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적폐의 몸통'이라고 지목하며 직접 검찰에 고발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이 자신에 대해 사찰 활동을 벌이고 명예를 훼손하는 활동을 한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
또 이명박정부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개그우먼 김미화 씨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고소가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도 '방송장악 국정조사'를 추진하며 이 전대통령 측을 압박하고 있다.
박 시장 측 변호인인 민병덕 변호사는 19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시장의 사생활과 시정에 대해서 허위 사실들을 적시함으로써 박 시장과 실제적으로 서울시까지 명예를 훼손한 사건에 대해 고소·고발한다"고 말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국정원이 박 시장을 비판하기 위해 작성한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의 최종 책임자를 이 전 대통령으로 적시한 것이다. 이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은 박 시장을 비판하기 위해 2009~2011년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의 시위를 조장하고, 온라인상에 박 시장을 비판하는 글을 퍼뜨리거나 서울시장 불신임을 요구하는 청원을 내는 활동을 했다. 국정원은 이와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상 정치관여금지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박 시장 측은 이날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해 원 전 원장 등 박 시장을 사찰하는 데 관여하거나 실행한 11명에 대해 고소·고발장을 제출했다.
민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 측이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면 적반하장"이라며 "야권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박 시장을 제압하려고 시도했던 것이고, 이 전 대통령이 조폭 수준의 무단 통치를 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적폐의 몸통이 이 전 대통령"이라며 "수사해보면 나올 일이겠지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이런 내용을 모두 청와대에 보고했던 것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도 이 전 대통령을 직접 정조준했다. 민주당은 이명박정부 시절 국정원이 만들어 관리한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국정원은 적폐청산태스크포스(TF) 조사 결과 당시 국정원이 관리한 블랙리스트에 82명이 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박범계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은 이날 회의를 열고 이 전 대통령은 물론 김효재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박근혜정부의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남 전 원장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 불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수많은 수사방해 행위를 했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증거인멸과 직권남용 혐의가 짙다"고 말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방송장악 의혹에 대해서도 국회 차원에서 조사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방송장악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121명 소속의원 전원 명의로 최근 국회에 제출한 데 이어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국조 실시에 동의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은 국조를 통해 이명박정부의 언론적폐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 공영방송을 국민 품에 돌려주겠다"며 "다른 야당도 언론적폐 진상을 규명하고 방송 정상화를 위해 국조에 하루속히 임해주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언론장악 국조를 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면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당시 국정원장, 역대 방통위원장을 증인으로 불러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이날 검찰에 출석한 김미화 씨 역시 이 전 대통령을 고소할 뜻을 내비쳤다. 김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그 밑 어느 범위까지 갈(고소할)지를 지금 고민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도 민형사 고소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오후 조사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국정원 문건을) 다 봤다"며 "제가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에 대해 완전히 밥줄, 목숨줄을 끊어놓는 개인 사찰이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주 중 문화·예술계 피해 인사를 추가로 부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의 수사 의뢰 내용을 토대로 피해 정도가 크거나 본인의 진술 의사가 있는 피해자 위주로 소환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며 "추가 조사 필요성이 생긴다면 기존 소환자를 다시 부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문화·예술인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이 전 대통령 측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일일이 대응할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법적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법률가 출신 이 전 대통령 측근들을 중심으로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기철 기자 /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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