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한국 전쟁에서 실종된 대대의 미국 MIA(전시 실종자)에 대한 결정을 기다린다!
7.19일자로 상당히 흥미로운 기사가 올라와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아닌 다른 제 3 자 시선으로 6.25 전쟁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다소오역이 있을 수 있으며 더불어 댓글이 너무 없어서 그부분은
생략했습니다.
한국 전쟁에서 실종된 대대의 미국 MIA(전시 실종자)에 대한 결정을 기다린다
한국 서울 -
미국 군의 역사상 가장 큰 문제로 남아있는 한국전쟁의 에피소드는
중국의 2개 사단에 의해 위기에 빠진 미국 제 8 기병연대를
당시 열세의 상황이라는 판단하에 먼 한국의 북쪽땅에서 죽게 내버려둔
것이었다.
북한은 6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전쟁의 전사자, 은산의 실종자들의 유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의 부대원들은 언제라도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1950~1953년동안 은산의 전투에서 실종된 8,000 여명의 실종자의
유해를 발굴하는 이 작업을 지난 5년간 미국 정부는 거부해온것이다.
지금 MIA(전시 실종자)의 가족들의 압력을 받고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2005년 북한의 핵 개발에 따른 부시 행정부에 위협에 의해 중단된 합동
전시실종자 유해 발굴 프로그램의 방향을 서서히 되돌려야 한다고 말하고있다.
"만약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할 수 있다면 난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제발 그 유해 발굴 프로그램을 다시 돌려주세요.
전시 실종자의 가족들은 잊혀저있습니다' "
"텍사스에 살았고 계급은 Sgt(병장) 1급(1st class)이며 이름은 베니 덴 로저
그는 중국인들이 그의 부대를 공격했을때 실종됬습니다.
나는 1950년 말 울산의 8 기병연대에서 근무했었습니다. "
필라델피아주의 루스 데이비스(61)는 MIA(전시실종자)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며 말했다.
이건 그가 말한 로저는 그의 동료들중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뉴 햄프셔, 힐스버러의 일병 필립 W. 어클리
한국 전쟁이 시작한 이후 60년이 지난 1월 한국의 판문점에서
북한으로부터 사진속의 미군 인식표(dog - tag)를 넘겨받았다.
북한은 또한 그의 유해사진을 넘겨주었으며 이 사진은 아직도 그를
기다리는 가족에게 그의 죽음을 알려줘야 한다는 걸 암시했다.
"인도적인 지원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미국 정부는 평양 정부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북한의
실종자 발굴 프로젝트 중단에 대해 재개를 촉구하고있다고 말한다
1950년 11월 초 마지막 북한의 패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개입했으며
10월 30일은 로저가 그의 부모님께 마지막 편지를 보낸 날이다.
"여기는 훨씬 괜찮아요. 하지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어요"
(그의 편지 문구중)
미국 정부는 중국의 부대가 남쪽으로 이동했다는 정보가 담긴 리포트를
무시하고 중국에서 불과 80Km (50마일) 떨어진 북쪽으로 로저와 8 기병
연대를 진군시켰으며 적들은 그곳에서 대기중이었다.
이들은 대포부대의 지원와 구조요청을 거부했고 상부에서는 이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구출지원은 명령에 의해 강제로 철회되었다.
제 8 기병연대 3 대대는 탈출을 감행했다.
하지만 200m 간격으로 방어 경계를 구축한 중국의 보병들은 파도와 같이
밀려들었고 거대한 손실과 함께 3 대대에서는 오직 5개의 소대만이 살아남았다.
미 육군에게 있어 은산에서의 제 8 기병 연대를 포기한 사건은
- "미국 군 역사상 가장 부끄럽고 가장 알려지지않은 사건" -
한국 전쟁 역사학자 잭 J. 길포드
에 의해 가장 악명높은 기록이 되었다.
작게는 600에서 800명의 제 3 대대의 부대원이 실종되었다.
절반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했으며 절반은 그들이 포로로 잡혔으며
중국 포로 수용소에 감금되어 죽어갔다고 믿었다.
미국과 북한은 긴 협상 끝에 1996년 전시 실종자 발굴에 합의했다.
9년간 북한 전역에서 합동 팀의 발굴작업으로 확인된 14구의 3대대 전사자를
포함하여 미국인으로 확인되는 229 구의 유해을 회수했다.
하지만 은산에서의 4,600 명의 전사자 가운데 260명의 미 전사자가 더
있을것이라고 펜타건의 포로/전시 실종자 사무소는 말한다.
2005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스펠드는
북한은 오랫동안 미국의 적으로서 그들은 국가안보에 대해 우려가 있다는
당국의 말을 인용하여 이 프로그램을 일시 중지시킨다
그 당시 국방부 부차관보을 맞았던 리차드 롤리스는 "신중한 결정" 이었으며
원인으는 미국 전사자 유해발굴팀에 대하여
"북한의 핵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그들을 높은 확률로 인질이 될 수 있었다"
라고 AP통신을 통해 말했다.
하지만 전시실종자 지원 단체는 그 말에 반박하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의 모든 지원을 끊고 핵을 포기하도록
평양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건 안전적인 측면때문이라는 미 국방부의 말은 너무나 개판입니다"
전 3 대대 하사관이었던 로버트 J. 얼(82, 워싱턴 페더럴웨이)은 말했다
그당시 그는 이전에 부상을 당하여 은산에서 복무하지 않았으며
끔찍한 죽음을 당한 그의 8 기병대 박격포 소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그는 수년간 노력하고 있다.
작년 워싱턴에서의 로비활동으로 그들은 진전하고 있으며
전시실종자 가족들은 새 행정부와의 진척도를 나타내고 있다.
"나는 그들 모두와 접촉할것이며 모든 지원 프로그램을 복원할 것입니다"
해군 베테랑이자 오랜시간동안 전시실종자 캠페인활동가 프랭크 메럴스키(77)는 이렇게 말했다
국방부 전시포로/실종자 사무소 레리 그리어 대변인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전시실종자 유해 발굴 프로그램에 대하여 가능한 재개하도록 "평가" 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정치와 관련없는 인도주의적인 복구 프로그램이 되도록
고려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의 군함을 침몰시킨 북한의 소동으로 인하여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중단되어있습니다"
라고 메럴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문가들은 성명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에서 작업을 재개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은산 지역 접근 권한을 요청합니다"
하와이의 공동 전시포로/실종회계사령부와 현장 팀은 최근 연례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한편 법의학 전문가들은 몇년전 반환되어 지난 6월 5일 버지니아 그랜트 힐의
가족묘지에 잠든 제 7 보병사단의 하사관 로이 얼 헤드와 같이
시간이 흐를 수록 DNA 판별작업은 더욱 어려워질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건 놀라운일입니다. 59년이나 지났습니다."
항상 로이를 그리워했으며 그가 이제서야 돌아왔다고
그의 동생 데이비드 헤드(71, 테네시주 킹스포드)는 말한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거나 혹은 전시 실종자를 찾지못한 아주많은 가족들이
있으며 우리는 찾아내야 합니다"
헤드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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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Web:
Pentagon Korean War MIA site: http://www.dtic.mil/dpmo/korea/
해외 네티즌 반응 전문
가생이닷컴 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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