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함양 양민 학살사건>
이 사건은 6.25양민학살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히는데,
1951년 오늘, 공비토벌을 명분으로 세운 우리나라 국군 11사단과 9연대가
산청군 금서면및 함양군 일대지역 마을주민 약 700명을 공비에게 협력했다라는 이유를 들어 학살한 사건이다.
그 후, 11일 후에는 또다시 거창에서 양민학살사건이 발생하는데,
산청 함양 양민 학살사건과 같은 이유를 내세우며 깊은 산속에서
약 700명을 사살하였다.
2006년에는 그동안 감춰져왔던 진실이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이 두사건 이외에도 산청 시천면 외공리에서도
또다시 학살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생존자가 없어 그동안 밝혀 지지 않았는데,
학살당한 사람들은 모두 양민으로 피난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끌려왔으며,
한명씩 총살당했다고 한다.
학살당한 사람들은 일가족단위가 많았고 여성과 아이도 대다수 포함된것으로 알려진다.
이 세사건의 명분은 모두 1949년에 국군 37명이 덕산초등학교에 주둔하다가 몰살당한 사건이 원인으로,
이 때문에 국군은 양민들을 적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학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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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2 14-02-14 17:48 121.♡.♡.86
진영논리에 빠져 다른 의견을 비판해서는 안된다며
베트남의 월맹 공산 간첩 세력이 운운하며 침투하여 단번에 공산화 시켰지
적따위에게 진영논리 따지네?
이러니 빨치산에 그렇게 포섭이 많이 되었지
--> 경상도 사람들을 도륙한 이 사건은 건국대통령의 양민학살입니다. 아니면 빨갱이 소탕일까용? ㅎ
제 모리론 도져히 이해가 안 와서용
좌좀충계의 랍삐삐리 삐삐코 삼성동뚤 아잉님한테
아그작 물어봉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