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훈 전 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은 26일 “종부세가 괴물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 종부세 도입 논의 당시 조세연구원(현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원 신분으로 종부세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2005년에는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종부세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가 ‘직위해제 3개월, 1년간 언론 인터뷰 등 대외 활동 금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종부세가 괴물이라니.
“본질을 잃어버렸다. 조세 체계가 아니라 정치 프레임이 됐다. 모든 세법 1조에는 세금의 목적이 규정되어 있다. 종부세법 1조를 보자. 부동산 보유에 대한 조세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 가격 안정을 도모한다고 쓰여있다. 종부세로 형평성이 높아졌나, 부동산 가격이 안정됐나. 두 가지 모두 달성하지 못했다.”
-종부세가 많이 늘었다.
“상식적인 정부라면 조세 저항 가능성을 우려해 과세표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급하게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과세표준 현실화라는 정책 목표에 너무 매몰됐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을 90~100%로 끌어올려 과표를 현실화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자산 시장도 주식 시장처럼 오르내림이 있는데, 그걸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부세를 보면 해당 연도 1월 기준으로 주택의 가치를 측정하고 6월에 누가 보유하고 있는지 파악해 부과한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6월 가치로 세금을 매겨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의 부동산 평가가 적정하지 않다는 것인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정부가 국민의 재산을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나온다.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 세금을 걷기 위한 자산 평가에 가장 모범적인 국가가 덴마크다. 지자체가 납세자와 몇 차례 주고받은 뒤에 공시가격을 매긴다. 한국 방식대로 과세 평가를 무모하게, 달랑 엽서 한 장에 통보하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 덴마크의 경우 1년에 평가액이 몇 배 올라가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정부가 평가한 금액이 자신 있으려면 정부가 그 가격에 재산을 사 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가능한가. 급격하게 과표가 오르고 세금이 오르면 국민은 그걸 못 받아들인다.”
-종부세는 애초 설계가 잘못된 것인가.
“종부세를 도입하면 1가구 1주택자의 납세 능력 범위를 넘어서 강한 조세 저항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처음 종부세를 걷기 전에 청와대에서 회의를 했는데 ‘준비가 부족하니 빈 구멍을 메운 후에 시행하는 게 좋겠다’고 건의한 적이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발 하나 들여놓고 조금씩 바꿔 나가자’고 하더라. 설계도 잘못됐지만 운영도 잘못되고 있다.”
“종부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주택 지분율이 20% 이하이면 보유 주택 수에서 제외해 종부세 중과 대상에서 빼 준다. 그런데 올해부터 달라졌다. 부모가 주택 한 채를 공동으로 가지고 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자. 3형제가 아버지의 주택 지분 50%를 각각 20%, 15%, 15%씩 나눠 상속했다. 그럼 둘째 아들은 주택 전체의 15%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작년까지는 15%니까 보유 주택으로 안 쳤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당신은 아버지 상속 지분 중에서는 30%를 물려받았다’며 20%가 넘으니 주택 수에 포함된다고 통보했다. 내 주위에도 이와 같이 졸지에 2주택자가 되고, 종부세 부담이 커진 사람이 많다. 이런 식이니 앞으로 ‘나는 1주택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렇게 되면 앞으로 서울 사는 사람들은 시골 부모 집을 상속받지 않으려 할 거다.”
-부동산 관련 세율이 너무 높다는 말도 있다.
“정부가 속으로 ‘10억 아파트가 20억으로 올랐는데 그건 다 그야말로 불로소득 아니냐.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실패했다고 해도 결국 정부가 올려준 건데, 정부가 가져가는 게 맞지, 왜 떫냐’식으로 접근해 세금을 무겁게 매기겠다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 정도다. 양도세도 세율이 너무 높다. 최고세율이 75%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세금도 최고세율이 75% 가게 되면 세제라고 볼 수 없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없다.”
-정 힘들면 집 팔면 되는 것 아닌가.
“개인 거주지를 국가가 왜 간섭하나. 예를 들어, 배우자가 중병을 앓고 있고 하루 멀다 하고 투석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물정 모르는 사람들은 시골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살면 좋지 않냐고 얘기할 수 있지만, 그럴 사정이 아니지 않으냐. ‘내가 살아봤는데 강남에서 살 필요가 없다’고 단순하게 얘기하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종부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데.
“그런 논리가 어딨냐. 그렇게 말하려면 ‘국세청에 종부세를 내지 마시고요. 정부가 지정한 기부 단체에 종부세 금액을 내십시오. 연말에 세액공제 100%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