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변호사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 국선 변호인으로 지정됐을 때만 해도 안 변호사는 김재규가 차지철과 충성 경쟁을 벌였고 권력에 눈이 멀어 배은망덕하게 주군을 살해한 것이라는 합수부의 발표를 대체로 믿고 있었다고 한다.
"10.26에 가담한 김재규의 부하들이 마지막까지 그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끝까지 김재규를 원망하지 않았다. 가장먼저 사형대에 선 박흥주는 현역 군인으로서 대통령의 시해한데 대해 잘못을 느낀다면서도 김재규를 원망하는 말은 한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부장의 평소의 인격과 평소의 판단력, 본인 스스로 갖고 있던 사태 소요에 대한 핵심, 이런 것들만 생각"
그런가 하면 정보부 비서실 경비원이었던 김태원은 1980년 3월 4일 강신옥 변호사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접견 노트에 '와전옥쇄'라 적은 뒤 "이 네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죽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온전한 기왓장보다는 깨어진 구슬이 낫다는 뜻으로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기보다는 명예롭게 죽고 싶다는 자기다짐이었다.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강신옥 변호사는 1980년 사건 일기에
나는 연말쯤 이게 가능할거라 봤는데 빠르네.. 내가 모자란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