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1-0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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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정보지식산업 방해자 - 양신규박 정희가 한 일 중에 내가 칭찬하는 일 딱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한국과학기술원을 만든 것입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한 일 중에 프랑스를 위해 잘한 거 딱 한가지도 그것이었지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보나파르띠즘->파시즘=군국주의 인 것이고, 프랑스가 영국-미국 심지어는 독일에게 밀린 것이 보나빠르티즘 때문이었듯이, 남한의 발전의 정체는 박정희가 만든 정치경제 체제 때문이었다고 봐야 합니다.박정희가 정보지식산업에 대해 한 말과 그의 실제 정책은 전혀 상반된 방향을 향하고 있고, 박정희는 스스로 그것을 알만한 지력이나 보고배운 것이 없는 분입니다. 다만 옛날 국민학교 선생하던 습관으로 이것저것 주워읽고 쓸만한 말을 골라 해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공포통치를 한 사람이지, 김영삼이 하듯이 인간관계로 김대중이 하듯이 지적인 리더로 정치를 한 사람이 아닙니다.그의 말은 통치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전혀 없기 때문에 별로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집에 가보고 화장실 변기 뚜껑이 금으로 되어있으면 좋은 집이라고 하는 것이나 다를바 없지요. 변기 뚜껑이 금으로 되어있다 해도 flush 도 안되는 변기이고 침실에서 비가 샌다면 좋은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박정희는 핵개발, 자주국방을 위한 중화학공업육성, 시장장벽구축 등으로 한국경제의 성장과 정보경제산업으로의 전진을 크게 가로막은 사람입니다.박 정희 시대에는 심지어 청색전화 백색전화가 있고, 전화한번 놓으려면 몇개월을 기대려야 했지요. 티비도 흑백이었고, 정보를 특히 해외정보를 철저히 차단했기 때문에 음악, 영화, 드라마, 컴퓨터기술 등이 발달할 기회를 박탈했지요. 돈의 흐름이 왜곡되니까 새로운 산업에 투자할 여력도 없는 것이구요.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crowding out 이라고 합니다.)저 는 이미 1978 년에 피시산업을 하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분들을 조금 알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전두환-김재익 체제 이후입니다. 전두환-김재익은 박정희의 정책과 정반대의 정책, 즉 안정화-개방화를 채택해서 박정희체제의 찌꺼기를 걷어내기 시작합니다. 물론 전두환-노태우-김영삼의 정책은 반박정희라는 측면에선 맞는데, 한가지 빠진 것은 재벌통제를 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오명 현 아주대 총장이 김재익체제 이후 한국 정보화를 이룬 역할을 하신 분들중 공무원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분입니다. 민간에서는 삼보컴을 설립한 이용태 박사를 칠 수가 있겠지요. 이 분들은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시대에 적어도 통신분야의 인프라, 금융전산망 행정전산망 등의 인프라까지 통신분야의 기본과,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본을 다지는 정책들을 펼치고, 그 정책의 핵심도 박정희와는 전혀 반대의 시장위주 경쟁체제 도입이었지요. 예를들어 데이컴의 창립부터 시작되는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한국의 통신시장 독점체제 분쇄가 매우 중요한 깃점인데, 이 분들이 다 기획하고 실행한 일들입니다.김대중 정부내의 정보통신정책에 대해서는 내 최근 논문에도 잠깐 소개되어있긴 하지만,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면, 김대중씨가 개인 적으로 시간을 가장 많이 쓴 분야가 남북문제와 정보지식산업 분야입니다. 벤처를 비롯해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통신인프라에 대한 재정적 법률적 지원을 아낌없이 하게 되는데, 이것이 실지로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전두환 체제 이래 기본이 상당히 갖추어졌기 때문이고, 김대중정부에서 또 그 인물들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도 가능했던 것입니다.그러니까 박정희체제는 닫힌 시장, 통제경제의 문제점이 두드러진 시대였고, 전두환부터 김영삼까지는 그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는데 대신 재벌문제가 두드러진 것이었지요.박정희의 지식정보산업에 대한 기여가 하나 있다면 그래도 마르코스보다 일찍 죽어준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지요.경 제 데이타와 경제논리를 모르면 사회학도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십상이고, 미국에서 1960 년대 이후 최근까지 사회학의 정책결정에서의 힘과 아카데미에서의 후광이 점점 없어졌던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1990 년대에 이르면 그래도 여러측면에서 사회학이 아카데믹하게도 정책적으로도 서서히 부활하고 있는 듯해서 조금 기대가 됩니다. 위스컨신은 특히 새로운 사회학분야를 열어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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