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국방부 회의 2시간쯤 뒤인 5월21일 오후 1시 광주 금남로에서 시작된 시민에 대한 계엄군의 집단 발포는 오후 4시까지 이어졌고, 단 하루 만에 김완봉(15·당시 중3)군 등 34명이 목숨을 잃었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에 대해 최규하 당시 대통령은 깜깜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석환 전 중앙정보부 전남지부장 직무대리는 1995년 12월27일 서울중앙지검 조사에서 “(집단 발포 이튿날인) 80년 5월22일 밤 10시경 최규하 대통령이 전화해 ‘지금 발포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격하는 군부대와 지휘관을 확인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밝혔다.
시대가 이쯤 되면 상황 판단좀 해봐야 하지 않겠나
자식 잃은 부모들에 그렇게나 냉혹한데 댁들이 자비를 바랄수 있겠나
그건 이치가 아닌기라 자비 달란거는 죄만 더하는길인기라
언제까지 같은 국민에게 왜놈마냥 업을 계속 지을래
편히 죽을수 있겠누
거짓말로 세뇌나 하다 죽겠지만 죽음뒤 세상이 그리 만만할까
자신과 자신의 집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과 남에게는 한없이 엄격한 의심병자들아
남이 불한당 같은 자에 살해되고 누명 씌워져 죽어도 그보단 니 집단과 부귀영화가 먼저인기라
우리는 언제고 죽는다 무엇을 가져갈 낀가? 인간으로서의 불명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