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게시글을 읽어보니까, [당위성] 과 [실제 현상] 자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습니다.
[서민을 위한 정책]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서민을 잘살게 만드는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해를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정부 정책은 지금 서민을 잘먹고 잘살게 만드려는 것이다. 도대체 왜 비판하는가?"
세상이 무조건 당위성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지금쯤 소련과 북한은 지상천국이 되었어야 하는 겁니다.
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의도대로 되는건 아닙니다.
그래서 학문이 존재합니다.
인간의 의도대로 모든 것이 다 되면 학문 자체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공부" 를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학문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류가 저지른 짓들과 실수를 보고 깨달으라고 존재하는 겁니다.
"자 봐라, 우리가 이러이러한 짓을 하니까, 이러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후세들은 이걸 보고 참고해라."
좋은 의도와 좋은 당위성이 실제로 나쁜 결과를 불러온 무수한 사례가 있지만,
한 가지 사례를 적어봅니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일인데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이래,
1793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임금, 식료품 가격 및 생활 여건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혁명 후 일어난, 유럽과 프랑스간의 전쟁은 수입과 수출을 줄이고 내부 교역을 혼란시켰습니다.
특히 전쟁을 위해 프랑스의 각 지방에서 행했던 징집은 농업 생산을 낮추는 효과를 불러왔고,
1791년과 1793년 사이에 있었던 프랑스의 인플레이션은 식량 가격을 90% 가까이 상승시켰습니다.
1793년 초, 프랑스의 시민들은 식량 부족 문제와 식료품들의 가격을 해결하기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을 개최했습니다.
이 캠페인을 Enrages 라 불렀는데, 프랑스어로 [격분한 사람들을 위한]이란 뜻입니다.
이 캠페인의 시위자들은 [높은 식량 가격으로 이익을 얻고 있는 부르주아지들을 없애자]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1793년 2월에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는 거대한 폭동이 있었습니다.
이 폭동은 빵, 설탕, 커피, 비누의 높은 가격에 항의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
2월말에는 남성들도 거리에 나와서 폭동을 일으키며 식료품점에 대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 폭동은 3월 초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물가에 대한 폭동이 지속되자, 당시 프랑스 혁명정부의 급진적인 자코뱅파들은 이러한 높은 물가의 원인이
모두 부르주아지들과 결탁한 지롱드파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당시 지롱드파들은 물가에 대한 인위적인 통제를 반대했고, 실제로 통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프랑스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부르주아들과 결탁한 지롱드파 놈들을 다 죽입시다."
시민들의 분노 폭발 이후,
1793년 6월 2일 프랑스의 서민들이 지지하는 자코뱅파가 국민 공회에서
지롱드파를 추방하고 이제 로베스피에르가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로베스피에르는 당통, 에베르, 라부아지에, 카미유 데뮬랭, 뤼실 두플레시를 전부 숙청하고
농민에 대한 토지의 무상 분배와 같은 이상주의적 공화제 수립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제 자코뱅파를 지지하는 프랑스의 시민들이 정부에 청원을 넣었습니다.
"우리는 혁명이래 귀족들과 왕족들의 머리통을 박살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부르주아지 계층의 상인들과 음식 투기꾼들에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가격통제를 통해 이 더러운 부르주아 계층들의 머리통을 날려야만 합니다."
마침내 1793년 9월 29일, General Maximum 이라고 일컬어지는 "최대 가격 상한제" 가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신선한 고기,소금물,베이컨,버터,달콤한 기름,소,소금물,와인,브랜디,식초,맥주,
장작,숯,석탄,양초,램프 오일,소금,소다,설탕,꿀,흰 종이,가죽,철,주철,납, 강철,
구리,대마,리넨,양털,거즈,캔버스,직물,나무 신발,신발,비누,담배]
에 최대 가격을 부과하여 그 가격 이상으로 공급하지 못하도록 시장을 통제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상인들은 이러한 법에 따라 자신들이 공급하는 모든 재화의 가격들을 창가나 상점 밖에 게시하도록
요구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상인들이 이 법을 무시하고 최대 가격 이상으로 물건을 팔게되면 당국에 의해
두배의 벌금을 물게 됩니다.
프랑스 시민들은 이러한 정책에 환호하게 됩니다.
"역시 서민을 위한 정부, 부르주아 놈들을 때려잡는 진정한 서민 정부"
"나도 내일부터 마음껏 빵과 우유를 사먹을 수 있게 되는구나. 만세."
로베에스피에르가 이끄는 혁명정부의 이러한 인위적인 가격통제가
유토피아~엔딩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안타깝게도 경제 현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최고 가격 상한제 이후,
최대 가격제에 낙담한 농부와 생산자들은 실제 가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파는 것보다
차라리 물건을 덜 생산하는게 더 이익이었습니다.
우유값을 절반으로 제한하기 시작하자 우유를 생산할수록 농민들은 손해를 보게 되었고
건초를 살 돈조차 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혁명정부는 건초값을 내리라고 지시합니다.
이제 건초생산업자들은 그냥 건초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건초를 구할 수 없었던 낙농업자들은 젖소를 그냥 도축해 내다 팔아버렸습니다.
이런 현상이 무한반복되자, 결국 낙농업자들이 사업을 포기하게 되어 낙농업 자체가 위축되고,
그러자 우유의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우유값은 치솟기 시작합니다.
당시 프랑스 시민들이 받았던 고통은 무엇일까요?
1) 우유가게 앞 긴 줄 : 하염없는 기다림의 고통
2) 줄 앞쪽의 몇 사람만 우유를 삼 : 낮은 성공율의 고통
3) 원하는 만큼을 살 수 없음 : 배급의 고통
4) 뒷 돈 주고 우유를 몰래 삼 : 암시장의 고통
즉, 서민들은 더욱 고통을 받고 오히려 잘 사는 사람들만 암시장을 통해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P.S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주류 경제학계의 의견도 적고 싶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거 같아서
나무위키 "소득주도성장론" 에서 3번 비판 항목도 한 번 읽어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