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문화권 전체가 그렇게 하는게 널리고 널린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흔하고 널렸다면 지구상에 남아있는 문화란게 얼마없겠죠.
어느 문화권이든 전쟁이란 단어로 서로 죽이고 죽이지만, 결국은 휴전이란 개념으로 멈춥니다. 이스터는 더군다나 모든 자원이 고갈될 떄까지 그렇게 했다는게 학자들 조차
이해를 못하는데 널리고 널린 흔한 일아라니요...
경쟁심이 부족의 멸망을 초래 했다면, 만화같은 느낌의 추리를 해 볼 수 있다.
부족에는 주술사가 있었겠고, 그들에게 적잖은 두려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현대사회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수록 뭔가 더 비상식적인 일이 그들의 자멸을 가속화 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피라미드는 단순한 개인의 무덤이 아닌 농사철이 아닌기간동안 국민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한 하나의 국책사업이었습니다..
미스테리하긴 커녕 지나치게 인간적인 이야기로 결론났습니다. 뭐 기독교경전에 쓰여진거처럼 타민족을 강제로 데려다가 노예로 쓰면서 만든것도 아니고요.
당시 이집트는 초강대국 이었습니다...얼마나 초강대국이었나고요? 조각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3000년전의 조각을을 보시고 4000년전의 이집트 조각물을 보시면 바로 납득이 가실겁니다. 모든 문화와 문명 그리고 민족이 이집트로 모이던 시대였고 지금의 미국과도 같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런 문명국에서 왕권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신왕(神王)과도 같은 권력적 위치와 그에 따른 마땅한 보상을 주기위한 사업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피라미드라는겁니다.
coooolgu님 안녕하세요.
이집트에는 많은 피라미드들이 있는데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필두로 해서
그 대부분에 있어 coooolgu님의 댓글 설명이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국책사업이든 왕의 무덤이든 간에 완고한 이집트학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똑같이
별다른 미스테리는 없다고 단언해도 좋죠.
그런데 기자에 있는 대스핑크스와 3대 피라미드의 경우에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쿠푸 왕이 건설했다고 하는 대피라미드의 경우만 놓고봐도 그 근거가 너무나 빈약하고
조작의 정황이 뚜렷합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공학적인 완성도를 놓고봐도
이집트의 여타 피라미드들과의 차이가 너무나 현저해서 비슷한 시기의 이집트인이 건설했다고는
도저히 볼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다 천문학적인 이유들까지 곁들인다면 더욱 구분이 확실히 됩니다.
coooolgu님이 말씀하신 이집트의 피라미드 노역에 관한 증거들은 대부분 기자 외 지역의
피라미드들에서 출토된 것이고, 기자의 3대 피라미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자 지역의 스핑크스, 밸리 신전, 대피라미드 등이 가장 먼저 건설되었고
나머지 이집트의 피라미드들과 건축물들은 그것을 오마쥬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제가 피라미드에 쪼금 관심이 있어서(사실 람세스2세에 관심이 더 많아서...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가 원흉임 ㅠㅠ) 예전에 한번 조사해봤는데요
일단 말씀하신대로 피라밋이 누구에게 먼저 시작했는지는 명확합니다. 바로 3왕조인 조세르왕이었습니다. 고왕국시대의 3왕조의 두번째 파라오 그리고 그의 재상 "임호테프"가 만든 최초의 계단식 피라미드가 이집트 피라밋 역사의 시작입니다. 그 이전에는 피라밋이라는것 대신 마스타바 라는건축물이 피라밋을 대신했죠.
그리고 언급하신 이집트의 상징피라밋 쿠푸왕의 피라밋 말인데요...그 피라밋의 구조도를 보시면 아주 인간적인 실수가 여기저기에 엿보입니다. 물론 이집트 역사라는게 왕조에 따라 역사가 다시쓰여지기도 해서 당시의 정치적 해석이 정말인지 아닌지는 알수 없는데요
그걸 떠나서 피라밋을 살펴보면 참 재밌습니다 쿠푸왕의 피라밋을 보면 왕의방 왕비의방 지하현실 중량경감이방 크게 4군데로 나뉘는데...피라밋 안의 석관이 빈건 둘째치고 왕비의방 지하현실 이런것들은....한마디로 "설계미스" 였다고 합니다 왕비의 방에도 왕의방처럼 피라밋 외부로 통하는 쉽게말해 환기구를 하려고 했다가 그만둔것도 다 설계미스때문이죠 왕의방위에 설치되어있는 중량경감의방은...피라밋의 자체 무게 때문에 왕비의 방이 무너질걸 생각해서 만든방이고요 대 회랑은 알다시피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일종의 돌창고이고 지하현실은 만들다 말았는데. 그이유는...바로 나일강의 범람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피라밋을 왜 만들었는가? 라는 정치적 해석은 아직 정확히 알수 없으니 넘긴다 하더라도....이런 "인간미" 가 철철 넘치는 피라밋에 미스테리한 외계인의 힘이나 알수없는 고대의 힘이 작용됬다는건 상상하기 힘들죠
사실 이런종류의 설계미스 피라밋은 많습니다. 굴절피라밋이라는 다하슈르 왕조의 피라밋도 피라밋을 쌓아가는 도중 치명적인 설계미스(경사가 너무 급격함)를 파악하고 중간부터 완만한 곡선으로 쌓은걸로 평가되죠
사실 정말 피라밋이라는게 왜 만들었나는 확실히 알 순 없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그 추측만을 할뿐이죠 하지만 그 논리로서 가장 설득력을 가진게 바로 "국책사업" 이라는겁니다.
물론 당시 왕조 모두가 피라밋을 짓지도 않았고. 대부분은 왕가의 계곡이라는 곳을 통해서 장례를 지냈으며 실제로 피라밋이 무덤으로 쓰였는지 조차 의심을 갈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폭정으로 유명했다던 쿠푸왕조차 그 설계미스한것을 그대로 이어간것을 생각하면 그 역시 무덤이라기 보다도 왕권의 권력을 강하게 하기 위한게 아니었나가 제 생각입니다 왜냐면 자신이 사용할 무덤에 만들다 그만둔만 구역이라뇨...왕으로썬 있을 수 없는일이죠 차라리 다른 역활을 하는 방을 만든다면 몰라도.
피라밋이라는게 참 미스테리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냄새가 마구 묻어나는 인간의 힘을 보여주는 위대한 건축물 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공학적인 완성도를 말씀하신다면 당시의 측량기술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굴절피라밋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쉬우실겁니다. 당시의 기술력이
아무리대단하다 하더라도 피라밋마다 측량을 하는 사람도 다르고 측량의 기술도 달랐을겁니다. 모두가 쿠푸왕의 피라밋같은 완벽한 조형미를 목적으로 했을겁니다. 하지만. 기술문제상 쿠푸왕만이 완벽한 조형을 가진거로 보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입니다.
저 역시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다른 많은 피라미드들과 기자의 피라미드는 (인간적인 설계미스를 포함해서)
그 공학적 수준에 있어서 전혀 비교가 불가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대피라미드의 건설자가 쿠푸 왕이라는 것에 대한 증거가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을 차치하고,
설령 쿠푸 왕이 건설한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먼저 만들어진 피라미드들의 수준이 형편없고,
기자의 피라미드가 나타난 뒤에 나중에 만들어진 피라미드들의 수준이 또 다시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진 것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공학 기술이라는 게 그렇게 급격하게 발전했다가
특별한 이유없이 급격하게 수준이 저하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coooolgu님도 피라미드에 관심이 많으셔서 공부를 하셨다니 반갑네요. ^^
저도 푹 빠져서 거의 20여년 넘게 관련 서적들 탐독하고 있습니다.
성의있는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관련된 다른 게시물에서 또 뵙고 얘기 나눠보아요.
그런 건축물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석굴암이죠.
어느 세대나 천재는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 천재가 기존의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업적을 쌓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 이후에 누구도 그 사람의 수준이 되진 못합니다. 글로 아무리 남겨도 소용없죠
우린 글로 키스나 춤을 배워선 소용없다고 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