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대해서 좀 논의해보겠습니다.
1. 인문학.
인문학은 주관적인 학문이 아닙니다. 되려 보편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은 것은 학문으로서 성립할 수 없습니다. 즉, 인문학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중복되지 않는 개성을 표출하며 살아가기에 얼핏 혼돈으로 보일 수 있는 모든 형상과 사건 속에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규칙을 발견하고 규정하는 학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은 얼핏 주관적인 학문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성마저 포괄하는 이론의 정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우선, 학문이 주관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학문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지표가 있어 그것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전수할 수 있어야 성립합니다. 즉, 1+1=2 처럼 전수 받는 다수가 동일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킨 학자가 블랙홀 속에서는 1+1=2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주장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블랙홀 내부에서 1+1=2가 아니라는 것을 실증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블랙홀 내부에서 1+1=2가 아니라는 것을 실증해낸다면 그때는 블랙홀 내부에까지 통용되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게 되고 그것이 법칙이 되고 학문이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문학 교수가 제자에게 네가 쓰고 싶은데로 글을 써라 그럼 그것이 문학이다 라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학문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이제 인문학이 학문의 일부로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지표를 추구한다는 것을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바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바둑이라는 게임은 처음 만들어지고 난 후로 지금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경기가 단 한번도 없었다라고 합니다. 즉, 카오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에는 정석과 처음부터 끝까지 단계적으로 두는 방법이 전수되고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자면 문학을 들 수 있습니다. 세상에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소설이나 동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도 규칙이 있습니다. 희극을 쓰기 위해선 신데렐라처럼 처음에는 주인공이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나중에는 모든 것을 얻는 형태가 되어야 하고, 비극을 쓰기 위해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처음에는 모든 것을 가진 부자집 아들딸내미가 마지막에는 모든 것(목숨)을 잃는다는 식으로 꾸려나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스킬을 문학 교수들은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마지막으로 심리학과 역사학을 예로 들자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심리테스트 해서 16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라고 하고, 역사학은 더욱 극단적으로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서 객관적인 사실만 기록해라, 평가는 후세의 역사가들이 할 것이다 라고 가르칩니다. 이렇듯 인문학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장장이가 제자에게 네 마음대로 망치질 해라라고 가르치는 것과 다를게 무엇이겠습니까.
그럼에도 인문학이 주관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가치 평가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 때문입니다. 즉, 1이라는 숫자가 있다면 -1이라는 숫자도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의 철학적 기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서양은 인간의 기원에 대한 스토리가 없습니다. 반면 동양은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나 중국의 요순임금시대, 유대교의 창세기처럼 인간의 발호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이 기독교에 열광하는 겁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이 얼마나 단순 명쾌한 주장입니까. 하지만 이 명제는 불완전하였기에 중세 이후 과학적으로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도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양 철학은 나는 누구인가였다면 자신의 뿌리 신화를 갖은 동양에서는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잘 살 것인가에 철학적 기조가 맞춰졌습니다.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입니다. 공자는 인의가 중요하다고 하고 법가는 법이 중요하다고 하고 묵가는 상과 공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모두 중요합니다만 선행해 말씀드렸다시피 같은 사람은 없을 만큼의 다양성을 이 시기에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여 서양에서는 나무를 보고 뿌리, 줄기, 잎에서 만족하지 않고 현미경을 발명하여 세포까지 살펴보는 분석적 방식이 발전했다면, 동양에서는 뿌리, 줄기, 잎이 모여 그것을 나무라고 하고 어떻게 나무들이 모여 아름다운 숲을 이룰까라는 방법론적 방식이 발전하게 됩니다. 과정은 정반대로 보이지만, 인간에 대해 고찰했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을 보입니다. 이렇듯, 가치평가의 기준에 따라 상이하지만 동등한 가치가 존재하고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는 학자의 역량과 재량에 따르기에 주관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문학이란 학문의 일환으로서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형상이나 사건을 조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핏 보기에는 주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가치평가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른 것으로 그 속에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사상 혹은 이론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로 반하는 이론이나 사상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여 아주 다양한 인간의 속성을 전반적으로 아우르지 못하는 불완전한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문학을 더욱 공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 상기 글은 논리학에 기초해서 쓴 겁니다. 그러다보니 많이 길어졌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생각나는대로 쓴 것 같지만, 서론, 본론, 결론의 논리적 공식에 따라 쓴 겁니다. 인문학이란 것은 이렇듯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기술에 입각한 학문이지 결코 주관적인 것이 아닙니다.
2.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싶었습니다만 너무 길어진 관계로 주장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 때 다시 논의토록 하죠.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다른 것입니다. 경제적 사정에 따라 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에 가장 필요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의 전파, 즉 정보이며 이를 제대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민중이 굶어 죽는데 루이 16세는 사치와 낭비를 일삼고 있다는 정보가 없었다면 프랑스 대혁명은 없었고 민주주의의 시초도 더 늦어졌을 겁니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빈부의 격차가 생성되면서 생긴 경제 개념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