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언제나 자신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인간은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역사의 질투심은 너무도 강해서 인간이 그와의 추억 혹은 기억을 잊는 순간
과거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것을 다시 경험하게 만들어 준다.
다시는 나와의 기억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역사 속의 교훈을 금새 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역사의 복수를 당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땅의 사람들에게도
찬란했던 과거가 있었고 또 오욕으로 점철된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있다.
만약 이 땅에 다시금
승패가 기울어진 전쟁이 닥쳐 오고,
외세의 속국이 되는 운명이 찾아 온다면 어떻게 될까?
단언하건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 이라고 본다.
지금 보다 인구가 훨씬 적었던 구한말 대의를 위해 뛰어 들었던 이들 보다
더 소수의 어리석은 사람들만이 자신을 희생하려들 것 이다.
왜 일까.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은 도저히 그 길에 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말한다.
앞장 서서 나라와 민족을 팔아 먹었던 이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이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흘렸던 피는
결국 내 후손들이 지배받지 않고 자유로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러나 현실은 빼앗긴 나라에서 자신을 핍박하던 매국노가
되찾은 나라에서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뺨을 갈기고,
모든 것을 바쳐 되찾은 나라에서 정작 자신과 후손들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 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팔아 먹은 댓가로 호위호식하던 이들은 일신의 영달을 누렸고,
그 자손들 또한 사회지도층이란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떠한 처벌도 없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과연 누가 국가와 민족의 위기 앞에 초개와 같이 자신을 버릴 수 있을까?
그 유명한 의열단을 조직하며 무장 독립 운동에 있어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약산 김원봉.
수많은 암살 위협과 일제의 모진 추적을 신출귀몰하게 따돌렸었다.
그러나 해방 된 조국에서 그는 친일 경찰에게 체포를 당했고,
뺨을 맞으며 모진 고초를 당했다.
그는 지인에게 대성통곡을 하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 내가 일제 시대에도 중국놈들이나 일본놈들에게 이런 모욕을 당한 적이 없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매국노에게 이런 모욕을 당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
약산 김원봉 말고도 일제 시대 자신을 체포하거나 고문했던 친일 경찰들에게
해방된 조국에서 다시 체포되거나 모진 고초를 당했던 이들은 많았다.
그들이 자신을 희생해 가면 되찾은 나라에서는
여전히 역적놈들이 주인질 하고 있었고,
되려 민족의 영웅들을 핍박하고 있던 참담했던 현실.
그 역적의 후손들은 지금 그들을 건국의 영웅으로 포장하려 애를 쓰고 있다.
수많은 독립 운동의 영웅들이 '빨갱이'이라는 미명 아래
수십년 동안 언급 조차 금지된 이름으로 남았어야 했고,
수많은 매국노들은 사회 지도층이란 미명 아래
수십년 동안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남겨 졌다.
이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세뇌교육을 하듯 '애국심'을 강조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하고,
애국가를 강요하고,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던 어린 학생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 놓더라도,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초개와 같이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적어도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자신이 생기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에게 기회를 주어 왔지만
우리는
기억을 망각하기 바빴고,
과오를 미화하기 바빴고,
사실을 왜곡하기 바빴다.
이 나라의 역사를 안다면
그대는 나라를 구할 것 인가.
나라를 팔아 넘길 것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