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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그렇게 생각하거나 알고 이글을 쓰신건가요?
스스로 함 확인해 보시면 충분하실텐데...?
설마 그 확인을 위해 X베 같은데서 가생이 XX같은 사람들이 이런 주장들 하는데 어쩌구저쩌구 물어보실건가요? (그런데서 제대로되고 객관적인 정보가 나오겠습니까?)
정말 그런지 모르셨다면 님께서 객관적으로 여저저기 여러군데 함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님의 진심과 생각이 궁금하네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박상희는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민족주의자로서 신간회 등을 통해 독립운동도 꽤 했음.
그래서 툭하면 왜정 경찰에게 뿥잡혀가기도 했음.
나름 인텔리로서 동아일보의 대구 주재기자를 했고
독립운동과 동아일보 기자라는 신분 때문에 대구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꽤 큰 편이었음.
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을 했고 건준 산하 인민위원회 대구 지부 내정부장을 하기도 했음.
박헌영의 남로당 활동을 했지만 그 당시 남로당은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의 조선노동당의 산하 조직이 아니었음.
박상희가 활동했던 1946년에는 남조선노동당은 북한의 조선노동당 지시를 받던 산하 조직이 아니었음.
그리고 1946년 10월에 발발한 대구 10.1 사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경찰 총에 맞아 사망했음.
대구 10.1 사태는 제주 4.3 사태와 많이 닮았음.
제주의 3.1절 기념식에서 경찰 기마대에 아이가 깔려 다친 것은 항의하다가
경찰이 발포한 총에 제주도민들이 죽으면서 4.3 항쟁이 시작된 것처럼
대구의 식량난 문제에 대해 미 군정쳉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발포한 총에 시민들이 죽으면서
대구 10.1 사태가 벌어졌음.
박상희는 구미 (당시 선산군)에서 2,000 여명의 군중을 이끌고 구미경찰서를 공격해 경찰서 기능을 마비시켰고
인민보안위원회를 설치해 지역 관리를 했음.
경찰, 우익인사들을 감금했고 부호들의 가산을 파괴했음.
당시는 해방 1년후.
그 때의 부호들이라면 이미 왜정시대부터 부호였던 사람들.
왜정시대 부호였던 사람들이 어떤 존재들이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음.
혹시나 그 과정에서 학살을 하지나 않았을까 상상하는 분들은 실망스러웠을 것.
나중에 경찰에 쫓기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함.
박상희라는 인물을 단순하게 빨갱이로서 김일성 꼬붕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꽤 큰 오류.
김원봉을 김일성 꼬붕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맞먹는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비슷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잇음.
이것들은 맨날 빨갱이타령??
625전엔 한국인들에겐 소련이 우방이었고 호감이 가장 높았고 공산주의 사상에 안빠져있던 지식인이나 젊은이들이 없었고 실제로 소련은 무상으로 제3세계 식민지 지역의 젊은이들에게 무상교육과 지도자 교육도 했었고 독립운동에 자원과 무기도 지원했던 나라야!!
그때 박정희가 공산주의를 몰랐다면 ㅂㅅ 아니면 ㄷ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