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군법회의 판결문 - 빨갱이 반란을 주도한 남로당(남조선 노동당) 인사 명단에 박정희(朴正熙)가 보인다..
고등군법회의에서 " 전 피고인은 단기 4279년(1946년) 7월경부터 4281년(1948년) 11월경에 이르는 동안 대한민국 서울 기타 등지에서 각각 남로당에 가입하고 군 내에 비밀세포를 조직하여 무력으로 합법적인 대한민국 정부를 반대하는 반란을 기도 "하였다고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고하였습니다..
" 박정희 소장은 전에 공인된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여순 반란 사건을 조직하는 데 협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승만 씨의 장교들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향하여 반란군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형을 면제받았습니다. "
▶ 1961년 5월 26일, 김준연 자민당 대표최고위원이 <타임>지 박정희 프로필 기사를 인용해 증언..
" 황태성과 박상희는 박정희가 남로당에 입당할 때의 신원보증인이다.
5·16 이후 황태성이 박정희와 접촉하기 위해 내려왔을 때 박정희는 김종필에게 그를 만나보도록 했다.
나는 이 정보를 입수해서 상부에 보고했는데 상부에서는 황태성·김종필이 회동하는 반도호텔을 감시하라고 했다.
그때 김종필은 중앙정보부를 조직하느라 반도호텔 한 층을 온통 차지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반도호텔 8층 몇 호실에서 몇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모두 조사해 상부에 보고했다.
황태성이 내려온 목적은 박정희와의 연대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같은 정보를 입수한 미국측은 황태성을 미 정보기관에 인도하라고 박정희에게 계속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황을 인도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끌었고, 오히려 그 사건을 추적하는 나를 한국에서 추방했다."
▶ 래리 베이커(한국군 창설 이후 육군참모총장의 군사고문을 역임)의 증언..
▼ 참고 사항 - 황태성 사건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절친한 친구이자 일제시대부터 공산주의 이론가로서.. 대구 10월 1일 사건 당시 경상북도 인민위원회 선전부장을 지낸 황태성이 북한에서 무역성 부상(차관)이라는 고위직에 있다가, 5월 16일 직후인 1961년 9월 박정희와의 비밀회담을 위해 밀사로 내려온 사건입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황태성은 박정희의 공화당 창당에 자금을 제공하였고, 박정희에게 직접 공화당 창당에 대한 밀봉 교육을 했습니다..
싸우다 힘이 부족하면 빨갱이라는 모략을 하는 것은 과거의 한민당이 주로 쓴 수법인데 오늘의 야당도 이와 똑같은 수법을 쓰고 있습니다. 3권을 쥐고 있는 최고회의 의장을 빨갱이로 모는 구정치인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에는 그들이 밉게 보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빨갱이로 몰리는 무서운 분위기가 될 것입니다. "
▶ 1963년, 박정희의 좌익을 위한 변명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