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촛불집회 참여가 주말 일정의 최우선 순위였던 지난 3개여월..
그곳에 가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혼자서 청주와 서울을 오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고, 눈이 오는 혹한의 날씨도 춥지 않았으며, 뻔뻔한 거짓말로 버티는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의 모습에도 결코 지치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 6년동안 문재인 팬카페 활동을 해오는 동안 틈만 나면 차기 대통령 깜으로 말하고 다닐 정도로 좋아하는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으로 인해, 그동안 서울을 오갔던 길이 무의미해지는 회의감과 분노가 몸을 지치게 만들고, 그 분노가 열정을 한 풀 꺽어서 봄이 시작 되는 입춘이 지났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여전히 한 겨울인 2월의 어느날..
"대통령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 뿐만 아니라 퇴진 후에도 대통령의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퇴로를 열어주고 돕는 것이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해야할 하나의 예우입니다."
"박대통령 사법처리, 정치권에서 언급할 일 아니다."
"어느 누구를 구속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면..그게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재용 구속 기각, 법원 판단 존중해야"
위 발언들은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에서, 혹은 박사모나 어버이연합, 또는 태극기 집회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다. 이건 놀랍게도 박근혜 게이트를 가장 강하게 파 헤쳐야할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권 후보들이 촛불정국에서 발언한 내용들이고, 최근에는
급기야 적폐청산의 대상들과 대연정을 제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생각해 보자.
국민들이 2018년 2월이면 임기가 끝나서 자동적으로 물러나는 박근혜를 고작 1년 빨리 물러나게 하기 위해, 퇴진후에 박근혜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멀리 부산에서 올라 와서 집회 참석하고 다시 심야버스로 내려가는 고생을 하고, 아들의 태권도 승급 심사를 미루면서까지 김천에서 가족들과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고, 이삿짐 정리를 뒤로 미루고 오산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왔겠는가..
또 생전 집회라고는 참석 한 번 안 해봤던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서 주말과 연말연시를 반납하고 추운 광장으로 나왔겠으며, 따뜻하게 쉴 집이 없어서 젊은 엄마들이 온갖 겨울용품으로 꽁꽁 싸맨 아이들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와서? "박근혜의 퇴진과 구속"을 외쳤겠는가..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 이번 한 번 뿐이라면, 혹은 일반적인 정치인이라면 이렇게 화가 나지도, 하루만에 내놓은 부연설명이 구차하게 들리지도 않았을 터 그들은 다름 아닌 내가 좋아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인 탓이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또는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를 잃은 상실감과 그를 지키지 못한 부채의식이 노무현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있던 정치인들에게 열성적인 지지로 표출된 건 사실이고,
이건 소위 진보적 성향의 정치인들에 있어선 상대적으로 든든한 정치적 기반이자 큰 혜택이다.
이런 특별한 혜택을 받은 그들이 촛불민심과는 반대로 가는 발언을 반복하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혹자는 중도와 보수표 확장을 위한 전략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취지가 곡해 됐다고도 한다. 그러나 전략이라면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상황에 따라 하루만에 말이 바뀌는 정치인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취지가 곡해 됐다는 말도 참으로 궁색한 이유는 지금의 대연정 제안은 "취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 "대상"이 문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대연정의 대상이 "국민의 당"으로 국한된 것이었다면 억지로라도 "취지"를 이해하고, 어금니 꽉 깨물며 눈 한 번 질끈 감을 수 있겠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박근혜 게이트의 공범이다. 따라서 철저하게 법적 책임을 묻고, 그에 따라서 청산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대연정을 제안하는 건 개혁할 의지가 없다는 뜻과 표를 의식한 인기 영합주의라는 것 외에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잠깐 노무현 대통령을 이야기 해보자.
노무현 대통령은 그들처럼 문제가 되면 뒤로 빠져 나갈 계산을 깔고 잘 알아 듣지 못하는 단어로 모호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알아 듣기 쉬운 대중적인 언어로 이야기 해왔으며 불리하고 어렵다고 해서 상식과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도 대연정을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는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구도 개편이라는 공감할 수 있는 전제가 있었고 그 취지를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대의를 위해선 자신의 임기도 기꺼이 단축할 수 있다는 진솔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안희정의 표구걸을 위한 대연정과는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대상이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실책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할 적임자라고 판단한다면 아쉬울 때만 그의 이름과 실책을 팔아서 합리화 하고 빠져 나가려는 모습 보단, 그의 실책을 반복하지 않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노무현 대통령의 아쉬운 점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
광장과 거리행진을 하면서 외치는 구호 어디에도, 손수 정성껏 만들어서 나온 수 많은 피켓 어디에도 문재인,안희정 또는 그 어떤 정치인에게도 박근혜의 명예를 지켜주고 그 부역자들과 연정을 하라는 요구는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무슨 권한으로 박근혜의 명예로운 퇴진과 대연정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촛불민심이 외치는 구호를 귀담아 들었다면 이렇게 반복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진 않았을텐데 말이다.
박근혜 게이트의 원인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 노태우, 전두환과 박정희를 거쳐 해방이후 친일파들을 척결하지 않은 이승만에게로부터 있다는 것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어설프게 관용을 베풀고 용서를 해준 바로 그 세력들이 결국엔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에 가장 큰 주범이였다는 걸 정녕 그 둘만 모르는 것인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구속 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이고 그 법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다. 이런 상식을 이야기 하는데 "그런게 민주주의 국가일까?" 라고 묻는다면 도대체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은 무엇이고 그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타협과 야합을 구별 못 하는 게 그가 아는 민주주의고
삼성에게서 돈을 받아 "삼성 장학생"이라는 별명이 붙는 게 그가 생각하는 상식인가?
더 이상은 내가 좋아했던 정치인들의 촛불민심에 역행하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다. 그저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정치인으로서 더 이상 노무현이라는 "유산"을 탕진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지인들 중엔 정말 순수하게 그들을 응원하는 분들이 많다. 당연히 그분들에겐 내글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정치인은 국민의 뜻을 대변해 주는 대리인이지 숭배의 대상이나 상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에 근거한 비판은 민주주의에서 자연스러운 것이고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같은편끼리 내부총질 하지 마라~"며 질책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지난번 같은당 의원들이 문자폭탄을 받은 일에 대해서 문재인 전 대표가 했던 말로 대답을 대신 할까 한다.
정치인은 비판의 문자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문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