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는 우리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야.
어렸을때부터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던 이야기라
스피드하게 슝슝 써내려가 볼께 ㅋㅋㅋㅋ
때는 바야흐로 지금으로 부터 45년 전쯤의 이야기야.
우리 엄마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에 겪은 일이래.
(참. 참고로 울 엄마는 시집을 엄~~~~~청 빨리 간 편이어서 나이 계산에 의미가 없음)
울 엄마는 섬마을 어부의 장녀로 태어 났지.
첫째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옛 속설도 있고
울 엄마가 어려서부터 또랑또랑 말도 잘하고
어른들 심부름을 완전 잘해서
커갈수록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엄청 예뻐하셨다고 해.
남아선호사상이 굉장히 심했던 그 시절
엄마 밑으로 아들이 하나 있었다면
부모님의 관심이 저절로 옮겨 갔을 테지만
어쩐일인지 울 엄마가 태어나고 나서
외할머니는 좀처럼 임신이 안되셨데.
그래서 외할머니는 시댁으로부터
어마어마한 구박과 함께
마음고생을 꽤나 심하게 했다는거야
섬마을들은 대게 부락단위로 씨족사회를 이루고 있거든.
그게 무슨 말이냐면, 한 동네가 거의
사촌지간이거나 육촌이거나 사돈의 팔촌이거나
옹기종기 친척끼리 모여 산다 이거여.
그러니까 김장을 한번 할래도
온 동네 어른들을 모여서 함께 김장을 하고
명절을 보내도 진심 동네 잔치처럼 보내는 거지.
시어머니가 한명이어도 입이 쩍벌어지는 마당에
동네 구석구석 시댁 어른이 포진해 있으니 오죽했겠어.
쯧쯧.
그당시 물기르러 공동 수돗가에 한번 내려갔다 올라올 때면
어서 빨리 아들 낳아라, 라는 말을 스무번은 넘게 들었다고 해.
지금같으면 깊은 빡침에 이혼을 하면 그만이었겠지만
그당시에는 참 여자들이 지고지순 했던것 같아
우리 외할머니는 그런 스트레스를 하루하루 감내하며
눈물 나는 세월들을 보내셨겠지.
그런데, 또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아주 이해가 안되는것도 아닌것이
어업을 천직으로 삼는 섬마을에서는
아들들의 노동력이 참 중요하기도 하거든.
하지만 우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꿋꿋하게!
그 당시 국가적 운동이었던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이런 신식 사고방식을 주장하며
오히려 두분이서 돈독하게 가정을 꾸려가셨다지.
그러던 어느날.
우리 외할아버지가 육지의 어느 큰 시장으로 일을 보러가게 되었지.
사는 곳이 워낙 작은 섬인지라, 필요한게 있으면
돌아오는 장날을 맞춰서 사러가곤 했다는거야.
시장에가서 가져갔던 물건들을 팔고,
판 돈으로는 살림에 필요한 것들도 사고
장 구경도 하고 이것저것 일을 보다보니 문득 허기가 지더란다.
그래서 시장 어귀에 있는 팥죽집에 들러서
팥죽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왠 나이가 지긋~한 노스님이 앉더니
본인도 맛나게 밥을 잡숫더래.
우리 외할아버지가 동네에서 소문난 스크루지 영감님이거든.
(나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세뱃돈 천원 ^^~ 말 다했지)
그런데 그날따라 뭘 잘못드셨는지
그 스님의 밥값을 함께 계산해드리며
"스님~ 제가 시주하는것이니 많이 잡수시오"라고 했다는거야.
그랬더니 스님이 공손히 합장을 하며 짧은 목례로 답을 하더니
"보살님. 자녀 운을 보시려면 집에 영물을 하나 들이십시오.
집에 가축을 들이면 득남을 하실겁니다~"
라고 했다는거야.
스크루지 영감탱이면서 귀까지 얇았던 울 할아버지는
왠지 그 스님의 한마디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그당시 멸치 판 몫돈을 몽땅 긁어다가
당장 어린 소 한마리를 샀다고 해.
그당시 소 한마리 값은
어른 몇달치 월급이었다고 하니
보통 돈은 아니었을테지.
그렇게 소를 사서 앞세우고 집에 돌아가자
외할머니는 기함을 하며 뒤로 나자빠 졌고
살림 말아먹은 양반이라며 이혼하네 마네 대판 싸움이 났다는거야.
ㅇ_ㅇ 생각해봐.
농사 지을 땅뙈기 하나 없는 어부집에 송아지가 왠말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송아지를 가둘 우리조차 없는 집에 ㅜ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외할머니는 드러눕고
우리 엄마만 신이나서
송아지를 반겼다지.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누가 그랬던가.
스님의 말씀처럼.
송아지를 집에 들인지 몇달이 지나자
외할머니는 진짜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고해.
거의 십년만의 임신인지라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었겠지.
울 엄마는
"아, 이제 드디어 울 어매도 할머니 구박 안 받겠네.
울 어매 꼭 아들낳게 해주세요"
이러면서
하루하루 손 모아 기도를 했다고 해 ㅜ ㅜ
덕분에 송아지는 집에서 완전 극빈 대접을 받으며
시시때때로 산낙지라던가
부드러운 여물 같은 고급 음식을 받아먹으며
김정은 버금가는 호강을 누리고 살았다지.
워낙 귀하게 얻은 자식인지라
외할머니는 거의 집안에서 소일거리나 하시면서
이제나 저제나 출산일만 기다리며 보내셨다고해.
그 시절에는
산부인과같은 여성병원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어놔서
임신을 해도 태아의 성별을 알길이 없고
출산은 거의 집에서 했데.
단지, 경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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