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문제를 가지고 어렵게 냈다고 난리를 피는 사회현상을 보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누구나 알 듯이 좌파의 최고의 가치는 평등이다. 그것도 결과적 평등이다.
전교조와 전응아 학생 ㅂ부모들은 학력평가 시험을 줄곧 반대했고 석차로 구분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어떻게든 시험을 쉽게내고 그룹으로 묶든지 해서 실력 차이에 비해 등급차이가 나지 않기를 원한다. 핑계는 과외 조장이라지만 과외를 조장한 것은 노무현이다. 공부를 쉽게하도록 한다고 내신제를 택함으로써 선행학습을 조장하고 사교육을 폭발적으로 늘려 놓은 것이 노무현이다. 문제가 어려워서 과외가 늘어난 것이 아니다. 내가 입학 시험 볼 때는 문제가 왕창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학원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그냥 학교다니고 집에서 혼자 공부하면 됐었다.
대학은 변별력을 높여서 실력있는 학생을 뽑기를 원한다.
기회의 평등이라고? 변별력을 낮춰서 대학이 실력이 없는자와 있는자를 구분 못하도록 하는 것이 기회의 평등이라고? 이제는 입사시험에도 모든 것을 가리고 몇 가지 변별력도 없는 기준으로 채용하라는 블라인드 채용이 최선이란다. 도대체 성장배경 전반을 파악하고 그 사람을 잘 파악해야 실력이 있는지 유용한지 알 것 아닌가? 변별력을 제거함으로써 능력 없는자도 휩쓸려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의도이다.
문재인이 소득주도 성장 뻥구라 치다가 안 되니까 이제야 혁신 성장을 얘기한다. 혁신이 몰개성한 변별력 없는 인간그룹에서 나오는 것인가? 혁신적 창의적 아이디어는 상층 5%에서 나오는 것이지 아무나 혁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연구과제든 태스크포스든 5%에 해당하는 최고 권위자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그 책임자가 필요한 인원을 선발해서 그룹을 꾸린다. 우리나라는 블라인드 채용한 파악 안 되는 그룹으로 조직을 운용해야 한다. 조직이 잘 굴러 갈 리가 없다.
좌파들의 비겁함은 국가전체, 조직 전체가 잘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실력에 관계없이 내가 탈락하지 않고 그 안에 경쟁하지 않고 평등하게 일하고 평등한 임금으로 평등한 생활을 하면 된다. 공산주의가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유이다. 차이가 나는 것은 감추고 능력도, 일하는 것도 같다고 얘기하면서 임금만 같게 받으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