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지역구인 오영훈 더민주 의원이 “4·3 제주항쟁을 공산폭도들이 일으켰다는 내용에 대해 동의하느냐"고 묻자 “공감한다”고 답했다가 의원들이 질책하자 뒤늦게 “양민학살”이라고 말을 바꾸는 등 갈팡질팡의 연속이었다.
오영훈은 김달삼이 민주화 혁명전사라고 생각하시나?
역사적으로 틀린 이야기 하나도 없네요.
공산폭동인것도 맞고 양민학살인것도 맞네요.
뭐가 틀렸다고 더민주에서 난리친거죠?
4.3 항쟁의 시작은
제주 4·3 사건의 발단은 8·15광복 이후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총선을 저지하고 통일 공산 국가를 세우기 위해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 골수당원 김달삼 등 350여 명이 무장을 하고[6]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급습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우익단체의 처결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유언비어와 반감, 공포가 합해져 유혈사태는 급속도로 제주도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남로당 제주도당 김달삼 등 350명이 경찰서 습격으로 시작
-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양민학살
-체포된 관련자들은 6.25 터지자 재판없이 즉결처형
- 김달삼은 이후 북한으로 월북했다 남침
남로당 제주도당 수뇌부였던 김달삼은 사건이 진행 중이던 1948년 8월25일 월북, 국기훈장2급을 수여받았으며, 게릴라부대를 이끌고 남침했다가 50년 3월 정선지역전투에서 사살됐다. 김달삼은 사후 ‘남조선혁명가’의 비문을 받고 평양근교의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는데, 이러한 사실은 2000년 3월 평양을 방문했던 우근민 제주지사에 의해 확인되기도 했다.
4.3 사건을 경험한 유족들의 회고에 따르면, '좌익도 우익도 자기 마음에 안들면 마구잡이로 죽여버리는, 완전히 미쳐버린 세상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24]
1998년 11월 당시 ‘한라일보’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공산폭동이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인정한 공산폭동입니다
양민학살인 것도 맞고 좌익과 우익 제주도민들이 서로 의심하고 서로 죽이기도 했음.
제주도 4.3폭동이 공산혁명의 기본 매커니즘이죠.
이석기가 시도했던게 이겁니다.
내란선동...
1. 주민선동 빨갱이로 적화 -
2. 테러 -
3 테러진압과정에서 주민희생(약 2만여명의 주민이 가담)
이기면 공산혁명 성공
지면 양민학살 (공산당이 아닌 무고한 양민도 같이 희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