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김새 비슷” 억지 주장…629번 광수까지 멋대로, 배상 판결에도 되풀이
전두환 신군부·박근혜도 “북한군은 없었다” 확인
진상규명 막으려는 도발
지난 8일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북한군 개입 여부를 중심으로’라는 공청회를 연 지만원씨(77)는 5·18에 참여한 시민들을 ‘북한군 특수부대(일명 광수)’라고 주장한다. 5·18 당시 사진 속 시민을 두고 ‘황장엽과 오극렬이 광주에 왔던 증거’라고 내세운다. 광주에 투입된 공으로 그들이 북한에서 최고위층까지 올랐다는 주장이다.
법원은 지씨의 주장을 허위로 판단하고 5·18유공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도록 판결했지만 황당한 주장은 멈추지 않고 있다. 국민의 대표라는 이들까지 “5·18 북한군 개입은 사실”이라며 버젓이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 멀쩡한 시민을 ‘황장엽·오극렬·리선권’
지씨는 2013년 무렵부터 5·18 당시 시민들이 찍힌 사진을 두고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시민들을 ‘○○번 광수’라고 지목하기 시작한 그는 “‘629번 광수’까지 찾았으며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과학적 근거는 5·18에 참여한 시민 사진과 북한 측 인물의 사진을 비교, “생김새가 비슷하니 북한군”이라고 지칭하는 식이다. 이런 ‘분석’으로 멀쩡한 시민들은 순식간에 ‘광수들’로 둔갑했다. 5·18 당시 시민들 속 할머니는 ‘여자로 위장한 북한 장군 리을설’이 됐다.
지씨는 5·18 당시 전남도청을 나서는 사진이 찍힌 박남선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65)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지낸 황장엽으로 지목했다. 황장엽은 1997년 남한으로 망명한 뒤, 2010년 사망했다. 그런데도 지씨는 박씨가 광주에 투입된 북한 특수군 가운데 71번째 인물이라는 의미로 ‘71번 광수’라고 이름 붙였다. 당시 26세이던 박씨는 “사진 속의 제 얼굴을 변형시켜 황장엽 이미지와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광수’로 몰아세우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면서 “당시 황장엽 나이가 57세였다”고 했다.
지씨는 북한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도 황장엽과 함께 광주에 왔었다며 ‘73번 광수’, ‘75번 광수’라고 주장했다. 사진 속 인물은 각각 지용씨(77)와 홍흥준씨(58)로 확인됐다. ‘광수’로 지목된 시민들 중 현재까지 14명이 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으며 검찰은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5·18 관련단체 등은 지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도 제기했다. 지씨는 지난해 12월 법원으로부터 “8200만원을 배상하라”는 최종 판결을 받았다. 2015년 <5·18영상고발>이라는 화보집을 통해 5·18유공자를 또다시 ‘광수’로 적시한 그에게 1심 법원은 지난해 10월 “9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 박근혜·전두환도 “북한군 개입 없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까지 동조한 ‘5·18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은 한국당이 창출한 지난 정부에서도 거듭 공식적으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을 정도로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5월 국방부는 광주시에 공문까지 보내 “5·18 북한군 개입설은 허위”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는 장관 명의의 공문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면서 “5·18 희생자에 대하여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도 6월1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5·18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고 했다.
5·18을 유혈진압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87) 등 신군부도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5·18 2년 뒤인 1982년 전 전 대통령의 지시로 편찬된 <제5공화국전사> 4편에는 “만일 광주사태 기간 무장공비들이 대거 침투하여 가세했었다면 광주사태는 더욱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었을 것임은 물론 국가의 생존마저 위협할 수 있었다”고 적혀 있다. 무장공비의 침투나 가세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과 북은 1980년 2월부터 8월까지 판문점에서 남북총리회담 개최를 위한 10차례의 남북 접촉을 가지기도 했다. 8차 실무자 접촉은 심지어 5·18 기간인 5월22일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