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을 해방후 한민당으로 잡아야 할것 같습니다.
당시 천도교(여기서 말하는 천도교는 보수화된 천도교 당시 공산주의가 종교에 대한 배척등 여러 문제로 인한 또 친일경력있는 천도교 세력도 있었고..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 일제시대 기업가들(다 친일은 아닙니다만 무시할수 없는 수의 친일경력이 있는 분들도있죠)
+ 일제시대 경찰 행정가
+ 독립운동가 ( 한민당이라고 다 친일만 있었던것은 아닙니다. 진짜 역사를보면
존경해 마지 않을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 이런분들은 소수죠.)
미군정 정책에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여당적 지위를 확보하게 됩니다.
대표로써 김구 이시영 이승만을 추대하고
여기서 김구 추대는 당시 김구가 가지는 대중적 지지를 인식한 이름 끼어넣기지
정작 김구 본인은 어리둥절 이런 상황입니다. 우파적 정치적 견해를 가졌다는 공통점 말고는 정치적
행보에 연관이 없습니다.
새누리당이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원하고 건국절이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목매는 이유중 하나라 봅니다.
친일척결은 당시에 이루어졌어야 하나 우리는 시기를 놓쳐 지금 한다는것은 한계가 있죠.
단, 조상죄야 본인한테 물을 수 없지만 이것들이 그냥 가만히 잘 살면될걸, 조상도 잘했다고 미화하는
바람에 여지것 논란이 되고 있지요. (물론 더 민주 몇몇분들도 조상이 친일 경력자 있습니다.)
내각제냐 대통령제냐를 두고 이승만과 한민당간의 갈등이 있으나 (원체 이 양반이 권력욕이 심해서..)
본질적으로 같은 배를 탄 운명이었습니다.
p.s 미군정은 최초 통일정부를 지지했지만, 김구 암살후 태도가 바뀌어 이승만을 지지하게 됩니다.
김구가 죽은 시점에서 동력원을 상실 더이상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하게 된거죠.
흔히들 아시듯 미국이 처음부터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것이 아닙니다.
(김구선생보고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만 바라봤다는 비판은 뭐도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당시 한반도
최대 세력의 한축이 김구랑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김구 암살 배후를 밝히지 못한것이 천추의 한이죠.
개인적으로 아주 강하게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죠. 그리고 나라가 쪼개진 결정적 이 암살 사건을 교과서에는
간단하게 지나치죠.)
이 과정에서 한민당은 이합집산 행태를 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