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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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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제주 4·3 사건(濟州四三事件)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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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 군사재판을 받은 수형인은 2530명, 일반 재판 수형인은 1306명이다.
배경:
과거 일제강점기당시 경찰출신들이 미군정경찰로의 변신, 밀수품 단속을 빙자한 미군정 관리들의 모리행위 등이 민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사건의 배경에는 남한 단독 정부수립을 반대하는 남조선로동당계열의 좌익세력들의 활동과 군정경찰,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우익 반공단체의 처결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 등이 복합되어 쌍방간의 적개심으로 일어났다.
1945년 8.15 광복 후 8월 16일부터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서(무정부 상태) 자치조직이 조직되었다. 이 조직이 인민위원회다.
인민위원회(26분 23초):
8.15해방직 후 전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된 민중의 자치조직. 소련은 이 조직을 긍정적으로 활성화시켰고, 미군정은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고 친일세력을 적극적으로 부활시켰다.
건국준비위원회(건준):
1945년 8월 15일 여운형이 일제의 패망에 준비하여 국가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만든 조직.
인민위원회가 건준의 산하기관이 아니다. 상호 협조했을 뿐이다.
미군정:
미군이 한국의 정권담당자로서 통치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한국의 역사와 현실에 완벽하게 무지했다.(이들이 일제시대 경찰, 도지사, 공무원했던 사람들을(친일 매국노들을) 다 불러들였다.)
그리고 인민위원회를 무조건 빨갱이로 몰았다.
이러한 편견을 조장한 단체가 김성수,송진우의 한민당이었다.
빨치산:
이러한 배경에서 미군정 및 다시 복귀한 친일매국노들에 의한 인민위원회의 탄압으로 타협하는 사람들 또는 도망간(산으로)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바로 '빨치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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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만이 인민위원회(지방위원회)가 끝까지 남았다. 제주도는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공부했던 사람들, 노동했던 사람들이 광복 후 귀국한 가장 첫번째 지역이었고 미군정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은 지역이었다..
본토에서 북한에서 내려온 (개같은) 서북청년단을 제주도로 보내 학살이 시작되었다. 제주에서 폭동 민란이 일났다고 보고 받은 당시 정부는 24연대를 급파하게 된다.
(동종상잔이냐 반역이냐..--> 반역 선택; 당시 경찰과 군대는 마찰이 심했었다. 당시 경찰은 일제시대 경찰을 했던 친일매국노들로 군인들 푸대접하고 무시했던 것이다.
당시 군대내에 좌익세력이 있다는 것을 '박정희'가 폭로하게 되었다. 이 때 박정희소령은 육사1중대장이었다. 박정희를 남로당에 가입시킨 사람은 이재복이었고, 그는 사회주의자인 친형 박상희의 친구였다.(이 사건 이후 남로당은 귀멸직전의 타격을 입게 된다.) -196년 10월 13일 동아일보 호외 기사 ' 박정희씨에게 무기선도'- )
결과:
미군정의 보고서에 의하면, 4.3제주항쟁에서 6만여명의 인민(일반백성)이 희생되었고, 4만명의 인사들이 배를 타고 다시 큐우슈, 오사카 등지로(제일동포가 됨)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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