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봄 전두환이 아직 별 두 개짜리 보안사 사령관으로 있을 때
우리는 그를 '유신 잔당의 괴수', 박정희의 양아들', '剪頭漢'이라 불렀다.
계엄령 하의 언론들은 '안개 정국'이라 떠들었지만
결국엔 12.12 쿠데타를 일으켰던 신군부가 전면에 나설 것이고.
신군부의 실세인 전두환이 '사람 머리도 예사로 자를 놈'이며
권좌에 오르기 위해 인간 백정 짓도 서슴지 않을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정승화 계엄사령관, 장태완 수경사 사령관, 정병주 특전사 사령관 등 상관들을 제거하고
손에 피를 묻히면서까지 군권을 움켜 쥔 자들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기관총으로 갈기고 수류탄을 던지겠다고 대놓고 공언하던 자들이
권좌에 오르기 일보 직전에서 순순히 후퇴할 리가 없음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학살극의 현장이 서울이 아니라 광주가 될 것임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시민들의 적극 참여를 끌어내지 못한 채 '서울역 회군'을 했던 것은
전두환 일당에게 권좌를 향해 폭주할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으며,
고립된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당하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래는 전두환 일당이 광주민주화운동을 군홧발과 탱크로 짓이기고 대통령직을 찬탈한 뒤에
전두환 아들 전재국이 조선일보 1980년 10월 1일자에 기고했던 글이다.
이 글에는 "건물마다 붉은 글씨로 '剪頭漢'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나붙고..."라는 내용이 나온다.
![1.jpg](http://www.gasengi.com/data/cheditor4/2005/ea335dd9245a1041be941ba9989f7d55_Xc2bUrjf2KWjsnhx.jpg)
(아래 전문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