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식 논문이 아니고 리포트 아니냐는 말들도 군데군데 보이고,
논문을 전체 올려놓고 2주만에 실험이 가능하네 아니네 하는 말들도 있어서
제가 의대는 아니지만 거기 나오는 실험들은 익숙해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1. 국내 영문지 The Korean Journal of Pathology
정식 학술지 맞습니다. 저널 소개를 읽어보면 peer-review 저널도 맞습니다.
peer-review 저널이라함은 저자들이 논문을 편집국에 제출하면, 편집자가 논문을 읽고 심사할 2-3명의 박사학위자들에게
심사를 요청하면 짧게는 2주 길게는 3~4달까지 논문을 심사하는 저널을 말합니다.
심사 결과에 따라서 바로 게제될 수도 있고, 수정이나 보강을 요청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국내 학술지들의 심사 문턱이 매우매우 낮습니다.
학술지의 수준을 높이고자 논문의 거절율이 올라가게 되면,
일단 당장 이번 회차 학술지에 실을 논문이 부족할 수도 있고, 연구자들이 제출을 기피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우수한 국제 저널의 기준에서는 연구 필요성, 신규성, 방법론 등에서 거절당할 만한 논문들도
정말 말도 안되는 논문이 아닌 이상 받아줄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제가 국내학회지 리뷰어로 1년에 십수편씩 심사해서 잘 압니다...)
이것이 정식 학술지가 맞으며, 다만 심사의 문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실험이 2주 안에 가능한가?
간단히 실험 내용을 요약하자면, 혈액 샘플에서 DNA를 추출하고, 타겟 유전자의 양을 증폭하는 PCR을 수행했고,
유전자의 특정 부분을 잘라주는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들을 사용해서 증폭된 유전자들을 잘랐고
그 패턴들을 통계 분석해서 실험군과 대조군을 비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귀찮아서 꼼꼼히 읽지는 않고, 대충 봤습니다)
샘플 수는 실험군 대조군 다 합해서 100개 미만으로 기억합니다.
고등학생 인턴이 단기 프로젝트로 연구실에 오는데, 기초부터 청소부터 하나하나 이론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려는게 이상한 겁니다.
그냥 정말 딱딱 해야되는 실험들만 옆에 같이 붙여서 보여주고, 스스로 해보게 하죠.. 애초에 그게 목적인걸요..
솔직히 말해서 이 실험들 하루이틀만 붙어서 알려주면 (착실한) 중학생도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워낙 키트들이 잘 나와서, DNA 추출의 경우
'샘플 1ml를 튜브에 옮긴다. 원심분리기에 넣고 13000rpm으로 5분 돌린다.
꺼내서 A 시약을 1ml 넣는다. vortex를 이용해서 잘 흔들어준다. B 시약을 500ul 넣는다. 원심분리기에 넣고 1분 돌린다.
꺼내서 상층액만 잘 뽑아내서 새 튜브에 담는다. C 시약을 1ml 넣어준다. 냉장고에 5분간 넣어놓는다'
이런 식으로 아주 친절히 쉽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물론 각각의 스텝이 무슨 의미가 있고 왜 이렇게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겠죠.
그래도 실험 자체는 아무 문제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샘플을 100개라고 하고, DNA를 manual extraction kit를 썼고 손이 느림을 가정했을 때, 10~12시간 정도의 일이며
PCR같은 경우 가장 일반적인 작은 기기가 96개의 샘플을 한 번에 돌릴 수 있고, 하나의 타겟 유전자를 증폭하는데 2~3시간 걸립니다.
제한효소 처리는 하나의 효소 당 일반적으로 5-15분 정도 처리를 하고요. 물론 96개 거의 동시에 할 수 있는 작업이고.
Gel 사진 찍는게 준비부터 사진 찍는데까지 2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샘플들을 한 번에 돌릴 수 있고요..
박사과정이 붙어서 지도해줬다는 전제 하에, 위의 것들은 일과시간에 열심히 움직이기만 하면 일주일이면 다 하고도 남습니다.
나머지 일주일이면 데이터 정리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만 골라' 배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고요..
위의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해서 트러블슈팅을 해야하는 경우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지만,
이 논문에서 사용한 타겟 유전자나 primer나 제한효소들은 이미 너무나도 잘 정립되어 있는, 기존 논문들에서 확인된 것으로 보입니다.
확실한 방법에 새로운 샘플들을 테스트했을 뿐이니 신규성은 없고, 결과에서 특별히 의미있는 점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국내학술지의 현실상 논리나 실험에 문제가 없으면 신규성이 떨어지고 과학적 의미나 지식의 진보가 없더라도
어지간하면 받아줍니다..
솔직히 고등학생 인턴의 경험을 위해 굉장히 잘 준비된 실험 세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학부생 인턴들을 데리고 일해야 할 때가 많은데, 학생도 만족하고 저도 만족할 수 있는 단기 프로젝트을 만들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거기다가 본인이 열심히해서 영어로 초안을 작성했다면 (잘썼든지 못썼든지 간에), 기대한 바의 200%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논문과 관련된 갑론을박은 이제 그만 보고 싶네요...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