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blog.naver.com/innerpeace2511/221326476284
지난 6월 중순에 여자친구와 같이 ✕✕사에 갔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장소와 기운도 다르고 여러 가지를 보는 일이 많기에 예전부터 경험삼아서 절에 많이 찾아가곤 했습니다.
이번엔 마침 여자친구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던 절이 있어서 함께 구경을 가게 되었습니다.
절 입구에 들어갈 때부터 묘한 기분이 들며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경내를 둘러보다가 극락전에 들어갔습니다.
주말이라 방문객은 꽤 있었으나 법당 안은 고요했습니다.
몇몇 신도 분들이 불상 앞에 자리를 잡고 참배와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 참배하고 자리에 앉으니 눈앞에 돌아가신 주지스님으로 보이는 존재가 채권자같이 검은 양복을 빼입은 존재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분명 상황을 유심히 보아도 저렇게 시달릴 만한 분이 절대 아니신 것 같은데 왜 저러나 싶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장면에 의구심이 들어 더 자세히 투시해보니 불심이 깊은 어느 재력가가 평소에 존경하던 주지스님께 많은 재산을 사찰에 기부를 한 것이 보였습니다.
물론 그 스님은 수행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거절했지만 결국 설득 끝에 받아들인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시주를 하면서 재력가의 업장까지 세트로 떠넘겨졌고 결국 스님은 그 업장을 떠안아 사후에도 곤란한 일을 겪으시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법당에 들어갔을 때는 시주를 한 재력가의 모습이 보였는데 평소 굿을 하는 등 자신의 업장을 풀어보려는 노력을 했으나 그게 여의치가 않아 고민 끝에 절에 시주를 하는 결정을 내린 듯 했습니다.
근처에 있던 도깨비가 지나가는 말로 결국 승자는 저 재력가라고...
살아생전에 수행력이 상당하신 분이었던 것 같았는데 어째서 사후에 힘든 길을 택했는지 의아했지만, 그
의문점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주도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제 감상이었습니다...
나중에 카페 수련모임에 참여하여 스승님께 경험한 것에 대해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절에 시주를 하면 그 사람의 업장까지도 떠넘길 수 있는 건가요?”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스승님의 말씀.
원래 종교인은 신도로부터 헌금이나 보시를 받는 동시에 자연스레 그 업장까지도 같이 받는 일면도 있다고...
물론 그 신도가 기본적으로 신앙심이 깊어야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그 절의 스님 같은 경우는 그 정도의 시주를 받고 무거운 업장까지 짊어지는 부분은 예외적인 경우로 원래 그 주지스님과 재력가분의 인연문제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재력가가 큰 재산을 시주한 행동은 작게는 자신의 업장을 해소하고 크게는 크나큰 공덕을 쌓아서
다음 생에도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승님의 답변을 들으며 인과의 법칙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지극한 신앙심으로 기부한 행위로 보이나 그 이면에는 업장과 인연의 오묘함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주어진 삶이 부귀를 누리는 생이라고 해도 결국 그 복이 다하는 때는 오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재력가는 시주를 통해 복을 받는 기간을 연장했겠지만 그게 영원하지는 않겠지요..
여러 생을 봉사와 기부로 복을 쌓아 내생에 부귀하고 권세 있는 삶을 살든, 전생의 과보로 빈곤하고 비천한 삶을 살든, 윤회라는 바다에 내던져진 삶은 어쨌든 영원한 것은 없고 끝없이 인과의 법칙 안에서 헤맬 뿐인 것 같습니다.
주어진 삶 안에서 복을 쌓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한정된 인생의 시간 안에서 무엇이 더 영원하고 궁극적인 해결책일까를 생각해본다면,
역시 주어진 틀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힘을 쌓아가는 내면의 수행이 이 세상 최고의 무상지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