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에서 한번 지적한 부분인데 좀더 적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씁니다.
흔하게 우린 도덕성을 정치인들에게 적용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청렴하고 털어서 먼지하나 없고...
그런데 정치라는 것이 정말 도덕성이 최우선가치인가? 전 민주당을 지지하고 도덕성을 중시하긴 하지만,
그건 잘 모르겟습니다.
정치는 어떤 선택을 하는 분야입니다. 늘 기회비용이 발생합니다. 다양한 의견중 의견의 일부 혹은 소수를
선택하고 집행하는 분야죠. 필연적으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발생합니다. 가령 노무현과 문재인에 의해 금권정치 구조가 개혁될때, 필연적으로 이전 시스템에서 이득을 보던 사람들은 이들 개혁파의 선택에서 배제됨니다. 그 결과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 입장에선 이들 개혁파는 정치적인 적이 되어버리죠.
개선을 하건 개악을 하던지 간에 정치적인 선택 = 이해관계의 발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볼맨소리던지 시니컬한 비난이라던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 선택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는 그 선택을 한 사람들이 그냥 적일 뿐이죠. 당연히 인신공격이 만들어지곤 합니다. 도덕적이지 못하다..
사실은 도덕적이지 못한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들의 편이 아니다. 이말이겟죠. 어짜피 미운데 사실이던지 아니던지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약간 생각을 달리해서, 어떤 선택을 하던지 선택을 내리는 시점에서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내릴수는 없습니다. 선의에 의한 선택이라고 해도 나쁜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성립하곤 합니다. 인간적인 인지능력의 한계, 예측력의 한계. 이유야 어쩌든 선택은 기본적으로 정보의 불완정성을 늘 내포합니다.
때문에 좋은 선택을 내리는 도덕적인 지도자의 선택이 항상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결과로 이어질수는 없습니다. 패리클레스는 스파르타가 공격해오자, 성벽을 쌓고 도시의 문을 닫아버리죠. 지상전을 회피하고 해상의 수송에 의존해서 스파르타를 지치게 만듬니다. 물론 전략은 성공했죠. 하지만 엉뚱하게도 전염병이 돌면서 도시를 봉쇄한 자신의 결정이 되려 전염병의 확산에 기여한 것이 되어버림니다. 역사에서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물론 선의를 가진 뛰어난 지도자가 옳바른 결정을 한것이지만, 누가 전염병의 발생을 예상할수 있었을가요?
전 그런 의미로 도덕성을 정치인을 평가하는 데 최우선가치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도덕성이 반드시 사회적인 도덕성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단지 일반적으로 도덕적인 사람이 사회적인 선이나 정의를 실현하는데도 더 적극적일것이다. 이정도의 사고에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 뿐이죠.
개인적으론 도덕성보다, 지적능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도덕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만, 그보다 훨씬 많이 사회나 경제 특히 경제에 관한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중에 가장 정치적인 수완이 좋았다는 김영삼 대통령도 IMF가 터지자, 경제부장관 불러다 대책마련 타령만 했다는 일화는 경제인들 사이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정치 지도자치고 경제에 대해서 제데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겟죠.
그나머 김대중 정도가 경제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손 마사요네와 빌게이츠를 만나보고 바로 IT 투자를 단행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투자가 자본주의의 운영에 핵심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선택이죠. 우리는 흔히 카드대란 신자유주의 정책의 시행등의 이유로 김대중을 공격하는 우파의 비판 혹은 좌파의 비판을 접하곤 합니다만,
그럼 당시 IMF 의 폭풍 한가운데서 무슨 선택을 해야 좋은 선택이였을것 같나? 하고 물어보면 그 사람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됨니다. 경제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면서 비평은 청산유수죠.
정치적인 혹은 도적적인 프레임에서 순수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실은 그것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해서 뽑을수 있죠. 하지만 국제 시장 환경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하고 내릴수 밖에 없는가? 는 국민이 원한다고 뽑아지는 사항이 아님니다. 자신의 능력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주관데로 행할수 있다고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죠.
이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선, 생각할줄 아는 각 개인이 무슨이야기라도 하면 그것이 누구의 어떤 사고에서 나온 이야기던지 '동등한 가치'로 '똑같은 비중'을 가지고 다루어져야 한다. 라는 아주 극단적인 평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논리적 정당성을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선 어중이 떠중이 100명이 모여서 의견을 만들어낸들. 결국 오합지졸의 의견 하나에 불과합니다. 100명의 바보보다 한명의 천재의 의견이 훨씬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현실사회이기도 합니다.
그럼 저의 관점이 소위 한국 우파식의 엘리트주의 아니냐? 하실겁니다. 물론 저도 그것은 얼마간 인정합니다. 제 관점은 다분히 "불평등한 현실" 이라는 현실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까요. 부나 권력같은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사고력과 지식 판단력의 차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고 보고 있으니까요.
단지 제가 요구하는 것은 한국 우파식으로 "우리가 뭘하던 니들은 잔말말고 따라오면돼." 이것이 아니라 "우리가 좋은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이러이러한 사고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이런 결과를 보기 위해서 행하려 합니다." 같이 지극히 당연하게 존재해야 하는 일종의 설득 과정 소통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주권을 대통령에게 위임하건 국회에 위임하건 그것은 "위임"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위임받은 권리를 가지고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시민들은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한국의 우파는 그 설명의 과정을 여태까지 생략해왔습니다.
전 다음에 누가 집권을 하던 국민적인 설명 소통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을 정도의 도덕성만을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