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식 형태의 모양을 띄는 만주와 한반도에 널려있는 고구려의 무덤과 너무나도 똑같은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런 건축공법을
[들여쌓기 공법]이라고 부르며,중국과 일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고구려 고유의 건축공법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학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면, 이 5,000년 전에 이 지역에서 이런 문명을 가진 집단은 누구일까? 중국인인가? 아니다. 중국인은 황하 유역에서 농사짓고 있었다. 몽골인인가? 아니다. 몽골인들은 당시 존재도 없었다. 거란족? 오환족? 이들은 완전 유목민으로서 정착 문명과 관계없다. 여진족? 이들도 유목민이다.
병마용이 진시황의 무덤이냐 하는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상태이죠.
현재 완전 발굴조차 하지 않는 이유가 진시황의 무덤의 경우 조성형태와 설계가 문헌상 남아있는데
그 모양이 아니라 발굴을 하지 않는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닌게 드러날까봐.
그런데 진시황이 동이족이라고 하는건 너무 나갔습니다. 은이 동이의 나라였다는거야 최근에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은이 우리 조상의 나라인건 아닙니다. 큰 틀에서 같은 동이였다는거죠.
시안에 있는 피라미드는 저도 들은적이 있습니다만, 제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관련된 논문도 본 적이 없어서
저도 궁금합니다.
아, 그리고..
본문 중에
<또한 이전 중국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 동이족에게 재가를 받은 뒤에
중국왕이 취임한 것은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
이 부분은 저도 예전에 어떤 분이 주장하신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제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열국의 왕중에 가장 우두머리되는 자가 하늘에 제를 지내는데 그 절차를 집행하는 사람이 동이였다
그래서 당시에 동이의 나라인 고조선에서 신관을 보내서 집행하게 했다라는 글이었습니다.
대부분 인터넷 역사갤이론,음모론 내용은
이상하게 주류학회에선 증명도 검증도 되지 않은..
어차피,, 역사란 검증된,자료,사료,유물를 바탕으로 유추하는거지만...
그런 추측성이론의 대부분은 그냥 인터넷 여기저기서 합쳐진 짜집기...
병마용 이스테리는 30년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입으로 입으로 구전..
유사인류 중국애덜도 상투가 있었다고 합니다. 중국상투역사를 본적이 없다는 분들은..
하긴 저도 진짜인가 싶어서 찾아보기 전까지는 중국상투가 있었나 했었지만서도..
아무튼 뭔 근거로, 자기가 연구해 본 것 처럼 중국은 상투가 없다고 그러는겁니까..
무협지만 봐도 머리 상투하고 나오는구만.. 구글에서 상투만 쳐도 아랫글이 튀어 나오고.
저 병마용 상투들도 보면 조선상투와 다릅니다. 에효.
중국에서의 상투는 중국의 한족의 전통적인 머리형태였다. 흔히 알려진 황비홍머리 변발은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 만주족 등 북방민족의 머리모양새 였다.
하지만 묶는 방식과 남는 머리 처리 등에 있어 한반도 한민족의 전통 상투와 꽤나 차이가 있었다. 중국의 경우 정확하게 상투를 트는 법은 문화대혁명 등을 거치며 소실되었다고 한다(...). 결국 음양두만 남았다. 다만 삼국지나 여러 시대극에서 나오다시피 중국풍은 조선과 비교하면 만두처럼 크고 둥글게 만들어 천으로 감싸는 형태였다. 중국의 상투는 크고 물렁해서(...) 관을 비녀로 가로지를 수 있게끔 흠을 내고 관을 쓸때 관과 상투를 비녀로 꿰어 고정했으나, 조선의 상투는 위의 사진과 같이 비녀로 뚫을 수 없는 단단한(...)매듭이었기 때문에 일반 비녀보다 길이는 짧지만 더 튼튼한 동곳이라는 남성 전용 도구를 사용하여 상투를 고정하였고,[7] 끈으로 관을 죄고 갓처럼 남는 끈을 턱 아래로 묶어서 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