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도 원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NL주류'와 '자주/민주/통일'이라는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주체사상은 거부하는 비주사NL로 나뉘어있었다. 운동권의 흐름을 보면 1980년대 중후반 NL과 CA(제헌의회)가 대립하는 구도였다가, 1987년 6월항쟁과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거치면서 CA그룹이 분열해서 다수파는 비주사NL이 되고, 소수파는 PD가 된 것이다. 1989년에 가면 'CA다수파까지 포괄하면서 엄청난 머릿수에 대중조직력이 탁월하며 자기들끼리는 무조건 뭉치는 NL' <-> '하나하나는 똑똑하고 이론에 해박하지만 조직이 분산 되어있고 대중동원력이 떨어지는 PD' 구도가 성립해서 2010년 이후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노동당(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등이 모두 이 당시에 형성된 인맥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이 진보세력의 위축을 불러봤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세가 크게 위축된 지금에 와서는 그런 분류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졌지만... 대표적으로 8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의 NL은 비주사NL(소위 관악자주파)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들은 1993년 온건PD 그룹과 통합해서 21세기 진보학생연합(약칭 21세기)를 만들면서 NL에서 이탈하였다. 참고로 비주사NL이 21세기로 떨어져 나간 이후에 서울대 운동권에선 NL은 소수파로 전락했다. 총학생회 선거에선 대부분 21세기와 연대회의(PD. 현재의 전국학생행진)가 번갈아가면서 승리하다가 2000년을 기점으로 비운동권이 급성장했고, NL주사 그룹은 언제나 하위권이었다.
민주노총 내에서 전국연합의 지도를 받는 NL계 노동운동가들을 국민파라고 한다. 지역단위 노조들이 대중적 이미지를 만들고자 당시에는 많이 퍼져있었던 NL 민족주의 운동과 결합한것. 또한 인천연합, 울산연합등의 학출 활동가들이 산별노조를 장악한 것도 덤. 이들은 민주노총 내의 우파를 맡아 민주당계열과 협상하고 노동법을 개정해 노동환경을 개선하자는 주장을 펼쳤으며, 권영길, 문성현(정치인)으로 대표되는 민주노동당의 초기 맴버진이기도 했다.[27] 국민파의 지도부 중 강경 NL들은 민중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대부분의 소속 조합원들은 민주당에 친화적이다.
2000년대 들어 학생회 운동이 퇴조하자 다양한 관심사별로 그룹이 조직된다. 위의 연합 동아리들의 활동은 다양한 부분에 걸쳐있어 회원들 중에는 단순히 학술, 봉사목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단체 자체를 NL 조직으로 규정하기는 어려우나, 각 조직의 운영진이나 이들을 지도하는 선배 라인은 대부분 NL(중에서도 경기동부연합 계열)출신으로 통합진보당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위의 단체들은 소위 NL 자주계열(단결파, 주사파 등으로 불리는)의 단체들로, 최근에는 거의 활동이 미미하며 2010년에는 홈페이지마저 방심위에 의해 폐쇄되었다. 이들은 남한의 진보정당운동에 무관심하기도 하다.
현재 이쪽은 민중당이나 평화나비 등에 남아있는 전통적인 구 인천연합 세력과는 단절된채 정의당 청학위를 중심으로 신 인천연합으로 분화된 상태이다.사실상 인천연합의 멀티
그동안 정의당 내 인천연합은 노유진의 정치카페등을 듣고 자발적으로 가입한 리버럴-사민주의 당원들이나 지속적으로 대학생위원회나 생활도서관과 같은 진보성향의 동아리, 전국학생행진내 인맥을 통해 세력을 포섭해왔던 PD들과는 달리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 이후 후배 조직원들을 포섭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정미 의원 이후로 공식적인 인천연합 계열의 정치인을 길러내지 못해 쇠퇴하다가 청년둥지사업단을 조직해 기존의 청년학생 정의당원 중에 자신들과 뜻을 함께하는 당원들을 대상으로 하여 조직 구성원들로 받아들이고 있어 다시금 세력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인천연합 출신의 권중도 서울시 청년학생위원장의 주도로 2016년 초부터 진행된 청년둥지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꿈꾸는 고래라고 하는 정의당 외곽조직이 탄생했다. 전국 대학생 진보동아리연합을 표방하며 구 인천연합과는 완전히 분화된 독자적인 노선의 신 인천연합 청년조직을 구성할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에는 PD계열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데, 평등파 계열 정의당 대학 위원회들 중에서 평등사회네트워크의 친메갈적 성향이나, 진보너머의 미온적인 색채 모두를 비판하는 제 3세력이 대거 인천연합과 함께 꿈꾸는 고래에 참가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