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이 명-금 전쟁에 이미 명이 승산이 없다고 보고
군대 안보낼려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보냄.
그걸 보고 서인들이 광분해서 사실상 반협박.
중국도 그거보고 더 쎄게 밀어붙여서
광해군은 어쩔수 없이 정예병 1만2천 보내나 사르후 전투에 자그만치 7천이 죽고 나머지는 포로.
근데 문제는!
전투에 패하자 전쟁을 주장했던 서인들이
"광해군이 일부러 명과 조선군의 정보를 후금에 빼돌려서 전쟁에 패했다" 라고 주장.
어처구니 없는 적반하장으로 쿠테타.
인조 반정으로 정권은 잡았지만,
정통성이 없고 뻘짓만 하다보니 이괄의 난 발생.
-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 수비주력은 조총병, 즉 보병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여진족 같은 기마대에 취약하기 때문에, 보병 집결할 시간을 벌 기마부대가 필요했슴.
이괄은 이 정예기마부대의 사령관
이괄의 난은 진압되지만, 조선의 기병이 사라지고 ....................
정묘호란 때 인조가 강화도로 도망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뚫린건 이 때문임
정묘호란, 병자호란은 짧았지만 조선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그 이유는,
주목적이 약탈이었기 때문에 초토화된건 말할 것도 없고, 거의 몇십만에 달하는 백성들이 인질로 끌려감.
(심양에 도착한 포로가 60만, 중간에 죽은거 빼고...)
양대 호란은 기간이 매우 짧지만 조선에 준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임진왜란을 능가함.
그 후 조선은 정신을 못차리게 되고..... 회복불가 상태로 빠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