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1월12일 박정희가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전 총리 기시 노부스케 등 일본의 만주 인맥과 아카사카의 요정에서 만나 유창한 일본어로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며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라고 밝혀 동석한 일본 정객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박정희의 롤모델이었던 명치유신의 지사들이 누구였을까. 사카모토 료마, 다카스기 신사쿠, 오쿠보 도시미치와 같이 일찍 암살당하여 신화화된 인물도 있지만, 정한론을 펼친 사이고 다카모리,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 바로 박정희가 감탄해 마지않은 명치유신의 지사들이었다.
5·16 군사반란이 일어나고 그 실력자가 박정희 소장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일본 정가는 매우 긴장했다고 한다. 극도로 반일적인 자세를 취했던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일본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장면 정권이 들어섰는데 갑자기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군사쿠데타는 거의 대부분 민족주의와 친사회주의 성향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시간 후 박정희 사진이 박힌 호외를 본 일본 정객들은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 아냐?”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그들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다카기 마사오라는 조선 청년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본명이 박정희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박정희가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주군관학교 시절의 교장인 나구모 신이치로(南雲親一郞) 중장에게 큰절을 올린 행위가 일본의 보수인맥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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