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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6월 7일 오전 일본 영빈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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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다. 취임 후 첫 방일이었지만, 정상회담으로는 이미 두 번째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노 대통령의 취임식에 와서 축하해 주었고, 그때 첫 정상회담이 열렸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을 일본에 초청했으며, 이렇게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되었다.
국빈 자격으로 동경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다시 총리를 만나 '한일 관계를 위한 새로운 비전'과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날 저녁 열린 만찬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감사를 표한 뒤 이렇게 말했다.
"한일 관계는 때때로 과거 문제가 돌출될 때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양국이 이러한 장애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월드컵 대회를 지켜보면서 그 희망과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를 향해 "처음 만난 날부터 마음이 통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그가 회담에서 무엇을 얻어내고자 했는지는 그 다음의 말로 명확히 드러났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지금 나와 한국 정부는 '평화번영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실현하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북한의 핵보유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의 근심거리지만, 단순한 '우려'를 넘어 '공포'까지 느끼는 나라로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정부는 국민들의 이런 우려를 구실로 미국과의 군사적, 경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한편, 재무장을 통해 아시아 내에서의 역할 확대를 꾀해 왔다. 일본은 북핵에 대해 '협상을 통한 해결'을 말하면서도 무력충돌과 체제전복까지 염두에 둔 대북전략을 동시에 짜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명시화하는 것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방지와 더불어 일본의 국비 확장을 견제할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었다. 노 대통령이 방일 당시 했던 "북한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현실에 기초한 냉정한 판단보다 감정적 대응을 앞세울 때 파국적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나 일본의 군국화 견제가 회담 한 번으로 성취될 사안은 아니었으나, 취임 6개월의 대통령이 뜬 '첫 삽'으로서는 칭찬할 만했다.
노무현에게 쏟아진 악담, 12년 뒤 박 대통령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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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2003년 6월 10일 의원총회에서 '등신외교'발언에 대해 사과발언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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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귀국한 대통령을 기다라고 있던 것은 보수 언론과 정치인의 냉대뿐이었다. <조선일보>는 '몰매 맞는 '빈손외교'', '거품외교', '화려한 '형식'… 남루한 '성과''로 혹평했다.
이 신문이 이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해외 순방시 얼마나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지를 강조한 것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보도였다.
<동아일보>는 '노 대통령의 '대북 진심'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신문은 "북한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말을 문제 삼으며 그 "위험한 발언"의 진의가 무엇이었냐고 캐물으며 비난했다.
하지만 진정한 '스타'는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지금 새누리당) 이상배 정책위 의장은 국회최고위원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국빈대우를 받은 것 빼곤 이번 방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운을 뗀 뒤, 이런 악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방일 외교는 한국 외교사의 치욕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고, '등신외교'의 표상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