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경찰 등용을 주도했던 건 독립운동가 조병옥, 장택상
1. 이승만정권 초대 경무부장 조병옥은 누구인가? 독립운동가이다
https://blog.naver.com/wede0723/221476373792
1919년 '제1차 한인 회의에 참여하고 3.1운동 1주년, 2주년 행사를 대대적인 집회로 만드는데 앞장섰고
1921년 뉴욕 한인 교회 설립 때 창립자로 참여해 미국 한인사회 거점이자 독립운동의 발판을 만듬
1925년 귀국하여 흥사단의 국내 조직 '수양동맹회'에서 본격적인 국내 독립운동을 시작함
1927년 신간회를 설립하여 강연, 연설과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투쟁을 함
1929년 광주 학생독립운동을 전국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던 중 체포되어 1932년 석방됨
2. 이승만정권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은 누구인가 ? 청구구락부사건으로 투옥. 거부였던 집안은 독립자금을 대느라 전재산을 다 날리고 일제 모진 탄압을 받은 독립운동가이다
3. 친일파 경찰의 채용은 경무부장 조병옥과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에 의해 추진되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B%B3%91%EC%98%A5
조병옥은 친일은 두가지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는 직업적인 친일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연명책으로 구별해서 다루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조병옥은 일제시대의 경찰관 실무 등용을 두고 군정청에서 비판 여론이 나오자 청문회에 참석한 군정청 고위 관료들과 그 가족 측근들의 친일 전력을 비판하면서 김규식 아들의 일본군 복무 경력을 지적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D%83%9D%EC%83%81
일제 강점기에 장택상을 고문하던 형사가 있었다. 수도경찰청장에 취임한 후 자신을 고문하던 경찰관들이 부하로 만나게 되었다.
부하는 보복을 두려워했으나 장택상은 보복하지 않고 그때가 때이니만큼 어쩔수 없었다며 직무를 수행하는 열의는 대단했다고 치하하였다.
나아가 자기 직책을 완수한 것은 어느 때나 높이 평가해야 한다며 일계급을 특진시켜서 경찰관들의 사기를 돋우기도 했다.
(이때는 빨갱이들이 준동하던 시절이었음)
조병옥과 장택상의 친일경찰 채용 소신이 드러난 것은 1946년 1월에 있었던 서울시내 8서장 임명이었다. 서울시내 8개 경찰서의 서장으로 새로이 임명된 이들은 모두 전직 일제 경찰관들이었다.
https://www.mpva.go.kr/mpva/news/freeBoardView.do?dis_id=84970¬ice=
<독립운동가로만 구성된 대한민국 이승만 초대 내각>
대통령-이승만(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부통령-이시영(임정 내무 재무총장)
국회의장-신익희(임정내무총장)
국회부의장-김동원(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
국회부의장-김약수(사회주의 항일운동)
대법원장-김병로(항일변호사)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이범석(광복군 참모장)
무임소장관-이윤영(국내항일, 조만식 선생의 제자.)
무임소 장관-이청천(광복군 총사령관)
외무장관-장택상(청구구락부사건으로 투옥)
내무장관-윤치영(홍업구락부사건으로 투옥)
법무장관-이 인(항일변호사, 한글학회사건)
재무장관-김도연(2.8독립사건으로 투옥)
상공장관-임영신(독립운동가, 교육가)
문교장관-안호상(항일교육)
사회장관-전진한(국내 항일노동)
체신장관-윤석구(국내 항일교육사회, 6.25전쟁 중 인민군에게 총살)
교통장관-민희식(재미항일)
농림장관-조봉암(공산주의자에서 공산주의 체제에 실망을 하고 민족주의자로 전향)
총무처장-김병연(국내항일)
기획처장-이순탁(국내항일)
공보처장-김동성(국내항일)
이상에서 보듯 이승만 초대 내각은 100% 항일 독립운동가들이었다
남한 내 공산주의자들을 처벌하고자 일제시대 경찰을 일부 기용했으나 이것을 갖고 이승만을 친일이라는 것은 완전 거짓이다.
<친일파로만 구성된 김일성 정권의 주요 요직>
정무원 총리 및 부주석-김영주(김일성 친동생,일제 관동군 헌병 보조원)
임시인민위원회 사법부장-장헌근(당시 서열10위, 일제 중추원 참의)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강양욱(당시 서열11위, 일제 도의원, 종교문화 친일파)
남조선 노동당 2인자–이승엽(친일단체 ‘대화숙’ 가입, 일제 식량수탈기관인 "식량영단" 이사)
문화선전성 부상-조일명(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학도병 지원유세 주도)
문화선전성 부부상-정국은(일제 아사히신문 서울지국 기자, 친일 밀정으 로 일본간첩출신)
보위성 부상-김정제(일제 양주 군수)
초대공군 사령관-이활(일본군,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9사단장-허민국(일본군,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강치우(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제헌 헌법위 위원-김달삼(일제 소위, 조선노동당 제주4.3사건 주동자)
노동신문 창간발기인 겸 편집부장-박팔양(친일기관지 만선일보 편집부장)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가 부주석까지 했으며 주요 요직에 친일 부역자들이 많이 임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승만 정권에 비하면 김일성 정권이 훨씬 더 친일부역자들이 활개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