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공주를 여행하면서 무지랭이들을 생각해 보았다...
왜 우리의 동학농민들은 별로 험하지도 않은 우금티에서 그렇게 험한꼴을
당했는가?? (참고로 무지랭이들은 교과서에서 우금치로 배울텐데, 현지에서는
우금치라고 하지 않는단다... 충청도 일대에서는 고개를 뜻하는 '치'는 '티'로 읽는단다)
우금티 전적비는 왜 그렇게 찾기 힘든 곳에 세웠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적은가?
우리의 무지랭이들이라도 자주 가야 할 텐데...
그리고, 동학군이 집단학살 당해서 시체가 버려졌던 '송장배미'의 초라함...
죄인정부는 가야사에 정치개입하지 말고, 이런 곳이나 정비 좀 해라...
어쩌면 동학란의 시작점이었던, 악질 탐관오리 조병갑은 동학의 교주인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 아들은 일제시대에 떵떵거리며 살았고, 조병갑의 증손녀는 노무현 정권에서 홍보일 했고.... 지금도
문재인을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 돕고 있고....
동학농민운동의 흔적을 찾아다니다 보니... 죄인정부를 용서할 수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