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당원들조차)은 관심이 없지만 기자가 보기에 ‘눈여겨봐야 할’ 정치적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국민의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다. 이변이 없는 한 1월 15일 전당대회에서 박지원 대표가 탄생될 것이다. 대표 경선에 맞서는 상대가 과거 의원총회에서 “야 인마, 너 나가”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약체’이기 때문이다.
능숙한 언변·폭넓은 정보력·현란한 재주
아무리 그래도 현재 활동하는 정치인 가운데 박지원의 정치력은 예리하고 실제적이며 탁월하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그의 정치력은 철저히 실제에 기반해 있다. 김종인이 ‘경제민주화’라는 철학(보따리) 하나 들고 이 당 저 당 기웃거리는 것에 비해, 박지원의 정치는 철저히 현실을 통해 체득된 것이다. 특히 박지원의 정치는 안철수처럼 ‘외워서’ 하는 정치나, 문재인처럼 참모의 ‘조언에 따라’ 하는 정치가 아니다. 그는 이 사안(이슈)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체험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요즘 뜨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특장과 비슷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송금 관련 구속
박지원에게 특이점이자 무서운 점은 친노에 대한 증오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송금 특검으로 구속됐다. 그리고 2014년 당 대표에 출마했으나, 친노의 적자로 통하는 문재인에게 패했다. 게다가 친문에 의해 공천 탈락 위기라는 수모를 겪었다. 박지원은 당시 구치소에서 안 좋던 한쪽 눈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박지원의 친문에 대한 증오는 신체적·정치적 증오심이 결합돼 있다. 꼭 박지원 개인뿐 아니라 그가 속한 국민의당 기류도 그렇다. 주승용 원내대표도 “친노 패권주의, 친문 패권주의가 청산되지 않고서 정권이 창출되면 박근혜 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넘어야 한다”
심지어 박지원은 민주당 내 비주류인 김종인 세력을 이탈시키고 필요하다면 ‘악의 축’으로 비난받는 친박세력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이 1997년 바로 내각제를 매개로 DJP연합을 성사시킨 당사자다. 현재 국회에는 개헌특위가 가동되고 있다. 이미 박지원은 “험난한 고개를 넘으려면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넘어야 한다”면서 “반공주의자 처칠 총리는 스탈린과 손을 잡고 히틀러와 싸워 이겼다”고 주장했다.(2016년 11월 25일 페이스북)
물론 박지원에게는 약점도 많다. 정치를 비즈니스처럼 하다 보니, 그에게 철학이나 역사적 의식, 즉 명분이 미흡하다. 정치는 명분과 실리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명분이 없고 실리만 취하는 정치는 ‘꾼’에 불과하다. 명분이 없는 정치는 국민의당 경선 정도의 소규모 정치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대통령선거같이 국민을 상대로 한 ‘굵직한’ 정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1997년 DJP연대는 정치철학이 검증된 DJ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DJ에 비하면 ‘기능인’에 불과한 박지원은 어렵다.
특히 박지원의 ‘반문연대’는 명분이 약하다. 과거 DJP연합을 추진하던 DJ조차도 ‘박정희 정권 2인자와의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DJ는 이를 ‘최초의 정권교체’라는 명분으로 돌파했다. 그러나 박지원은 ‘반문연대’에 어떤 명분을 내세울 것인가. 반문연대는 ‘지지율 10% 미만의 군소후보들이 권력을 분점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도 DJ 정도가 해야 공감을 얻지, 그가 말하면 ‘야합’ 소리 듣기 십상이다. 정청래 전 의원은 노골적으로 “문재인 세력만 빼고 온갖 잡탕 다 끌어들여 친일부패연합당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또 다른 관건은 국민의당 기반인 호남 민심이 이런 반문연대를 용인할 것이냐는 것이다. 이미 국민의당 호남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국민의당 의원들은 이 점을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다. 아직 총선은 많이 남았지만 이탈 없이 당을 대선국면으로 이끄는 것이 과제다. 박지원은 올해 초 5·18민주공원을 찾아 “국민의당이 할 일은 5·18정신, 광주정신, 호남의 가치를 지켜서 호남의 몫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5공 인사’라는 원죄를 안고 있는 박지원은 호남정신을 대표할 수 없다는 원초적 한계가 있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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