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당시 박근혜대통령후보는 시종일관 최태민의 비리의혹을 부인하였지만 10.26재판기록과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비리혐의를 부인하기 어렵다.(오마이뉴스, 2012.10.29)
1991년 박근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태민이) 우리사회를 걱정하는 사람으로 느껴서 그분과 같이 일하게 됐다>고 말하였다. 최태민은 전두환신군부의 12·12쿠데타직후 사기 및 횡령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되어 징역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간석출판사, <태자마마와유신공주>, 2012,5.31)
박근혜·최태민관계와 <사생아>풍문은 미국과 수구보수인사의 입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미국의 극비문서를 폭로한 위킬리크스에 따르면 지난 대통령선거기간 주남미대사관 버시바우대사는 <최태민목사는 젊은시절 박근혜후보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통제했던 사람>이라고 미정부에 보고하였다.(미디어오늘, 2014.10.15)
또한 최태민을 <남코리아의 라스푸틴>이라고 표현하였다. 라스푸틴은 시베리아의 사이비사제로서 제정러시아의 마지막황제 니콜라이2세때 황후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통제한 후 황제마저 장악, 농락하였던 자이다.(서울의소리, 2012.5.28)
정두언새누리당의원은 <최태민과 박근혜 관계를 낱낱이 드러내면요, 온국민이 경악할 것입니다. 그리고 박근혜를 많이 좋아했던 많은 분들이 밥도 못먹을 것입니다.>라고 폭로했다.(<손석희의시선집중>, 2007.8.17)
16년동안 대중앞에 나서지 않은 박근혜가 정계에 뛰어들자 박근혜의 이종사촌형부 김종필전자민련총재는 <최태민의 자식까지 있는 애가 무슨 정치냐?>고 말하였다. 노무현정권 당시에는 <사생아>와 관련된 보고서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선데이저널, 2012.7.15)
조갑제는 2015.10 월간조선칼럼을 통하여 <박근혜대표가 1970년대후반기에 최태민이란 이상한 사람을 구국봉사단총재로 썼다가 최씨가 수많은 스캔들을 일으켜도 그를 끝까지 감쌌던 적이 있다. 박대표는 한번 믿어버린 사람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를 안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고 말하였다.(미디어투데이, 2014.12.2)
2007년대선 당시 한나라당경선에서 이명박후보측 박근혜후보검증팀 핵심인사는 <박근혜에게 박지만은 가족이 아니라 애물단지, 골칫덩어리에 불과하다. 최태민과 최순실, 정윤회가 가족이라고 보면 된다.>며 <우리가 확보한 증언이나 자료내용은 너무나 쇼킹한 내용이라서 당시엔 MB까지 보고도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기록은 남겨뒀다>고 주장하였다.(주간경향, 2014.12.16)
박근혜당시후보는 2007년 후보검증청문회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해에 수많은 위로 편지와 전화를 받았다. 그내용이 상당히 마음에 와닿고 만나서 얘기듣고 싶을 때 만났다. 최씨는 그렇게 해서 만난 몇분중 한분>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신뒤 힘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바로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고 하였다. 1975.3.6 박근혜는 최태민을 청와대까지 불러 대화를 나누었다.(조선일보, 2012.8.22, 한겨레, 2012.7.17)
선친 박정희, 동생 박근령·박지만은 박근혜·최태민관계를 심각히 우려한 것이 드러나며 둘의 관계를 반증하여 준다. 박정희는 20대의 딸이 그에게 현혹되었다고 보고 중정을 통하여 그를 수사하라고 지시하였다.(한겨레, 2012.7.17, 머니투데이, 2014.7.14)
1990.8 박근령(애초 근영, 1994년 서영에서 2004년 다시 개명)과 박지만은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씨에게 포위당해 있는 언니 박씨를 국가원수유족의 보호차원에서 구출해 달라>고 청와대민정수석실에 탄원서를 전달하였다. 당시 노태우대통령은 청와대하명사건을 담당하는 <사직동팀>에 최태민내사를 지시하였다.(오마이뉴스, 2012.10.23)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최순실을 아는 주변에서 박근혜가 입고다니는 옷을 최순실이 똑같이 입고다닌 점을 들어 <박대통령이 (최씨의) 아바타냐>라는 말도 돌고 있다.(주간경향, 2014.12.16)
1980년대 육영재단운영에 최태민·최순실이 실질적으로 관여하여 전횡을 부렸다.(오마이뉴스, 2012.10.23)
최순실이 사실상의 실세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윤회보다 먼저 박<대통령>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그 배경과 이력을 고려하면 오히려 최순실의 존재를 더 주목하여야 한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한겨레, 2014.12.4)
최태민사망후 1998.4 대구달성군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정계에 입문한 박근혜의 비서실장이 되어 2004년까지 최측근에서 박근혜를 보좌하였으며 <최태민사위>라는 사실이 알려진 2007년 공식적으로 정계를 떠났다. 특히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한국미래연합을 창당, 총재로 취임하였을 때 총재비서실장을 맡았다. 2004년부터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2007년대선후보경선 당시 박후보의 비선조직 <삼성동팀>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고 2012년대선 당시에도 박근혜캠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한겨레, 2012.7.17, 미디어투데이, 2012.8.22, 시사위크, 2014.9.26)
당시 <박근혜파일>에 대하여 알고있는 또다른 전직정보원요원은 <정윤회씨는 2007년대선 때 박근혜당시후보의 핵심측근으로 활약했다. 정씨를 통해 박후보를 만나는 이들이 있었다. 정씨의 의견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박후보에 있어 그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고 확인하였다.(주간한국, 2014.12.6)
문건에는 또 정윤회가 <이정현은 근본도 없는 놈이 VIP 1명만 믿고 설치고 있다>며 이정현당시청와대홍보수석을 비난하면서 <VIP의 눈밖에 나기만 하면 한칼에 날릴 수 있다. 안비서관이 적당한 건수를 잡고 있다가 때가 되어 내(정윤회)가 이야기하면 VIP께 보고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하였다고 적혀있다.(세계일보, 2014.12.7)
청와대안팎에서는 <3인방이 사실상 <수석위의 비서관>역할을 하고 있다>, <인사와 정책 등 청와대의 모든 업무는 3인방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말들이 오르내렸다. 또한 <3인방이 경제라인이나 경찰·군 인사에 입김을 행사한다>, <정권초 공기업감사 등에 3인방중 일부가 민 인사들이 줄줄이 임명됐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한국일보, 20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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