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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6200만원 시민모금으로 설립된 경북 상주 평화의 소녀상 위안부기림일이자 광복절 전날인 14일 얼굴 2~3곳 긁힌 채 발견 경찰 "주변 폐쇄회로TV(CCTV) 분석 중이지만 오래걸려" 광복절 전날 저러는 이유가 무엇일까?박정희가 현충사에 일본 금송 심는것과 같은건가?
원나라(몽골)에 공녀를 보내는데 80년 동안 약 44차례 총 인원 170명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요구로 원나라 고위 관료들에간 공녀들을 대략 추산 천 명정도로 보고 있다. 이들은 성노예로 팔려간 것이 아니고, 부인이나 첩이 되기 위해서 간 여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패션, 생활양식들이 원나라로 전해져서, 지금의 한류와 같은 고려풍습이 원나라 상류층에 퍼지게 된다. 이를 "고려양"이라 한다.
명나라 시기.
명나라의 영락, 선덕은 조선 여자를 좋아해서 조선에 공녀을 요구하는데, 조선은 억지로 억지로 태종 세종 사이에 약 114명을 공녀로 보낸다. 그래도, 이들의 세부적인 사항을 보면, 왕족, 귀족과 결혼을 위한 양가처녀 14명, 무수리 48명, 집찬녀(쉐프) 42명, 무녀(걸그룹) 8명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들도 성노예 만으로 끌려간 것 아니다.
청나라 (여진족)
1650년(효종 1) 실권자였던 섭정 예친왕(睿親王) 도르곤[多爾袞]의 요구로 의순공주(義順公主:錦林君 李愷胤의 딸)와 21명의 여자를 보낸 것을 제외하고는 공녀가 없었다.
병자호란 이후, 형제국가의 예에서 신하국으로 떨어져버린 조선에 청나라는 공녀를 요구하지 않는다. 청나라가 공녀을 요구한 것은 왕족 대 왕족 혈맹을 맺기 위함이었으나, 조선의 거절과 청나라 쪽에서 더이상 형제로 생각하지 않게 됨으로 요구하지 않게 된 것임.
일제의 성노예로 끌려간 할머니들은 공식 추산 14만 5000명이다. 그리고 그 상당한 수가 끌려간 곳에서 살해되고, 많이 돌아오시지 못했다. 이들은 정략적 결혼이나, 상대국가의 수장이나 귀족의
후궁으로 간 것이 아니라, 말단 병사까지 사용하는 정액배출의 대상으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고문 받고, 그리고 비참하게 살해 당하기까지 하셨다.
공녀와 일본군 성노예의 차이를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너가 이땅에서 밥먹고, 한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하신 분들과, 그 과정에서 희생하신 분들을 욕되게 하지는 말아라.
그리고,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불교에선 구업이라는 것이 있다. 너가 한 모든 말이 업이 되어 너에게로 갈 것이다. 그것을 잘 생각해 보도록 해라.