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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참 .. 이승만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독재자로 있다가 쫗겨난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방향성을 반공 자유 민주 자본주의로 셋팅 했다고 하는게 업적이라고 말씀 하셧는데
바꿔 말하면 열열한 반공 자본주의 신봉을 무기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독재를 하다가
민중혁명 4.19때 쫗겨났다라고 말해도 되는 거라는겁니다
그걸 군인들의 무력 쿠데타로 다시 철권독재를 했던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이구요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은 반공 자본주의를 핑계로 자기 권력 독재로 만든 사람들입니다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말살 했던 대통령이란 겁니다.. ( 아 참 ,,, 박정희 대통령은 안가 에서 여자들 데리고
잘 놀다가 자기 똘마니 한테 총맞아 끝이 났죠 )
만약에 삼선 개헌이 되어서 이승만이 종신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리고 그 후계자 이기붕이 그 권력을
세습 했엇다면 과연 북한이랑 다른게 뭡니까 ???
유신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지 않고 박정희가 종신 대통령이 되고 그 권력을 자식에게 세습 했다면
아오지가 아닌 삼청 교육대에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고역을 하고 있을 겁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좌익 빨갱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아니 자기 권력에 약간이라도 틀린 사람들은
아마 북한과 별 다르지 않게 고통 받고 있을 거란 말입니다
오래 전, 히틀러의 독재를 두고 서구유럽사회에서 그의 공과에 대한 논쟁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패한 독일의 경제재건과 독일민족의 단합을 이끌어내며 이를 기반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인물입니다.
당시 히틀러에 의해 학살된 유태인, 거지(집시), 장애인 등 그 수가 대략 600만 이라고 하죠.
이 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추진하려던 경제재건정책들을 히틀러는 그저 시행한 것 뿐이기는 하지만, 전 후 독일의 어려운 국가경제상황에서 독일경제재건이란 성과시기에 그가 집권했음은 분명합니다.
허나 아돌프 히틀러의 독재정권이 1차대전 패전의 고통속에서 독일국민을 단합시키고, 폐허가 된 국가경제를 재건하였다고 하여 이에 고마움을 느끼고 그에 대한 평가를 달라해야 걸까요?
국내의 예를 하나 들죠.
매국노란 타이틀을 독보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이완용 이야기를 해보죠.
국왕(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일찍 정3품의 직위에 오르고 세자(순종)의 국사를 맡을 정도로 당대 최대의 석학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던 이가 바로 이완용 입니다.
헐버트의 첫제자로 서양의 근대학문을 누구보다 일찍 익히고 고종의 대미외교 전반을 담당하고 이끈 인물이 바로 이완용 입니다.
제국주의 세계열강들의 식민지 각충장이 된 조선의 위기상황에서 조선제국의 자주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고자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독립문을 건설하는데 큰 기여를 한 이가 이완용 입니다.
그런 이완용은 학부대신으로 일본특사대사 이토의 지시를 받고, 어전회의를 열어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조약에 서명하게 함으로써 조선을 일본에 상납한 후, 당대 대한민국 내각 최고직인 총리대신에 오릅니다.
이 후, 남인과 북인들을 복권시켜 세를 키운 후, 박영효 등의 정적들을 몰아내고 순종을 즉위시키고 막후권력으로 독재적 행태를 보입니다.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국정에 참여하여 대미외교 전반을 이끌고 미국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이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으며 제국주의 식민지 각축장이 된 한반도의 위기상황 속에서 조선의 자주독립을 천명하기 위해 독립협회와 독립문을 건설하였다고 하여 이완용에게 감사하는 맘을 가지고 그에 대한 역사적평가를 재조명해야 하는 걸까요?
이제 이승만 이야기를 해보죠.
해방 후, 반민특위를 강제적으로 해산시키고 친일파를 등용하고 좌우이념의 첨예한 대립구도속에서 보도연맹사건을 주도하여 자국민을 최소 20만(생존자 진술에 따르면 100만)을 학살한 인물이 이승만 입니다.
1948년 대국민 사상통제를 목적으로 반공단체로 국민보도연맹을 만들고, 지역마다 할당제를 두어 무지한 농민, 서민들을 강제적으로 가입시킵니다.
사상통제란 이름으로 이들을 수시로 소집하여 체벌을 가하고 불참한 자의 그 주변인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 피해를 가하면서 보도연맹에 대한 비판과 불만들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가운데 6.25 전쟁이 발발하자 좌익세력들에 의해 유사시 보도연맹조직이 이용될 것을 염려하여 국군과
서북청년단 등을 동원하여 이들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승만 정권의 권력강화를 위해 보도연맹을 조직하고 무고하고 무지한 국민들을 강제로 가입시키고 사상교육이란 미명 아래 폭력을 동원한 세뇌교육을 하였고 이에 보도연맹원들의 불만이 커집니다.
이런 중에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이 자칫 자신들에 반기를 들고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권력을 동원하여 최소 20만 최대 100만의 무고한 자국민을 학살한 것 입니다.
시간도 많고 하니 이야기를 좀더 나아가 보죠.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60년 국회에서는 "양민학살 진상조사 특별위"가 구성되고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해, 5.16 군사쿠테타로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 당시까지 특위의 조사내용 및 자료들을 모두 소각하고 보도연맹사건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합니다.
세계 어떤 나라, 어떤 역사에서 최소 20만에서 최대 100만의 무고한 자국민을 학살한 독재권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정하던가요?
이승만이 여기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한 인물에 대해 그의 치적만으로 평가하지 않음을 기억하셨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