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 박대통령이 피눈물을 쏟아가면서 만든 이나라를 한줌의 좌파, 빨갱이 놈들이 손도 안대고 강탈하려고 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친 박정희 대통령을 다카키 마사오라고 조롱하고 부관 참시를 하고 있다
좌파 놈들은 사람새끼인지 짐승새끼인지 분간이 안되는 악마와 같은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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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1인당 GDP가 80달러였던 시절,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 돈을 꾸기 위해 서독을 방문했다. 비행기조차 구하기 어려워 서독 정부에서 보내준 국빈용 항공기를 타고 갔다.
1964년 12월 10일 오전 10시55분 독일(당시 서독) 북서부 루르지역 함보른 탄광의 한 공회당. 얼굴과 작업복에 석탄가루가 묻은 300여명의 한국인 광부, 한복차림의 한국인 간호사, 독일인들 앞에 박정희 대통령이 나타났다. 박대통령 일행이 강당으로 들어가 대형 태극기가 걸린 단상에 오르자 광부들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박대통령이 선창하면서 합창이 시작됐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차츰 커지던 애국가 소리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목부터 목멘 소리로 변해갔고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에 이르러서는 울음소리가 가사를 대신해 버렸다.
대통령 부부, 300여명의 우리 광부와 50여명의 간호사 모두가 어깨를 들먹였다.
밴드의 애국가 연주가 끝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코를 풀더니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서독 정부의 초청으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에 와 일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사람들이 제일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기 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박대통령은 연설원고를 옆으로 밀쳐버렸다.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로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결국 대통령은 연설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본인도 울어버렸기 때문이다.
“여러분, 난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 아픕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정말 반드시….”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되던 박 대통령의 연설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광부, 간호사뿐 아니라 곁에 있던 육영수(陸英修) 여사, 뤼브케 서독 대통령도 손수건을 꺼내 들면서 공회당 안은 ‘눈물 바다’로 변했다.
박대통령은 참석한 광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파고다 담배 500갑을 전달한 뒤 강당 밖으로 나왔다. 30분 예정으로 들렀던 광산회사에서 박대통령 일행이 강당 밖으로 나오는 데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박대통령과 육여사는 울어서 눈이 부어 시선을 바로 두지 못했다.
박대통령은 차중에서 눈물을 멈추려 애쓰고 있었다.
나란히 앉은 뤼브케 대통령이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자기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칠순 노인인 뤼브케 대통령이 사십대 후반의 젊은 대통령의 눈물을 직접 닦아주었다.
그리고 우정어린 격려를 했다.
"울지 마십시오. 잘사는 나라를 만드십시오. 우리가 돕겠습니다.
분단된 두 나라가 합심해서 경제부흥을 이룩합시다.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경제 건설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