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기원전 1만970년부터 기원전 8810년의 사자자리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시리우스에 관계된 것이다. 이집트인은 이 별을 이시스와 연관시키고 있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여동생이며 아내이고 호루스의 어머니다. 피라미드 텍스트가 말하는 이중의 존재가 바로 두개의 별로 구성된 시리우스 별이다. 그런데 작은 별은 크기가 작아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천체망원경이 있어야 시리우스 B가 시리우스 A를 돌고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양신은 어둡고 공기도 없는 우주공간을 몇 백만년의 배를 타고 여행한다. 몇 천만년의 세월도 나온다. 시리우스가 태양과 동일한 곳에서 떠오르는 주기를 시리우스 주기라고 하며 365.25인데 이를 피라미드 텍스트에서는 시리우스를 “새해의 이름”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왜 이런 문장들을 5왕조에서 갑자기 사용하다가, 6왕조 후기에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을까? 베낀 것은 아닐까?

43. 최초의 때를 찾아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들이 통치하고 있었던 최초의 때인 제프테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황금시대이며 혼돈스러운 세계를 덮고있던 물이 빠지고 원시의 암흑이 사라졌으며 인류가 햇살을 받으면서 문명의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또 신과 인간을 중개한 우르슈라는 존재가 있었는데 파수꾼이라는 의미였다. 네테루라고 불리운 신들은 인간과 함께 지상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며 헬리오폴리스와 나일강 유역의 성지에서 인류를 통치했다. 그들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이었지만, 인간의 감정을 느꼈고 죽거나 살해당할 수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현대인들이 보기에 단순한 신화인 이 기록을 중요한 신전에 보관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는 모든 왕조의 파라오의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 있었다. 학자들은 뛰어난 사관이었던 기원전 3세기의 신관 마네토의 기록중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것들에 대해 지지를 보내면서도 같은 마네토가 기록한 이 최초의 이야기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기록들을 다 합치면 최초의 때부터 약 2만4천9백2십5년이 흘렀다. 이것은 성서의 천지창조(기원전 5천∼4천년)보다 훨씬 오랜 것이어서 마네토를 인용했던 아르메니아의 에우세비오스는 이집트의 1년은 아마도 1달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축소해 2만5천년을 2천년으로 축소하니 아담의 탄생에서 대홍수까지의 2242년과 맞아떨어졌다.

마네토의 글에서는 신들로부터 마지막 제30왕조 까지 3만6천5백2십5년이라는 주장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시리우스주기인 365.25일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시리우스 년에서 1460년 주기의 25주기째에 해당한다. 어쨌거나 마네토는 우리가 배운 역사와 상관없이 기원전 3100년경에 제1왕조가 탄생하기 전의 유구한 태고에 문명인들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 헤로도토스는 헬리오폴리스의 신관에게 들은 이야기를 이렇게 적고있다. “그들에 의하면 이 기간에 태양이 다른 장소에서 뜨는 것이 네 번 있었다고 한다. 두 번은 현재 지고있는 곳에서 떴고 두 번은 현재 뜨고있는 곳에서 졌다”
이것은 헤로도토스도 모른 채 전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세차운동을 알면 이 수수께끼같은 말의 의미를 금방 알 수 있다. 바로 시간의 주기를 말하고 있다.

이 주기는 춘분의 일출이 별자리를 배경으로 황도대를 한 바귀 반 정도 도는 기간이다. 어떤 별자리에서 태양이 뜨던 것이 그 자리와 완전히 반대되는 별자리에서 태양이 뜨는 주기, 바로 1만3천년의 주기다. 이렇게 계산하면 이 이야기에 나온 것은 2만6천년 전의 이야기다. 두번 뜨고 지려면 3만9천년으로 거슬러가야하며, 이 이야기는 3만9천년 전부터있던 세차운동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44. 최초의 때의 신들

헬리오폴리스의 신학에 따르면 이집트 최초의 때에 나타난 9신은 라, 슈, 테프누트, 게브, 누트, 오시리스, 이시스, 네프티스, 세트이다. 이 신들에게서 난 자손에는 호루스와 아누비스가 있다. 최초의 때에 신들은 모두 창조신이었다. 성스러운 의지를 가지고 혼돈 속에서 성스러운 땅 이집트를 만들었고, 인간사회를 만들었으며 수천년동안 인간들 사이에서 파라오로 군림했다.

그런데 혼돈이란 무엇일까? 헬리오폴리스의 신관은 기원전 1세기의 그리스 역사가인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에게 깊은 암시를 했다. 디오도로스는 이 홍수를 데우칼리온 시대에 지구를 멸망시킨 홍수와 동일시했는데 이는 그리스판 노아의 신화다.

많은 인간들이 죽었는데 이집트 남부에 살았던 사람들은 많이 살아남았다. 마지막 빙하시대가 끝날 무렵 북유럽의 몇 백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빙하가 녹아 세계의 해수면이 높아져 홍수가 일어나고 다량의 수증기가 비가 되어 내리는 동안 이집트는 이례적인 습기와 좋은 기후의 혜택을 누렸다. 디오도로스의 정보가 이런 기후정보와 비슷한 것은 왜일까?

라는 최초의 왕이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늙었고 주름투성이의 노인이 되어 침을 흘렸다고 한다. 라에 이어 슈가 왕위를 계승했는데 병이 들어 난폭해진 후 아들 게브에게 왕위를 물렸다. 게브도 난항을 거듭했다. 라가 많은 물건을 넣어놓았던 황금상자는 그 안에 든 기묘한 물건과 함께 라가 하늘로 사라진 후에 오랜동안 이집트 동쪽 끝에 있는 요새에 보관했다. 이 상자를 가져와 여는 순간 게브는 큰 화상을 입었다.

이 황금상자는 히브리인들의 계약의 궤와도 비슷하다. 뱀지팡이와 황금장식도 비슷하다. 문제는 이집트 최초의 신들에게 느끼는 기묘한 분위기는 매우 지적이며 기계와 가까운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시스는 지식과 언어에 강했고 말만으로도 현실을 바꾸는 능력이 있었다. 토트는 하늘에 관한 계산과 해석의 책임자였고 문자를 발명했다. 오시리스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고난을 헤쳐나가는 지도자였다.

오시리스의 거처는 물 위였고 살아있는 뱀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비라코차나 케찰코아틀의 묘사와도 비슷하다. 그는 치수와 농업과 양조, 예술과 식인풍습의 금지 등 문화영웅의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이들 신들은 동료가 있었으며 치열한 투쟁도 벌였다. 다른 것이라면, 비라코차와 케찰코아틀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오시리스는 다시 이집트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트에게 살해된 후 오리온자리에 재생해 저승의 왕이 된다.

45. 사람과 신의 일

고대의 도시 아도비스에 건축연대를 추정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건축물이 있다. 이집트 신전유적 가운데 천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훌륭한 부조가 남아있는 유적이다. 이 유적은 세티1세의 것으로 그는 출애굽기의 파라오인 람세스2세의 아버지다. 그는 몇 개의 훌륭한 건축물을 지었고 훌륭한 기존 건축물을 양심적으로 복원했는데, 아도비스의 이 신전도 몇 백만년의 집이라고 부르며 오시리스에게 바친 것이다.

기둥이 여러개 있는 이 신전에는 주위의 벽에 여러 모습의 오시리스를 새겨놓았다. 여러 종류의 발견되지 않은 왕관을 쓴 오시리스의 모습중 하나는 코브라를 새겨놓았는데 멕시코에서는 방울뱀이었다. 이 왕관은 라가 오시리스에게 준 것인데, 왕관을 쓴 첫날 왕관에서 열이 나 오시리스의 머리가 부어올랐고 라가 고름을 뺐다고 한다.

여기에는 아도비스의 왕명표라고 부르는 왕의 목록이 있다. 기원전 3000년 경 제 1왕조의 첫번째 파라오인 메네스에서 기원전 1300년의 세티1세와 그의 어린 아들 람세스 2세가 마지막으로 새겨져있다. 신전 뒤편으로는 오시레이온이라는 독특한 건축물이 있는데 물을 끌어들이면 외호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섬이 된다. 왕의 신전 뒤에 통로가 있고 그것이 오시레이온으로 연결된다. 이 건물은 세티 1세의 신전바닥보다 15미터나 아래에 있어 지하수면과 거의 같은 높이다.

오시레이온은 방위가 약간 어긋나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오시레이온을 먼저 짓고 세티1세의 신전을 거기에 맞춰지은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오시레이온의 돌은 기자의 밸리신전과 유사점이 많고 아직 죽지 않았던 세티1세가 이렇게 죽은자의 기념비를 지을리도 없다. 오히려 오시리스의 비밀스러운 행적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것이 분명한데, 여기에는 조금더 연구해야할 수수께끼가 있다.

오시레이온 북서쪽으로 1킬로미터에는 어지럽게 널린 고대의 무덤이 있는데 왕조시대 초기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12척의 거대한 목선들이 묻혀있었다. 가디언이라는 잡지가 왕의 함대라고 표현한 이 배들은 그냥 버린 것이 아니고 질서정연하게 정박중이었다. 적어도 기원전 3000년 전에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배를 만들었던 그들이 파라오의 영혼을 옮기기 위해 여기에 심어놓은 놓은 것일까?
46. 기원전 1만 1000년에서 기원전 1만 년 사이

오시리스의 신화가 없었다면 기원전 1만3천년에서 1만년에 걸쳐 다른 곳보다 훨씬 일찍 농업을 발전시킨 흔적이 있었다해도 사람들은 모른채 했을 것이다. 기원전 1만1천년에서 1만년이 이집트의 선사시대에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고 학자들이 발견했는데 이 시기에 나일강 유역에는 몇 번의 파괴적인 홍수가 대규모로 일어났고 초기의 농업실험도 중단된 듯하다.

① 기원전 1만3천년경의 돌맷돌은 야채요리를 준비한 듯하다
② 동일한 시기에 물고기가 식량에서 사라졌다. 아마 보리꽃가루의 흔적이 정착민보다 전에 나타난 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③ 왜 기원전 1만5천년경에 있었던 호미날과 돌 맷돌이 사라지고 수렵과 어로에 필요한 석기가 나타났을까?

당시의 기후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사하라 사막은 기원전 1만년에서 기원전 9천년 사이에 녹색의 사바나였다. 기후는 지금보다 상당히 시원하고 비가 많이 내렸다. 기원전 1만5백년을 기준으로 2000년전과 1000년후까지 매일처럼 비가 내렸다. 홍수가 끝나자 이번에는 건조해졌고 기원전 7000년까지 계속 그랬다. 그후 1000년에 걸쳐서 신석기시대의 다우기가 있었고 계속해서 3000년동안 적당한 비가 계속 내려서 농사짓기에 이상적인 환경이 되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3000년경에 이집트 왕조시대가 탄생할 무렵 다시 기후가 변해서 건조해지기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기원전 1만3천년에서 기원전 1만5백년까지의 황금시대는 다른 지역에도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기후가 극적으로 변해서 해면이 상승하고 지면이 움직이며 홍수와 화산이 빈번했고 검은 비가 내리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볼리비아의 알티플라노 고원과 이집트 양쪽에서 기원전 1만1천년∼기원전 1만년 경에 대홍수가 발생했다.

47. 스핑크스

지질학자 존 웨스트는 지질학적 발표를 했을 뿐이지만 이것은 이집트학자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증거였다. 웨스트의 표현을 빌자면, 너무 이상하다. 조잡한 잡동사니 같은 피라미드를 건설한 후 갑자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구조가 뛰어난 피라미드가 등장한다. 그러다가 다시 형편없는 피라미드가 등장한다. 구루마를 만들다가 갑자기 벤츠가 나타나고 그러다가 갑자기 리어카가 등장한다. 문명의 변화가 뭐 이런 식인가!

 
어쨌거나 웨스트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증거를 제시한다. 스핑크스는 엄청나게 오래전에 만들었다는 것을 지질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핑크스의 머리를 제외한 사자모습의 몸에 물에 의한 침식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집트학자들의 말대로 스핑크스가 기원전 2500년에 카프레왕이 만들었다면, 기원전 3000년경의 왕조시대 시작부터 기자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바위에 물의 침식흔적이 있다면 엄청난 강우여야 가능하다. 그런 강우는 기원전 1만년 전의 이집트에 있었다!

바람과 모래? 스핑크스는 그곳에 있는 바위를 파내서 만들었기 때문에 방치하면 몇 십년만에 모래에 묻히고 만다. 스핑크스가 노출된 시기는 많이 쳐봐도 1200년이다. 그것도 그렇다치고 만약 바람 때문에 그렇게 침식된다면 석회암으로 만든 다른 건물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러나 고왕국 시대의 유적들에게서 바람과 모래의 침식흔적은 없다. 스핑크스의 침식흔적은 비를 맞아 생긴 침식의 흔적이며 바람과 모래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스핑크스 위에 떨어진 물은 옆구리를 타고 흘러 강한 바윗돌을 파고들었다.

가장 보수적인 결론은 기원전 5천년에서 기원전 7천년이다. 이 때도 비는 왔다. 그렇다고 해도 이 시기의 다른 유물들이 스핑크스에 비하면 너무나 치졸하고, 합리적으로 이 침식을 설명하려면 최소한 기원전 1만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고 웨스트는 생각한다. 그런데 왜 머리에 왕조시대의 장식과 뱀 휘장이 있을까?

심각하게 연구해본 결과 몸과 머리의 비율로 보아 머리는 왕조시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인다. 맨 처음 스핑크스의 머리에는 지금과 같은 사람의 얼굴이 아닌, 그 무엇이 있었을 수도 있다. 웨스트는 카프레왕의 피라밋 아래쪽이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것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스핑크스와 같은 연대이고 그 위쪽은 중간연결자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스핑크스와 같은 오래된 건물로는 오시레이온을 들고 있다.

거기다 밸리신전의 돌이 스핑크스에서 잘려나간, 지질학적으로 동일한 층에서 잘라낸 돌이라는 것이다. 스핑크스와 밸리신전의 중심부는 동일한 사람들이 지은 것인 셈이다. 돌을 잘라내고 분리하고 운반해 밸리신전을 건설하는 기술은, 아직 우리 인류에게는 없다. 웨스트는 문명의 발전이 결코 직선적이지 않았으며, 우리가 몇 만년전에 우리보다 세련된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 뿐이라고 말한다.
48. 지구의 계측


옛부터 많은 수학자와 지리학자들이 대 피라미드가 측지지점을 나타내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말해왔다. 측지학이란 지구의 정확한 크기와 형태를 계측하는 학문인데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왔을 때 이런 방향에서 검토해보고 피라미드가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결과 피라미드는 삼각측량에 매우 편리한 거점이 되었고 피라미드의 정점을 지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계측했다.

잘 보면, 대 피라미드의 자오선이 나일강의 델타지대의 중앙을 통과하며 반으로 분할하고 있다. 그리고 대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북서와 북동으로 향하는 선을 그리면 지중해에 도달하며 이 삼각형은 나일강의 델타지대를 그대로 덮어버린다. 동쪽 자오선은 동경 32。38′이고 서쪽 자오선은 동경 29。50′인데 고대 이집트 왕조시대의 공식적인 국경선이었다. 중앙의 자오선은 31。14′에 있어 양 직선의 거의 중앙에 있다. 이렇게 지구표면에 2。48′의 폭을 가진 긴 땅을 그릴 수 있다.

남쪽국경인 북위 24。6′와 북쪽 국경선인 31。6′이므로 이 땅은 약 7도의 길이를 가진 직사각형 모양의 땅이다. 대 피라미드가 델타 정점에 위치하지 않고 약간 어긋난 것은 순전히 그 땅이 이 튼튼한 건물을 짓기에 적당했던 때문인 듯하다. 이 직사각형은 그들이 위도와 경도를 알고 있었던 것을 의미하진 않을까? 그럴리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봐도 이 간격과 위치는...

인공위성으로 계측한 적도의 둘레는 40068.04킬로미터이고 북극으로부터의 반지름은 6355.42킬로미터이다. 한편 피라미드 밑변의 둘레가 921.46미터, 높이가 146.73미터이다. 이 비율을 계산해서 지구의 적도가 조금 불룩 튀어나온 타원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1/43200 이라는 축척에 매우 가까워진다.

① 적도길이인 40068.04를 43200으로 나누면 927.5미터 ≒ 921.46미터(밑변)
② 지구반지름 6335.42킬로미터를 43200으로 나누면 147.11미터 ≒146.73미터(높이) 각각 0.75%와 0.2%의 오차다. 이 정도라면 대 피라미드의 밑면의 둘레는 적도둘레의 1/43200 이라고 할 수 있다. 피라미드 밑변의 둘레, 높이를 알고 43200 이라는 축척을 알면 지구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그냥 우연일까? 43200 이라는 이 기묘한 숫자를 선택한 것도 우연일까?

대 피라미드는 지구 북반구을 투영한 것이 분명하다. 고대의 지도들을 연결시켜 생각하면 더욱더 이 심증을 굳힐 수 있다. 피라미드의 ㅣ편평한 각 면은 북반구의 1/4곡면이고 구형에서 90도의 1/4원을 나타낸다. 피리레이스 제독의 지도가 어디를 기점으로 하고 있을까? 이집트의 아스완이었다. 아스완에서는 중요한 천체관측소가 고대이집트 남쪽 국경선 위에 서있다. 이래도 우연이란 말인가?

위대한 토트신의 기하학과 측량과 의학, 식물학, 수학과 문학을 물려받은 이집트 고대인들은 토트의 가르침을 42권의 형태로 보관해 계승했다.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인들이 태양년을 처음으로 발견하여 열 두 부분으로 구분했고 이것은 별의 움직임을 관측한 결과였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이집트인들이 1만년동안 계속해서 별을 관측했다고 말한다. 무슨 필요에서 이런 오랜 항해를 계속한 것일까?

49.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힘

1/43200의 축척으로 만들어진 대 피라미드가 북반구의 모형이며 투영도라는 것은 43200이라는 세차운동의 숫자가 증명한다. 로버트 보발은 대 피라미드의 건축계획에 지금까지 알려진 것 말고도 더 다양한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것은 2피라미드와 3피라미드를 포함한 대규모 계획으로 특별히 세차운동에 집착했던 고대의 건설자들이 계획한 일종의 암호다.

 
1960년대에 왕의 방 남쪽 환기구멍이 피라미드 시대(기원전2600년에서 기원전2400경)에 오리온 자리의 세 별에 정확히 조준되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로버트 보발은 이 방 말고 여왕의 방의 남쪽 환기구멍을 조사했는데 이 환기구멍은 시리우스 별을 향해 있었다. 보발이 왕의 방의 환기구멍을 재조사한 결과 오리온 세 별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알 니탁별에 정확하게 조준되어 있었다. 기원전 2475년 경의 일이다. 피라미드를 기원전 2520년 경에 지었다고 하니, 더 이후의 일인 셈이다.

그러나 보발은 세 별이 은하수를 축으로 해서 남서방향으로 비스듬히 사선을 따라 줄지어 서있고 자세히 보면 세 별 가운데 가장 작은 별이 사선의 동쪽에서 비켜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자의 세 피라미드는 바로 그것을 지상에 옮겨놓은 것이었다. 보발은 컴퓨터를 이용해 가장 근접한 시대를 찾아냈는데, 바로 기원전 1만4백5십년의 하늘이었다!

기원전 1만450년에 기자에서 보인 은하수는 나일강 유역과 완벽하게 중첩한다. 이 시기에 오리온 자리의 세 별이 세차주기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는데 대 피라미드에 해당하는 알니탁은 남쪽하늘 11도8분에 있었다.

자, 세차운동을 생각해보자. 춘분점에 태양이 떠오를 때 보이는 별자리가 황도대에 있는 12성좌 사이에서 차례로 변한다. 이 현상은 모든 별과 마찬가지로, 오리온 자리에서도 아주 서서히 위도를 변화시킨다. 알니탁별이 가장 높은 위도에서 가장 낮은 위도(11°8′)로 내려오는 기간은 1만3천년이다. 다시 서서히 올라가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까지 1만3천년이 걸린다. 기자와 오리온의 가장 완벽한 일치는 기원전 1만450년이었다.

 
그러나 환기구멍은 기원전 2450년에 맞추고 별의 위치를 나타내는 땅의 배치는 기원전 1만450년을 가리키고 있다는 행콕의 질문에 대해 보발은 이렇게 말한다.

“피라미드가 2450년과 기원전 1만450년을 가리키는 「별의 시계」라면, 세차운동에 따라 오고가는 별의 위치를 가리키는 진자의 흔적이라면, 이 건축물을 언제 만들었는지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니라면 “기원전 1만450년에 짓기 시작해 기원전 2450년에 완성했던, 아주 끈질긴 종파가 이것을 이룩했다고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자연의 시계를 설계한 이들은 어떤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틀림없다. 이것은 결코 무덤이 아니며 자신들의 생각과 지식을 전달하는 매개로 피라미드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 진리를 파헤치도록 끌어당기는 엄청난 힘을 지닌 이 건축물들을 통해 그들은 “진실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스핑크스는 항상 정동을 쳐다보며 이 위대한 계획의 일부를 거든다. 춘분과 추분을 알려주는 이 거대한 표식이 왜 사자모습일까? 만약 지금 누군가 이런 것을 만든다면 물고기형태가 맞을 것이다. 물고기자리는 그리스도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표식이 물고기였다. 그 이전은 양자리였다. 구약의 종교적 상징, 이집트에서 크게 번성한 아몬신은 양이었다. 양자리 이전은 황소자리였다. 미노아문명은 황소를 숭배하는 종교를 가졌다.

만약 카프레왕이 이것을 만들었다면 황소가 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태양이 춘분에 사자자리를 배경으로 떠오른 시기는 기원전 1만970년부터 기원전 8810년까지다. 그로부터 2만6천년이 지나지 않으면 다시 사자자리가 오지 않는다.

태양이 춘분에 사자자리로 떠오른다. 기원전 1만970년 ∼ 기원전 8810년
오리온자리의 세 별이 가장 낮은 위치에 뜬 시기. 기원전 1만450년

이 시기가 왜 그리 중요했을까? 그들은 무엇을 알리려고 했을까?
50. 헛수고를 한 것이 아니다

행콕이 이 글들을 쓰기 위해 조사를 하던 중에, 조수로 일하던 사람이 사표를 썼다.
사표를 쓴 이유는
“만약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알려지지 않은 독자적인 문명을 구축한 사람들이 있다면, 적어도 3000킬로미터 이상의 폭을 지닌 광대한 땅이 일단 있어야합니다. 멕시코만이나 마다카스카르의 두 배정도는 되어야하고 큰 산맥이나 수계가 있고, 기후는 지중해성이나 아열대며 비교적 평온한 기후가 1만년 이상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던 사람들이 아무런 물질적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살고있던 땅도 없어졌습니다. 당신은 헛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행콕의 똑똑한 조수는 행콕의 생각이 일단 가정부터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사라진 고도의 문명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문명을 지탱하는 육지는 너무 커서 결코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아틀란티스처럼 있었다는 논란은 분분하지만, 그래 어디로 사라졌을까? 바다라고 했다, 그래서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바다는 바다일뿐 거기에 대륙은 없었다.

만약에 사라졌다면, 언제, 왜, 어떻게 사라졌을까? 도대체 어떻게 대륙이 사라진단 말인가? 대재해라고 치자. 그러나 거대한 문명의 흔적을 형태도 없이 소멸시킬 대재해에 대해 그 아무런 기록도 없단 말인가? 아니면 존재하고 있을까?

이 행성위에서 인류가 겪은 것 중에 이만한 것에 어울리는 대재해의 시기가 딱 한번 있었다. 기원전 15000년에서 기원전 8000년 사이인 마지막 빙하시대에 도래한 파괴적 해빙이었다. 이 파괴적인 혼란과 더불어 발생한 고대문명에 대한 전승과 무언가를 전달하고자한 “신들의 지문”사이에 강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 “남극대륙”이 나타났다. 남극빙원 아래의 지형을 정확하게 묘사한 지도, 그 지도는 지금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남극대륙에 27미터짜리 과일나무가 묻혀있는 이유를, 불과 몇 천년전에는 얼음으로 덮여있지 않았던 남극대륙을 웅변해주고 있다. 바로 햅굿의 지각이동설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의 갑작스런 동결함께 설명할 수 있는 극적인 대규모의 재난이었다.

지각이동에 따른 지진과 홍수, 화산과 해일, 갑작스런 해빙과 동결. 만약 이런 끔찍한 지각이동이 일어난다면 오늘날 지구상에 건설된 수천년에 걸친 문명은 순식간에 산산조각나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산꼭대기로 피신한 몇 몇 사람들이 이 흔적을 전하겠지만 말이다.

행콕에게 “남극이라는 대륙”을 발견하도록 도와준 사람들은 캐나다의 플럼-애스 부부였다. 그들은 행콕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또 하나의 가설을 제시한다. 지각이동 뿐만아니라 “인력”의 영향이 지각이동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빙하시대의 시작과 쇠퇴에 일정한 영향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지구의 자전이 불균형하게 덮여있는 얼음덩어리에 작용해서 원심력을 일으키고 이것이 단단한 지각에 전달된다. 이렇게 계속 증가하는 원심력이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지구의 내부구조 위를 덮고 있는 지각을 이동시키고, 그 결과 극지대는 적도지방으로 이동한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주장이다.

 
북극과 남극이었던 지각이 갑자기 온난한 위도로 이동해 얼음이 급속도로 녹는다. 그 반대로 따스한 땅이었던 땅은 극지대로 이동해 갑자기 덮쳐드는 만년설에 묻혀 사라졌다. 북유럽과 북 아메리카의 대부분이 얼음에 덮혀있었던 것은 서서히 찾아온 빙하시대가 아니라, 지금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빙하시대가 끝난 것은, 그 땅이 북극에 있다가 아래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도 빙하시대는 진행중이다. 북극권과 남극대륙에서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초고대문명의 유적은 남극의 3킬로미터가 넘는 얼음 밑에 잠자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거대한 산맥과 큰 강이 있었다. 적어도 3000킬로미터의 영역을 가진 광대한 육지가 있었다. 문명이 발달하는데 필요한 1만년간의 쾌적한 기후가 있었다. 미국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이 대륙이 만약 지금보다 3200킬로미터 북쪽, 위도로 30도 윗쪽에 있었다면 지중해성, 아열대 기후였을 것이다. 정말일까?

51. 해머와 진자

지각이동설은 대륙이동설과 다르며 찰스 햅굿이 제창해 아인슈타인의 지지를 받았다. 간단히 설명해, 지구의 58킬로미터 두께의 지각이 1만2900킬로미터 정도의 두께를 가진 중심핵 위를 미끄러져 서반구의 대부분이 적도를 향해 남쪽으로, 남극권을 향해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은 자오선을 따라 일어난 것이 아니라 미국 중앙평원을 축으로 선회했다고 보고있다. 그 결과 북미의 북동부(허드슨만)는 북극권에서 남쪽으로 밀려와 온난한 위치로 이동했는데 북서부(알래스카)는 북시베리아의 대부분과 함께 북으로 선회하면서 북극권으로 들어갔다.

남반구에서는 현재 남극대륙이라고 부르는 육지가 대부분 온대, 아열대에 있다가 전체가 남극권으로 들어가버렸다. 이 변동은 기원전 1만4500년부터 기원전 1만2500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일어났으며 행성규모의 거대한 여파와 함께 기원전 9500년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대해일, 허리케인, 폭풍, 뇌우, 화산, 지진, 단층, 검은 하늘, 만년설. 이 끔찍한 말들이 1천년만 휩쓴다면 도시, 건축물, 문서, 기계, 생명체 등 모든 것은 완전히 파괴되어 저 두꺼운 얼음 아래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만약 지각이동설이 옳다면, 세계 각지에 남아있는 것은 얼마되지 않는 신의 지문 뿐이라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문명의 본체는 3킬로미터 이상의 두께를 가진 얼음 속에 묻혀있다. 3킬로미터, 엄청나게 높은 산의 높이다. 고고학? 아무런 소용이 없다.

대륙이동과 지각이동은 크게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극대륙과 관계있는 사실은 급격한 대변동을 도입하지 않으면 설명하기가 힘들다. 가장 따스한 곳이 영하 60도정도인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식물은 이끼류가 고작이다. 과거에도 그랬을까?

① 2억6천만년 정도 전의 시대에 낙엽수가 무성했다 - 사이언스 매거진
② 신생대 이전에 남극대륙에는 빙하가 없었다 - 지질학자
③ 남극점에서 322킬로미터인 위버 산에서 아열대기후였던 땅을 발견했다 - 버드제독
④ 신생대 초기의 열대식물의 흔적을 남극 그래이엄 랜드에서 발견했다 - 소련과학자
⑤ 남극점 400킬로미터 해발 1830미터에서 낙엽수화석을 발견했다 - 지질학자
⑥ 남극의 일부는 10만년전에도 얼음으로 덮여있지 않았다 - 지질학자
⑦ 고운입자를 하류로 옮기는 큰 강이 기원전 4000년에 있었다 - 남극탐험대
⑧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의 세계지도는 얼음없는 로스해를 그리고 있다
⑨ 부아슈의 지도도 남극대륙의 얼음 아래 지형을 정확히 그리고 있다
⑩ 반대점인 북극해 섬들이 과거에는 매우 온난한 기후였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지각이동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걱정은 남극 만년설의 크기와 무게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중량 1경9000조톤의 이 얼음은 해마다 471세제곱킬로미터씩 증가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호수와 동일한 용적의 얼음이 해마다 덧씌워진다.

남극대륙에 덧씌워지는 이 얼음의 무게는 세차운동과 황도경사, 공전궤도의 이심률, 자전 원심률, 태양과 달과 다른 행성들의 인력이 동시에 영향을 미칠 경우 지각의 대규모 이동을 일으키는 최후의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빙글빙글 도는 팽이의 한쪽 끝에 붙어있는 얼음이 자꾸자꾸 커진다. 똑바르지도 않고 기울어져 돌고있는 지구라는 팽이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천천히 진행하는 시계의 진자, 대륙이동. 모았던 힘을 일거에 쏟아내는 종소리, 지각이동. 이 지각이동의 흔적이 화성에도 남아있는 것을 보면 결코 지구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현재의 두 극지대에는 마지막 빙하시대에 만년설이 없었다. 그런데 빙하의 흔적을 가진 땅은 세계 각처에 있다. 특히 적도 근처의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에 만년설의 흔적을 찾았다면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지각이동 말고 또 있을까?

빙하시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대륙이 남극과 북극에 위치했을 때가 바로 그 대륙의 빙하시대였다. 그러므로 지금도 빙하시대다. 남극과 북극은 말이다.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다.

인도의 마하바라타는 신들의 땅인 메루 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메루에서는 태양과 달이 매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고 별도 마찬가지다. 메루산은 빛이 나며 어두운 암흑을 압도하기 때문에 밤과 낮은 거의 구분할 수 없다. 낮과 밤을 합하면 여기서 사는 사람의 1년과 비슷한 길이다.”수르타 시단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신들은 태양이 한 번 뜨면 반년간 그것을 본다.”

지구의 자기극성도 과거 8천만년동안 170번 이상 반전했다. 현재도 정북과 자북극은 같지 않다. 자장은 지구의 자전과 연관이 있다. 지구의 자전도 변해왔다. 지구는 지리상의 극의 위치를 바꾸면서 회전해온 것이다. 마지막 자장의 반전은 기원전 1만1천년에서 기원전 1만년 사이에 있었다. 과학자들의 예측으로는 2030년 경에 자장의 반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⑪ 현대의 지진계는 매우 미세한 것까지 감지한다. 그런데 아무 원인에도 해당되지 않는 소리가 지구 속에서 불꽃 터지는 파도소리처럼 계속 일어나고 있다 - 파리대 이브로카로 교수
⑫ 북극은 1900년부터 1960년까지 서경 45도 자오선을 따라 해마다 6센티미터씩 그린랜드 방향으로 3미터 정도 이동했는데, 60년에서 68년사이에 해마다 10센티미터씩 3미터를 이동했다. 이 움직임은 더 빨라지고 있다
⑬ 지리상의 남극의 위치를 나타내는 구리로 만든 표식은 해마다 빙원이 이동하기 때문에 수정해야한다. 빙원만 움직이는 것일까?
⑭ 95년 고베지진 당시 어떤 사람의 체험담이다. “ 아무 경고도 없이 그곳은 구토를 느낄 것 같은 롤러코스터로 변했고” “가장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소리...” 진도7.2의 이 진동은 20초 동안이었지만 5000명 이상이 죽었다.

52. 밤의 도둑처럼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건물과 생각, 지적인 재산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류는 인간의 손으로 많은 부분을 편집한 “역사”만을 생각하고 있다. 이 역사에 따르면 인류의 문명은 기껏해야 5000년일 뿐이며 그 이전의 생각과 기록은 허무맹랑한 망상이자 상상일 뿐이며, 그런 것을 “신화”라고 부른다. 만약 무서운 대재해가 덮쳐 우리 문명을 말살했다고 치자. 모든 기록이 사라지고 모든 문명이 사라진 상태에서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의 원폭, 그 경험과 기억을 후대에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브라흐마스트라의 명령을 받은 미사일의 불꽃은 서로 뒤섞였고 불화살에 에워싸였으며 지구와 하늘과 그 사이의 공간을 뒤덮었다. 불꽃은 강해졌고 세계종말의 태양처럼 되었다.”
하늘을 나는 차, 하늘을 나는 거대한 기계, 하늘의 도시, 하늘의 전차. 이런 전승은 결코 불가능한, 신화이고 상상이고 망상일 뿐인 것일까?

하늘을 나는 이 이미지는 인도문헌 뿐만이 아니라 이집트의 피라미드 텍스트에도 가득하다. 신화와 전승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대답을 찾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어쩔 것인가? 영화나 찍고 말것인가?

예를 들어보자.

정확한 증거에 기초해서, 우리 문명이 곧 멸망할 것을 예측했다고 치자. 지각이동일지도 모르고, 작은 혜성과의 정면충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전에 충분한 경고가 있다면, 엄청난 공포와 절망 속에서도 인류의 일부는 생존을 위한 방향을 모색것이고, 고도로 발달한 과학적 지식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을 미래세대에 남기려 할 것이다.

정말 그랬다. 유대인 역사가 유세푸스는 대홍수 이전에 아무런 재난도 없이 행복하게 살았던 고대인들을 말한다.
“세상은 불로 한 번 망했는데, 물로 파괴된다는 아담의 예언을 들은 그들은 두 개의 기둥을 지었다. 하나는 벽돌로, 하나는 바위로 만들어 자신들의 발견을 두 기둥에 새겼다. 다음 세대에 알리기 위하여...”

옥스포드 대학의 존 그리브스가 17세기에 이집트를 방문하여 수집한 피라미드 전승도 바로 그렇다. 별이 떨어지고 세상이 뒤집히는 꿈을 꾼 왕은 잠에서 깨어나 대홍수의 예언을 신관에게 듣는다. 왕은 현자가 알린 모든 지식과 과학을 피라미드에 새겼고 문자와 언어를 아는 사람이 해독할 것이다.

최초의 인간들이 지구의 둥근 표면을 측정하고 하늘에 아치를 그리고 있는 네점을 조사했다는 포폴 부의 전승은 무엇인가? 인간들의 급속한 발전을 신들이 질투했다는 이 전승은 무엇인가? 미래세대를 위해 기록을 보존하려한 초고대인들의 전승지식을 태양의 도시에 묻고 그것을 지키는 이 전승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다시 처음의 예로 돌아가자.

우리 인류가 멸망하고 우리 문명이 철저하게 파괴된다. 우리는 최고의 지성과 기술을 이용해 이 지식을 남기고 싶다. 이 작은 가능성을 실현시켜 1만년, 또는 1만2천년 뒤에 있을 우리와 비슷한 문명에게 서기 2000년을 알리려면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할까?

우리는 지혜를 짜내서 황도주기의 어떤 물고기자리에 언제 살았는지를 남겨놓지 않을까? 세차운동의 1주기 전인지 2주기 전인지 머리를 써야하지 않을까? 아니, 이런 여유조차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까? 지식을 전달할 사람을 뽑아 조직화시키고 그들을 이용하지 않을까? 그들은 이러한 사명을 띤 준 종교집단의 모습으로 동일한 상징과 형상을 사용하지 않을까? 긴 턱수염이나 깎은 머리, 십자나 뱀의 이미지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을까?

그렇게 문명을 전파하지만 대다수가 실패하고 한정된 성공만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대재해의 여파가 밀어닥쳐 이렇게 힘들게 구축한 발판마저 소멸한다면, 아마 이들은 이 집단의 핵심적인 것만 보존하여 계승하려 할 것이다. 마치 구세주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처럼 그 문명의 정체가 드러나 자신들이 전하고자 했던 것이 밝혀지기까지 몇 천년, 몇 만년을 기다려야할지도 모른다.

마야인들이 말한다. 그날은 2012년 12월23일이다. 에드가 케이시는 말한다. 2000년경에 극이 이동하고 남극과 북극에서는 대변동이, 열대에는 화산이 분화한다, 유럽은 순식간에 변화하며 지구는 미국서부에서 분열하고 일본은 가라앉는다.

2000년이라는 시기는 오리온자리의 세 별이 상승하는 긴 주기의 마지막 때와 일치한다. 다섯 행성의 연합은 인력의 영향을 강하게 불러일으킬 것이다. 2000년 5월에 해왕성, 천왕성, 금성, 수성, 화성이 태양의 반대쪽에 지구와 일렬로 서서 잡아당길 것이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그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휩쓸려갔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으며 별이 떨어지고 하늘이 흔들릴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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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12-04-08 02:52
   
블로거가 원본에 내용을 덧붙힌 것 같네요.
저도 읽은지 오래되서 퍼오기만 했습니다.
기회되시면 책으로 한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김마이 21-08-10 17:42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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