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년 8월 18일, 왜군의 총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결국 사망했다. 히데요시 사후 정권을 위임받은 고다이로(五大老)와 고부교(五奉行)들은 조선에 주둔한 다이묘들의 철수 작업에 착수했다. 이미 장기간의 군사 활동을 벌이면서 전쟁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던 다이묘들은 알음알음 집결하여 철수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순신은 절대 일본군의 퇴각을 용인할 생각이 없었다. 이순신은 기필코 일본군과 장수들을 전멸시켜 지난 7년 동안의 전란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생각이었고, 이순신 휘하 군졸 및 장수들도 임진왜란 당시 온갖 잔학한 짓을 저질렀던 일본군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정리하자면, "조국을 침략하여 7년간이나 유린한 왜적을 한 놈도 빠짐없이 수장시켜 다시는 힘을 못 쓰게 하자!" VS "살아서 돌아가느냐 죽느냐가 오늘에 달렸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의 한 치도 물러설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최후의 승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노량해전은 퇴각하는 일본군을 쫓아서 섬멸시키려고 붙은 해전임
총 맞아 죽을때까지 알리지말고
퇴각하려는 적을 한 놈이라도 더 죽이라고던 사람이 이순신임.
이순신 장군의 정신에 따라 300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6.25의 책임을 물어
북으로 퇴각한 북한군을 섬멸해야 한다
적에게 쌀 퍼줘서는 안된다 !!!!!
멸. 공.
북. 진.
친북좌파 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